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128화 (128/200)

제128화

“저쪽이다!”

“놓치면 안 돼!”

5명의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파티가 골목을 누비며 움직였다.

그들은 한 마리의 최하급 허상괴를 뒤쫓고 있었다.

며칠 전 나타난 수십억 마리의 허상괴들은 토벌 이후에도 조금씩 남아 있었는데, 골목을 누비며 움직이는 파티가 뒤쫓는 허상괴 또한 그중 하나였다.

플레이어 협회는 그런 허상괴들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으며, 협회에 속한 플레이어들의 든든한 자금줄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움직였을까?

플레이어에게 쫓기는 허상괴는 점차 좁혀오는 포위망에 흉성을 터트렸다.

최하급이라고 해도 허상괴는 허상괴.

비록 오랜 시간 쫓기며 상처 입었다 한들, 그 위험도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콰가각-!

“크윽-!”

상처 입은 플레이어가 날뛰며 휘두른 앞발에 한 플레이어가 얻어맞아 벽에 처박혔다.

그에 포위망에 자그마한 구멍이 뚫렸고, 허상괴는 그 구멍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도망쳤다.

하지만….

“소용없어!”

쉐에에에엑!

퍼억!

스나이퍼라는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 한 명이 도망치는 허상괴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화살은 정확히 허상괴의 뒷다리를 관통했으며, 그에 허상괴는 균형을 잃고 폐건물 내부에 떨어졌다.

“괜찮냐?”

끄덕.

허상괴가 떨어진 폐건물 밖에 플레이어들이 모였다.

그들은 허상괴에 당한 동료의 안위를 걱정하는 한편, 조심스레 폐건물 내부로 들어갔는데….

“미친…! 저, 저게 뭐야?”

들어선 폐건물 내부의 모습을 확인한 플레이어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스나이퍼 플레이어의 화살에 뒷다리가 뚫려버린 허상괴는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데, 죽어버린 허상괴의 시체를 한 괴인이 뜯어먹고 있었다.

정황상 폐건물에 떨어진 허상괴를 죽인 것은 시체를 뜯어먹는 괴인이었으나, 그러한 괴인의 모습은 같은 인간이라고는.

아니, 플레이어라고 보기에도 어려웠다.

이제 막 성인이 되어 보이는 괴인의 몸 전체는 피처럼 붉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시체를 뜯어먹는 이빨은 인간의 그것과 달랐으며, 손톱과 발톱 또한 단단하면서도 날카로움을 내비쳤다.

그렇게 괴인이 얼마나 허상괴의 시체를 뜯어 먹었을까?

돌연 괴인이 고개를 홱! 돌리며 허상괴를 뒤쫓아 폐건물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을 응시했다.

플레이어들은 괴인과 눈이 마주치자, 등골을 타고 흐르는 오싹함에 다시 한번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크아아아-!”

허상괴의 시체를 뜯어먹고 있던 괴인이 괴성을 내지르며 플레이어들을 덮쳤으며.

플레이어들은 갑작스런 괴인의 기습에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 나갔다.

* * *

“진행은 잘 되가냐?”

“아, 제로 님.”

서울 강남에 위치한 빌딩, 신성의 길드 하우스.

그곳의 최상층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신성은 갑작스런 제로의 등장에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다.

신성이 막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제로가 입을 열었다.

“뭘 일어나고 그래. 그냥 앉아 있어.”

그 말과 함께 제로 또한 제집처럼 편하게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나저나 진행도는 좀 어때?”

“쉘터의 설립은 어느 정도 끝나갑니다. 한국의 플레이어들 중 90%가 협회에 가입했습니다. 나머지 10%의 플레이어들은….”

“간을 보고 있는 거겠지.”

플레이어 협회가 설립된 이래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협회는 전 세계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협회에 가입할 수 있게 움직였으나, 그럼에도 협회의 가입을 꺼리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사고만 치지 않으면 그만이지.”

“그렇죠.”

사람들 중에는 어느 한 단체에 소속되거나, 억압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또한 존재한다.

제로 또한 그것을 존중해, 그들이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딱히 협회에 가입하라 강요하지 않았다.

그 외에는….

“쉘터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수와 안전도는?”

“하나의 쉘터당 100만 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건축건축 길드의 도움을 받아 상당히 튼튼하지요.”

“좋아.”

신성의 대답에 제로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건축건축 길드는 십강 중 하나인 강철과 마찬가지로 제작계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모여 만들어진 길드였다.

비록 십강만큼의 덩치도, 영향력도 없지만. 소속되어 있는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300레벨을 넘겼다.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면 이제는 일상이 될 허상괴의 습격 속에서 충분히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제로와 신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돌연 쿠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비틀거리고, 유리가 깨져 나갔다.

꺄아아아악-!

뭐,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깨진 창문 너머로 당황한 사람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에 제로와 신성이 창밖을 바라봤는데, 그 순간….

“저게 뭐다냐.”

“버섯… 구름…?”

버섯구름.

그것은 단순히 하늘에 떠다니는 버섯 모양의 구름이 아닌, 핵폭탄이 터졌을 때 발생하는 버섯 모양의 구름이었다.

제로가 시야를 가득 메우는 버섯구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거 북한 쪽 방향 아니냐?”

“맞는 거… 같습니다.”

제로의 중얼거림에 신성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뜬금없이 북한에서 핵이 터지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갑작스런 상황에 신성이 당황하고 있을 때, 돌연 한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 마스터!”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북한이 자국에 핵을 투하했습니다!”

핵이 터진 것은 봐서 알고 있다.

하지만 제로와 신성이 알고 싶은 것은, 어째서 자국에 핵을 투하했냐는 것이다.

아무리 북한이 막나간다고 하지만, 자국에 핵을 쏟아부을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허상괴 때문인가.”

