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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18화 (118/200)

제118화

“지금 이게 뭐 하자는 짓거리지?”

제로의 행동에 상아탑의 길드 마스터, 마도왕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는데, 제로는 그런 마도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야. 새로이 설립될 단체의 대가리는 내가 맡는다. 그게 불만이라면 힘으로 날 꺾어봐.”

푸확-!

마도왕을 향한… 아니, 실질적으로 이곳에 모여 있는 여덟 마스터들을 향한 말을 끝낸 제로의 몸에서 다시 한번 죽음이 터져 나왔다.

그 농밀하면서도 강렬한 죽음에 여덟 마스터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 막 나가는 놈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혼자서 우리 여덟을 상대하겠다는 거냐?”

이번에 말을 한 것은 무황성의 길드 마스터, 무왕이었다.

무왕은 마도왕과 마찬가지로 제로를 향한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불쾌감을 뛰어넘어 살의를 내보이며 허리춤에 매어진 검을 뽑아 쥐었다.

무왕은 ‘무인’이라는 히든 클래스를 가지고 있었다.

무인은 판타지풍 세계관인 로스트 월드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무공을 익히는 직업이다.

게임 상 그 유례는 과거 로스트 월드가 멸망하기 전, 차원이동을 통해 도착한 무인에게서 시작된다.

그런 무왕이 익힌 무공은 ‘천무심공’으로, 익히는 자를 신으로 만들어 준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십강이라 불리는 길드의 마스터들이 혀가 길다? 정 불만이면 힘으로 날 꺾어 보라니까? 왜, 아니면 쫄리…!”

스칵-!

말을 하던 제로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제로가 서 있던 자리에 한줄기 기다란 상흔이 새겨졌다.

그것은 더이상 제로의 말을 들어주지 못하겠다는 듯, 무왕이 검을 휘둘러 만든 검상이었다.

“오냐. 정 그렇게 죽고 싶으면 죽여주마.”

후웅-!

무왕이 분노어린 표정을 내비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런 무왕의 몸에선 하늘을 닮은 푸른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는데, 그것이야말로 무왕이 익힌 천무심공의 정수였다.

비록 신성력만큼 언데드에 효과적이진 않지만, 천무심공을 통해 보유하게 된 오러, ‘천상기’라는 이름을 가진 그것 또한 언데드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한편 나머지 마스터들은 무왕이 앞으로 걸어 나가자 뒤로 물러났다.

비록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제로가 ‘최강’이라 불리고 있다지만, 마스터들은 그러한 소문은 과장된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또한 스스로의 강함에 대단할 정도의 자부심을 가진 것이 마스터들이었기에, 그들은 무왕이 패배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간다.”

콰가강-!

제로를 향해 중얼거린 무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만들어진 막대한 압력이 제로의 전신을 짓눌렀다.

“이게 말로만 듣던 천왕보야?”

제로가 입을 열었다.

천왕보.

무왕이 익힌 천무심공에 속한 보법으로 따지자면 결국 스킬이었다.

천왕보는 적에게 막대한 압력을 선사해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스킬이었는데, 그 압력이 시전자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중첩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혀를 놀릴 수 있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이다.”

중첩되어 가는 압력이 최고점을 찍는 순간, 무왕은 망설임 없이 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오른손에 쥐어진 검, 천왕신검에는 천상기로 이루어진 오러 블레이드가 둘러쳐져 있었다.

“죽어라.”

콰가가각-!

순식간에 제로에게 접근한 무왕이 검을 휘둘렀다.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열 개의 참격이 만들어지는 무왕의 공격은 확실히 ‘십강의 길드 마스터다!’라고 말할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이건 뭐 하자는 건지. 고작 이 정도로 날 죽이겠다고?”

카가각-!

무왕의 공격에도 제로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으며 단순히 손가락을 튕겼다.

그에 제로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에서 흑골의 방패가 만들어지며 무왕의 공격을 튕겨냈다.

