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화
제로가 첸첸과 만나고 난 다음 날 아침.
제로가 길드 하우스에 방문하자, 기다리고 있던 신성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로라면 어떻게든 했을 거야.
그러한 희망을 품으며 말하는 신성의 두 눈동자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루 또한, 같은 십강이지만 타국의 길드인 마학자보다는, 신성에 가입하고 싶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제로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잘 해결했어. 앞으로 아루는 신성 길드의 길드원이야.”
“다행이군요.”
“다행이에요.”
제로의 말에 신성과 아루가 동시에 대답했다.
마학자 길드의 길드 마스터, 로열 알케미스트 첸첸의 성깔은 매우 유명했기에, 어느 정도 불안감을 품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설득하셨습니까? 첸첸 그녀의 성격이라면 하늘이 무너져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아, 그거? 왜, 궁금해?”
끄덕끄덕.
제로의 물음에 신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루는 신경 쓰지 않는 척했음에도 제로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계속 고집을 부리길래 힘으로 꺾어 눌러 버렸지.”
“그런…!”
제로의 대답에 신성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아무리 첸첸이 십강의 마스터 중 한 명이며, 최상위 플레이어임과 동시에.
로스트 월드 내에서 대형 길드를 혼자서 박살 내버린 전적이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첸첸 또한 나와 같은 비전투 직업인데….’
그나마 신성은 자애의 성자라는 히든 클래스와, 하프 엔젤이라는 이종족 플레이어다.
허나 첸첸은 평범한 인간 플레이어다. 거기에 직업 또한 히든 클래스 같은 것이 아닌, 평범하디 평범한 연금술사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너무하신 것 아니에요?”
아루 또한 신성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제로를 향해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제로를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는 어이없다는 감정이 듬뿍 묻어 나왔다.
“이거 왜 이래? 난 제대로 말로 설득하려 했어. 먼저 도발한 건 첸첸이라고.”
책망하듯 바라보는 신성과 아루의 시선에 제로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로는 정말로 ‘말’로 설득하려 했고, 먼저 시비를 건 것 또한 첸첸이었다.
“으음…, 첸첸이 욕심이 많은것은 유명하지만…, 설마 제로 님에게조차 덤빌 정도로 욕심을 부릴 줄은 몰랐군요.”
“뭐, 그런 거지.”
신성의 중얼거림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그래서, 이제 신성 소속이니 알려줄 수 있겠지?”
제로는 아루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뜬금없는 질문에 아루가 ‘뭘 말이에요?’라는 눈으로 제로를 바라봤다.
“포션의 재료 말이야. 지구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인지.”
“아! 그거요? 간단해요.”
꿀꺽-!
포션을 만들 수 있는 재료.
현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가 높다 할 수 있는 정보를 서슴없이 밝히려는 아루의 말을 기다리며 신성이 꿀꺽! 침을 삼켰다.
아루가 이제는 신성 길드에 소속되었다지만, 그러한 정보를 이렇게 쉽게 들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마음과 반대로, 신성 또한 도대체 어떤 재료로 포션을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그렇기에 딱히 아루의 말을 막아서지 않았다.
“다들 허상괴는 아시죠?‘
“알지. 우리가 로스트 월드의 힘을 각성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허상괴 놈들 덕분인데.”
“그 허상괴가 재료에요.”
…?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선언을 내뱉은 아루를 바라보며 제로와 신성, 그 둘이 당황한 표정을 내비쳤다.
허상괴가…, 포션을 만드는 재료라고?
“그게 정말입니까?”
신성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루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 신성의 물음에 아루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상괴는 기본적으로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
육체 어딘가에 있는 핵을 부수면, 그 핵을 품고 있던 육체마저 바스라지며 사라진다.
마치 게임 속 몬스터가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허상괴가 포션을 만드는 재료라는 아루의 말은, 쉽사리 믿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제로와 신성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아루가 설명을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서 허상괴… 라고 표현했지만 전 그게 진짜 허상괴인지는 몰라요. 저도 허상괴가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거든요.”
플레이어인 이상,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가 사용한 재료는 정말 허상괴에요. 아니, 그것들을 표현할 단어가 ’허상괴‘밖에 없다고 해야 하려나요?”
“그게 무슨 말이지?”
“분명 생긴 건 허상괴인데…, 이상하게 그것들에겐 핵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평범한 지구의 생명처럼 목이 잘려 나가거나, 피를 많이 흘리거나. 심장이 파괴되거나 멈추거나. 그러한 방식으로 죽일 수 있어요.”
“으음.”
아루의 부연 설명을 들으며 제로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벌써 그 단계까지 가버린 건가.”
“무언가 알고 계신 겁니까?’
제로의 중얼거림을 들은 신성이 물었다.
그에 제로가 다소 굳은 분위기로 입을 열었다.
“허상괴들의 숫자도 무한은 아니야. 분명 그것들의 숫자에도 한계는 존재하지. 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것들은 어느 정도 육체에 적응하면 번식을 시작해. 그렇게 태어나는 허상괴는 허상괴임에도, 허상괴가 아니야. 핵을 가지고 있지 않거든.”
