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바스락, 바스락.
빠각!
바스락, 바스락.
빠각!
제로는 명계의 주시자가 만들어 낸 그림자를 뒤쫓아 산길을 거닐었다.
이렇다 할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걷기만 하는 제로에, 소리라고는 나뭇잎이 밟히면 소리나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산 중턱쯤 도착했을 때….
“뭐냐?”
명계의 주시자가 만들던 그림자가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에 명계의 주시자 또한 당황했는지 거대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사방을 둘러봤다.
“평범한 웨어 울프는 아니다 이건가.”
제로는 명계의 주시자의 눈마저 속이는 범인에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명계의 주시자가 만들어 낸 그림자는 대상에게 달라붙어 있는 죽음을 시각화 한 것이다.
무릇 생명이란 한평생 살아가며 무수한 죽음을 품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죽여버린 날파리의 죽음.
징그럽다고 죽여버린 벌레의 죽음.
예쁘다고 줄기를 꺾어버린 식물의 죽음.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마치 향수와도 같이 생물에게서 묻어 나온다.
그렇기에 명계의 주시자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그 어떤 존재라 하더라도 미약한 죽음 정도는 품고 있으니.
그럼에도 웨어 울프를 놓쳤다는 것은….
“죽음.”
[왜.]
발을 멈추며 말하는 제로에 죽음이 대답했다.
“나 말고 다른 대리자는 없는 거지?”
[그래. 나의 대리자는 오직 너 하나뿐이야.]
죽음의 말에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죽음과 계약을 한 것도 아니면서, 자신에게 묻어 있는 죽음마저 지워버리는 존재라니.
그런 존재는 제로 또한 듣도 보도 못했다.
그렇게 제로가 ‘이제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라는 생각을 품고 있을 때.
죽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신기하군.]
“뭐가?”
[네놈이 뒤쫓는 존재 말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놈, 죽음을 먹어 치우고 있다.]
“죽음을… 먹어 치워…?”
죽음의 말에 제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음이란 일종의 개념이다.
물질이 아닌 그것을 먹어 치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말 확실해?”
[그래. 놈은 죽음을 먹어 치운다. 그리고 그렇게 먹어 치운 죽음으로써 점차 강해지는 거겠지.]
제로의 되물음에 죽음이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확고한 믿음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 능력이 있다고?’
확실히 까다로운 상대다.
제로가 다루는 힘 또한 죽음이었으니, 어찌 보면 천적. 혹은 극상성이라 볼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만일 진짜로 상대가 죽음을 먹어 치우는 것이라면….
“이만 돌아가.”
제로의 말에 명계의 주시자가 점차 반투명해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명계의 주시자를 역소환 한 제로는….
“죽음을 먹어 치운다면, 네놈이 안 나오고는 못 배길 진수성찬을 마련해주마.”
푸확-!
말을 마친 제로에게서 농밀한 죽음이 터져 나왔다.
잿빛의 안개로 유형화된 그것이 사방으로 퍼져나갈 때마다, 주변에 자리 잡은 초목들이 말라비틀어지고. 대지가 죽어 나가 쩍쩍 갈라졌다.
그렇게 주변 생명의 피해 따윈 깔끔히 무시하며, 얼마간 죽음을 퍼트렸을까.
제로의 귀에 돌연 ‘크르르….’ 하는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상당히 희미한, 족히 수백 미터 이상 떨어진 장소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왔구나.”
짐승의 울부짖음을 들은 제로가 씨익 웃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크아앙-!
거친 하울링과 함꼐 제로의 앞으로 거대한 인랑, 웨어 울프가 떨어졌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웨어 울프는 거대한 덩치와 우락부락한 근육. 그리고 피처럼 붉은 선홍빛 털을 가지고 있었다.
개중에서 가장 신기한 것은….
“정말 죽음을 먹네?”
제로가 퍼트리고 있던 농밀한 죽음이 갑자기 나타난 웨어 울프와 닿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니,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웨어 울프의 몸에 흡수되고 있었다.