네크로노미콘을 꺼내지도 않았음에도, 무왕의 공격을 너무나도 손쉽게 막아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어진 제로의 조롱에, 무왕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놈-!”

콰가가가가-!

자신을 비웃었기 때문일지 제로를 향한 무왕의 공격이 더욱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때론 강의 묘리가 담긴 패검이 펼쳐지고.

때론 쾌의 묘리가 담긴 쾌검이 목을 향해 쏘아졌다.

때론 환의 묘리가 담긴 환검이 제로 주변의 공간을 점령했다.

더욱 강해진 무왕의 공격에 제로는 아공간에서 네크로노미콘을 꺼내 쥐었다.

그와 함께….

“간은 그만 보라니깐?”

검을 휘두르는 무왕을 향해 말하는 제로의 주변으로 다시 한번 흑골의 방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왕의 공격은 아까와 달리, 더욱 강력해졌지만 다시 한번 나타난 흑골의 방패 또한 네크로노미콘의 영향으로 더욱 단단해졌다.

그로 인해 무왕의 공격은 또 한 번 허무하게 막혀 버렸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머지 마스터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제로의 강함이 예상을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제로의 일방적인 방어와, 무왕의 일방적인 공격이 진행되고 있을 때.

가만히 지켜만 보던 마도왕이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세계수의 가지로 만들어진 스태프를 쥐며 마법을 발동했다.

스태프 끝에 달려 있는 보석에 샛노란 빛이 감도는 순간, 제로를 노리며 하늘에서 한줄기 낙뢰가 떨어졌다.

콰가강-!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제로가 서 있던 바닥이 검은 그을음이 생겼다.

제로는 낙뢰가 떨어지기 직전, 더미 블링크를 통해 몸을 빼낸 지 오래였으며.

갑작스런 낙뢰에 무왕의 고개가 홱! 하며 돌아갔다.

“끼어들지 마라!”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군. 제로는 강하다.”

분노어린 무왕의 외침에 마도왕이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마도왕의 말에 몇몇 마스터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새로 설립될 단체의 리더를 누가 하는가는 나중에 정하면 된다. 지금은….”

“저 짜증 나는 놈을 죽여야겠어.”

마도왕의 뒷말을 룬이 이으며 활을 들어 올렸다.

룬의 활 또한 마도왕의 스태프와 마찬가지로 세계수의 가지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히든 클래스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활에 걸쳐진 화살에는 물의 정령력이 깃들어 있었다.

“난 전부 덤벼도 상관없는데?”

제로는 아직까지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나머지 마스터들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말에 가만히 있던 마스터들의 표정이 미미하게나마 일그러졌으며….

“지랄.”

룬은 제로를 향해 물의 정령력이 깃든 화살을 쏘아댔다.

투두두두-!

룬의 공격은 마치 개틀링건을 연상시키는 속사였다.

룬은 1초에 수십 개의 화살을 쏘아댔는데, 어떤 것에는 물의 정령력이, 어떤 것은 불의 정령력 등의 4대 속성의 정령력이 깃들었다. 무수하게 많은 화살 덕분에 푸른 하늘에 거대한 그림자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렇게 허공을 격하며 쏘아진 화살은….

콰가가가각-!

단 한 점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제로에게 꽂혔다.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제로의 앞에 나타난 흑골의 방패에 꽂혔다.

허나 흑골의 방패가 아무리 네크로노미콘의 영향으로 강화되었다고 한들, 정령력이 깃든 수백 발의 화살을 온전히 막아낼 순 없는 법.

룬이 쏘아댄 화살이 박히면 박힐수록 흑골의 방패는 금이 가다 못해 박살이 나버렸다.

허공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흑골의 방패의 파편 사이를 파고든 화살은 제로의 몸에 꽂히지 않았으나, 스쳐 지나가며 다소의 데미지를 입혔다.

“흠.”

제로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화살에 깃들어 있는 정령력 덕분일까.

단순히 스쳐 지나갔음에도 제로의 전신에선 잿빛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에 제로의 공허한 눈구멍에 자리 잡은 사신의 흉안이 룬을 응시하는 순간….

