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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23화 (123/200)

제123화

키기기긱-!

끼아아아악!

께헤헤!

하늘에 뚫린 구멍에서 허상괴들이 쏟아져 나왔다.

과거, 적의 군단장 베드리나가 이끌던 허상괴들의 등급은 대부분이 최하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렇다 할 상위의 허상괴가 진두지휘하는 것이 아님에도, 쏟아져 나오는 허상괴들의 등급은 하급과 중급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그 외에도 몇몇 상급의 허상괴들의 모습이 보였다.

“베드리나가 실패했다고 칼을 갈고 나온 거냐.”

구멍으로 향하는 제로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다행히 최상급 허상괴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재앙이라 표현해도 부족했다.

특히나 가장 거슬리는 것은….

“숫자가 너무 많아.”

적의 군단장 베드리나가 이끌었던 허상괴들의 숫자도 고작 수천에서 수만 마리에 불과했다.

수천에서 수만. 그것 또한 많은 숫자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나, 플레이어로 각성한 사람들의 숫자가 수억 명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대처 가능한 숫자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지금 구멍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허상괴들의 숫자는….

“적게 잡아도 수억. 많게는 수십억까지 되려나. 너무 안일했어. 일단 쉘터부터 만들었어야 했는데.”

수억에서 수십억.

무식할 정도로 많은 숫자의 허상괴들이 나타나자 하늘이 가려질 지경이었다.

찬란하게 빛나며 따스한 느낌을 전해주던 태양빛 또한 허상괴에 가려져 대지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얼마간 구멍에서 튀어나오는 허상괴를 바라봤을까.

제로는 슬쩍 지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 제로의 시선에 들어선 지상은 대혼란 그 자체였다.

갑자기 나타난 허상괴들이 날뛰며 건물이 무너졌다.

플레이어로 각성하지 못한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허상괴들의 침공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플레이어들 또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당황하기에 바빴다.

그나마 재빠른 대처를 보인 것이….

“3군은 시민들을 대피시켜라!”

“2군과 1군은 각자 파티를 짜서 허상괴들을 상대하도록!”

“당황할 필요 없다! 놈들의 등장은 이미 예상했던 바!”

“우리들이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 있던 신성 길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낮은 3군에 속한 플레이어들은 플레이어로 각성하지 못한 시민들의 대피를 유도했으며.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각자 파티를 이루며 허상괴들을 하나둘씩 죽여 나갔다.

그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제로는 나름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비쳤다.

회귀 전과는 다르다.

그때는 갑작스러운 기습을 당한데다 개전부터 왕과 그 수하들이 모습을 드러냈기에 전선조차 이루지 못하고 인류는 패배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구의 사람들은 제로에 의해 허상괴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들이 침공할 때를 대비해 준비에 준비를 거쳐왔다.

허상괴들이 나타나는 방식 또한, 회귀 전처럼 왕과 그 친위대들이 한 번에 넘어오는 것 또한 아니었기에, 그들을 막아낼 전선을 짤 시간은 충분했다.

또한 신성 외에도,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용맹스럽게 허상괴들과 대치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 친구. 연인. 고향. 그 외의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불태우며 움직였다.

다만, 그렇지만 허상괴들의 숫자가 숫자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 했다.

“그럼 나는….”

플레이어들에 의해 지상의 혼란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자, 제로는 다시 구멍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음 같아선 저 구멍을 막아버리고 싶지만 그게 영 안 된단 말이지.”

콰가강-!

하늘을 뒤덮은 허상괴들을 향해 죽음의 탁류를 토해낸 제로가 중얼거렸다.

허상계와 지구를 연결하는 저 구멍을 닫는다면, 별다른 희생 없이 허상계와의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구멍을 막는다’라는 행위는 지금의 제로조차 불가능했다.

결국 지금은 쏟아져 나오는 허상괴들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손을 들어 올리자, 손 위로 죽음이 뭉치며 그로테스크한 외형을 한 네크로노미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정리를 시작해 볼까.”

스킬 발동, 망자의 용기병.

스킬 발동, 원령의 축제.

스킬 발….

네크로노미콘의 페이지가 미친 듯이 넘어가며 다수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제로의 등 뒤로 공간이 갈라지며, 그 속에서 본 와이번과 스켈레톤 나이트로 이루어진 망자의 용기병이 튀어나왔다.

그 외에도 원념으로 이루어진 원령들이 날뛰며 허상괴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최상급 이상의 허상괴가 아닌 한, 저것들이 본래의 강함을 드러내기 위해선 육체가 필요하다.

그 육체가 없는 한, 제아무리 상급의 허상괴라 할지라도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정신체일 뿐이다.

그런 정신체는 원령들의 맛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제로가 소환한 망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하늘을 뒤덮은 허상괴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대로 간다면, 허상계의 이번 침공 또한 무리 없이, 별다른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끼아아악!

께에엑!

끼하하하!

돌연 제로가 퍼트린 원령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그 숫자가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수백 구의 숫자를 자랑하는 망자의 용기병들 또한 육체가 박살 나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로가 지닌 사신의 흉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건 또 무슨….”

제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창 망자들에게 유린당하고, 기껏 육체를 가졌으나 미리 준비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에게 당하던 허상괴들의 움직임이 변했다.

하급과 중급의 허상괴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육체를 강탈하는 것까지는 똑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상급의 허상괴들이었다.

수십억의 허상괴들 중, 상급의 허상괴들의 숫자는 불과 수 천마리.

