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다음 날 아침.
제로와 아루는 미리 약속한 시간에 맞춰, 약속된 장소에 만나 움직였다.
“와! 여기가 그 유명한 신성의 길드 하우스군요!”
강남에 위치한 거대한 빌딩.
흔히 신성의 길드 하우스로 알려진 그곳에 들어가자 아루가 눈을 빛냈다.
마학자 길드의 4군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마학자조차 타국에 존재했기에 십강의 길드 하우스에 처음 발을 들이는 아루는 주변의 모든 것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가자.”
제로는 그런 아루를 이끌며 빌딩의 최상층으로 향했다.
최상층에는 신성의 집무실밖에 없었는데, 그곳에서는 미리 연락을 받은 신성이 제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맞아.”
집무실에 들어오기 무섭게 신성이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졌다.
그에 제로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으며, 아루는 난생처음으로 만나는 최상위 플레이어. 개중에서도 십강의 길드 마스터를 보며 여전히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신비의 알케미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아루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신비의… 알케미스트…?”
아루의 인사를 들은 신성이 제로를 바라봤다.
신비의 연금술사라니. 제로에게 듣기로 아루라는 이름의 플레이어는 평범한 연금술사라는 직업을 가졌다 했다.
그런 신성의 눈초리에 제로는 으쓱! 어깨를 움직였다.
그녀의 직업이 평범한 연금술사이든, 아니면 히든 클래스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지구의 재료’를 이용해 다양한 포션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제로의 반응에 신성은 하…, 하며 깊이 숨을 내쉬었다.
제로는 이게 문제였다.
지닌 힘에 걸맞은 무게감을 갖추지 못하고, 언제나 제멋대로 행동한다.
만일 제로가 그러한 행동을 묵인할 정도의 강함을 지니지 못했다면, 언제 등 뒤에서 칼이 꽂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그래서 어때?”
“어떻고 자시고….”
제로의 말에 속으로 뜨끔한 신성이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아루가 지구의 재료로 포션을 만들 수 있다면, 그 레벨이 어떻게 되든. 그 강함이 어떻게 되든 영입 0순위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근데 정말로 그녀가 지구의 재료로 포션을 만들 수 있는 게 확실한 겁니까? 제로 님?”
…!
신성의 입에서 ‘제로’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안 그래도 똘망똘망한 아루의 두 눈동자가 더욱 커졌다.
안 그래도 자신을 데려온 남자가 십강 중 하나인 신성 길드의 길드 마스터, 신성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설마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장본인이 그 유명한 제로였을 줄은 몰랐다.
비록 레벨이 낮아 얼굴이나 생김새 따위는 모르지만, 그녀 또한 제로라는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수억의 플레이어 중, 언제나 최강이라 손꼽히는 플레이어.
네크로맨서 계열의 히든 클래스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제로의 언데드는 다른 네크로맨서들과 다르게 흑골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특히나 그 언데드의 강함은, 보통의 네크로맨서들이 다루는 언데드의 강함을 아득히 뛰어넘으며.
언데드가 없으면 그 전투력이 반감되는 다른 네크로맨서들과 다르게 제로는 본신의 강함조차 초월적이라 알려져 있었다.
‘제로 님은 이렇게 생겼구나.’
아루는 환영 마법에 의해 만들어진 껍데기를 힐끗힐끗 바라봤다.
그런 아루의 시선에 제로는 피식 웃으며 신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확실해. 아니면 날 못 믿는 거야?”
“제로 님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같은 십강 중 하나인 마학자 길드의 길드 마스터, 로열 알케미스트 첸첸조차 만들지 못한 그것을 이런 평범한 플레이어가 만들었다?
그것도 제로의 환영 마법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는 것은, 그 레벨이 300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신성은 제로가 거짓말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로 또한 그러한 신성의 의심은 타당하다 생각했다.
만일 자신이 신성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당연히 의심부터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루.”
“네. 네! 제로 님!”
“포션 몇 개만 꺼내 봐.”
“넵!”
제로의 말에 아루가 우렁차게 대답을 내뱉으며 움직였다.
그녀는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 통칭 ‘무한의 주머니’에서 몇 병의 포션을 꺼내 보였다.
무한의 주머니는 이름과 다르게 무한정 들어가는 주머니는 아니었고, 10평 남짓한 공간을 가진 일종의 창고와도 같았다.
한 가지 장점은 무엇을 넣든 주머니의 무게는 변함이 없다는 것인데, 그렇기에 제작계 직업군의 플레이어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아이템이기도 했다.
“흠.”
신성은 아루가 꺼내는 포션을 하나, 하나 신중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루가 꺼낸 포션은 총 네 종류로, 하나는 하급 회복 포션. 하나는 미약한 근력 상승의 물약. 하나는 미약한 민첩 상승의 물약. 하나는 미약한 광폭화의 포션이었다.
하나같이 로스트 월드가 서비스 종료된 시점에서, 그 가격이 폭등한 포션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군요.”
한참 동안 살펴본 포션을 조심스레 내려놓은 신성이 입을 열었다.
그로서는 아무리 살펴봐도, 이 포션들이 정말로 지구의 재료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로스트 월드의 재료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신성이 제아무리 최상위 플레이어라지만, 연금술에 관해선 무지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말 이것들을 지구의 재료로 만든 것이 확실합니까?”
“네? 네….”