“어딜 보는 거지?”

콰가강-!

바로 옆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제로는 그러한 폭음과 함께 전신을 강타하는 충격에 수십 미터를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흠, 얕았나.”

제로를 튕겨낸 중년인은 천둥 길드의 마스터, 썬더였다.

이름은 단순하고 직관적인, 어떻게 보면 유치하다 할 수 있는 느낌을 준다.

허나 그가 보유한 무력은 이름처럼 유치하지 않았다.

썬더가 양손에 낀 건틀렛을 쾅쾅! 부딪히자 사방으로 푸른 스파크가 번뜩였다.

“저번에 우리 길드원이 신세좀 졌더군.”

“저번?”

플라이 마법을 통해 몸을 일으킨 제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거 로스트 월드에서 천둥 길드원과 접점이 있었던가?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제로는 천둥 길드와의 접점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에 썬더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제국에서 잿빛 마탑에게 척살령을 내렸을 때. 그때 우리 길드원들을 만나지 않았나?”

“아! 그때!”

썬더의 말에, 제로는 그제야 기억났다는 듯 손뼉을 마주쳤다.

진심으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제로의 행동에, 썬더의 표정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미안한데 난 버러지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아.”

파지직-!

쾅!

말을 하던 제로가 더미 블링크를 통해 몸을 빼냈다.

그와 동시에 제로가 서 있던 자리가 터져나가며 썬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썬더의 육체는 푸른 뇌전에 휩싸여 있었으며, 제로를 향하는 두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죽여버린다.”

파직!

육체에 둘린 뇌전이 파지직하며 명멸하는 순간, 썬더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썬더는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제로에게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에 제로는….

“속도는 쓸만하네.”

스킬 발동, 데스 본 실드.

쩌엉-!

콰가강!

푸른 뇌전이 깃든 썬더의 주먹이 흑골의 방패와 충돌했다.

그 둘의 충돌에 사방으로 거친 충격이 퍼져나갔으며, 흑골의 방패는 단 일격에 산산이 부서지며 사라졌다.

진심을 다 하지 않았다 한들, 룬이 쏘아댄 수백 발의 화살도 막아냈던 방패가 썬더의 단 일격에 부서져 버린 것이다.

흩날리는 파편 너머에 있던 제로는 막강한 위력에 미소를 내비치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 정도는 되야 허상괴 놈들을 상대할 수 있지.”

“뭐라 중얼거리는 거냐!”

콰가강-!

여전히 자신을 무시하는 듯 행동하는 제로에 썬더가 버럭 외치며 주먹을 내뻗었다.

그의 주먹이 한 번,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무인도 곳곳이 터져나갔다.

그럼에도 썬더의 공격은 제로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를 잊으면 안 되지.”

푸부북-!

썬더의 공격을 피하는 제로의 머리 위로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룬이 쏘아댄 화살로, 하나하나에 막강한 정령력이 깃들어 있다.

그 외에도 마도왕의 마법이. 은림 길드 마스터의 주술이. 무왕의 검이 제로의 목숨을 노렸다.

허나 제로는 십강의 마스터들이 행하는 합공에도 다소의 여유를 내비쳤다.

그러한 제로의 시선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마스터들을 향했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나머지 마스터의 숫자는 셋.

한 명은 자애의 성자, 신성.

한 명은 헬 나이트 군림.

한 명은 블러드 마스터 블러드였다.

개중에서 신성을 제외한 군림과 블러드는 다섯 마스터들의 합공에도 여유를 내비치는 제로를 향해 ‘적의’가 아닌, ‘감탄’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셋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뭣들 하는 거야! 당장 거들지 못해?”

연신 화살을 쏘아대는 룬이 그들을 향해 버럭 외쳤다.

그런 룬의 외침에 블러드 문의 길드 마스터이자, 블러드 메이지라는 히든 클래스를 가지고.

종족이 뱀파이어인 이종족 플레이어, 블러드 마스터 블러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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