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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15화 (115/200)

제115화

“괜찮냐?”

“고, 고맙네.”

제로의 질문에, 무너지는 뼈의 잔해 속에서 기어 나온 미국의 대통령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만일 제로가 와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미치광이의 손에 의해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끝나셨습니까?”

제로와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밖으로 걸어 나오자, 남아 있던 언데드를 처리한 스타툰이 입을 열었다.

스타툰은 처음 보는 미국 대통령에, 저도 모르게 힐끗힐끗 그를 쳐다봤다.

그러한 스타툰의 곁에 서 있던 스로우는 미국 대통령 따윈 관심에도 없다는 듯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그나저나… 저놈들은 누구야?”

제로가 스타툰의 뒤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시선에는 십수 명의 플레이어들이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그들은 백악관이 한 미치광이 플레이어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것을 알고 자국의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미국의 플레이어들이었다.

다만, 호기롭게 찾아왔지만 백악관은 이미 상황이 정리되어 있었다.

특히나 그 중심에 제로가 있다는 것에, 그들은 자국의 대통령조차 잊어버리고 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제로야.

실물은 처음 봤어.

근데 아무리 언데드 종족이라지만 저건 좀 심한 거 아닐까?

물이나 음식도 못 먹을 것 같은데.

아니, 오히려 좋을지도?

로스트 월드의 번역 기능이 없기에, 그들이 하는 말은 모조리 영어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로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딱히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들이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생전에 배워뒀던 영어가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초월자가 된 영향인 건지.’

다만, 제로는 어째서 자신에게 언어의 장벽이 통하지 않는것에 대한 고민을 길게 이어가지 않았다.

들리면 들리는 대로, 들리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대로 상관없었다.

그보다는….

“혹시 여기에 헌터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 있어?”

제로의 질문에 미국 플레이어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당황했다.

그들 또한 제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제로의 입에서 한국어가 튀어나올 것임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뭔가 제로가 가진 스킬의 영향인가?

그들은 한국어로 들리는 제로의 말이 내포한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에 한껏 당황하고 있었다.

다만, 그런 당황도 잠시.

‘없어?’라고 물어보는 제로의 질문에 한 플레이어가 손을 들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내가 헌터 길드에 소속되어 있긴 한데….”

“위치는?”

“2군 3파티의 파티장인데….”

미국 플레이어의 대답에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헌터 길드에 소속된 상대의 위치가 애매했다.

헌터 길드의 길드 마스터 룬은 미국에 적을 둔 유저였다.

그렇기에 헌터 길드에 속해 있는 유저들의 대다수가 미국 국적이다.

제로는 그 점을 이용해, 헌터 길드를 미국의 플레이어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다만….

‘2군이라면 레벨은 350 정도. 3파티의 파티장인 걸 감안하면 380에서 390 정도 되려나.’

십강을 포함한, 몇몇 대형 길드는 ‘하나의 길드’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로스트 월드를 플레이했던 유저의 숫자는 수억 명.

다만, 하나의 길드가 수용할 수 있는 유저의 숫자는 일만 명에 불과했다.

아무리 길드 등급이 높아도 단 일만 명밖에 가입할 수 없기에, 대형 길드들은 하부 길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체제가 굳고 굳어서 만들어진 것이 ‘군’이라 불리는 시스템이었다.

그런 시스템에서 십강 중 하나인 헌터 길드의 2군에 속해 있는 눈앞의 플레이어는 확실히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룬에게 바로 연락을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야.’

십강의 길드 마스터들 중, 제로가 연락처를 가지고 있는 유저는 신성이 유일했다.

애초에 나머지 십강의 길드 마스터들과이 접점 또한 몇 없기에, 연락처를 가지고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제로가 어떻게 하면 룬에게 연락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였다.

“안녕? 현실에서 만나는 건 또 처음이네?”

어색하게 서 있는 플레이어들의 등 뒤로 두 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그림자처럼 일렁이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어쌔신이었으며, 한 명은 정령의 기운을 물씬 풍기는 궁수였다.

그러한 둘의 등장에 미국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으며, 제로는 ‘잘 됐네’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살았나 보지? 헌터 길드의 마스터, 룬.”

“딱히 가까운 곳에 살지는 않았어. 다만 내 동생의 능력이 유용했을 뿐이지.”

제로의 말에 룬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룬의 뒤에 서 있는 유저는 쉐도우 마스터, 쉐도우였다.

확실히 그의 종족적 특성과 직업의 능력을 생각해 본다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단시간에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편 룬은 제로의 뒤에 서 있는 자국의 대통령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이거 대통령께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겠네.”

특유의 유들유들한 미소를 내비치는 룬은 얼핏 보면 쌩 양아치처럼 보일 수 있었다.

허나 특유의 그것은 스스로가 ‘강자’라는 압도적인 자신감에서 나타난 것이며, 실제로도 그 어떤 플레이어들보다 강력했기에 누구 하나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한편 미국의 대통령은 자신의 나라에 제로가 말했던, 십강이라 불리는 강력한 길드를 이끄는 유저.

특히나 그 강함이 상식을 초월했다 여겨지는 유저… 아니, 플레이어가 있다는 것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미국의 대통령은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었다.

