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이건 도대체….”

신성이 힐끗, 제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신성의 행동에 제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몰라. 이런 건 처음 보거든.”

“과거에도…, 이런 적은 없었습니까?”

“없었어.”

다시 한번 되물어보는 신성에 제로가 단호히 말했다.

플레이어의 전유물인 스킬과 아이템을 사용하는 처음 보는 허상괴.

그런데 핵이 부서져 죽으면,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이런 기현상은 회귀 전에도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개짓거리를 벌인 거지.’

쿠구궁-!

속으로 중얼거리는 제로에게서 막대한 존재감이 흘러넘쳤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짓눌렀으며. 그 막대한 존재감을 버티지 못한 바닥이 제로를 중심으로 쩌적! 갈라졌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 기묘한 허상괴의 베이스가 인간이라는 것을 제로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도 평범한 인간이 아닌 플레이어가 베이스라는 것을.

‘게다가 이따위 짓이 가능하려면 그에 걸맞게 수많은 실험이 자행되었을 거야.’

실험.

그것도 언제, 어느 때나 금기시되는 인체실험을 통해 이러한 결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실험에 사용된 실험체들은….

‘플레이어와 일반인을 가리지 않았겠지.’

거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다시 한번 제로에게서 난폭한 존재감이 흘러넘쳤다.

짜증 난다.

어째서 인간들은 이러한 것인가?

자신이 불철주야 바삐 움직이며, 그들의 구원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거늘.

어째서 인간이란 족속들은 스스로 그러한 평화를 걷어차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도대체….

도대체 누가…!

“설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제로는 돌연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것은 세이메이를 조심하라는, 블러드의 말이었다.

블러드가 마스터로 있는 길드, 블러드 문은 첩보와 암살. 정보 수집 따위를 다루는 길드다.

로스트 월드에서는 도둑 길드와 쌍벽을 이루었을 정도로 정보 수집 능력과, 암살의 성공률이 월등했다.

그런 블러드 문의 길드 마스터, 블러드가 직접 한 말이었으니….

“신성.”

“예.”

갑작스런 제로의 부름에 신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세이메이를 주시해라.”

“주술왕… 세이메이 말씀이십니까?”

“그래.”

제로의 말에 신성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지금까지 주술왕 세이메이의 행동을 보자면, 딱히 주시하고 말것도 없었다.

그는 제로와 같은 목적, 즉 인류의 평화를 위해 허상괴와 싸운다.

그런 세이메이를 주시하라니.

도대체 왜…?

그런 생각으로 제로를 바라보는 신성이었지만, 제로는 그런 신성의 의문을 해소해주지 않았다.

그저 심각한 분위기로 다시 깊은 생각의 늪에 빠져들고 있을 뿐이다.

* * *

“하아….”

카페를 나선 플레이어, 슈슈슉. 아니 하연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심 신성과 제로가 먼저 만남을 제안했다는 것에 그녀는 한 줄기 희망을 품었다.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고난과 고충을 덜어줄 수 있을 거라는 한 줄기 희망을.

하지만 막상 이루어진 만남은 하연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그들의 말도 틀린 것은 없었지.”

신성과 제로.

그 둘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아이템을 오직 플레이어들만이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처음의 생각마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몬스터의 시체로 만들어진 포션과 아이템들은 플레이어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건들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지금 당장 일반인들이 포션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살아날 수 있는 사람조차 죽어버리게 된다.

“아아! 모르겠다!”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멍때리고 있던 하연이 돌연 머리를 털었다.

복잡한 생각을 너무 깊게 한 탓인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일단은….

“사람들을 만나야겠지.”

그러한 중얼거림을 내뱉은 하연이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하연은 우선, 신성과 제로의 만남에서 나눈 대화를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뭉쳐 만들어진 연합과 공유할 생각이었다.

하연은 그들의 생각에 동조했기에 연합에 가입했고, 연합에 있는 플레이어들 중 가장 레벨과 랭킹이 높았기에 얼굴마담이 되었을 뿐이다.

모든 결정은 연합에 속한 플레이어들과의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하연이 향하는 연합의 거점은 서울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은 허상괴 다발 출몰 지역으로 찍혀 땅값이 싸고, 타인의 눈을 피해 은밀히 만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한참을 걷다 걸음을 멈춘 하연의 앞에는 하나의 폐공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폐공장이야말로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모여 만들어진 연합의 거처였다.

“오셨습니까, 슈슈슉 님.”

“하연이라고 부르라니깐요.”

문을 통과하기 무섭게 마주하는 플레이어에, 하연이 어색한 웃음을 내비치며 말했다.

플레이어 네임, 슈슈슉. 그것은 아무 생각 없이 정했던 이름이다.

만일 로스트 월드가 현실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면, 절대 이런 단어로 플레이어 네임을 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하연은 폐공장 내부 깊숙이로 걸어 들어갔다.

중간중간 마주치는 플레이어들은 하연을 발견하기 무섭게 고개를 숙였으며, 하연은 그런 플레이어들의 반응이 부담이라는 듯 계속 손사래를 쳤다.

끼이익.

수십의 플레이어들을 지나쳐 도착한 장소.

녹이 잔뜩 슬어있는 문이 듣기 싫은 괴음과 함께 열리며, 그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 너머의 방은 상당히 거대했으며 중앙에 거대한 원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원탁에는 저레벨 플레이어 연합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열명 의 플레이어들이 제각기 자리에 앉아 하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하연 양.”

“네.”

