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허억-! 허억-!”
한 플레이어가 인적 없는 산길을 달려 나갔다.
그런 플레이어는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갑자기 튀어나온 나무에 부딪히는 등, 꼴이 말이 아니었다.
특히나 공포로 일그러진 표정과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듯한 행동은 다른 누군가가 봤다면 의문을 드러냈을 것이다.
주변에는 이렇다 할 허상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비탈길을 따라 달려 나가던 플레이어가 또 다시 발이 걸리며 넘어졌다.
우당탕-!
늦은 밤, 인적없는 산길에 플레이어가 나뒹구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에 플레이어의 몸에는 나뭇가지나, 썩은 나뭇잎. 흙 따위가 묻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저 다급히 일어나 주변을 훑어보고, 다시 달리기를 반복할 뿐이다.
그렇게 달리고. 넘어지고.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달리고.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플레이어는 산 아래에 자리 잡은 도로. 개중에서 환한 빛을 흘리는 가로등 밑에 도착해서야 한숨 돌렸다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 이 정도면 괜찮겠지?”
산길을 달릴 때와 마찬가지로 주변을 훑어보던 플레이어가 중얼거렸다.
그런 플레이어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숨길 수 없는 공포심이 깃들어 있었지만, 그러한 공포심에는 안도감 또한 뒤섞여 있었다.
크르르….
흠칫-!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부짖음에 플레이어의 몸이 눈에 띄게 떨렸다.
동시에 플레이어는 머리 위로 시선을 돌렸는데….
“괴, 괴물 새끼…!”
공포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플레이어의 눈에 들어선 것은 몸을 웅크리고 있는 한 마리 늑대였다.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늑대의 형태를 한 인간’, 웨어 울프였다.
웨어 울프.
흔히 늑대인간이라고도 불리는 그것은 평소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보름달이 뜨는 날 밤 늑대의 모습을 취하는 괴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로스트 월드에서는 뱀파이어와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로 잘 알려진 종족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가 웨어 울프라는 것은 곧 플레이어라는 뜻.
플레이어 간의 싸움이나 살해는 플레이어 협회에 의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기에, 가로등 밑에서 덜덜 몸을 떠는 플레이어의 공포는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저, 저리 가! 괴물 새끼야!”
스킬 발동, 라이트닝 에로우.
플레이어가 손을 휘저으며 발악적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허공에 스파크가 튀기기 무섭게 만들어진 뇌전의 화살은 망설임 없이 가로등 위에 웅크리고 있는 웨어 울프에 직격했다.
허나 소용없었다.
라이트닝 에로우 같은 하위 마법으로는, 웨어 울프의 질기고 튼튼한 가죽을 뚫지 못했다.
플레이어의 공격은 애석하게도 웨어 울프의 흉성을 자극할 뿐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웨어 울프가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크르르….
낮은 울림을 토해내며 몸을 일으킨 웨어 울프는 상당히 거대했다.
키는 2m를 넘어 3m에 가까웠으며, 전신이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나 온몸을 뒤덮은, 피처럼 붉은 선홍빛 털과 가죽은 상당히 질기고 튼튼해 어지간한 공격 따윈 통하지도 않았으며. 마법 내성 또한 드높아 하위 마법 정도라면 간지러운 수준조차 되지 못했다.
그와 더불어 트롤에 버금가는 압도적인 재생력과, 무지막지한 힘. 무엇이든 갈라버리는 날카롭고 튼튼한 손발톱까지.
그것들이 어우러진 웨어 울프는, 공포에 떨고 있는 플레이어와 같이 ‘저레벨 플레이어’들에겐 공포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으아아아아! 죽어버려!”
스킬 발….
플레이어가 다시 한번 마법을 발동하려는 순간, 웨어 울프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플레이어의 움직임 또한 멈췄는데, 사라진 웨어 울프는 그러한 플레이어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
스가가각-!
플레이어의 등 뒤에 나타난 웨어 울프가 몸을 회전하며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한 손에 다섯 개씩, 총 열 개의 손톱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순간, 플레이어의 몸이 산산조각 나며 바닥에 흩뿌려졌다.
웨어 울프는 죽어버린 플레이어의 시체를 한참을 내려다보다, 돌연 ‘아우-!’ 하는 하울링과 함께 사라졌다.
* * *
“왜 그리 죽상이야?”
“아, 오셨습니까.”
북한에서의 일을 끝낸 지 일주일.
그동안 제로는 지구 전역을 돌아다녔다.
아직 남아 있는 허상괴들을 처리하거나, 여전히 플레이어 협회의 눈을 피해 범죄를 저지르는 플레이어를 죽이는 등의 행동을 한 것이다.
그렇게 바삐 움직이고 나서야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제로는 오랜만에 신성을 만났지만, 그런 신성의 표정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뭐 문제라도 생겼어?”
“하…. 문제라면 문제지요.”
제로의 물음에 신성이 깊이 숨을 토해냈다.
그러한 신성의 반응에 제로의 의문이 더욱 깊어져만 갔다.
“요 근래 외국에 갔던 제로 님은 모르시겠지만…. 최근 들어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실종되거나 죽은 채로 발견되곤 합니다. 그나마 다행은 범인이 일반 시민들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아아.
신성의 말에 제로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플레이어들이 실종된다.
플레이어들이 죽어 발견된다.
제로는 대한민국에서만큼은 협회의 규칙을 무시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플레이어가 없도록 노력했다.
그렇기에 한국만큼은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어떤 버러지가 그따위 짓을.”
제로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울려 퍼졌다.
지금 제로의 머릿속에는 범인이 일반 시민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애초에 제로에게 있어 아무런 능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든, 능력을 각성한 플레이어든.
