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로열 알케미스트 첸첸.
레벨은 750 언저리.
기본적으로 포션의 제작과 광물의 연성 따위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전투력은 뛰어나다.
천에 가까운 호문쿨루스로 이루어진 군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본인 또한 각종 공격용 포션을 만들어 융단폭격을 가한다.
그녀가 연금술사라 얕잡아 봤던 수많은 유저들 중, 거의 대부분이 그녀의 무력에 역으로 털리곤 했다.
그런 첸첸의 국적은 유럽. 개중에서 프랑스로, 마도왕이 마스터로 있는 상아탑과 함께 유럽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로는 첸첸을 만나기 위해, 본 드래곤의 머리 위에 올라타 대륙을 횡단하고 있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형님.”
제로의 옆에는 스타툰이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제로가 어째서 첸첸을 만나러 가는 것인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스타툰 또한 첸첸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첸첸의 가장 유명한 일화로는, 대형 길드 하나를 박살 내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 길드는 던전 하나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던전에서 상위 포션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드랍되었다.
처음에는 좋게 좋게 합의를 보려 했으나, 협상은 결렬되었다.
결국 첸첸은 힘으로 대형 길드를 박살 내고 던전을 점령해 버렸다.
그 사건은 워낙에 유명해, 최상위 플레이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뭐, 괜찮지 않겠냐.”
제로 또한 그 일화를 잘 알고 있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정 안 되면 똑같이 힘으로 첸첸을 찍어 눌러 버려도 그만이었다.
그렇게 본 드래곤을 타고 얼마나 움직였을까.
구름 위를 가로지르던 본 드래곤이 뼈의 날개를 펄럭이며 멈춰 섰고. 그런 본 드래곤의 아래로 프랑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제 제로가 타고 있는 본 드래곤이 있는 위치는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인 에펠탑 바로 위.
에펠탑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본 드래곤의 등장에 놀라 도망쳤으며,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무기를 뽑아 쥐며 경계했다.
제로는 혼란에 빠진 인간들의 모습에 쯧! 하고 혀를 차며 본 드래곤을 역소환 했다.
“정지! 누구십니까?”
“제로.”
“스타툰.”
한 플레이어의 질문에 제로와 스타툰이 입을 열었다.
그 둘의 이름을…, 아니 더욱 정확히는 제로의 이름을 들은 플레이어들의 몸이 흠칫! 떨리며 표정이 굳어졌다.
“제로 님께서 이곳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첸첸을 보러 왔는데, 있어?”
“그건….”
제로의 물음에 플레이어가 대답을 회피했다.
제로는 자신이 제로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300레벨을 넘긴 플레이어로, 제로가 펼친 환영 마법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전신이 흑골로 이루어진 리치의 모습을 한 이종족 플레이어.
그것은 오직 제로뿐이었다.
“어째서 마스터를 만나려 하시는 겁니까?”
“잠깐 의논할 게 있어서 말이야.”
“으음….”
제로의 대답에 플레이어가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이대로 제로를 마스터에게 안내해도 되는 것일까?
그것은 2군에 소속된 자신이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잠시 기다려 주십쇼.”
그러한 말을 내뱉은 플레이어는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로 전화를 넣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돌연 머리 위에서 까악! 까악! 하는 그리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마학자 길드의 부마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로 님.”
마학자 길드의 부 길드 마스터, 황금의 마이더스.
마이더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로스트 월드를 시작할 때부터 연금술사를 목표로 했으며, 지금에 와서는 첸첸 다음가는 실력자라 알려져 있었다.
그가 얻어낸 직업은 골든 알케미스트라는 히든 클래스. 이 직업은 말 그대로 ‘황금’을 주재료로 전투와 제작을 모두 커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난 첸첸을 불렀는데…, 왜 네가 나왔냐? 마이더스.”
“마스터꼐선 지금 바쁘십니다.”
“바빠? 왜?”
“지구의 재료로 포션을 만드는 연구를 진행중이십니다. 무언가 용건이 있다면 저에게 말씀해 주시죠.”
마이더스가 다소 쌀쌀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 또한 한창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뜬금없는 제로의 등장에 그 흐름이 끊겨버렸다.
그것은 제로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무언가였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난 첸첸 본인을 만나야 하거든.”
“제아무리 제로 님이라 하더라도 불가합니다. 마스터께선 자신이 연구가 끝나기 전까지, 연구실에 그 누구도 접근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날 막아서겠다?”
“예.”
고오오-!
제로의 몸에서 농밀한 죽음이.
마디어스의 몸에서 황금빛 마나가 뿜어져 나오며 충돌했다.
그에 사방에 황금색과 회색의 스파크가 튀기기 시작했다.
이대로 싸움이 벌어진다면, 승리자는 당연 제로다.
제아무리 마이더스가 마학자 길드의 부 길드 마스터이고, 마이더스의 레벨이 700에 근접했다 한들, 제로를 이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허나 승부가 나기 전까지, 그 둘의 전투에 의해 주변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주변에 퍼져있던 마학자 길드의 길드원들과 스타툰은 그것을 우려하며 안절부절못했다.
한편, 농밀한 죽음을 내뿜으며 마이더스와 기 싸움을 하고 있던 제로는 돌연 죽음을 거둬들였다.
주변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여기서 마이더스와 싸운다면 저들에게 극심한 피해가 갈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인류의 구원과 평화. 그중 평화와는 정반대되는 행동이었다.
“첸첸에게 전해. 기한은 3일. 3일 안에 부유섬으로 찾아오라고.”
그 말을 끝으로 제로는 플라잉 마법을 펼치며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제로가 사라지고, 홀로 남게 된 스타툰은 어색한 웃음을 내비치며 마이더스를 바라봤다.
