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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47화 (147/200)

제147화

은은한 정취가 묻어나오는 정원.

그러한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세이메이가 입을 열었다.

“누구냐.”

손에 쥔 찻잔을 내려놓는 등, 세이메이의 행동 하 하나에는 여유가 묻어나왔다.

허나 허공을 향해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벼려진 한 자루의 검과 같았다.

한편, 세이메이의 말에도 정원은 아무도 없다는 양, 고요하기만 했다.

그에 세이메이가 쯧! 하고 혀를 차며 품에서 한 장의 부적을 꺼내 허공에 던졌다.

화르륵-!

파라락! 하며 허공에 던져진 부적이 불타오르며 사라지는 순간….

콰강-!

정원 한켠에 자리 잡은 나무에 한줄기 청뢰가 내리꽂혔다.

청뢰가 내리꽂힌 나무는 순식간에 불타올라 무너져 내렸다.

허나, 그럼에도 정원에는 누구 하나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실에 세이메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부적을 꺼내려는 찰나….

“성격이 급하구나.”

세이메이의 등 뒤로 노년의 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백발에 백염을 가지고, 모노클을 착용하고 있다.

몸에 걸치고 있는 슈트도, 머리에 씌워진 모자도. 하다못해 신고 있는 구두와 손에 쥐어진 지팡이까지.

모든 것이 순백으로 물들어 있는 노년의 신사, 백의 대장군의 등장에, 세이메이의 두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영국의 플레이어인가? 이곳이 어디인 줄은 알고 숨어든 것이냐?”

겉보기로 보기에 세이메이는 20대 중반으로 보인다.

그에 반해 순백의 신사, 백의 대장군은 척 보기에도 60살을 넘긴 듯 보였으나, 그런 백의 대장군을 향해 말하는 세이메이의 말투에는 예의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허나 백의 대장군은 그런 세이메이의 말투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그저 끌끌 웃으며 허공에서 하나의 시체를 꺼냈다.

“이 장난감을 만든 것이 자네인가?”

백의 대장군이 꺼낸 시체를 본 세이메이의 눈동자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머리가 터져나간 시체의 신원은 알아볼 수 없지만, 그러한 시체에서는 자신이. 아니, 더욱 정확히는 자신의 길드인 은림에서 만들어 낸 약의 흔적이 묻어나왔다.

“무슨 소리지? 그나저나 네놈은 상아탑에 소속된 플레이어인가? 괜히 쓸데없는 소리로 내 심기를 어지럽히지 말아라. 제아무리 네놈이 상아탑에 소속되어 있다 한들, 이것은 정당방….”

“끌, 그대의 눈에는 내가 단순한 인간으로 보이던가?”

세이메이의 말을 끊으며 백의 대장군이 입을 열었다.

그에 백의 대장군을 단순히 ‘영국의 플레이어’로 보고 있던 세이메이의 두 눈동자에 날카로운 안광이 번뜩였다.

“네놈, 인간이 아니구나.”

“끌끌.”

이제야 눈치챘다는 듯 발하는 세이메이에, 백의 대장군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런 백의 대장군의 한쪽 눈동자는 제로와 대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검게 물들어갔다.

“허상괴인가. 지성이 있고, 인간의 언어를 할 줄 아는 것으로 보아 제로가 말했던 최상급 허상괴가 네놈인가 보군.”

그러한 말을 내뱉은 세이메이가 망설임 없이 허공에 다량의 부적을 흩뿌렸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파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흩뿌려진 부적은 순식간에 불타올라 사라졌으며, 곧 세이메이를 중심으로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이 휘몰아쳤다.

“최상급 허상괴라…. 제로 그는 네놈들을 조심하라 했지. 허나 내가 보기엔 하위 등급의 허상괴와 별 다를 바 없는 무지렁이로구…!”

말을 하던 세이메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언제 움직인 것일까?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음에도 순백의 신사, 백의 대장군의 신형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에 세이메이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그냥 앉아있게나.”

세이메이의 뒤에 나타난 백의 대장군이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로 어깨를 짓눌렀다.

그 압박감에 세이메이가 큭! 하며 강제로 자리에 앉혀졌다.

“다시 한번 묻겠네. 이 장난감을 만든 것은 자네인가?”

“그렇다면… 어쩔 생각이지? 왜, 동족의 시체를 이용한 것에 대한 복수라도 할 생각이냐?”

“설마.”

세이메이의 말에 백의 대장군이 끌끌 웃음을 터트렸다.

에초에 허상괴들은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하위의 허상괴를 동족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대장군의 위치에 있는 백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 이렇듯 자네를 찾아온 이유는 간단하다네. 실험체는 얼마든지 제공하지. 그 대신….”

“그 대신…?”

“우리를 위해 일해보지 않겠는가?”

백의 대장군이 음험한 미소를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 * *

“무슨 일 있으십니까?”

어째서 플레이어가 허상괴로 변했는가?

그것의 실마리를 풀어낼 시체를 강탈당하고, 백의 대장군까지 놓쳐버린 제로가 풍기는 분위기는 사뭇 무거웠다.

그것을 눈치챈 신성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별거 아니야. 그보다 끝났으면 돌아가자.”

“알겠습니다.”

무언가 일이 틀어진 것이 확실했다.

다만, 본인이 먼저 입을 열지 않기에 신성 또한 따로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돌아온 서울은….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아이템은 플레이어들의 것이다!

-협회는 아이템을 플레이어들만 사용할 수 있게 하라!

그야말로 난장판이였다.

