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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21화 (121/200)

제121화

저벅. 저벅.

파직! 파지직!

제로가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스파크가 튀었다.

그것은 대전에 펼쳐진 결계가 박살 나고 있다는 증거였다.

결계를 유지하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으나, 죽음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제로와 비교해 보자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제로가 결계를 깨부수며 얼마나 걸어갔을까.

제로를 포함해 스타툰과 스로우. 그리고 백호는 사방에서 ‘플레이어’로 느껴지는 기척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스윽.

제로가 손을 들어 올리자 스타툰과 스로우, 백호가 멈춰 섰다.

그와 동시에….

“저놈들이야?”

“맞을걸?”

골목길이나 건물 옥상 등에서 플레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수적인 우위를 믿고 있는 것일까?

걸치고 있는 장비로 유추해 보아, 고작 150~200레벨 사이의 플레이어인 그들은 무식할 정도로 드높은 자존심과 오만함을 자랑했다.

“근데 저 해골은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제로 일행을 포위하고 있던 한 플레이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포위하고 있는 네 명의 플레이어 중, 검은 해골의 모습을 한 제로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제로 일행은 그들의 위치가, 길드 안에서 얼마나 낮은지 잘 알 수 있었다.

“한 백 명 정도 되어 보이는데요?”

한편, 스타툰은 모습을 드러낸 플레이어들의 숫자를 세며 말했다.

150~200레벨 사이의 플레이어가 백 명.

확실히 무시 못 할 전력이긴 했다.

레벨이 낮다고 한들, 평범한 인간이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군을 동원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스타툰.”

“예, 형님.”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는 제로에 스타툰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아서 정리하고 따라와.”

“맡겨만 주십쇼, 형님.”

츠즛-!

다시 한번 우렁찬 대답을 한 스타툰의 신형이 흐릿해지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제로와 스로우, 백호는 백여명의 플레이어들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다시 한번 걸음을 옮겼다.

“얼레? 저 새끼들 보소?”

“야야! 너희들 누구 허락받고 움직이…!”

끄악-!

자신들을 공기 취급하며 무시하는 제로의 행동에 한 플레이어가 앞으로 움직였다.

그가 허리춤에 매여 있는 검을 뽑아 쥐며 제로를 가리키는 순간, 그의 곁에 있던 플레이어 한 명이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플레이어는 가슴에 날카로운 검상이 새겨지고, 그러한 상처로부터 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갑작스런 동료의 죽음에 플레이어들이 당황하며 웅성거렸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죽어 나가는 동료들의 숫자는 더욱 많아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스타툰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백 명의 플레이어들.

그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0초를 넘기지 못했다.

한편, 백여 명의 플레이어들의 뒤처리를 스타툰에게 맡긴 제로는 대전의 시청으로 향했다.

제로 일행은 꽤나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플레이어 특유의 강인한 육체 덕분에 시청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건 또 뭐냐?”

제로는 시청을… 아니, 시청을 중심으로 세워진 거대한 벽에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거대한 벽은 마치 성벽과도 같았는데, 그것의 넓이는 시청을 중심으로 사방 수 킬로미터를 뒤덮을 정도였다.

성벽 위에는 각 길드에서 차출한 플레이어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으며, 성벽 너머에도 수천 명의 플레이어들의 기척이 풍겨 나왔다.

다만, 두 가지 특이한 점 또한 존재했다.

하나는 성벽 너머에선 플레이어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일반인들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하나는 그렇게 세워진 성벽에 ‘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그것은 성벽 너머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시청까지 걸어오는 와중, 제로 일행은 단 한 명의 일반인도 마주하지 못했다.

단순히 만나지 못한 것도 아닌, 그 기척마저 느끼지 못한 것이다.

“제로.”

“알고 있어.”

스로우가 다소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제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백호 또한 같은 생각을 품었는지, 그녀의 표정 또한 스로우와 마찬가지로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결계가 쳐졌을 때부터 알아봤었는데…, 이것들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쿠구구-!

조용히 중얼거리는 제로에게서 막대한 죽음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해일과도 같이 넘실거리는 죽음에 스로우와 백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러섰다.

한편, 갑작스런 거대한 죽음에 성벽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다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몇은 시청 쪽으로 달려가 갑작스런 이변에 대해 보고했으며, 나머지는 성벽 아래에서 터져 나오는 죽음의 근원지를 노려봤다.

“너, 넌-!”

나름 시야가 넓은 것일까.

궁수로 보이는 한 플레이어는 잿빛의 죽음에 가려진 제로의 모습을 확인하기 무섭게 놀라 외쳤다.

“제로다! 제로가 찾아왔다!”

“뭐? 제로라고?”

“이런 미친! 그놈이 왜 여기 있는데!”

처음 제로를 발견한 플레이어를 시작으로 나머지 또한 속속들이 제로를 발견했다.

그들은 갑작스런 제로의 등장으로 상당히 당황했다.

“당장 비상 연…!”

“그럴 필요 없어.”

제로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에 제로의 뒤에 서 있던 스로우가 움직였다.

스로우가 대지를 박차며 뛰어올라 성벽의 중간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재빨랐는지, 뒤늦게서야 쾅! 하는 폭음과 함께 스로우가 박찬 대지가 터져 사방으로 흩날렸다.

“후읍-!”

짧게 숨을 들이킨 스로우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꽉 움켜쥐어진 스로우의 주먹은 어느새 아다만티움 특유의 검은 광택을 내비쳤다.

“부서져라.”

스킬 발동, 파괴의 일격.

