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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22화 (122/200)

제122화

콰가가강-!

제로에게서 터져 나온 죽음의 탁류가 루파르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루파르 또한 랭킹 26위의 최상위 플레이어 중 한 명.

단순히 죽음을 이용해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는 공격 정도로는 이렇다 할 데미지를 입힐 수 없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고작 이 정도냐!”

쾅-!

루파르가 죽음의 탁류 속에서 바닥을 박차며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수백 미터를 뛰어오른 루파르는 이번에 허공을 격하며 제로를 향해 쏘아졌다.

“후읍-!”

순식간에 제로 앞에 도착한 루파르가 짧은 기합성을 토해내며 주먹을 내뻗었다.

그의 양손에 자리 잡은 흑색의 건틀렛에는, 루파르가 지금까지 먹어 치운 생명의 원한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칫.”

스킬 발동, 데스 본 실드.

스킬 발동, 인챈트-아이언.

스킬 발동, 인챈트-부패의 역병.

루파르의 일격에 제로는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죽음을 머금은 흑골의 방패가 제로의 앞에 만들어지고, 그것에 강철의 속성과 닿기만 해도 모든 것을 부패시키는 역병이 깃들었다.

하지만…

“소용없어!”

쩌엉-!

콰가강!

루파르의 일격은 강철과 역병이 깃든 흑골의 방패를 깨부수고 나아가, 제로의 척추에 틀어박혔다.

그 강렬한 일격에 제로의 몸뚱이는 수백 미터를 낙하해 바닥에 처박혔다.

그 여파로 제로를 중심으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지고, 대전 시청을 중심으로 세워졌던 거대한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제로!”

“형님! 괜찮으십니까?”

“사, 살아있어?”

짙은 흙먼지에 둘러싸인 제로를 향해 스로우와 백호.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스타툰이 달려왔다.

“오지 마!”

제로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그들에게 버럭 외침과 동시에, 플라이 마법을 통해 몸을 일으켰다.

“물러나 있어. 너희를 지키면서 싸울 여유는 없을 거 같거든.”

우득-!

우드득.

몸을 일으킨 제로가 허공에 떠 있는 루파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로스트 월드에서의 루파르의 강함은 확실히 뛰어났다.

포식자라는 히든 클래스 덕분에 그는 몬스터를 사냥하면 사냥할수록 레벨을 뛰어넘는 강함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이정도로 강하지는 않았어.’

속으로 중얼거리며 제로는 루파르를 바라봤다.

그가 레벨에 걸맞지 않은 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한들 이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특히나 현실에선 사냥할 몬스터가 없기에, 플레이어로 각성한 순간 루파르가 성장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졌다.

그럼에도 이정도로 강해졌다는 것은….

“너…, 대전의 모든 시민들을 죽인 거냐?”

움찔!

제로의 중얼거림에 스타툰과 스로우, 백호가 몸을 떨었다.

“형님…? 그게 도대체 무슨…!”

“맞아.”

스타툰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 루파르가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전에서 살아가는 모든 시민을 죽였다.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아니 도리어 긍정하는 루파르의 대답에 스로우와 스타툰. 백호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140만에 달하는 생명을 앗아갔다. 넌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거냐?”

“죄책감? 내가?”

이어진 스로우의 질문에 루파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파르의 반응은 단순히 ‘타국의 인간’이기에 이러한 짓을 벌였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독일에서 각성했어도, 대전과 같은 참상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네놈이 또라이인 줄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막 나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 너, 사이코패스냐?”

제로가 천천히 루파르를 향해 떠오르며 말했다.

그런 제로의 질문에 루파르는 딱히 부정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

사이코패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는 인간.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설령 그것이 살인이라 할지라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저지르는 인간.

그것이 사이코패스였다.

제로는 로스트 월드 내에서의 행보를 통해 루파르가 상당한 또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 사이코패스일 줄은 몰랐다.

“너의 강함은 앞으로 벌어질 전쟁에서 상당한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그따위의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사고를 치겠지.

그러한 뒷말을 삼키며 제로가 움직였다.

제로는 블링크를 통해 루파르의 뒤에 모습을 드러내는 동시에 네크로노미콘을 휘둘렀다.

