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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46화 (146/200)

제146화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겠다.”

서울 외곽의 폐공장.

저레벨 플레이어 연합이 거처로 사용하던 그곳에 도착한 제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런 제로의 말에 신성 또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표현하기에 ‘난장판’이란 단어만큼 어울리는 것도 없을 것이다.

콘크리트로 세워 올린 벽은 전부 부서져 무너져내렸고.

사방에 폐공장의 잔해와 플레이어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그나마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의 비명이 희미하게나마 울려 퍼졌다.

“신성.”

“알고 있습니다.”

제로의 부름에 고개를 끄덕인 신성이 움직였다.

신성은 하급 성수들을 소환해, 아직 살아있는 플레이어들을 구조하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그런 신성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제로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을 가로막는 잔해들을 헤치며 나아간 제로가 도착한 장소는, 연합의 장인 진진자라. 그리고 하연과 나머지 열 명의 플레이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방… 이 있었던 장소였다.

한때 방이었던 장소는 완전히 파괴되어 있으며, 사방에 죽어버린 플레이어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제로는 플레이어들의 시체를 지나쳐 터벅터벅 걸어가 어느 한 장소에 멈췄다.

“이게 네가 원하던 거야?”

“제… 로… 님….”

제로의 말에, 죽어가는 플레이어 하연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냐는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바닥이 고일 정도로 피를 흘려 피부가 창백하게 변해버렸다.

그 창백한 모습은 하연의 종족이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야?”

“그… 게….”

제로의 질문에 하연이 힘겹게 입을 움직였다.

허나 대량의 피를 흘리고, 복부에 생긴 구멍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고통에 하연은 제대로 된 말을 내뱉지 못했다.

“흐음.”

제로는 그런 하연을 바라보며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살리기엔 늦었다.

그녀의 육체는 이미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하연을 살리기 위해선 그녀를 망자로 만들어버리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제로가 하연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연이 남은 힘을 쥐어 짜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 게 되었어요…?”

“누구? 이 방에 있던 사람들? 아니면 폐공장에 있던 사람들?”

“전… 부요….”

“대다수는 죽었어. 그나마 가능성 있는 플레이어들은 신성이 살려내는 중이고. 다만, 이 방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죽었… 군요….”

제로가 뒷말을 흐렸음에도, 하연은 그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했던 괴물이다.

나름 2만 대의 랭커로서, 마스터 레벨을 코앞에 뒀던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한 놈을 고작 250레벨을 겨우 넘긴 진진자라나. 그도 아니면 150이 겨우 될락 말락 한 플레이어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다시 한번 이어진 제로의 질문에 하연이 입을 열었다.

허나 채 몇 단어 내뱉기도 전에 그녀의 두 눈동자가 탁하게 풀리며, 제로를 향해 힘겹게 들어 올리고 있던 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죽었다.

어떻게든 연명하고 있던 생명이 끊겨버린 것이다.

제로는 이 폐공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리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하연에 인상을 찌푸렸다.

“귀찮네.”

스윽.

조용히 중얼거린 제로가 손을 들어 올리자, 시체가 되어버린 육체에서 빠져나오던 하연의 영혼이 쥐어졌다.

하연의 영혼은 멍하니 풀린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본래라면 윤회의 고리에 가야 할 그것은 제로의 죽음에 휩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적당히 정보만 빼내고 다시 윤회의 고리에 넣어 줄 테니.”

그러한 말을 내뱉은 제로는 망설임 없이 흑골로 이루어진 다섯 개의 손가락을 그녀의 영혼에 박아넣었다.

* * *

저벅. 저벅. 저벅.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로가 천천히 걸어 나오자,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을 살펴보고 있던 신성이 입을 열었다.

“상당히 골때리는 상황이네.”

제로는 그런 신성의 물음에 손가락으로 두개골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신성에, 제로는 하연의 영혼을 통해 알아낸 사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한 플레이어의 난동이었다.

처음에는 감정이 격해져 그 분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뭐라 뭐라 외칠수록 플레이어의 두 눈동자는 검게 물들어갔다.

