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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20화 (120/200)

제120화

“이대로 그냥 가도 되는 겁니까, 형님?”

무인도에 갈 때와 마찬가지로 본 드래곤을 이용해 한국으로 귀환하던 제로는 뜬금없는 스타툰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불만인데.”

“그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적의를 드러내던 무왕과 룬이 걱정이겠지,”

제로의 되물음에 대답하려던 스타툰 말허리를 자르며, 스로우가 대신 말했다.

그런 스로우의 말이 맞다는 듯 스타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오. 여기가 로스트 월드였으면 그냥 제가 죽여버리는 거였는데.”

“아서라.”

본인 일처럼 화를 내는 스타툰에 제로가 피식 웃었다.

무왕과 룬의 태도가 삐딱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둘이 무언가 문제라도 일으킨다면….

“죽이면 그만이야.”

물론 그 둘의 강함을 생각해 본다면, 쉽사리 죽일 수는 없었다.

랭커급 유저. 특히나 무왕이나 룬처럼 100위권 이내의 유저 한 명, 한 명의 무력은 소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왕과 룬이 혼란을 야기한다면, 차라리 처리하는 편이 더욱 좋았다.

그것이….

“인류의 구원과 평화로 이어진다면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제로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십강의 마스터들과의 만남을 끝내고 돌아온 한국에는 상당히 골때리는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니깐…, 스캐빈저라는 길드가 대전을 점령했다?”

“그렇다네.”

제로의 질문에 대통령이 대답했다.

대통령 또한 갑작스런 상황에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미치겠네.”

“스캐빈저라면 그 길드 아닙니까? 머더러들로 이루어진 길드.”

“맞아.”

옆에 있던 스타툰의 말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캐빈저.

길드 랭킹은 100위권에 겨우 턱걸이로 들어가는 길드로, 그 인원수는 200명 안팎으로 알려져 있었다.

길드 규모로 보면 보잘것없는, 로스트 월드에 널리고 널린 길드다.

하지만 스캐빈저의 무서움은 길드원 전원이 머더러로 이루어 져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범죄도시 루파에 나타나지 않은 길드이기도 하지.”

과거, 제로는 머더러들을 통제하기 위해 대대적인 홍보를 때려 유저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들이 현실에서 날뛰지 못하게 목줄을 채워 뒀었는데, 그때 나타나지 않았던 유저들 중 하나가 스캐빈저였다.

미친놈들답게 무언가 사건을 일으키리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짓을 벌일 줄은 몰랐지.”

제로기 귀찮게 되었다는 듯 두개골을 긁적이며 말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존재했다.

그것은….

“그나저나 스캐빈저라고 해도 길드원은 고작 200명 안팎으로 알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대전을 점령한 거야?”

아무리 스캐빈저가 플레이어들이 모여 만들어진 길드라고 해도, 대전의 인구수는 150만 명에 육박한다.

고작 200명의 플레이어들이 점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인구수를 생각해 본다면, 대전 또한 플레이어로 각성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각성하게 된 플레이어의 숫자는 당연 스캐빈저에 속한 길드원의 숫자보다 많았다.

“그것이….”

제로의 질문에 대통령이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스캐빈저에 몇몇 길드가 협력했다고 하더군. 그 숫자가 수천 명이라 하네.”

“협력했다고?”

“그래. 아무래도 현실에서 힘을 가졌으니, 그 힘을 마음껏 사용하고 싶은 플레이어들 또한 존재하는 것이겠지.”

어이없다는 듯 되묻는 제로에 대통령이 쐐기를 박았다.

그러한 대통령의 말에 제로의 분위기가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스타툰은 불쾌감과 분노를 여실히 드러내는 제로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까요, 형님?”

“어떡하긴. 모조리 죽여 버려야지.”

혼란을 일으키는 놈들은 필요 없다.

자기 힘에 취해 날뛰는 머저리들 또한 필요 없다.