허공을 가로지르며 루파르를 향해 움직이는 네크로노미콘은 순식간에 죽음이 뭉쳐 들며 대검, 망자의 폭거로 변했다.

“흡-!”

허나 루파르 또한 최강자 중 한 명.

그는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망자의 폭거에, 허리를 비틀어 주먹을 내뻗었다.

그런 루파르의 주먹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살해당한 생명의 원한과 분노로 오염된 생명이 깃들었다.

쩌엉-!

망자의 폭거와 루파르의 주먹이 맞부딪히며 사방으로 거대한 충격이 휘몰아쳤다.

그와 동시에….

“크윽-!”

힘에서 밀려난 제로가 수백 미터를 날아가 한 건물에 처박혔다.

아무리 제로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절대적인 힘’으로만 따지자면 제로보다 강한 플레어어는 당연히 존재한다.

애석하게도 루파르는 그런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한편, 제로가 처박힌 건물은 대전의 시청이었다.

제로는 수백 미터나 되는 바닥을 뚫고 지하에 처박혔는데, 그런 제로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미치겠네.”

수많은 시체들로 이루어진 산이었다.

대전 지하에 이런 장소가 있었다고? 라는 걸로 놀라기도 잠시, 대전에서 살아가는 140만의 시민들로 이루어진 시체의 산은 보는 자로 하여금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러한 시체 중에는 플레이어로 보이는 것 또한 존재했다.

“또라이 새끼.”

제로는 파묻힌 시체의 산에서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그런 제로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그 분노는 140만에 달하는 대전 시민이 죽었다는 것에서 파생된 분노가 아니었다.

제로가 분노를 느끼는 이유.

그것은 단순히 ‘인류의 구원과 평화’를 위해 움직이는 자신과는 반대로, ‘인류의 평화를 깨트리는’ 행동에 대한 분노였다.

이미 인간이 아닌 망자. 아니, 그것마저 뛰어넘어 죽음 그 자체인 오버 데스가 된 제로였다.

인간의 마음을 잃어버린 이상, 제로는 얼마나 많은 숫자의 인간이 죽어버리든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그것은 사이코패스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달랐다.

한편, 제로가 처박히면서 만들어진 구멍을 통해 루파르가 천천히 내려왔다.

그런 루파르의 등에는 와이번의 날개가 펼쳐져 펄럭이고 있었다.

“루파르.”

“왜? 설마 고작 이정도로 분노하는 거야?”

제로의 부름에 루파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놈들은 네가 그렇게 원하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가져오는 것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해.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게 먹히는 것이 더 도움이 되겠…!”

쩌엉-!

말을 이어나가던 루파르의 신형이 시체의 산에 틀어박혔다.

루파르가 서 있던 자리에는 언제 움직였는지 모를 제로가 망자의 폭거를 쥔 채 서 있었다.

“알고 있어. 하지만 말이야. 내 궁극적인 목표는 인류의 구원과 평화다. 그 평화를 어지럽히는 놈은 아무리 강하고. 허상괴들과의 전쟁에 도움이 된다 한들 살려두지 않아. 그러니 그냥 죽어.”

우우웅-!

말을 마친 제로의 등 뒤로 공간이 갈라졌다.

갈라진 공간 너머는 짙은 심연뿐이었는데, 그러한 심연 속에서 죽음으로 물든 무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외차원의 무기고. 이것도 오랜만에 꺼내 보네.”

외차원의 무기고.

말 그대로 각종 무기들이 잠들어 있는 공간이다.

다만, 이곳에 잠들어 있는 무기는 평범한 무기가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차원에서, 죽음을 신봉하는 존재들이 만든 것들 중. 죽음이 마음에 들어 힘의 편린을 심어둔 ‘신기’들만이 외차원의 무기고에 들어갈 수 있는 영광을 거머쥔다.

즉, 신기라고 불리는 무기 하나, 하나의 위력은 가히 압도적이다.

이론상 평범한 인간이 그것들 중 하나라도 쥐는 순간, 나라 한둘쯤은 순식간에 멸망시킬 수 있는 강함을 얻게 된다.

그러한 신기가 수백, 수천 개나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의 산에 처박혀 위를 올려다보던 루파르는 강렬한 힘을 품은 신기들의 등장에 ‘하하’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괴물 새끼는 따로 있었네.”