그런 플레이어가 괴물이 된 것은 한순간이었다.

난동을 넘어, 난폭하다고 말할 정도로 변해버린 그를 제지하기 위해 일어선 플레이어 한 명을 죽여버린 그는 완전히 괴물이 되어버렸다.

전신은 검게 번들거리는 비늘로 뒤덮였으며, 신장은 족히 3m를 넘는다.

원래도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지고 있던 플레이어였으나, 괴물이 되면서 그러한 근육은 더욱 비대해졌다.

마치 허상괴와도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방에 있던 플레이어들, 진진자라와 하연을 포함한 그들은 갑자기 괴물이 되어버린 동료의 모습에 순간 당황했지만, 그들 또한 저레벨일지라도 플레이어.

그들은 순식간에 각자의 무기를 꺼내쥐며 괴물이 된 동료와 대치했다.

허나 괴물도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고작 150레벨 언저리에 있는 플레이어의 공격으론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나름 그들 사이에서 고레벨이라 불리는 진진자라, 그리고 마스터 레벨을 목전에 두고 있는 하연의 공격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신을 뒤덮은 비늘은 마법을 모조리 무효화시키고.

검이나 창, 도끼 따위의 물리적인 공격 또한 튕겨낸다.

궁수 직업을 가진 하연의 화살마저 튕겨내는 그것을 막아설 수 있는 존재는 폐공장 내부에 없었다.

특히나 괴물이 되었음에도 인간이었을 때의 스킬과 아이템을 사용하는 그 무력 또한 하연이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 괴물이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죽이고 떠난 거군요.”

“그래.”

신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제로의 사신의 흉안이 데굴데굴 구르다 어느 한 장소를 응시했다.

그것은 수십 명의 플레이어를 죽이고 사라진 괴물이 향한 방향이었다.

“어떻게 할래?”

“상처는 모조리 치유했지만, 아직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습니다. 이들을 내버려 뒀다가 허상괴라도 나온다면 낭패지요.”

그 말은 곧, 자신은 이곳에서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을 지키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신성의 말에 제로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놈을 처리하고 올게.”

“조심하… 아니, 제로 님이라면 이런 말은 필요 없겠군요.”

“그 누가 날 죽일 수 있겠냐.”

신성의 말에 피식 웃은 제로가 움직였다.

플라이 마법을 통해 몸을 띄운 제로는 하나의 점이 되어 순식간에 사라지고. 신성은 그런 제로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만 봤다.

한편, 그렇게 움직인 제로는 폐공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을에서 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

이미 괴물은 양손에 착용한 클로를 휘두르며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런데 플레이어에서 허상괴가 되어버린 부작용 때문인지, 육체가 붕괴하고 있었다.

놈은 인간을 잡아먹고, 그렇게 잡아먹은 인간이 품은 생명을 통해 붕괴되는 육체를 수복하기를 반복했다.

마을에도 플레이어는 있었지만, 애초에 그 플레이어들의 레벨은 100도 넘지 못했다.

작은 마을에서 왕 노릇을 하며 미친놈마냥 날뛰던 놈들이, 2만 대이긴 해도 랭커였던 하연조차 이기지 못한 괴물을 감당할 순 없었다.

다만….

“너 지금 뭐 하냐?”

괴물의 그러한 행동은 제로의 분노를 자극해버렸다.

쿠구구-!

천천히 바닥에 내려온 제로의 몸에서 막대한 존재감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그러한 존재감에는 죽음의 기운이 뒤섞이며 제로를 중심으로 모든 것들이 죽어 나갔다.

초목은 생명을 잃고 말라비틀어졌으며, 충만한 생명력을 품고 있던 대지는 쩍쩍 갈라지다 못해 바스라졌다.

공기 또한 죽음을 맞이해 썩어버렸으며, 그 공기를 한 줌이라도 들이마신다면 그 어떤 생물이라도 폐가 썩어나가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 인간들을 잡아먹으며 붕괴하는 육체를 수복하고 있던 괴물은 갑작스런 제로의 등장에 ‘크르르…’ 하는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이성이라곤 한 줌도 존재하지 않는 괴물이었지만, 그만큼 발달해버린 본능이 위험을 감지했다.

