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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14화 (114/200)

제114화

“육체를 내놔!”

버럭 외친 센 다이고로부터 막대한 양의 사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넘실거리는 해일과도 같이 변하며 사방을 휩쓸었는데, 사마력에 닿은 모든 것이 부식되고 녹아 사라지기 시작했다.

제로는 미친 듯이 사마력을 뿜어대는 센 다이고를 향해 앞으로 걸어 나가며 입을 열었다.

“너, 정말 네크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게 맞냐?”

센 다이고를 향하는 제로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묻어나왔다.

아무리 로스트 월드가 게임과도 같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지만, 이런 정신분열인지 다중인격인지 모를 놈팽이마저 네크로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만들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제로가 한 발자국씩 내디디며 앞으로 걸어 나가자. 센 다이고의 몸에서 흘러넘치는 사마력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하나의 길을 만들어냈다.

제로는 그 길을 따라 단순히 걸어 나갈 뿐이었는데, 그 모습에 미쳐버린 눈을 하고 있는 센 다이고가 움찔! 몸을 떨며 물러났다.

제아무리 미치고, 육체가 언데드의 그것과 같이 변했다 해도 ‘진실된 죽음’이 주는 공포심은 떨쳐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센 다이고는….

“으아아아아-!”

콰가가강-!

제로를 공격하는 것으로 정신을 옥죄이는 공포심을 떨쳐내려 했다.

다만, 그러한 공격에는 제로의 영혼을 밀어내고 그 육신을 차지하려는 속마음 또한 반영되어 있었다.

센 다이고의 앞으로 다수의 스켈레톤 나이트가 몸을 일으켰다.

그것들은 제로를 향해 달려들며, 손에 쥐고 있는 뼈로 이루어진 무기를 휘둘렀다.

“그래, 네크로맨서라면 언데드로 승부를 봐야지.”

제로는 사방에서 다가오는 스켈레톤 나이트들의 공격에 음음!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네크로노미콘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카가가각-!

제로의 등 뒤로 한 자루 묵검이 나타나며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휘두르는 검을 모조리 튕겨냈다.

[괜찮으십니까? 왕이시여.]

“난 괜찮아.”

한 번의 휘두름으로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 나이트를 조각내버린 데스 나이트 킹이 제로를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제로는 그런 데스 나이트 킹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을 더럽히는 저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려.”

[왕의 명령을 따릅니다.]

콰강-!

제로에게서 명령이 떨어지자, 데스 나이트 킹이 대답하며 움직였다.

그것이 한 번,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사방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센 다이고가 소환한 언데드들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데스 나이트? 저거 데스 나이트지?”

“근데 좀 다른데?”

“상관없어!”

“저것도 내가 가질래! 내가 가질 거야!”

유아퇴행이라도 하는 것일까?

마치 어린아이가 땡깡을 부리듯 말하는 센 다이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센 다이고는 허공에서 한 자루 스태프를 꺼내 쥐었다.

그것은 인간의 뼈가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끔찍한 것은 그 스태프에 수천, 수만의 원령들이 달라붙어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스태프를 쥔 센 다이고의 힘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모조리 내 꺼야!”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센 다이고가 스태프를 내뻗으며 마법을 발동했다.

스태프의 끝에 자리 잡은 보석이 음울한 잿빛을 발하는 순간, 죽음의 탁류가 뻗어 나와 데스 아니트 킹을 덮쳤다.

그것은 제로가 애용하던 공격 수단 중 하나인 데스 웨이브였으나, 그 위력은 제로의 것과 비교해 태양 앞의 반딧불이에 불과했다.

고작 그 정도 위력의 공격으로는…

“데스 나이트 킹에게 흠집 하나 낼 수 없어.”

제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죽음의 탁류에 휘말린 데스 나이트 킹이 모습을 드러냈다.

데스 나이트 킹은 오른손에 쥔 묵검을 휘둘러 데스 웨이브를 갈라버렸으며, 그렇게 갈라진 틈을 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왕의 눈과 심기를 어지럽히는 어리석은 존재여.]

[지금 당장 사라져라.]

후웅-!

콰가가가강!

