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세이메이. 그를….
‘… 조심하라 인가.’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주일 전 있었던 십강의 마스터들과의 회의.
그리고 이어진 블러드의 전투와, 그 전투가 끝난 이후의 블러드의 말.
묘했다.
주술왕 세이메이는 십강 중 하나인 은림의 길드 마스터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플레이어다.
또한 랭킹 8위의 압도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으며.
주술사라는, 부적을 통해 각종 술법과 식신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히든 클래스를 지녔다.
‘그런데 왜 조심하라는 거지.’
비록 여전히 한국과 일본의 사이는 좋지 않다.
하지만 세이메이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으며,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에 무왕처럼 악감정을 품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처럼 인류의 구원과 평화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으며, 기계와도 같은 냉철함을 보이고 있었다.
‘대체 블러드는 무엇을 보고 세이메이. 그를 조심하라 하는 것….’
“무슨 일 있으십니까? 제로 님.”
제로가 깊은 생각에 빠져있을 때, 신성이 입을 열었다.
그는 무언가 걱정스럽다는 듯, 제로를 바라봤다.
그런 신성의 물음에 제로는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상황은 어때?”
“별로 좋지 않습니다.”
역으로 이어진 제로의 질문에 신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허상괴의 대대적인 침공 이후, ‘번식’을 통해 태어나는 허상괴. 통칭 몬스터들의 숫자 또한 대폭 늘어났다.
그렇기 때문일까? 몬스터의 시체를 재료로 만들어지는 포션과 아이템 또한 대량으로 시중에 풀리기 시작했다.
포션은 단순히 플레이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일반인들 또한 애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몬스터의 시체를 이용해 만들어 낸 아이템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아이템은 특히나 플레이어와 같은 힘을 가지지 못한 일반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단순히 플레이어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다만….
“하, 그 새끼들은 도대체 생각이란 게 있는 건지.”
일반인도 아이템을 사용해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다.
그 사실이 원인이 되어, 저레벨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미는 이유는 단순히 ‘플레이어들이 사용할 아이템도 부족하다!’ 였으나, 그 속을 들여다본다면 아이템에 의해 플레이어들의 입지가 뒤흔들려 자신들이 받아야 할 영웅 대접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그 속마음이다.
애초에 일반인이 아이템을 사용한다 한들, 그것은 단순한 호신용. 혹은 시간벌이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일반인들이 아이템을 다룬다 한들 최하급 허상괴조차 죽일 수 없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거늘.
그것을 보지 못하고, 단순히 눈앞의 이익만 뒤쫓으며 무지성으로 지껄여대는 저레벨 플레이어들을 보고 있노라면….
쩌적-!
돌연 제로를 중심으로 바닥이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신성의 억눌린 목소리가 제로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제, 제로 님.”
“아, 미안.”
신성의 부름에 제로가 입을 열었다.
살짝 치솟은 짜증에 제로가 저도 모르게 난폭한 존재감을 흘려버렸다.
그나마 이곳에 있는 것이 신성이었으니 다행이지, 다른 플레이어가 있었다면 그 존재감에 짓눌려 죽음을 맞이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놈들이 원하는 게 정확히 뭐야?”
“간단합니다. 몬스터의 시체로 만들어내는 아이템을 오직 플레이어만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더군요.”
“아직은 플레이어가 쓸만한 아이템이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참.”
신성의 대답에 제로가 후…, 하며 깊이 숨을 내쉬었다.
말 그대로다.
비록 몬스터의 시체로 아이템들이 제작되고 있다지만, 지금까지는 단순히 로스트 월드가 현실이 되면서 가져온 아이템이 더욱 도움이 되었다.
몬스터의 시체로 만들어지는 아이템은 아직 그 기술력이 부족한 것인지, 로스트 월드에서 사용했던 아이템들처럼 이렇다 할 효과가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저레벨 플레이어들이라 하더라도, 몬스터의 시체로 만들어 낸 아이템보다는 평소에 쓰던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이 허상괴의 사냥이든. 몬스터의 사냥이든 더욱 이로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그러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한국의 플레이어들 뿐.
그마저도 극소수의 플레이어라는 것이다.
특히나 그러한 말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다면, 상당히 골치 아프게 된다.
“놈들의 대표는?”
“랭킹 23734위의 슈슈슉이라는 플레이어입니다.”
랭킹 23734위의 슈슈슉.
제로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랭킹은 나름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지만, 고작 2만 대에 있는 랭커다.
수억이 넘어가는 플레이어들의 숫자로 보면, 상당히 높은 편이었지만. 제로같은 정상급 플레이어의 눈에는 그저 그런 플레이어일 뿐이다.
“어쩔 수 없지. 일단 놈과 대화를 나눠봐야겠어.”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제로의 말에 신성이 입을 열었다.
* * *
딸랑-.
저벅. 저벅. 저벅.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 카페.
문이 열리며 두 명의 플레이어. 신성과 제로가 들어오자, 카페 내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수많은 길드 하우스들이 모여 있는 여의도였기에, 카페 내부를 채운 손님들 중 대다수가 플레이어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갑작스레 카페에 들어온 신성을 보고 놀란 눈을 감추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단순히 플레이어들 뿐만이 아니었다.
신성은 플레이어들 외에도, 일반 시민들에게 잘 알려진 영웅 중의 영웅이다.