‘형님! 저도 데려가야죠!’
* * *
마이더스와의 만남이 있는 후 이튿날.
제로가 있는 옥좌의 홀이 부드럽게 열리며 한 플레이어가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황금빛 로브를 푹 뒤집어쓰고, 전신에 포션 병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플레이어, 로열 알케미스트 첸첸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내 연구도 방해하는 거야?”
첸첸은 뼈의 옥좌에 앉아 있는 제로를 바라보며 히스테리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연구하면 지구의 재료로 포션을 만들 수 있는 실마리를 부여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흐름이 제로 때문에 깨어졌다.
그것이 첸첸의 입장에선 참을 수 없을 만큼 분노로 다가왔다.
제로는 그런 첸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사 와. 네가 망자의 거성에 오는 것은 처음이던가?”
“헛소리 말고, 날 왜 불렀는지. 그 이유나 말해.”
제로의 인사에 첸첸이 인상을 찌푸렸다.
첸첸은 괜한 잡소리로 시간 끌 거 없이,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 연구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바빠 보이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마학자 길드의 4군에 소속된 플레이어 한 명을 신성으로 이적시켜줘.”
“…….”
제로의 말에 첸첸이 침묵했다.
하지만 그런 첸첸의 머릿속은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제로 정도의 존재가 어째서 일개 플레이어를 원하는 걸까?
그것도 4군이라면 그 레벨은 많아 봐야 100 언저리일 것이다.
분명….
‘무언가 있다.’
제로가 데려가려는 플레이어에게 무언가 있다.
첸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무려 제로가 직접 데려가겠다고 언급했으니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싫어.”
“좋…! 뭐라고?”
고작 4군에 소속된 길드원이다.
첸첸 본인에게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 플레이어다.
그렇기에 손쉽게 데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제로는 첸첸의 거절에 어이없다는 눈빛을 내비쳤다.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응? 그렇지?”
“제대로 들은 게 맞아. 싫다고 말했어.”
쐐기를 박아넣는 첸첸의 말에 제로 주변의 공기가 술렁였다.
“무언가 보상이라도 원하는 거야? 보상은 섭섭지 않게 챙겨줄 테니 원하는 게 있으면 말만 해. 돈? 아이템? 아! 요즘 로스트 월드에서 구할 수 있었던 재료가 부족하지 않아? 그걸 좀 챙겨줄…!”
“보상 따윈 필요 없어. 내 ‘가족’을 데려가는 놈은 아무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하….”
첸첸의 말에 제로가 한숨을 토해냈다.
가족… 이라.
첸첸이라는 인간은 본래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런 억지를 부린다는 것은….
‘냄새를 맡았네.’
제로가 데려가려는 플레이어가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
첸첸은 그 냄새를 맡은 것이다.
“잘 생각해 봐. 어차피 그 플레이어는 프랑스 사람도 아니야. 그리고 고작 해봐야 4군에 소속된 저레벨 플레이어잖아?”
“그럼 나도 한 가지 물어볼게. 넌 왜 그런 저레벨 플레이어를 데려가려고 하는 거지?”
“그거야….”
첸첸의 되물음에 제로는 침묵했다.
솔직히 말해서 4군의 플레이어 정도면 첸첸 또한 아무런 망설임 없이 포기할 거라 생각했다.
거기에 돈이든, 아이템이든. 로스트 월드에서만 구할 수 있었던 재료든. 그런 것들을 얹어준다면 더더욱 쉽게.
그렇기에 이런 상황을 상정한 변명 따위는 준비하지 않았다.
첸첸은 그런 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왜 대답을 못 해? 넌 왜 그 플레이어를 데려가려고 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는 첸첸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제로가 입을 열었다.
“그 아이에겐 재능이 있어. 그렇기에 내 옆에 둬서 제대로 키워 볼 생각이야.”
“재능이 있는 연금술사라면 당연히 마학자에 있는 게 더 맞지. 내 길드는 연금술사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거든.”
“그 정도 지원,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쿠구구.
제로와 첸첸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 둘의 시선이 얽히는 순간, 주변의 공기가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고집 좀 그만 부리고, 좋게 좋게 해결할 순 없는 거냐?”
“고집은 네가 부리고 있는 거지.”
쿠구구-!
공기가 일그러지며, 제로와 첸첸 내뿜는 존재감이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만일 이곳에 다른 플레이어가 있었다면, 그 압력에 죽음을 맞이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제로는 그런 첸첸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몸을 일으켜 한 걸음씩 내디뎠다.
* * *
“베드리나가 당했구나.”
그놈이?
흐음.
약소 차원인 줄 알았는데, 꽤 쓸만한 놈이 있나 보군요.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내리치고, 바다는 거대한 해일이 연신 만들어지며.
대지는 지진이라도 난 양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 허상계.
그곳에서 그 무엇보다 거대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왕의 말에, 그 휘하의 군단장들이 수군거렸다.
적의 군단장 베드리나.
그가 일으키는 불꽃은 개념마저 불태운다 알려져 있었으며, 그 전투력은 군단장 사이에서 나름 쓸만했다.
그런 베드리나가 당했다는 것은 지구라는 이름의 약소 차원에 쓸만한 강자가 있다는 뜻.
그 사실에 왕의 휘하에 있는 군단장들이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요, 왕이시여.”
“모든 ‘병’들을 이끌고 너희들이 넘어가라. 그리고 ‘구멍’을 넓혀라. 내가 직접 강림할 수 있도록.”
“왕께서 직접 움직이시는 겁니까?”
“그래. 그곳에는….”
허상괴의 왕은 그러한 뒷말을 삼키며 침묵했다.
허나 군단장들은 그런 왕의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모든 것은 왕의 뜻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