순식간에 센 다이고 앞에 도착한 데스 나이트 킹이 묵검을 휘두르자, 데스 블레이드가 터져 나왔다.

반월형의 형태를 한 데스 블레이드는 센 다이고를 이등분하는 것을 넘어, 그 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잘라버렸다.

후두둑.

데스 나이트 킹의 일격에 허리가 잘려 나간 센 다이고의 몸뚱어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리석…!]

쾅-!

바닥을 나뒹구는 센 다이고를 바라보며 입을 열던 데스 나이트 킹이 돌연 뒤로 튕겨 나갔다.

그것은 복부에서 일어난 갑작스런 폭발 때문이었는데, 그렇게 데스 나이트 킹이 뒤로 튕겨 나가기 무섭게….

“이히히히. 난 죽지 않아.”

“그 누구도 날 죽일 수 없어.”

이등분된 센 다이고의 육체가 두둥실 떠오르며 허공에서 합체했다.

센 다이고는 잘려 나간 뼈에 사마력을 집중했는데, 그러한 사마력에 의해 상처가 순식간에 재생되어 사라졌다.

[죄송… 합니다, 저의 왕이시여.]

한편 센 다이고의 기습에 튕져 나간 데스 나이트 킹이 입을 열었다.

그러한 데스 나이트 킹의 복부는 강렬한 폭발에 날아가 있었다.

“일단 돌아가.”

제로는 부상을 입은 데스 나이트 킹을 역소환하며 센 다이고를 바라봤다.

제로의 시선이 닿은 센 다이고는 더이상 인간이었을 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살점과 피부, 근육과 장기 따위는 부식되고 녹아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뼈로 이루어진 두개골의 미간에는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그 모습은 얼핏 보면 제로와 비슷했으나, 다른 점은 뼈의 색이다.

제로의 육신은 심연을 품은 듯한 검은 뼈로 이루어져 있지만, 눈앞의 센 다이고는 탁한 흰색의 뼈로 이루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센 다이고의 모습은 마치….

“리치.”

리치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센 다이고가 품은, 제로에 대한 집착과 불멸에 대한 집착이 한계를 뛰어넘은 원동력이 되어 준 것일까?

센 다이고는 더이상 스켈레톤 세이지가 아닌, 온전한 리치가 되었다.

다만….

“이히히히-!”

리치가 되었음에도 그 불안정한 정신은 여전했는지 센 다이고의 턱뼈가 덜그럭거릴 때마다 기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함은 쓸만한데….”

제로는 그런 센 다이고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지만, 데스 나이트 킹의 방어를 부숴버린 위력이다.

그것이 단발성으로 그치냐의 문제는 따로 치더라도, 단순 위력만 보자면 어지간한 랭커급 유저의 강함은 뛰어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정신이 불안정한 게 걸린단 말이지.”

정신의 불안정성.

이것이 리치가 된 센 다이고를 사역하고 싶다는 제로의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무리 노예의 낙인을 새긴다 한들, 저런 정신 상태라면 온전히 써먹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정신을 파괴해 단순한 인형으로 만들자니, 그렇게 되면 전력의 30% 정도가 깎여 나가기에 득이 되지 못한다.

결국….

“처리해야 한다는 거네.”

제로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사신의 흉안이 데굴데굴 구르며 어느 한 곳을 응시했는데, 그런 사신의 흉안에는 뼈로 이루어진 사슬에 구속되어 있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 내비쳐졌다.

“재도 그리 길게 버티지는 못해 보이니… 후딱 움직여야겠네.”

스윽.

콰가강-!

중얼거린 제로가 한 발 내딛기 무섭게, 발 밑으로 죽음이 폭발했다.

그 폭발력을 통해 가속도를 얻은 제로의 육체가 쭉 늘어나며 한 줄기 선이 되어 센 다이고를 향해 나아갔다.

연신 기괴한 웃음을 내뱉고 있던 센 다이고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제로에….

“난 불멸을 완성했어!”

“난 불멸의 존재야!”

“넌 더이상 필요 없어!”

“그러니 사라져!”

스킬 발동, 본 캐논.

후웅-!

콰앙!