허나 괴물은 도망가지 않았다.

그것은 본능과 본능의 싸움.

허상괴로서의 본능은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인간으로서의 본능은 제로를 죽여버리라고 외치고 있었다.

괴물이 되기 전, 인간이었을 때 품었던 가장 큰 욕망. 모든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죽여버리겠다는 그것이 도주라는 선택지를 아예 없애버리고 말았다.

“완벽히 하나가 되지 못했네. 하긴, 그러니 이성도 없는 단순한 괴물로 전락해버린 거겠지.”

괴물의 상태를 한눈에 꿰뚫어 본 제로가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냥 죽어라.”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흑골의 손가락이 괴물을 가리키고.

제로의 등 뒤로 만들어진 거대한 흑골의 창이 쏘아지며 괴물의 머리를 노렸다.

쉐에에에엑-!

퍼억!

괴물은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흑골의 창에 양손을 들어 올리며 방어했다.

허나 제로가 쏘아낸 흑골의 창, 데스 본 스피어는 그런 괴물의 방어마저 뚫어버리며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비틀비틀.

털썩.

머리와 양손을 잃어버린 괴물이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그런 괴물의 몸뚱이에선 뒤섞이지 못한 붉은 피와 푸른 피가 흘러내려 자그마한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렇게 죽어버린 괴물은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왔지만, 한때 허상괴로 변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군데군데 그 흔적이 묻어나왔다.

한편, 구석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생존자들은 괴물이 죽어버리자 기쁜 표정으로 쏟아져 나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아! 살려주셔…!”

콰가강-!

살아남았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튀어나온 사람들의 머리 위로 수백 줄기의 섬광이 쏟아졌다.

그 재빠른 공격은 제로조차 반응하지 못했으며, 쏟아지는 섬광은 모든 인간들을 흔적도 없이 증발시켜 버렸다.

그와 동시에….

“처음 뵙겠네, 왕의 대적자여.”

한 노년의 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백발에 백염을 지니고 있으며, 몸에는 잘 관리된 순백의 슈트를 걸쳤다.

머리 위에는 슈트와 마찬가지로 새하얀 모자를 뒤집어썼으며, 모노클을 착용하고. 한 손에 순백의 지팡이를 쥐고 있는 그 모습은 영국의 신사나 다름없었다.

제로는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나타난 노년의 신사에 인상을 찌푸렸다.

“너, 인간이 아니구나.”

“그렇다네, 왕의 대적자여.”

제로의 말에 신사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모노클이 없는 한쪽 눈동자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며 허상괴 특유의 기운을 뿜어냈다.

그 모습에 제로가 쯧! 하고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하필이면 백의 대장군이라니.”

대장군.

군단장급 이상의 허상괴로, 그 숫자는 지극히 적다.

회귀 전에도 밝혀진 대장군급의 허상괴는 백과 흑 단 둘 뿐이었으나. 왕과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허상괴들 중에는 분명 대장군급의 허상괴가 섞여 있었다.

한편 백의 대장군은 자신을 알아보는 제로에 ‘호오~’ 하며 낮은 감탄을 흘렸다.

“그래서, 왜 튀어나온 거냐? 너도 죽고 싶어서 튀어나온 거냐?”

“설마, 그럴 리가. 본인은 그저 그대의 앞에 있는 그것을 회수하고 싶을 뿐이라네.”

“회수… 라. 설마 이것들을 만들어 낸 게 네놈들이었냐?”

“글쎄…, 과연 어떨까?”

제로의 질문에 피식 웃은 백의 대장군이 움직였다.

그의 신형이 한 줄기 섬광으로 변하는 순간, 머리가 터져 죽어버린 괴물. 아니, 이제는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그것의 시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게나. 그대가 언제까지나 왕의 앞길을 가로막는 대적자로 있는 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네.

허공에 울려 퍼지는 백의 대장군의 말에 제로는 그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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