눈앞의, 스스로를 룬이라 칭하는 플레이어가 대가리로 앉아있는 헌터 길드처럼 또 하나의 십강이 자신의 나라에 있다면?

그렇다면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은 그 어떤 나라보다 드높아질 것이며, 제아무리 제로라 하더라도….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미국 대통령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행복회로를 태우고 있을 때, 제로가 입을 열었다.

제로의 공허한 눈구멍에 자리 잡은 사신의 흉안은 데굴데굴 구르며 미국 대통령을 응시했다.

미국 대통령은 그런 사신의 흉안과 눈이 마주치자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주춤거렸다.

“아, 아무것도 아닐세.”

손을 휘저으며 말하는 미국 대통령에 제로는 룬으로 시선을 옮겼다.

룬 또한 사신의 흉안과 마주하는 순간 오싹함을 느꼈으나, 미국 대통령처럼 추태를 부리지는 않았다.

이러나 저러나 해도 룬은 십강의 마스터 중 하나이며, 본인 스스로조차 상당한 강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뒷일은 너에게 맡겨도 되는 거겠지?”

“물론.”

제로의 물음에 룬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내비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룬의 모습에 제로는 말없이 본 드래곤을 소환해, 그 머리 위에 올라탔다.

“괜한 짓은 하지 말고. 우선은 혼란을 잠재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펄럭-!

룬의 대답을 끝으로 본 드래곤이 뼈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룬은 점차 멀어지다 못해 시야에서 사라지는 본 드래곤. 아니, 정확히는 그러한 본 드래곤의 머리 위에 올라타 있는 제로를 말없이 응시했다.

* * *

“그놈에게 맡겨도 괜찮을까요? 형님?”

끄덕끄덕.

바다 위를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본 드래곤의 머리 위에 올라타 있던 스타툰이 입을 열었다.

그런 스타툰의 물음에 스로우 또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다수의 유저들은 모르겠지만, 스타툰이나 스로우 같은 최상위 유저들은 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십강 중 하나인 헌터 길드의 길드 마스터.

최상위 랭커 중 한 명으로, 겉으로 멀쩡한 척 연기하는 싸이코패스. 그것이 최상위 유저들의 룬에 대한 인식이었다.

룬의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직업 ‘정령의 사냥꾼’을 얻을 때의 이야기였다.

회귀 전에는 제로의 연인이 가지고 있던 직업으로, 룬이 그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질 낮은 공작 때문이었다.

처음 정령의 사냥꾼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유저는 엘프를 종족으로 삼은 이종족 플레이어였다.

허나 그런 정령의 사냥꾼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유저는 현재 평범한 궁수 유저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정령의 사냥꾼에 관심을 가진 룬이 같잖은 이유를 내걸고 척살령을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히든 클래스를 가지고 있다지만, 무려 십강에서 내건 척살령을 버틸 수는 없었다.

게다가 룬은 그 유저의 목에 현상금까지 내걸었는데, 그로 인해 처음 정령의 사냥꾼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유저는 수십만 명의 유저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결국 그는 캐릭터를 삭제하게 되었고, 공석이 되어버린 정령의 사냥꾼이라는 직업을 룬이 날름 먹어 치운 것이다.

십강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이용해, 한 유저를 핍박하고 결국 캐릭터를 삭제하게까지 했으며. 그런 유저가 가지고 있던 직업을 낼름 먹어 치워 버린 룬의 행동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옳았다.

하지만 룬은 헌터 길드의 길드 마스터라는 위치를 이용해 사실을 은폐시켰다.

특히나 룬은 현실에서도 대기업 회장의 손자였기에 그러한 행위는 더욱 쉬웠다.

그렇기에 평범한 유저들은 단순히 룬이 운이 좋아 히든 클래스로 전직했다고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스타툰과 스로우는 룬에 대해 딱히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

제로는 그러한 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 지금 당장 미국의 혼란을 잠재울 만한 세력은 헌터 길드가 유일하니깐.”

그런 제로의 말에도 스타툰과 스로우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물론 제로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로스트 월드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즐기는 만큼, 길드의 숫자 또한 상당히 많았다.

단순히 친구들끼리 모여 만들어진 소규모 길드부터. 수백, 수천 명이 모여 만들어진 길드까지.

수없이 많은 길드가 범람했음에도 십강의 위세는 차원이 다르다.

만일 미국에 헌터 길드가 없었다면, 수백 개의 길드가 제각기 날뛰며 이 혼란을 더욱 가증시킬 가능성 또한 드높았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아무리 그래도 룬은 쫌….”

룬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순 없는 스타툰과 스로우다.

그것은 제로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로 또한 미국을 온전히 룬과 헌터 길드에게 맡길 생각은 없었다.

특히나 만일….

“룬 그놈이 ‘선’을 넘으면 내가 처리할 거야.”

선을 넘는다.

만일 룬이 허상괴들과의 전쟁에서 트롤 짓을 하거나, 제멋대로 행동해 인류의 구원을 방해하기라도 한다면 죽여버릴 것이다.

허상괴와의 전쟁에서 한 명, 한 명의 강자들이 중요하다는 것은 제로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강자 때문에 도리어 인류의 승리가 흔들리고,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제로와 스타툰. 스로우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을 때.

본 드래곤은 여전히 바다를 가로지르며 대한민국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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