“저러니 명계의 주시자의 눈을 속이고. 원령도 보이지 않았지.”
제로는 죽음을 흡수하는 웨어 울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상대는 단순히 근처에 있기만 해도 죽음을 빨아들인다.
저 상태라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 올린 죽음마저 빨아들여 명계의 주시자의 눈을 속이는 것도.
그리고 죽음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원령의 흔적이 사라진 것도 납득이 됐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처먹을 수 있을까?”
제로는 상대가 죽음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농밀한 죽음을 퍼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더욱 방대한 죽음을 웨어 울프에게 집중시켰다.
신기하긴 하지만, 저것이 흡수할 수 있는 죽음에는 한계가 존재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제로가 뿜어내는 농밀하면서도 순수한 죽음을 흡수해 한없이 강해지겠지만, 그 한계에 도달한다면….
울룩불룩.
“왔다.”
죽음을 흡수하던 웨어 울프의 몸뚱이가 부풀어 올랐다.
웨어 울프의 전신이 기포가 올라오듯 울긋불긋해지는 모습에 제로가 씨익 웃어 보였다.
놈은 한계에 다다랐다.
이 이상 죽음을 흡수한다면, 역으로 감당할 수 없는 죽음에 전신이 터져 나가 자멸하게 될 것이다.
물론….
‘놈이 아무런 생각도 없는 짐승에 불과하다면 그렇겠지.’
재로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돌연 웨어 울프가 움직였다.
놈은 죽음의 흡수가 한계에 다다르자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어딘가 제로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한계의 한계까지 흡수한 죽음을 천천히 소화할 생각이었다.
허나….
“어딜 도망가?”
스킬 발동, 명계의 사슬.
촤르륵-!
제로의 발밑에서 명계의 냉기를 품은 사슬이 튀어나와 쏘아졌다.
수십 개의 사슬은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웨어 울프의 사방을 포위하며 압박했다.
크앙-!
쩌어엉-!
웨어 울프가 입을 벌리며 하울링을 토해냈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기파에, 웨어 울프를 속박하기 위해 쏘아진 명계의 사슬이 튕겨 나갔다.
다만, 그것은 명계의 사슬이 박살 나버린 것이 아닌, 단순히 튕겨 나간 것에 불과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명계의 사슬은 다시 한번 웨어 울프를 포박하기 위해 움직였다.
크르르….
명계의 사슬이 불규칙한 리듬을 타며 다가오자, 웨어 울프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웨어 울프 또한 이대로 도망만 다니면 결국 당하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놈에겐 더 이상 선택지가 없었다.
크앙-!
웨어 울프가 다시 한번 하울링을 토해냈다.
그에 명계의 사슬이 또 한 번 튕겨 나가고, 웨어 울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제로를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브레스?”
제로는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는 웨어 울프를 멀뚱히 마주 보았다.
그런 제로의 중얼거림이 맞았다는 듯, 웨어 울프의 가슴이 급격히 부풀어 오르며, 그 입에 막대한 죽음이 뭉치기 시작했다.
“진짜 가지가지 한다.”
죽음을 흡수해 강해지는 것도 모자라, 그렇게 흡수한 죽음으로 브레스를 토해낸다.
일부러 웨어 울프가 마음껏 죽음을 먹어 치울 수 있게 만들었지만, 설마하니 그렇게 사용한 죽음이 되려 자신을 공격하게 될 줄은 몰랐던 제로였다.
그렇게 웨어 울프의 가슴이 한계까지 부풀어 오르고.
입에 뭉치는 죽음 또한 한계점을 돌파하는 순간….
죽. 어.
푸확-!
웨어 울프의 것으로 예상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반 박자 늦게 죽음으로 이루어진 브레스가 제로를 향해 쏘아졌다.
웨어 울프가 토해낸 브레스는 광선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궤도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며 제로에게 향했다.