마치 취조하듯 물어보는 신성에 아루가 움츠러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루의 대답에도 신성은 여전히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흠, 잠시 제대로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
신성의 물음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로의 허락이 떨어지자 신성은 어딘가로 전화를 넣었는데, 그러길 잠시.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오세요.”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신성의 대답과 함께 한 플레이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조심스레 들어온 그는 가죽 작업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신성의 집무실에 왠 처음 보는 플레이어 한 명과, 제로가 있는 것에 흠칫! 놀란 표정을 내비쳤다.
“제로… 님? 그리고 저쪽의 여성분은 누구…?”
“그것보다 이것들을 좀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플레이어가 의문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으나, 신성은 그의 의문을 일축했다.
지금은 그 플레이어의 의문에 답변해주는 것보다, 포션이 정말로 지구의 재료로 만들어진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흠.”
플레이어는 그런 신성의 말에 표정을 굳히며 포션을 훑어봤다.
몇몇 스킬까지 발동하며 신중하게 포션을 살펴보던 플레이어는….
“시, 신성 님. 이건 도대체 무슨…?”
그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떨리는 목소리와 눈동자는 그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이런 건 처음 봤습니다. 분명 회복 포션의 등급은 하급이고. 나머지 버프형 포션들의 등급은 최하급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것들 모두가 로스트 월드의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저도 나름 마스터 레벨을 돌파한 연금술사지만, 도대체 어떤 재료로 만든 것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습니다.”
로스트 월드의 재료로 만들어 낸 포션이 아니다.
무려 마스터 레벨을 돌파한 연금술사의 말이었으니, 그것은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그 뒤의 말을 듣기 무섭게 신성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알겠습니다. 이만 돌아가 일 보세요.”
“도,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신성의 말에 플레이어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사라졌다.
한편, 플레이어가 사라지기 무섭게 신성이 제로와 아루를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걸 정말 지구의 재료로 만든 것이 확실합니까?”
“네? 네…. 다소 구하긴 어렵지만 분명 지구에서 채집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들었어요.”
“으음….”
울것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아루에 신성의 표정이 다시 한번 오묘해졌다.
그래도 마스터 플레이어의 ‘로스트 월드의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확언을 들었으니, 지구의 재료로 만든 것은 맞을 것이다.
또한 마스터 플레이어조차 지구의 재료로 만들어진 포션을 처음 봤으니, 저것을 만들기 위해 어떤 재료가 사용되었는지 모르는 것도….
‘어느 정도 아귀가 맞아떨어지는군.’
그렇다면 이제는 이 포션을 만들기 위해 어떤 재료가 사용되었는가.
그것을 알아낼 차례였다.
그런 생각으로 신성이 다시 한번, 아루를 향해 입을 열려는 순간….
“잠깐.”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제로 님.”
“딱히 큰 문제는 없는데 말이야.”
신성의 물음에 묘한 대답을 던진 제로가 아루를 바라봤다.
아루 또한 제로를 향해 ‘무언가를 원하는’ 눈동자를 했다.
“아루를 신성에 가입시킬 수 없냐?”
“신성에 가입 말입니까?”
“응.”
제로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신성이 입을 열었다.
“그거야 당연합니다. 지구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포션을 만든다. 그러한 기술을 가지신 분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이지요.”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무슨…?”
“아루가 마학자 길드에 소속되어 있더라고. 4군에 소속되어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좀 껄끄럽지 않겠어?”
“끙….”
제로의 말에 신성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마학자 길드.
십강 중 하나인 길드로, 같은 십강 중 하나인 강철과 같이 비전투 계열의 직업군이 모여 만들어진 길드였다.
강철이 대장장이 계열의 직업군들이 모였다면, 마학자는 알케미스트. 연금술사들이 모여 만들어진 길드다.
개중에서 길드 마스터로 알려진 로열 알케미스트 첸첸은 재료만 충분하다면 최상위 광물 중 하나인 오리하르콘 또한 연성할 수 있다.
특히나 첸첸은 그 효과는 본래에 비해 50%정도 감소되었지만, 죽은 자도 살려낸다는 엘릭서 또한 연성해낸 전적이 있었다.
또한 부족한 전투력을 ‘호문쿨루스’라는 인조 생명체를 통해 메꿨다.
그녀가 보유하고 있는 호문쿨루스의 숫자는 물경 천을 넘어가며, 그러한 호문쿨루스를 통해 로스트 월드 시절, 하나의 대형 길드를 홀로 매장한 전적 또한 지니고 있었다.
“하필이면 첸첸입니까.”
신성이 골치 아프게 되었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에 제로가 입을 열었다.
“딱히 문제 될 건 없겠지? 고작해야 4군에 속한 저레벨 플레이어 한 명 데려오는 것뿐이잖아.”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제로의 말에 신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첸첸은 ‘이익과 손해’에 유달리 민감했다.
자신에게 이득이 있다면, 어떻게든 손에 넣기 위해 움직였으며. 만일 자신에게 손해가 발생한다면 자신의 길드에, 그것도 1군에 속한 플레이어라 할지라도 냉정히 쳐낸다.
그렇기에….
“막상 빼내 온다 해도, 아루 양이 지구의 재료로 포션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물론 십강 간의 전투 행위는 극도로 지양해야 하는 행위이며, 협회의 규칙 아래 금지되어 있다.
허나 첸첸의 마인드라면 그러한 규칙 따위, 엿이나 까먹으라는 마인드로 전쟁을 일으킬 확률이 높았다.
“확실히 첸첸이라면 그럴 만하지.”
신성의 반응에 긍정하듯,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이상….
“그럼 어쩔 수 없지. 내가 첸첸하고 한번 만나볼게.”
자신이 뿌린 씨앗이다.
그 마무리까지 자신이 확실하게 매듭짓는 편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