“그게 가능한 겁니까?”
“가능하지.”
믿을 수 없다는 신성의 말에 제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체에 적응한 허상괴는 일반적인 생명체들처럼 번식을 시작한다.
그렇게 태어난 허상괴는 모체가 된 허상괴의 등급에 비례하는 강함을 가지지만, 핵을 가지고 있지 않다.
평범한 생물처럼 머리가 박살 나거나, 심장이 파괴되거나. 피를 많이 흘리거나 하면 죽는다.
제로는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지. 회귀 전, 플레이어들이 패배한 이유 중 하나였으니.’
제로가 앞서 말했듯, 허상괴들의 숫자는 무한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쓰러트리고, 쓰러트리고. 계속해서 쓰러트리다 보면 언젠가 숫자가 부족해진 허상괴들이 먼저 물러날 것이다.
회귀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그것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그것들은 마치 바퀴벌레처럼 미친 듯한 번식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 마리의 허상괴에서 최소 열 마리의 괴물들이 태어난다.
그 압도적인 번식력을 통해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허상괴에 당했던 플레이어가 몇이었던가.
하지만….
“다만, 허상괴들이 번식한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악재로 적용하지만은 않아.”
“그건 무슨 말이에요?”
이번에 입을 연 것은 아루였다.
그녀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자, 제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것들은 허상괴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허상괴처럼 시체가 사라지지 않아. 네가 그것들의 시체로 포션을 만든 것처럼, 제작계 계열의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 또한 놈들의 시체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그렇게 놈들의 시체로 만들어진 아이템은….”
“플레이어로 각성하지 않은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겠군요.”
“맞아.”
기본적으로 로스트 월드의 아이템들은 플레이어만 사용할 수 있다.
지구에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어째서 아이템을 플레이어들만 사용할 수 있는지.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허상괴가 만들어 낸 괴물들의 시체를 이용해 만든 아이템은 일반인들 또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즉, 평범한 사람들도 플레이어들이 만들어 낸 아이템을 통해, 허상괴로부터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금만.
그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회귀 전. 허상괴들에게 그렇게 무력하게 죽어 나가지도. 밀려나지도 않았을 텐데.’
하지만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였다.
우연의 일치였지만, 그때와 달리 재빠르게 놈들의 등장을 알아챈 것은 어찌보면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었다.
“좋아, 신성.”
“예.”
“이 정보를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퍼트려.”
“괜찮으시겠습니까?’
제로의 말에 신성이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언젠가 정보는 풀린다.
하지만 정보가 풀리기 전까지는 크나큰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한 것을 제 발로 걷어차는 행동은 제아무리 신성이라 하더라도 꺼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관없어. 허상괴 놈들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면.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이정도쯤이야 뭐.”
제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류의 구원과 평화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이득이라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제로의 단호한 의지를 눈치 챈 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날 오후.
전 세계에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구멍에서 튀어나온 허상괴들이 번식을 한다!
놈들은 핵을 지니지도, 죽인다고 시체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태어난 괴물들은 평범한 생물처럼 머리가 박살 나거나, 심장을 망가트리거나. 피를 많이 흘리거나 하면 죽는다.
그렇게 태어난 괴물들은 모체가 된 허상괴의 등급에 걸맞은 강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수많은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애 빠져들었다.
플레이어들의 노력에 의해, 구멍에서 튀어나온 허상괴들의 숫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허상괴들이 번식을 하고, 그렇게 줄어든 괴물들의 숫자가 다시 늘어난다니?
플레이어가 되지 못한 일반 시민들이 놀라는 것도. 공포에 떠는 것도. 그리고 당황하여 패닉을 일으키는 것도 당연했다.
허나, 악재가 있으면 호재도 있는 법이라고.
허상괴에게서 태어난 괴물들이 시체를 남긴다는 것은, 그 시체를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또한 그러한 괴물들의 시체가 포션의 재료로 사용되고.
시체를 이용해 만들어지는 아이템이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들 또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의 동요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즉, 일반인들 또한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그러한 정보를 마냥 좋게 보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제는 기득권이라 할 수 있을 플레이어들 중에서 불만이 나왔다.
“아이템이 만들어지면 우리들 입지가 떨어지는 거 아니야?”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당연히 좋은 게 아니지!”
가장 먼저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은 제레벨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들은 최하급 허상괴들조차 파티를 짜지 않으면 사냥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지만, 그럼에도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오만에 가까울 정도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허상괴를 사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플레이어들 뿐이다!
그러한 진리가 뒤흔들렸다.
괴물의 시체를 이용한 무기들이 시중에 풀린다면, 자신들의 입지는 자연스레 좁아지게 된다.
지금까지 영웅 대접을 받으며 망나니처럼 날뛰었던 저레벨 플레이어들은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쩌긴.”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러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와중, 한 플레이어가 입을 열었다.
“협회에 강하게 말해야지. 오직 플레이어들만이 괴물의 시체를 이용해 만들어 내는 아이템들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야.”
그러한 주장은 전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것도 저레벨 플레이어들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