과거 제로가 소환했던 명왕의 손아귀를 단번에 박살 내버린 파괴의 일격이 펼쳐졌다.

스로우는 막대한 마나가 깃든 주먹을 망설임 없이 성벽에 꽂아 넣었다.

꽈앙-!

단단한 성벽과 스로우의 주먹이 부딪치자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충격이 퍼져나갔다.

성벽 위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갑작스런 진동에 당황하며 몸을 비틀거렸다.

“단단하네.”

제로의 중얼거림에, 바닥에 착지한 스로우가 ‘칫!’ 하며 혀를 찼다.

일격에 성벽을 박살 내버릴 생각이었으나, 성벽은 어느 정도 데미지를 입었을지언정 멀쩡했다.

스로우의 일격이 파고들었음에도 성벽이 끄떡없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수많은 마법사들이 성벽을 강화하기 위해 온갖 마법을 새겨놨기 때문이다.

스로우라면 어중간한 강화 마법 따위, 모조리 무시할 수 있는 강력함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어중간한’ 마법이 몇십 번을 넘어 천 번 이상 중첩된다면, 제아무리 스로우라 할 라도 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 무너트릴 순 없었다.

“여기서부턴 내가 움직일게.”

그러한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제로가 한발 앞으로 나아가 성벽 위에 손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푸확-!

제로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죽음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해일로 변한 죽음에 노출된 성벽이 점차 녹슬기 시작하다,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며 무너졌다.

제아무리 수천 개의 강화 마법이 중첩되었다 한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게 평등했다.

성벽 위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단순히 건드린 것만으로 성벽을 무너트리는 제로에 경악 어린 표정을 내비쳤다.

“괴, 괴물…!”

“마스터는 아직이야?”

“곧 있으면 도착하신다고 하…!”

“이미 도착했어.”

당황하며 외치는 플레이어들 사이로 한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양 손에 칠흑의 건틀렛을 끼고 있으며, 제로가 걸친 죽음의 옷자락과 비슷한 외형의 로브를 걸쳤다.

마지막으로 그의 전신에선 막대한 존재감이 물씬 흘러나오고 있었다.

“역시 네놈이었냐, 루파르.”

제로는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루파르를 보며 불쾌감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포식자 루파르.

랭킹 26위의 최상위 플레이어 중 한 명이다.

그 직업은 히든 클래스 중 하나인 생명 포식자로, 700레벨을 돌파한 괴물 중 한 명이었다.

히든 클래스임과 동시에 700레벨을 돌파한 그의 강함은 당연 압도적이었다.

다만….

“어째서 독일인인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

“그러게…, 왜일까?”

제로의 물음에 루파르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랭킹 26위에, 700레벨을 뛰어넘은 플레이어인 것일까?

루파르는 주변의 다른 플레이어들과 다르게 제로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이렇다 할 공포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루파르의 반응에 제로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더 이상 농밀한 죽음은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그 대신 압도적인 존재감이 뿜어져 나와 주변의 대기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 무형의 압박감에 성벽 위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하나, 둘씩 무릎을 꿇었다.

오직 루파르만이 무형의 압박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서 있을 뿐이다.

“장난할 기분 아니야. 다시 물어볼게. 독일인인 네놈이 왜 한국에서 이따위 짓을 벌인 거지?”

“글…!”

퍼억-!

제로의 질문에 다시 한번 묘한 미소로 넘기려던 루파르의 눈앞에서 흑골이 터져나갔다.

그것은 자신을 무시하는 루파르의 태도에 제로가 날린 데스 본 스피어, 흑골의 창이 터져나간 것이다.

“워, 미리 방어해 놓길 잘했네.”

루파르는 눈앞에서 터져나간 흑골의 창에 장난스레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해? 간단하지. 단순히 한국에 놀러 왔을 뿐인데, 뜬금없이 로스트 월드가 섭종을 하질 않나, 괴물들이 튀어나오질 않나. 마지막으로 현실에서 로스트 월드의 힘을 사용할 수 있잖아? 그뿐이야.”

“그렇다면 조용히 독일로 돌아갈 것이지. 왜 이따위 짓을 한 거지?”

“흐음….”

이어진 제로의 질문에 루파르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독일로 돌아가지 ‘못’ 했을 뿐이야. 너도 알잖아? 갑자기 괴물들이 튀어나와서 항공편이고 뭐고 싸그리 마비되고. 그렇다고 자력으로 돌아가자니 여기서 독일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 줄 알…!”

퍼억-!

말을 이어나가던 루파르의 눈앞에서 다시 한번 흑골이 터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루파르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반투명한 방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 그따위 말을 변명이라고 하는 거냐?”

“그렇다면?”

쿠구구-!

루파르의 전신에서 터져 나오는 강대한 마나.

제로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죽음.

그 둘이 뒤엉키자, 사방에서 검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거대한 두 힘의 충돌에 노출된 플레이어들은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 둘씩 죽어 나갔으며.

대지는 갈라지고, 대기는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스로우와 백호 또한, 갑작스러운 거대한 힘의 충돌에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어보마. 대답 잘해야 할 거다. 네놈이 어떤 대답을 하냐에 따라 앞으로 펼쳐질 네놈의 미래가 달라지니깐.”

으쓱-!

살기등등한 제로의 말에 루파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대전에서 살아가고 있는, 140만 명의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했지?”

“음…, 글쎄? 내 직업을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

콰가강-!

말을 하던 루파르의 코앞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에 휩쓸린 루파르는 수백 미터를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제로는 그런 루파르를 향해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죽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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