그렇기에 신성의 얼굴을 알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 또한, 넋이 빠진 듯 신성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그러한 사람들의 시선이 불쾌할 법도 했으나, 신성은 익숙하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환영 마법을 걸친 제로와 함께 걸어가는 신성이 멈춘 장소는….
“슈슈슉 님?”
“맞아요.”
홀로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여성 플레이어, 랭킹 23734위의 슈슈슉의 앞이었다.
“반갑습니다. 전….”
“알고 있어요. 그 유명한 영웅, 신성 님 아닌가요? 그 옆은 제로… 님이고요.”
슈슈슉 또한 2만 대의 랭커.
그 레벨은 충분히 400을 넘어 마스터 레벨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에 300레벨 이하에만 통용되는 환영 마법이 통하지 않았기에, 슈슈슉의 눈에 제로의 본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흑골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제로.
몸에 걸친 로브, 죽음의 옷자락으로 억제하고 있음에도 조금씩 흘러나오는 죽음은 처음 보는 자에게 강렬한 공포를 심어준다.
그것은 슈슈슉이라는 플레이어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 보는 제로의 본모습에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한편 제로와 신성은 그런 슈슈슉의 반응 따윈 신기하지 않다는 듯, 그저 그녀의 앞에 앉을 뿐이다.
한편, 멍때리고 있던 슈슈슉은 자신의 앞에 제로와 신성이 앉자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려 했다.
그녀가 막 뭐라 말하려는 찰나….
“그래서, 너희들이 원하는 게 정확히 뭐야?”
제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소 날카로운, 그리고 아무런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은 듯한 싸늘한 목소리에 슈슈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제가… 아니, 저희가 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협회의 이름 하에 몬스터의 시체를 통해 만들어지는….”
“아이템을 플레이어들만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
“그렇습니다.”
제로의 말에 슈슈슉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로의 딱딱하고 싸늘한 말투는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말투를 내뱉는 존재가 제로라는 것을 안다면, 그 누구도 뭐라 불평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제로 앞에 앉아있는 슈슈슉처럼.
한편 제로는 슈슈슉의 말에 흐음…, 하며 낮은 울림을 토해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말하는 아이템의 범주에 포션이나 골렘 따위도 포함되는 거냐?”
이어진 제로의 질문에 슈슈슉은 침묵했다.
현재 포션은 플레이어들 외에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나 회복 포션 같은 경우, 죽음을 목전에 둔 중상자들에게 사용된다. 비록 회복 포션을 사용했다 해서 한 번에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회복하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외에도 골렘이나 흑마법사들이 만들어내는 키메라 따위 또한 돈 있고 권력 있는 높으신 분들에게 크나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배신하지 않고, 오롯이 주인의 명령만 들으며 그 강함 또한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에게 맞먹는 그것은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최고의 경호원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그 가격이 높고 양산이 힘들다는 단점 덕분에 상용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뭐,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문제지만.’
제로가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고 있을 때, 신성이 입을 열었다.
“슈슈슉 님….”
“하연이라고 불러주세요. 플레이어 네임은 쫌….”
“알겠습니다, 하연 님.”
슈슈슉 아니, 하연의 요구에 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하연 님께서 말하시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본인 스스로 또한 잘 알고 계시겠지요?”
“…….”
신성의 물음에 하연이 다시 한번 침묵했다.
허나 침묵은 긍정이라고, 하연 또한 자신의 요구가 터무니없는 억지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협회의 중추 중 하나인 신성과 만났다. 그 옆에는 제로 또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와서 물러날 순 없는 하연이었다.
“하지…!”
“조사해 보니 너도 로스트 월드를 플레이하면서 저레벨 구간 때 꽤나 고생했더군.”
자신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여는 제로에 하연의 눈동자가 홱! 하며 돌아갔다.
제로는 그런 하연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기도 몇 번 당했고, 몹 스틸에 자리 싸움. 중대형 길드의 사냥터나 던전 통제. 마지막으로 pk까지. 네가 이러는 이유는 잘 알겠어.”
제로의 말이 이어질수록, 하연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언제 자신의 뒷조사를 한 것일까?
아니, 뒷조사를 한다 해서 그러한 것들을 알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말이야. 너도 알고 있잖아?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그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이유 말이야.”
“터무니없는 요구가 아닙니다. 이것은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살아남기 위한….”
“살아남기는 개뿔. 단순히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지.”
“이기적인 욕심이라뇨!”
제로의 말에 하연이 쾅! 테이블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 소란스러움에 잠시 카페 내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연에게 집중되었다.
하연은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의 집중에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 앉았다.
“이게 이기적인 욕심이지, 그럼 뭐야? 너도 알잖아? 그들이 그런 요구를 하는 진짜 이유를.”
“그, 그건….”
“놈들은 단순히 자신들이 받는 영웅 대접이, 아이템이 풀리면서 더 이상 받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억지를 주장하는 것뿐이야. 뭐, 애초에 그놈들은 영웅 대접을 받을 가치가 없지. 놈들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힘들게 허상괴를 처리하며 받는 환호에 동승하고 있을 기생….”
“아니에요!”
쾅!
제로의 말이 이어지자, 하연이 다시 한번 테이블을 내리치며 버럭 외쳤다.
“그들 또한 그들만의 고생이 있어요! 당신이 강하다고! 당신의 레벨이 높다고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노력을 무시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