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그들이 무슨 노력을 했다는 거죠?”
이번에 입을 연 것은 신성이었다.
그는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하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런 신성의 두 눈동자에 하연이 히끅! 숨을 삼키며 몸을 떨었다.
“그들은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타인의 노력에 ‘편승’했을 뿐이죠.”
“그,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면 하연 양에게 물어보도록 하죠. 그들이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그들이 ‘무슨’ 노력을 했습니까?”
“…….”
이어진 신성의 질문에 하연은 다시 침묵했다.
제로의 말도, 신성의 말도 틀린 것은 없었다.
아이템을 일반인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해 달라.
그렇게 요구하는 플레이어들은 영웅이 아니다.
그들은 레벨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이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허상괴들과의 전쟁에서 눈을 돌렸다.
싸울 수 있음에도 그들은 싸우지 않았다.
하지만….
“전 알고 있어요. 그들 또한 그들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하연 또한 나름 랭커로서 허상괴의 전투에 참전했다.
그 와중에, 하연은 목격했다.
포션이 없어서 죽어가는 플레이어들.
아이템이 부족해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플레이어들.
그렇기에 하연은 그들의 의견에 동조했다.
플레이어들에게 더욱 많은 아이템이 있었다면. 플레이어들에게 더욱 많은 포션이 있었다면.
그렇다면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 나가지 않았을 텐데.
제로와 신성, 그 둘 또한 그 부분에서는 동의했다.
하지만….
“하연 양이 봐왔던 플레이어들. 허상괴와의 전투에서 죽어 나가는 플레이어들.”
“그들과, 아이템이나 포션 따위를 일반인들이 사용하지 말라 요구하는 플레이어들. 그들이 과연 동류일까?”
신성과 제로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에 하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 하연의 두 눈동자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하연은 침묵하고.
제로와 신성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을 때….
딸랑-!
타다닥!
카페의 문이 열리며 한 플레이어가 다급히 들어왔다.
신성 길드의 1군에 포함되어 있는 플레이어는 잠시 카페 내부를 둘러보더니, 신성과 제로를 발견하며 다급히 움직였다.
“저… 마스터.”
“무슨 일이죠?”
플레이어의 부름에 신성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것은 ‘급한 일이 아니라면 나중에 다시 오세요.’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하지만….
“큰일 났습니다.”
제로와 신성을 찾아온 플레이어가 물고 온 정보는 말 그대로 ‘급보’였다.
다급한 플레이어의 목소리와 표정에 신성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실례.”
그 말과 함께 신성은 카페를 찾은 플레이어와의 자리를 파했다.
* * *
“하연 양? 대화는 다음에 이어가도록 하지요. 그때까지 잘 생각해 보세요. 과연 ‘정말로’ 그들의 의견에 귀를 귀울여야 하는지. 그들이 과연 세간에서 플레이어를 칭하는 또 다른 단어, ‘영웅’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플레이어인지.”
그 말을 끝으로 신성은 제로와 함께 자리를 떴다.
신성과 제로가 사라졌음에도 하연은 자리에 앉아, 멍하면서도 슬픈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한편, 제로는 자신을 끌고 나온 신성에 의문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레귤러가 발생했습니다.”
“이레귤러…?”
신성의 말에 제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제로가 알고 있는 이레귤러는 웨어 울프. 지금은 ‘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뿐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의 것이 회귀 전과 똑같았다.
그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을 때, 신성이 하나의 영상을 들이밀었다.
“우선 이걸 좀 봐주시겠습니까?”
신성이 내민 동영상은 한 허상괴와 플레이어들간의 전투가 찍혀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장비나 사용하는 스킬로 보아 이제 막 200레벨을 찍은 것 같았으며.
그런 플레이어들과 대치하고 있는 건 두 마리의 하급 허상괴였다.
그런데….
“이거 뭐냐?”
허상괴와 플레이어.
그들의 전투가 찍혀 있는 동영상을 시청한 제로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로는 어째서 신성이 ‘이레귤러’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 동영상에 찍혀 있는 내용이 진짜라면…, 정말로 이레귤러가 아닐 수 없었다.
“어째서 허상괴가 플레이어의 스킬을 사용하는 거지? 어째서 허상괴가 플레이어의 아이템을 사용하는 거야?”
동영상에 나온 허상괴들은 플레이어만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스킬과 아이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전사 직업의 가장 기초적인 스킬이라 할 수 있는 강타를 사용하는 한편. 어쌔신 계열 직업군의 은신 스킬을 사용하는 허상괴까지 있었다.
특히나 스킬을 사용하는 허상괴들의 손에는 로스트 월드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아이템, 날카로운 철검과 맹독의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놀라 다시 한번 살펴본 허상괴들의 모습은 일반적인 허상괴와 사뭇 달랐다.
전체적인 모습은 허상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어느정도는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던 것이다.
“이거, 어디서 촬영한 거야?”
“태국입니다.”
“태국….”
신성의 대답에 제로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이것도 자신이 회귀를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이 정도까지 인과율이 뒤틀릴 수 있나?’
제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회귀를 함으로써 미래는 개변되었다.
그 영향으로 인과율이 뒤틀린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
그 증거가 지금도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말이 되지 않아.’
저런 일이 벌어지려면 허상괴가 플레이어의 몸을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허상괴는 플레이어의 몸을 강탈할 수 없다.
플레이어가 가진 힘은 신에 의해 발생한 것.
그 흔적은 능력을 각성한 플레이어들의 육체에 묻어나와, 허상괴들의 지배를 튕겨낸다.