보호해야 하며, 지켜야 할 존재인 것은 다름없었다.
그렇게 제로가 분노를 드러내자, 신성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게…, 골치 아픈는 게 범인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아니, 범인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다못해 머리카락 하나, 발자국 하나조차도.”
“허. 어쌔신 계열 직업군의 플레이어인가.”
어쌔신 계열 직업.
그중에서도 고레벨 플레이어.
그렇다면 플레이어 협회의 눈을 피해 완전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고레벨의 어쌔신 플레이어가 마음먹고 은신한다면, 현대의 과학으로 만들어진 그 무엇도 털끝 하나 발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탐색 계열 플레이어들을 투입하면 그만 아니야?”
탑색 계열 플레이어.
말 그대로 ‘탐색’에 모든 것을 올인한 플레이어들로, 이들의 능력은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단순히 숨겨진 보물이나 던전의 탐색 외에도, 어쌔신들의 은신마저 간파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기도 했다.
그런 플레이어들을 투입한다면 범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은가?
“그게….”
제로의 말에 신성이 우물쭈물 입을 닫았다.
그 모습에 제로는 신성이 이미 ‘탐색 계열 플레이어’를 투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도 발견하지 못했나 보네.”
“예. 추노꾼 노비님의 도움 또한 받았으나, 그분조차 발견하지 못했더군요.”
추노꾼 노비.
로스트 월드 내에서 pkk로 이름을 떨친 플레이어로 랭킹 823위의 유저였다.
레벨과 랭킹은 다소 낮을지언정, 현상금 사냥꾼으로 활발히 활동한 베테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노비의 주 타겟은 스스로의 은신 스킬에 자신을 넘어 오만까지 품었던 어쌔신 계열 플레이어들이었다.
“노비도 실패했다면 답이 없네.”
“예. 가뜩이나 시체로 발견되는 플레이어들의 레벨대가 점차 높아지고 있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 미친놈이 플레이어 외에….”
“평범한 시민들을 건드릴 수도 있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신성의 말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시체로 발견되는 플레이어들의 레벨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범인의 강함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범인의 레벨이 높아진다면, 더 이상 범행이 플레이어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 또한 높았다.
“어쩔 수 없지.”
“직접 움직이시는 겁니까?”
“별수 있나.”
놀라 말하는 신성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자신이 정한 규칙을 무시하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버러지다.
놈을 잡아 족치지 않는다면, 자칫 플레이어 협회의 위상에 금이 갈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그리고, 플레이어 협회가 무시당한다는 것은….
‘협회의 대가리인 내가 무시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러한 생각과 함께 제로가 움직였다.
제로가 막 방을 나서기 직전, 신성이 입을 열었다.
“플레이어 몇 붙여드릴까요?”
“필요 없어.”
신성의 제안을 제로는 단칼에 거절했다.
신성이 어떤 이유로 그런 제안을 했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괜히 플레이어들을 달고 돌아다니다간 범인을 놓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혼자 움직이는 편이 좋았다.
그렇게 제로가 사라지자, 신성은 그제야 후…, 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제로가 움직인 이상 문제 될 것은 없을 것이다.
“범인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곱게 죽지는 못하겠군.”
도리어 범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신성이었다.
* * *
“어디 보자.”
산 아래에 자리 잡은 한적한 도로.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제로가 주변을 훑어봤다.
이곳은 가장 최근에 플레이어가 죽은 장소로, 그 플레이어는 130레벨 정도의 마법사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였다.
사건 현장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으나, 왠지 모르게 피비린내를 풍기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흠. 영혼은 보이지 않는데.”
사신의 흉안으로 훑어본 제로가 의아함을 드러냈다.
무릇 무언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면, 그 억울함이나 원망 때문에 영혼이 현세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원령이라 부르며, 제로가 다루는 망자의 한 종류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죽은 플레이어의 원령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 흔적조차 엿보이지 않았다.
“자의로 성불… 한 것은 아니고. 그렇다면 범인은 영혼에 간섭할 수 있는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영혼에 간섭해 억지로 윤회의 고리에 집어넣거나, 혹은 소멸시키거나.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플레이어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범인이 영혼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맞을 것이다.
“그럴 땐 이놈이 제격이지.”
스킬 발동, 명계의 주시자.
쩌억-!
제로의 등 뒤로 공간이 갈라지며 한 망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하나의 눈알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촉수가 꿈틀거리는 망자였다.
특히나 그 크기는 성인 남성의 두 배 정도 되어,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은 혐오감과 불쾌감을 드러낼 것이다.
“망자의 주시자. 찾아.”
소환을 할 때, 대략적인 정보가 소환체에 전달된다.
그렇기에 다소 단순하고 직접적인 명령을 내리더라도 소환된 망자는 그 뜻을 알아듣고 움직인다.
파앗-!
명계의 주시자가 초록빛 안광을 터트리며 플레이어가 죽은 장소를 바라봤다.
그에 플레이어가 죽은 장소 위로 두 개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나는 범인에 의해 죽은 마법사 플레이어였으며.
하나는….
“호오. 웨어 울프?”
범인으로 예상되는 존재의 그림자였다.
범인으로 예상되는 그림자는 제로의 중얼거림처럼 웨어 울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림자는 플레이어를 죽이기 무섭게 산 쪽으로 이동했다.
“명계의 주시자. 쫓아.”
다시 한번 떨어진 제로의 명령에 명계의 주시자가 초록빛 안광을 유지하며 움직였다.
제로 또한 명계의 주시자가 보여주는 그림자의 뒤를 밟으며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