아니, 망자의 용기병과 원령. 그리고 제로의 마법에 당한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숫자는 수백으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그때 일어났다.

당하기만 하던, 수백 마리의 상급의 허상괴들이 돌연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을 ‘잡아먹는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듯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제로의 눈에는….

“융합… 한다고…?”

제로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융합.

수백에 달하는 상급의 허상괴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과정의 모습이 내분이 일어나,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있는 듯한 모습일 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백으로 나뉘어 있던 상급의 허상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지금 제로의 눈앞에 있는 것은….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최상급 허상괴….”

수백 마리의 상급의 허상괴들이 하나가 되어 최상급 허상괴가 탄생했다.

하지만 제로 또한 전생에서도 본 적이 없는 허상괴였다.

회귀 전, 수년 동안 전장을 뛰어다니며 제로는 무수히 많은 최상급 허상괴들과 조우했다.

전장에서 만나지 못했다고 한들, 마지막 허상괴들의 왕과의 일전에서 나머지 최상급 허상괴들을 목도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쳤으며, 강렬했고 강인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당장 앞서 만났던 녹의 선봉장 제르빌라와 적의 군단장 베드리나만 해도 외형만큼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저런 흉물에 대해선 듣도 보도 못했어.”

지금 눈앞에 있는 저것은 어떠한가.

역겹다. 끔찍하다. 징그럽다. 혐오스럽다.

그 외의 기타 등등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저것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저것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다만, 인간과 다른 점은 엉덩이에 뱀 대가리가 달린 꼬리가 살랑이고, 등에 조류의 그것과 같은 날개가 펄럭인다.

양 손과 발에는 날카롭고 단단한 발톱이 돋아났으며, 대가리는 용의 그것과 같았다.

하반신은 물고기를 떠올리게 만들었으며, 상반신은 부패하고 썩어 구더기가 들끓었다.

그런 허상괴가 돌연 쩍! 하며 입을 벌리고….

[그아아아아아아-!]

괴성을 내질렀다.

그것의 포효는 사방 수 킬로미터를 격하며 퍼져나갔는데, 그러한 포효 소리를 들은 생명이 하나, 둘씩 쓰러졌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저것의 포효가 닿은 거리가 대전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전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은 이미 모두 루파르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기에 이렇다 할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람들 또한 플레이어였기에, 어찌어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은 내장이 뒤흔들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한편, 허상괴가 저지른 행동에 제로는….

“시끄러워.”

스킬 발동, 역병의 숨결.

푸확-!

제로의 입이 벌어지며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로스트 월드의 무대가 되었던 차원을 휩쓴 수백, 수천 가지의 역병이 응축된 연기다.

그것에 살아있는 존재가 노출된다면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전신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육체를 가지게 된 너 또한 마찬가지야.”

지금까지 역병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허상괴들은 기본적으로 정신체였기에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최상급이 되어 독립된 육체를 가지게 된 저것에겐 통하게 되었다.

허나 놈 또한 폼으로 최상급 허상괴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일까.

그것은 역병의 숨결이 자신에게 닿기 직전, 등에 돋아난 날개를 펄럭였다.

총 세 쌍으로 이루어진 그것이 펄럭이자 사방으로 광풍이 휘몰아쳤다. 제로에게서 시작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던 역병의 숨결도 그것에 휘말려 하늘 위로 올라갔다.

닿기만 한다면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가 그러한 사실에 직면하면 당황해 틈을 드러낼지 모른다.

하지만 제로는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제로는….

“한 번의 공격으로 널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

애초에 역병의 숨결로 눈앞의 최상급 허상괴가 된 저것을 죽일 수 있으리라 자신하지 않았다.

한편, 제로가 토해낸 역병의 숨결을 날려버린 허상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다시 한번 세 쌍의 날개를 펄럭이는 순간, 사방으로 광풍이 휘몰아치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라진 허상괴가 다시 나타난 장소는 제로의 등 뒤였다.

[그아아-!]

제로의 등 뒤에 나타난 허상괴가 괴성을 내지르며 양손을 휘둘렀다.

두꺼우면서도 단단한. 그리고 날카로움을 겸비한 손톱이 대기를 찢어발기며 제로의 육체를 할퀴었다.

아니, 할퀸 것처럼 보였다.

허상괴의 공격에 당한 제로의 신형이 점차 흐물흐물 녹아내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에 당황하는 허상괴의 머리 위로 제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하냐?”

* * *

“대통령님! 피하십-!”

끄아악!

청와대 내부.

그곳은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갑자기 등장한 허상괴들이 들이닥쳐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청와대에 신성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이 있어 다행이었으나, 그들 또한 허상괴들을 막아내는 데 있어 한계가 존재했다.

그렇게 밀리고 밀려버린 결과, 대통령을 포함한 생존자들은 결국 도망칠 곳 하나 없는 구석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 이대로 죽는 것인가….”

대통령이 눈앞의 허상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개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그 덩치가 수 배 이상 거대했다.

전신은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입에서는 연신 침을 질질 흘렸다.

허상괴들이 천천히 다가오자, 대통령은 질끈! 두 눈을 감았다.

플레이어도 아닌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살아남은 플레이어 또한 마나가 고갈되어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모두가 죽음을 떠올리고 있을 때….

“모조리 쓸어버려!”

어디선가 백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곧이어 허상괴들 사이로 맹수형 몬스터들이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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