루파르가 중얼거렸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또한 괴물이었지만, 눈앞의 제로는 그놈을 아득히 뛰어넘는 괴물이었다.

제로는 그런 루파르를 바라보며 손을 내리그었다.

“죽어.”

콰가가가가강-!

손을 내리긋는 행동에 외차원의 무기고가 신기들을 토해냈다.

단검. 도끼. 장검. 창. 도. 수리검 등등.

그 종류도 다양한 신기의 폭격에 루파르는 으득! 이를 갈며 전력으로 방어했다.

지금까지 먹어 치운 생명을 모조리 사용해 전신을 강화하고, 그로 인해 파생된 막대한 재생력을 이용했다.

신기에 닿은 부위는 썩어 문드러지고, 때론 폭발한다.

그렇게 잃어버린 신체 부위는 폭발적인 재생력을 통해 회복한다.

다시 신기에 당하고, 다시 재생한다.

그 행동을 통해 1분 정도 이어진 신기의 폭격 속에서 살아남은 루파르가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넌 도대체 뭐 하는 괴물 새끼냐?”

루파르가 제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로스트 월드 내에서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을 죽이고, 그 생명을 포식해 왔다.

로스트 월드가 섭종을 맞이하고, 현실에서 플레이어로 각성한 뒤. 이곳으로 넘어와 140만 명을 넘어서는 생명을 취했다.

지금의 자신이 가진 강함이라면 신조차 먹어 치울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제로는 모든 것이 날아갔음에도, 홀로 살아남은 루파르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제로의 등 뒤에 열려있던 외차원의 무기고는 그 역할을 다했다는 듯, 조용히 닫혀 사라졌다.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여.”

스윽.

천천히 올라온 제로의 손 위로 죽음이 구의 형태로 뭉쳤다.

그 속에는 미친 듯이 날뛰는 죽음이 응축되어 있었는데, 그것의 위력은 제아무리 루파르의 재생력이라 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죽….”

콰르르-!

막 손에 깃든 죽음을 루파르를 향해 떨어트리던 찰나, 돌연 거대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한 폭발음을 들은 제로는 다급히 시선을 돌렸는데, 그런 제로의 두 눈에는 하늘에 열린 구멍을 통해 지구로 넘어오는 허상괴들의 모습이 내비쳐졌다.

“언제 오나 했는데….”

제로는 구멍을 통해 넘어오는 허상괴들에 쯧! 하며 혀를 찼다.

당장 루파르를 죽이자니, 어느 정도 시간이 소모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구멍에서 넘어온 허상괴들에 피해가 생긴다.

그렇다고 루파르를 내버려 두자니, 대전과 같은 참상이 다시 한번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결국….

“벌써부터 부를 생각은 없었는데.”

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네크로노미콘을 펼쳤다.

스킬 발동, 콜 데스 나이트 벤.

쩌적-!

제로의 앞으로 공간이 무너져 내리며 한 명의 기사, 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벤은 폭력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전신갑옷을 걸치고, 등에는 최흉최악의 마검이라 불리는 데스바인더를 지녔다.

한편 루파르는 갑작스런 벤의 등장에 기겁을 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미친! 저놈이 왜 여기서 튀어나오는 거야!”

한껏 당황하는 루파르는 벤과 일면식이 있는 듯 보였는데, 그것은 벤 또한 다를 바 없었다.

뜬금없이 제로에게 소환당한 벤은 발밑에 루파르가 있는 것을 보며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갑자기 왜 소환하나 했는데…, 이런 좋은 선물을 준비해 뒀을 줄이야.”

그러한 말을 내뱉으며 벤이 등에 맨 데스바인더를 세웠다.

한편 제로는 서로 면식이 있는듯한 벤과 루파르의 관계가 궁금했지만, 지금은 허상괴가 먼저였다.

“벤. 저놈을 죽여버려.”

“안 그래도 그러려 했다.”

그 말을 끝으로 벤이 허공을 격하며 루파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루파르 또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와이번의 날개를 펄럭이며 움직였다.

제로는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돌입한 벤과 루파르를 슬쩍 보고는, 플라잉 마법을 통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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