제로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의 광선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대단한 건 인정할게. 설마 죽음을 먹어 치우고, 그렇게 먹어 치운 죽음을 자신의 힘으로 변환. 다 소화하지 못한 죽음을 브레스의 형태로 적을 공격하는 데 사용한다. 확실히 뛰어나. 하지만 말이야…,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스윽.
웨어 울프가 토해낸 브레스, 죽음의 광선이 코앞까지 다가온 그때.
제로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마치 제로 혼자만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듯, 손을 들어 올리는 행동은 한없이 느긋했으나,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죽음의 광선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난 제로. 오버 데스. 죽음 그 자체야.”
콰우우우우-!
웨어 울프가 토해낸 죽음의 광선이 제로의 손바닥 위로 빨려 들어가며 응축되었다.
응축되고, 응축되어 하나의 구로 변한 그것을 제로가 꿀꺽! 삼켜버렸다.
“꽤 맛있네.”
죽음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구체는 가슴 쪽으로 이동하기 무섭게, 이번엔 사룡 덴드로의 심장이 낼름 먹어 치워 버렸다.
그렇게 웨어 울프는 본인 나름의 최대의 공격이었던 브레스가 허무하게 막혀버리자 당황한 표정을 내비쳤다.
“더 할 거 없냐?”
제로는 그런 웨어 울프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에 웨어 울프는….
크르르!
제로를 향해 낮은 울림을 토해내기 몸을 돌려 무섭게 도망쳤다.
양팔과 두 다리를 이용해 험난한 산세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달려 나가는 모습에 제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나름 자신이 퍼트린 죽음을 먹어 치워 강해졌을 텐데.
고작 공격 하나 통하지 않았다고 바로 도망치다니.
저것은 웨어 울프로서의 긍지조차 없단 말인가.
아니….
‘플레이어라면 웨어 울프의 긍지니 뭐니 하는 그딴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겠지.’
제로는 도망치는 웨어 울프를 쫓아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웨어 울프를 쫓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제로는 한 가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나저나 너 플레이어는 맞냐?”
아까 전부터 지금까지.
하는 말이라곤 크르르, 하는 낮은 울림. 혹은 크앙! 하는 하울링뿐이었다.
상대가 플레이어라면 아무리 수인 형태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언어를 사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것은 플레이어가 아닌 것일까?
아니, 그것은 더욱 말이 안 되었다.
분명 지구에는 무수히 많은 신화와 전설이 살아 숨 쉬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허나 신화는 신화이고,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지구에는 신화나 전설 속에 나오는 괴물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플레이어니, 허상괴니 하는 것들로 소설이나 만화에서나 볼 법한 세상이 되었으나.
그 전에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세계였다. 아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에 새로운 생물이 잠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신화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그런 것들이 실존했다면, 회귀 전. 허상괴와의 전쟁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얼마나 움직였을까.
웨어 울프는 둥근 보름달의 달빛이 내리쬐는 산 정상에 멈춰 서 있었다.
“도망은 다 친 거냐?”
크르르….
제로의 물음에 웨어 울프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웨어 울프는 제로를 바라보며 몸을 낮췄다.
그에…
쿠웅-!
묵직한 울림과 함께 웨어 울프의 양 다리의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웨어 울프의 특성상, 달빛을 받으면 받을수록 강해진다.
그렇다면 보름달의 달빛을 방해 없이 받을 수 있는 이곳은, 웨어 울프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였다.
“한번 해보자고?”
그러한 말을 내뱉은 제로가 손을 들어 올렸다.
“정체는 알아봐야 하니…, 죽이지는 않을게.”
크앙-!
제로의 말이 끝나는 순간, 웨어 울프가 움직였다.
웨어 울프가 비정상적으로 근육이 부풀어 오른 뒷다리로 대지를 박차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제로를 향해 쏘아졌다.
제로를 향해 날아가는 웨어 울프의 양손에 달려있는 손톱에는 제로에게서 흡수했던 죽음이 깃들어 있었다.
제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웨어 울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마법을 사용했다.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