또한 고작 수천 명 정도의 플레이어가 죽는다 한들, 허상괴와의 전쟁에는 아무런 지장도 가지 않는다.

물론….

“개중에 나름 쓸만한 놈들이 있다면 망자로 되살리면 그만이야.”

아직 실험을 시작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실험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본인들이 자진해서 실험의 재료가 되어 주겠다는데, 제로가 마다할 일은 없다.

“그럼 바로 움직이는 건가?”

“바로 움직여야지.”

이번에 질문을 던진 것은 스로우였다.

그 또한 상식을 뛰어넘은 플레이어들의 행동에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네가 직접… 나서시는 건가?”

“그럼 누가 움직이는데?”

“그, 그게….”

제로가 직접 움직인다.

그 말에 대통령이 다소 당황한 표정을 내비쳤다.

무언가, 아직 숨기는 게 있는 것일까?

그러한 생각을 품으며 제로가 대통령을 바라보자, 대통령이 다시 한번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미 랭커급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움직였다네.”

“누가?”

“자네도 한번 만났던 플레이어, 야수왕 백호라네.”

야수왕 백호.

랭킹 87위의 최상위 플레이어 중 한 명.

확실히 그녀가 나섰다면 스캐빈저 따위는 한순간에 정리될 것이다.

하지만….

“뭔가 느낌이 안 좋아.”

아무리 다른 길드들이 협력해, 수천 명이 모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대전을 점령하기에는 그 숫자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대전을 점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언가 ‘숨겨진 조력자’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숨겨진 조력자는….

‘최상위 플레이어에 필적하는 강함을 가지고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제로는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 * *

청와대를 나온 제로는 망설임 없이 본 드래곤을 소환해 그 머리 위에 올라탔다.

본 드래곤 또한 최상위 몬스터 중 하나로, 로스트 월드가 서비스를 하던 시절 대다수의 유저들에게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허나 지금에 와서 본 드래곤의 위상은 편리한 탈것 그 이상에서, 그 이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말 가는 거예요?”

제로와 마찬가지로 본 드래곤의 머리 위에 올라탄 스타툰이 말했다.

그 또한 야수왕 백호라는 유저… 아니, 이제는 플레이어라 불리는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강함을 생각해 본다면, 고작 수천 명의 플레이어들 따위.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한다.

허나 마지막으로 본 드래곤의 머리 위에 올라탄 스로우는 생각이 다르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들에게 조력자가 붙어 있을 거다.”

“조력자…?”

“아무리 다수의 길드가 협력했다고 하나, 대전은 그 인구수만 150만 명에 육박하는 대도시.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어로 각성했는지 모르겠지만, 로스트 월드의 인기를 생각해본다면 못해도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플레이어로 각성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이 점령당했다는 것은….”

“그 모든 플레이어들을 찍어 누를 강력한 누군가가 있다는 소리군요.”

“그래.”

스로우의 설명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스로우는 평소에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지만, 이런 쪽으로는 또 머리가 잘 굴러갔다.

그렇게 제로는 스타툰과 스로우를 대동하며 본 드래곤을 이용해 대전으로 움직였다.

* * *

“큭! 적랑! 백랑! 흑랑! 저놈을 막아!”

크르르-!

컹컹!

크아앙!

백호의 명령에 적랑과 백랑. 그리고 흑랑이라 불린 세 마리 늑대가 움직였다.

그 셋은 백호가 테이밍한 야수형 몬스터들로 각기 250에서 300 사이의 레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어!”

스칵-!

깨개갱!

한 유저가 검을 휘두르자, 가장 먼저 달려들었던 적랑이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죽은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한계 이상의 데미지를 받았기에 역소환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레벨이 낮다고 해도, 야수왕 백호가 소환한 몬스터를 한 번에 처리한 상대 또한 만만치 않은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큭-!”

백호는 적랑이 한 방에 당하는 모습에 낮은 신음을 터트렸다.