수많은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협회 서울 지부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을 막기 위해 군과 경찰들이 동원되었지만, 그렇게 동원된 군과 경찰들의 표정은 불안하다는 듯 일그러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레벨이 낮다 한들 플레이어는 초인이었다.

50레벨만 넘어가도 성인 남성 두세 명은 훌쩍 넘어설 괴력을 발휘하고, 100m를 8~9초대로 주파한다.

특히나 스킬이나, 각종 특수한 능력이 있는 아이템까지 사용하는 플레이어를 평범한 군인과 경찰들이 막아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한 시위에 참가한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숫자이 가볍게 천 단위를 넘겨, 만 단위에 가깝다는 것이 그들의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다.

한편, 플라이 마법을 통해 허공에 떠 있던 제로는 협회 건물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는 저레벨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그러게… 요.”

제로의 중얼거림을 들은 신성 또한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둘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시위를 지켜보고 있을 때….

-당장 해산해 주시기 바랍니다!

협회 건물의 문이 열리며 수십의 플레이어들이 새로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슴팍에 불사조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피닉스 길드인가?”

“맞을 겁니다.”

피닉스 길드.

구모는 중소형 길드였지만, 길드 마스터는 마스터 레벨이라 불리는 500레벨을 넘긴 고레벨 플레이어였다.

길드의 이름이 피닉스인 것인 길드 마스터인 데릭 덕분이다.

그는 소환술사로, 마스터 레벨을 넘겨 서먼 마스터라는 히든클래스를 가지고 있었다.

소환술사는 일반적인 몬스터는 물론, npc와도 계약을 맺어 소환체로 다루는 직업으로. 데릭은 희귀 보스 몬스터 중 하나인 피닉스와 계약을 맺었다.

다만, 피닉스의 레벨은 800에 가까웠으며, 데릭의 레벨은 530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데릭은 피닉스의 강함을 100%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 정도만 하더라도 상당한 강자로 취급받는 플레이어였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지금 당장 플레이어 여러분들께서는 시위를 중단하고 해산해 주십시오!”

-닥쳐!

-네가 저레벨 플레이어의 마음을 알아?

-일반인들이 아이템마저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우리를 얼마나 무시하겠어!

데릭의 정중한 요구에도 시위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분노를 거두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정당한 분노’가 아닌, 어린아이의 고집에 불과했다.

한편 데릭은 시위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의 말과 행동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와 동시에….

화르륵-!

허공에 선명한 적색의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곧 한 마리 거대한 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데릭을 서몬 마스터로 만들어 준 소환체, 피닉스였다.

비록 소환된 피닉스는 본래의 강함에 80%밖에 발휘할 수 없지만, 피닉스는 피닉스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내뿜어지는 열기는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시위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피닉스의 등장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이 이상 소란을 피우지 말고 해산해 주십시…!”

어디선가 얼음 화살이 날아오며 데릭의 머리를 노렸다.

허나 계약을 맺은 계약자의 위험을 지켜 볼 피닉스가 아니었다.

허공에 떠 있는 피닉스가 날아오는 얼음 화살을 응시하자, 화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피어오르며 얼음 화살. 하급 마법 중 하나인 아이스 애로우를 흔적도 없이 증발시켜버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데릭과 피닉스 길드에 속한 길드원들은 몰룬, 시위를 진행하고 있던 플레이어들마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허나 그 당혹감은 금방 분노로 뒤바뀌었다.

“이것들이 진짜…, 좋게 좋게 말해주니 주제를 모르겠냐?”

화르륵-!

데릭의 분노를 감지한 피닉스가 힘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그에 불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언뜻 보면 하급 마법 중 하나인 파이어 볼과 흡사했으나, 그 본질은 달랐다.

피닉스의 힘이 깃든 그것은 상급 마법 중 하나인 익스플로전과 흡사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불덩이 수십 개가 두둥실 떠다니자, 시위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이 다시 한번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내가 조용히 해산하라 했지. 꼭 피를 봐야 알아듣는 거냐?”

데릭의 입에서 흘러나온 싸늘한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런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살기에 플레이어들이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아니, 플레이어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런 능력도 지니지 못한 일반인에 불과한 군인과 경찰들 마저 오싹함에 저절로 몸을 움츠렸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당장 모두 꺼져.”

화르륵-!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한번 불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플레이어들인 도합 백여 개의 불덩이가 언제 자신을 향해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연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지랄하고 있네!

-너도 똑같아!

-협회의 앞잡이 놈!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는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아이스 애로우가 데릭을 향해 쏘아졌다.

허나 하급 마법인 아이스 애로우로는 피닉스의 방어를 뚫지 못한다.

그것을 증명하듯 데릭의 얼굴과 심장을 노리며 쏘아진 아이스 애로우는 불꽃의 벽에 막혀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한편, 또 한 번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기습에 데릭도 더 이상 참고만 있지 않았다.

“이것들이 진짜.”

폭발하는 활화산처럼 분노를 표출하며 손을 내리긋자 허공에 두둥실 떠다니고 있는 백여 개의 불덩이들이 일제히 시위대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아니, 쏟아지려 했다.

막 불덩이가 시위대를 향해 쏟아지려는 찰나….

“거기까지입니다.”

시위대의 머리 위로 순백의 막이 쳐지며 데릭의 공격을 막아냈다.

동시에 그들의 머리 위로 신성과 제로가 천천히 내려와 피닉스 길드와 시위대의 중간을 가로막았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신성은 아무리 화가 났기로서니, 시위대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가한 데릭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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