그것은 레벨이 1이든, 1000이든 상관없이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현상이다.
만일 이것이 자연적으로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것이 되는데…. 도대체 누가?’
제로가 신성을 따라 움직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어디선가 콰앙! 하는 폭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의 비명이 제로와 신성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움직인다.”
끄덕.
어째서 허상괴들이 스킬을 사용하고, 아이템을 사용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하지만 일단 눈앞에 벌어진 일부터 처리해야 한다.
그러한 생각을 품으며 말하는 제로에 신성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이동했다.
건물의 옥상과 옥상을 뛰어넘어 도착한 장소는 난장판이었다.
소란의 중심에는 한 마리 허상괴가 있었는데, 이미 주변에는 폭발과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감지하고 도착한 플레이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곳은 여의도.
수많은 길드 하우스가 자리 잡은 장소로, 그만큼 플레이어들의 숫자 또한 다른 장소보다 많았다.
날뛰는 허상괴의 강함은 중급 정도에 해당했으나, 이곳에 모인 수백 명의 플레이어들이라면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건 또 무슨…?”
날뛰는 허상괴는 무언가 이상했다.
그 토대는 인간과 늑대가 뒤섞인, 어떻게 보면 웨어 울프와 비슷하다 할 수 있었다.
다만 웨어 울프와 다른 점은, 웨어 울프는 전신이 털에 뒤덮여 있지만 저것은 검게 번들거리는 비늘로 뒤덮여 있다는 점이다.
또한 허상괴는 오른손으로 스태프를 쥐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크아아악-!”
허상괴가 괴성을 내지르며 양손을 휘두르자, 플레이들을 향해 다수의 불덩이가 쏟아졌다.
“파이어 볼? 저거 파이어 볼 맞지?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지?”
“맞을 겁니다.”
어이없다는 듯 말하는 제로애, 신성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국에서 나왔던, 플레이어의 스킬과 아이템을 사용하는 허상괴.
그것이 대한민국 한복판에.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일단 제압하고 조사해 보자.”
끄덕.
제로의 말에 신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였다.
한편, 허상괴들과 대치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허상괴는 겨우 중급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중위 마법가지 사용한다.
육체의 강함과 마법적 강함.
그 둘이 뒤섞여,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플레이어들 사이를 신성이 걸어 나가며 입을 열었다.
“모두 물러나 주세요.”
시, 신성?
신성 님이 어째서 여기에?
살았다.
신성의 등장에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렸다.
보통 같았으면 쉽사리 보지 못하는 신성에 몇몇 플레이어들은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편, 사람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걸어 나온 신성은….
스킬 발동, 홀리 체인.
촤르륵-!
기타 말없이 스킬을 발동했다.
신성의 발 밑으로 순백의 사슬이 튀어나오며 허상괴를 향해 날아갔다.
허상괴는 자신을 포박하기 위해 다가오는 순백의 사슬에 마법을 사용하고, 손에 쥐어진 스태프를 휘두르는 등.
발악 아닌 발악을 감행했다.
하지만….
“순순히 잡혀주시죠.”
신성이 만들어 낸 홀리 체인을 막을 순 없었다.
그것을 막으려면 최소 최상급의 허상괴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돌연변이 허상괴는 신성이 발동한 홀리 체인에 포박당하곤 곧 신성 길드에서 나온 플레이어들의 손에 의해 신성의 길드 하우스 지하로 이송되었다.
* * *
신성의 길드 하우스 지하.
그곳까지 포박되어 이송되어 으르렁거리고 있는 허상괴를 바라보며 말하는 신성에, 제로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이거, 허상괴가 맞기는 한 겁니까?”
“아마 그럴 거야. 다만….”
분명 눈앞에 있는 저것은 허상괴가 맞았다.
하지만….
‘근데 왜 플레이어 특유의 마나가 느껴지는 거지?’
그 사실이 제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것에게선 허상괴 특유의 기운이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허나 그 속에는 플레이어 특유의 마나 또한 깃들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한참 동안 돌연변이 허상괴를 바라보던 제로가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 순간….
퍼억-!
제로의 등 뒤에서 만들어진 흑골의 화살이 쏘아지며 허상괴의 심장을 관통했다.
허상괴는 심장 부위에 있던 핵이 박살 나며 죽음을 맞이했고, 그렇게 죽어버린 허상괴는….
“허-!”
푸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전신에서 하얀 연기를 뿜어내더니 곧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제로와 신성은 죽어버리기 무섭게 인간으로 변하는 허상괴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 * *
“마스터.”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지하 암실.
연구실을 연상시키는 그곳에서, 수많은 병들을 이리저리 만지고 있던 남자의 뒤로 한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그렇게 나타난 플레이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실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공했습니다. 다만….”
“다만?”
“부작용이 상당하더군요.”
플레이어의 대답에 남자가 으음… 하며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현재 그가 연구하고 있는 약은 플레이어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일반인이든, 그 누구든 허상괴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약이다.
수많은 실험을 통해 지금의 단계까지 왔다.
하지만….
“약을 감당하지 못하고 허상괴로 변한다라. 그것도 플레이어조차…. 이 부작용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저희 ‘은림’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겠군요.”
“죄송합니다.”
남자, 십강 중 하나인 은림의 마스터.
주술왕 세이메이의 말에, 뒤에 시립해 있던 플레이어가 고개를 숙였다.
“연구에 박차를 가해주세요. 이 모든 것은….”
“저희 대일본제국이 세계의 패권을 가지기 위한 것.”
“그렇습니다.”
플레이어의 대답에 세이메이가 음험한 미소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