그런 백호는 피처럼 붉은 검을 쥔 검사를 노려봤다.

“짜증 나는 새끼.”

“크핫! 확실히 야수왕 백호 님이야! 이런 상황에서 잘도 혓바닥을 굴리네?”

백호의 말에 검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동시에 몇 가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랭킹 100위권에 포함되는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마스터 레벨을 넘겼다.

그것은 백호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아무리 스스로의 강함이 약한 테이머라는 직업을 가졌다 한들.

마스터 레벨을 넘긴 이상, 어지간한 유저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백호는 400레벨조차 넘기지 못해 보이는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백호가 소환하는 몬스터의 레벨이 하나같이 300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호가 야수왕이라 불리게 된 계기인, 사신수라 불리며 강력한 보스 몬스터로 군림했던 백호를 소환하면 저들을 쓸어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랑! 흑랑! 물어뜯어 버…!”

스카가각-!

깨갱!

끼이잉….

백호가 남아 있는 몬스터, 백랑과 흑랑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그때, 검사가 움직였다.

그는 적랑을 베어 넘겼던 피의 검을 다시 한번 휘둘렀는데, 그 일격에 백랑과 흑랑마저 순식간에 역소환 되어버렸다.

백랑과 흑랑이 당한 이상, 백호가 꺼낼 수 있는 몬스터는 더 없었다.

아니, 테이밍한 몬스터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적, 백, 흑의 늑대 시리즈를 뛰어넘는 강함을 가진 몬스터는 소환이 불가능했다.

한편 백랑과 흑랑마저 베어 넘긴 플레이어는 백호의 목에 피의 칼날을 들이대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순순히 이쪽으로 넘어오…!”

“퉤.”

백호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플레이어를 향해 침을 뱉었다.

플레이어는 얼굴에 묻은 침을 슥슥 닦아내길 잠시, 돌연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검을 들어 올렸다.

“오냐, 그냥 죽어…!”

퍼억-!

플레이어가 백호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어디선가 날아온 흑골의 창이 플레이어의 검과 부딪혔다.

그에 핏빛의 검은 플레이어의 손을 떠나 뒤로 날아갔다.

동시에….

“뭐하냐?”

갑작스런 기습에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등 뒤로 제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플레이어의 머리 위로는 본 드래곤과, 그런 본 드래곤의 머리 위에 타고 있는 스타툰과 스로우가 눈을 빛냈다.

“제로-!”

플레이어는 자신의 등 뒤에 나타난 존재가 제로라는 것에 놀라 버럭 소리쳤다.

“나 맞으니깐 입 좀 닥쳐.”

우웅-!

플레이어를 향해 들어 올린 손 위로 죽음이 응집되었다.

마치 날뛰는 폭풍을 작게 축소한 것 같은 그것에 플레이어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자, 잠…!”

“잠깐은 무슨. 너 같은 놈 필요 없으니 그냥 뒤져.”

후웅-!

콰가가강!

제로는 당황하며 외치는 플레이어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와 동시에 제로의 손 위에서 웅웅거리는 죽음이 플레이어를 덮쳤다.

작은 유리구슬을 연상케 하는 그것은 플레이어와 닿기 무섭게 거대한 폭풍으로 변했다.

플레이어는 그러한 죽음의 폭풍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죽음을 맞이했다.

“그나저나 상당히 까다로운 놈이 있네.”

백호의 목숨을 위협하던 플레이어를 처리한 제로가 바닥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랭킹 87위의 백호가 고작 400도 넘지 못한 플레이어에 목숨을 위협받은 이유.

그것은 대전이 하나의 거대한 결계에 집어삼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전을 집어삼킨 결계는 시전자가 ‘동료’라고 생각하는 존재들 외의 모든 것들의 강함을 제한하는 능력을 가졌다.

그렇기에 백호가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밀려난 것이다.

제로는 그런 결계가 펼쳐진 대전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이것들이 아주 재미있는 짓을 벌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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