센 다이고가 쥔 스태프의 위로 뼈의 탄환이 만들어지며 쏘아졌다.

그것은 한 줄기 선이 되어 움직이는 제로의 안면을 강타했는데, 그에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본 캐논과 충돌해 피어오른 흙먼지에 제로의 신형이 파묻혔는데, 센 다이고는 그런 흙먼지를 바라보며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불로불사 아니, 불멸의 존재가 된 자신은 완벽한 존재이다.

그 강함 또한 과거와 비교해봐도 한없이 강해져 있다.

그런 자신의 일격에 얻어맞고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생각이 센 다이고의 뇌리에 강하게 틀어박혀 있었다.

하지만….

“뭐하냐?”

흠칫-!

등 뒤에서 들려오는 제로의 목소리에 센 다이고가 몸을 떨었다.

“어떻…!”

“어떻게고 자시고, 일단 한 대 맞자.”

후웅-!

콰직!

“끄아아아아악-!”

제로가 휘두른 거대한 대검, 망자의 폭거에 등을 얻어맞은 센 다이고의 몸뚱어리가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런 센 다이고의 입에선 고통스런 비명이 연신 터져 나왔다.

“어때? 화끈하지?”

제로는 비명을 내지르며 발광하는 센 다이고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내비쳤다.

제로가 휘두르는 망자의 폭거는 평범한 대검이 아니다.

제로가 품고 있는 죽음이 ‘대검’이라는 형태로 응축된 것이다.

그러한 망자의 폭거에 얻어맞는다면, 제아무리 고통을 모르는 언데드라 할지라도 끔찍한 고통에 휩싸이게 된다.

특히나 그것이 생명을 품고 있는 존재라면 더욱 위험해지는데, 얻어맞은 부위를 통해 흘러 들어간 죽음이 그 생명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로스트 월드에서는 평범한 대검에 불과했던 망자의 폭거가 이러한 힘을 갖게 된 이유는 제로 또한 정확히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었다.

그것은 현실, 지구가 로스트 월드 처럼 ‘게임’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스템의 구속이 없는 지금, 제로가 다루는 죽음은 말 그대로 죽음이다. 로스트 월드 처럼 단순한 속성에 치우쳐진 그릇된 힘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기에….

“네가 한계를 뛰어넘어 한순간에 리치가 될 수 있었던 거겠지.”

터벅, 터벅.

발광하는 센 다이고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걸어 나가는 제로가 입을 열었다.

한편 센 다이고는 가까스로 고통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아아아! 사라지란 말이다!”

콰가가강-!

센 다이고가 공포에 찬 괴성을 내지르며 스태프를 내뻗었다.

제로를 가리키며 내뻗어진 스태프의 끝에선 다종다양한 마법이 발현되었다.

때론 뼈의 창과 화살, 탄환 따위가 만들어져 제로의 전신을 두드렸다.

때론 각종 저주가 뿜어져 나와 제로의 육체와 정신을 뒤흔들었다.

때론 끔찍한 독이 퍼져나가 제로를 중심으로 일정 공간을 뒤덮어 버렸다.

주변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제로를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발현되는 마법은 그만큼 센 다이고가 얼마나 큰 공포를 품고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하지만….

“소용없어.”

푸확-!

어디선가 불어닥친 광풍이, 각종 마법에 의해 피어오른 흙먼지를 걷어냈다.

그 속에서 제로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런 제로의 육체에는 이렇다 할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진심을, 그리고 전력을 다한 센 다이고의 공격은 제로에게 이렇다 할 데미지를 주지 못한 것이다.

그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센 다이고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조차 잊어버리며 제로를 멍하니 바라봤다.

“조금 더 즐기고 싶지만… 슬슬 끝내야겠다.”

스윽.

툭.

센 다이고의 앞에 멈춰 선 제로가 손가락을 내뻗었다.

짙은 죽음을 품은 제로의 손가락이 센 다이고의 미간. 정확히는 그러한 미간에 박혀 있는 보석에 닿는 순간….

와르르-!

센 다이고가 보석, 라이프 베슬에 담겨 있는 모든 생명을 잃어버리며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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