하연이 들어오자 한 플레이어, 진진자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싱긋 웃어 보였다.

플레이어 네임, 진진자라.

그는 저레벨 플레이어 연합의 연합장으로, 그것을 증명하듯 폐공장 내부에 있던 플레이어들과는 사뭇 다르게, 나름 잘 갖춰진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또한 그의 레벨은 250을 넘어, 하연 다음으로 가장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그런 진진자라가 하연을 맞이하자, 앉아있던 나머지 아홉 명의 플레이어들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며 하연을 맞이했다.

그런 그들의 레벨은 끽 해봐야 150 언저리로 보였다.

“그래서, 그들과의 만남은 어떠했습니까?”

“죄송해요.”

자리에 앉기 무섭게 들려오는 진진자라의 질문에, 하연이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죄송하다.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진진자라. 그리고 이곳에 모여 있는 나머지 아홉의 플레이어들은 하연과 신성, 제로의 대화가 긍정적인 반응으로 흘러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렇… 습니까….”

진진자라가 다소 슬픈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랭커라 불리는 그들은 왜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상황을 알아주지 않는 걸까요.”

“지들은 강하니깐 상관없다 이거지.”

“맞아. 레벨이 높으니 우리 같은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고충을 보고도 못 본 척, 무시하는 거야.”

“아이템이 풀리고, 일반인들이 그것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같은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어떤 취급을 받게 될지 잘 알고 있으면서!”

진진자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불평불만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레벨 플레이어. 그리고 랭커들에게 무한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레벨이 낮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에 불과했다.

물론 몇몇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저레벨 플레이어들을 무시한 것은 맞았다.

허상괴의 싸움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거나, 그저 고기방패에 불과하다고 저레벨 플레이어들을 얕잡아 보는 고레벨 플레이어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저레벨 플레이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데….’

하연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러한 생각은 자신 또한 나름 중~고레벨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에 품은 걸까?

이러한 생각은 비록 2만 대라는 처참한 숫자였지만, 그럼에도 랭커에 턱걸이로 들어갔기에 품은 것일까.

하연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진진자라가 툭! 테이블을 건드렸다.

그에 순식간에 방 내부의 소란이 싸늘하게 식었다.

“우선 하연 양의 말부터 들어보도록 하지요.”

진진자라의 제안에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연을 바라봤다.

하연은 갑작스런 이목의 집중에 다소 당황했으나, 곧 신성과 제로. 그 둘과 나눈 대화를 풀어나갔다.

“… 해서, 그들은 아이템을 플레이어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에 부정적으로 답했어요.”

“으음….”

하연의 말에 진진자라가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하연이 들려준, 신성과 제로의 의견.

모든 저레벨 플레이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사람들의 ‘다른 플레이어의 공적에 기생충마냥 달라붙어, 그 이득만 쏙 취해버린다.’라는 의견은 진진자라 또한 어느 정도 동의했다.

진진자라, 스스로가 연합장으로 있는 저레벨 플레이어 연합 또한 그러한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막기 위한 취지 또한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웃기는 소리!”

한 플레이어가 쾅! 원탁을 내리치며 버럭 외쳤다.

그나 내리친 원탁이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금이 그어지더니, 이윽고 무너져 내렸다.

주변의 플레이어.

진진자라와 하연을 포함한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갑작스런 행동을 하는 남자를 바라봤다.

“우리들도 노력했다! 우리들도 노력했단 말이다! 죽음의 공포를 억지로 떨쳐내며 허상괴들과 싸워왔다! 그런 우리들의 노고를! 저레벨 플레이어라 여기며 폄하하고! 기생충으로 비유하다니! 난 인정할 수 없다!”

분노에 차 버럭버럭 외치는 그의 두 눈동자가 점차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기생충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플레이어들의 공적에 무임승차 했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 그래!”

콰앙! 콰앙!

분을 이기지 못한 것인지, 플레이어는 미친 듯이 발을 굴리기 시작했다.

전사직 플레이어의 막대한 힘이 담긴 발구름에 바닥 또한 원탁과 마찬가지로 쩌적! 갈라지며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불안정함을 드러냈다.

한편, 주변의 플레이어들은 점차 난폭해지기 시작하는 그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봐, 일단 진정을 좀 하…!”

퍼억-!

쿠당탕-!

날뛰는 플레이어와 가장 가까이 있던 플레이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날 건드리지 마라!”

미친 듯이 날뛰는 플레이어는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의 가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갑작스런 일격에 날아간 남자는 벽에 처박혔으며. 그렇게 처박힌 남자의 가슴은 거대한 힘에 찌그러져 즉사를 피하지 못했다.

갑작스런 동료의 죽음.

그와 동시에….

꾸득-!

꾸드득!

점차 변하기 시작하는 플레이어의 모습까지.

몇몇 플레이어가 그 광경을 보고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 * *

흠칫-!

길드 하우스 지하에 있던 신성이 돌연 몸을 떨었다.

제로는 그런 신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도 느꼈냐?”

“예.”

제로의 물음에 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무척이나 희미하고, 무척이나 옅었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그것을 느낄 순 없으리라.

하지만…. 그 희미하며 미약하고. 옅은 무언가는 신성조차 소름이 끼치게 만들 정도로 기괴했다.

그런 신성이 느낀 것과 똑같은 것을 느낀 제로가 입을 열었다.

“움직이자. 이건….”

그것은 과거. 수백의 허상괴들이 하나가 되어 최상급 허상괴가 탄생했을 때 풍겼던 기운과 흡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