허상괴.

평범한 총으로는 최하급조차 잡기 힘든 강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

가뜩이나 북한은 게임에 대한 통제 덕분에 이렇다 할 플레이어조차 없었다.

그 상황에서 허상괴들의 침공이 시작되었으니, 어쩌면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 기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고, 버텼음에도 한계는 찾아왔고.

그 한계에 북한은 어쩔 수 없이 자국에 핵을 쏟아부었으리라.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결말이 멸망뿐이라면 같이 죽겠다는 마인드로.

제로가 그러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돌연 신성의 핸드폰이 울렸다.

“예, 예. 알겠습니다. 금방 찾아뵙도록 하죠.”

핸드폰 너머로 울리는 목소리에 대답을 끝낸 신성이 제로를 바라봤다.

“이거 상황이 골치 아프게 흘러가는군요.”

“왜?”

“방금 전 북한이 스스로 자국에 핵을 쏟아부은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수도까지 점령한 허상괴들과 같이 죽자는 식이었더군요.”

“그럴 것 같더라.”

“그리고 대통령님이 호출하였습니다.”

“왜?”

“핵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허상괴들이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더군요….”

북한의 남쪽이라면 어딘지 말할 것도 없다.

북한이 핵으로 멸망했다.

그것만으로도 거대한 충격이었는데, 그러한 핵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허상괴들이 한국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상황이었기에, 대통령이 한국의 최상위 플레이어들을 모집하는 것은 당연했다.

* * *

“왔나, 제로 군. 신성 군.”

수리가 덜 끝난 청와대에 제로와 신성이 도착하자, 딱딱하게 굳어있던 대통령의 표정이 한결 풀렸다.

확실히 사태의 심각성 때문일까.

방 안에는 다수의 최상위 플레이어들이 앉아 있었다.

과거 만난 적 있던 광전사 덴푸라를 시작으로 야수왕 백호. 신궁 일살과 그 외에 랭킹 1000위권 이내의 플레이어 셋이 더 있었다.

다만 최상위 플레이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두 눈동자에는 흥미만이 풍겨 나올 뿐이었다.

제로는 그런 플레이어들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상황은?”

“안 좋습니다.”

제로의 물음에 대통령이 다시 한번 표정을 굳히며 대답했다.

허상괴들은 현재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그 숫자는 수천만을 넘었으며, 이동 속도를 생각해 보자면 3시간 이내에 38선을 넘어 서울에 당도할 것이다.

즉, 한국에게 남은 시간은 단 3시간뿐이란 얘기였다.

그 짧은 시간에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 서울 등에 자리 잡은 시민들을 대피시키기란 여간 촉박한 게 아닐 수 없었다.

적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보다 훨씬 강력한 괴물들이다.

특히나 핵폭발 속에서도 죽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생명력마저 지녔다.

그것들만 보면 대통령이 저리 걱정하고, 당황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말이야.”

“무, 무엇입니까?”

“확실히 한국으로 오고 있는 허상괴들은 강력해. 핵폭발 속에서도 살아남을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보여줬지. 그런데…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잖아?”

“무, 무엇을…?”

“플레이어.”

플레이어.

저레벨이라 하더라도 단련된 인간을 뛰어넘는 강함을 지니고, 유일하게 허상괴들을 죽일 수 있는 존재.

북한이 자국에 핵을 퍼부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허상괴를 상대할 플레이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광전사 덴푸라.

야수왕 백호.

신궁 일살.

그 외에도 제로와 신성, 스타툰과 스로우 같은 쟁쟁한 플레이어들이 포진해 있는 나라가 한국이었다.

특히나 게임 강국이란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듯, 한국 플레이어들의 평균 레벨은 타국과 비교해 한두 단계 더 높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플레이어들이 움직인다면….

“아무리 핵폭발 속에서 살아남았다 한들 한국에 발을 디딜 순 없어.”

제로의 말에 대통령의 표정이 다시 풀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 잊고 있었지만, 확실히 대한민국에는 강력한 플레이어들이 포진해 있었다.

제로는 그런 대통령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주변 플레이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너희도 알아들었으면 움직여.”

제로의 말에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제로가 말하지 않았어도, 그들 또한 자신들이 속해 있는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대동해 한국으로 넘어오는 허상괴들을 막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플레이어들이 움직이는 와중, 신성이 제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제로 님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솔직히 현 상황은 굳이 제로가 나서지 않아도 충분했다.

허상괴의 숫자가 많다고 하지만, 한국의 플레이어들의 강함 또한 충분했으니깐.

제로는 그런 신성의 질문에, 한때 북한이라는 나라가 있었던 방향을 바라봤다.

“나는 뭐 좀 확인해 보려고.”

* * *

워, 많기도 하다.

그나저나 핵폭발 속에서도 살아남다니. 지들이 무슨 바퀴벌레냐?

바퀴벌레보단 개미지.

북한과 한국의 경계에 전선을 친 플레이어들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허상괴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한국을 향해 달려오는 허상괴들이 하나같이 벌레. 그것도 개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에 맞서는 플레이어들의 지휘부는 각 길드의 최상위 플레이어들이었으며. 그 중심에는 신성이 자리 잡았다.

“그럼 난 다녀올게.”

펄럭-!

제로가 올라서자, 본 드래곤이 뼈의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신성은 본 드래곤에 탑승해 북한으로 넘어가는 제로를 말없이 바라봤다.

도대체 무엇을 확인하기 위해 북한으로 넘어가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의문을 풀 시간은 없었다.

1초, 1초가 흐를수록 허상괴들이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럼 모두 부탁드립니다.”

끄덕.

허상괴를 돌아보며 말하는 신성에, 플레이어들의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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