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형님은 그놈이 누군지 아십니까?”
본 드래곤의 위에 올라타, 바다를 건너가던 와중 스타툰이 질문을 던졌다.
스로우 또한 그것이 궁금했다는 듯, 슬며시 제로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제로는 그런 둘의 궁금증 어린 시선에 입을 열었다.
“알다마다.”
“누굽니까?”
“쓰레기 중의 쓰레기.”
백악관을 점령한 ‘놈’을 떠올리며 말하는 제로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와 더불에 제로의 몸에서 미약한 살기가 흘러나왔는데, 진득하게 달라붙으며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드는 살기에 스타툰과 스로우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놈 덕분에 잿빛 마탑을 온전히 가져오려는 계획이 틀어졌어. 뭐, 결과적으론 잿빛 마탑 소속 네크로맨서들의 충성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만일 놈만 아니었다면 더욱 온전한. 지금은 사라져버린 잿빛 마탑의 구 탑주인 네크로마스터 베드로 또한 수하로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게 무슨…?”
스타툰이 제로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런 스타툰의 질문에 제로가 입을 열었다.
“놈의 직업은 네크로맨서야. 아니, 마스터 레벨은 넘겼으니 네크로마스터가 되었겠지.”
“네크로… 맨서….”
“그래서 놈이 스스로를 죽음의 왕이라 칭한 건가?”
스타툰은 백악관을 점령한 플레이어의 직업이 네크로맨서라는 것에 놀람을 표출했으며, 스로우는 직업이 네크로맨서이기에 자신을 죽음의 왕이라 칭하는 놈의 단순함에 놀람을 표출해다.
“맞아. 그리고 잿빛 마탑이 황궁에 허무하게 박살이 나버린 이유이기도 한 놈팽이지.”
그 말을 끝으로 제로는 입을 다물었다.
스타툰과 스로우는 제로를 감싼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것에 더이상의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한편, 그렇게 무거운 침묵 속에 어느 정도 움직였을까.
구름 위를 날아가고 있던 본 드래곤이 돌연 움직임을 멈췄으며, 앉아있던 제로가 몸을 일으켰다.
“도착했다.”
제로의 한마디에 스타툰과 스로우가 발밑을 내려다봤다.
구름이 짙게 끼어 있으나, 그 정도로는 스타툰과 스로우의 시야를 가릴 수 없다.
그렇게 구름 너머로 내려다 본 백악관의 모습은….
“마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마왕의 성이네요.”
“놈의 직업을 생각해보면 죽음의 성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하겠지.”
마왕의 성이라 말한 스타툰.
죽음의 성이라 말하는 스로우.
그 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발밑에 펼쳐진 백악관은 더이상 백악관이라 부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구를 침공한 허상괴를 어찌어찌 막아냈으나, 그 여파로 백악관 곳곳은 부서져 있었다.
다만, 고작 그것만으로 스타툰과 스로우가 그러한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들이 마왕의 성이니, 죽음의 성이니 하는 말을 내뱉은 이유는….
“로스트 월드였다면 몰라도, 현실에서 저런 모습을 보니 끔찍하네요.”
“동감이다. 저런 짓을 아무렇지 않게 벌일 수 있다는 것부터가 놈의 사상과 사고가 뒤틀려 있다는 증거겠지.”
그러한 말을 내뱉은 둘의 눈에 들어선 것은 그 숫자조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시체들이었다.
신체 이곳저곳이 잘려 나간 시체가 바닥에 널브러지고, 머리가 터져나간 시체가 나무에 장식처럼 매달려 있다.
끔찍한 모습의 시체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언데드들이 백악관 내부를 활보하고 있었으며.
그 외에도 백악관은 사기로 이루어진 짙은 안개가 음산하게 깔려 있었다.
한편 제로는 그런 둘을 향해….
“정답.”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상과 사고가 뒤틀려 있다.
맞는 말이었다.
잿빛 마탑에서 놈에게 달라붙어 있던 칭호는 시체 애호가였다.
인간의 시체든, 몬스터의 시체든 가리지 않고 수집한 놈은 그것들을 장난감처럼 다루었다.
어떨 때는 인간의 몸뚱어리에 몬스터의 신체를 결합하고, 어떨 때는 반대로 몬스터의 몸뚱어리에 인간의 신체를 결합했다.
그럼에도 놈이 잿빛 마탑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유저라는 특수성에서 기인한 빠른 성장 덕분이었다.
만일 레벨이 낮았다면, 놈의 그러한 취미 생활은 제아무리 잿빛 마탑이라 하더라도 허용하지 않았으리라.
“간다. 준비해.”
끄덕.
제로의 말에 스타툰과 스로우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본 드래곤이 백악관을 향해 급하강을 시작했다.
귓가를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날카로운 무언가로 점차 변해가는 순간….
펄럭-!
본 드래곤이 뼈로 만들어진 날개를 펄럭이며 대지에 내려앉았다.
제로와 스타툰, 스로우는 본 드래곤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는데, 백악관 내부를 활보하고 있던 언데드들 그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침입자를 습격하라는 무언가의 명령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침입자를 배제하기 위함이었던걸까.
무엇이 되었든, 수천의 언데드가 달라붙는 것은 상당히 귀찮고 위험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특히나 그러한 언데드가 네크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센 다이고의 개조를 거쳐 더욱 강해진 언데드라면 말이다.
하지만….
“형님, 이것들 약한데요?”
스타툰이 목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좀비를 조각내며 말했다.
스타툰의 단검이 한 번씩 반짝이며 흐릿해질 때마다 수십 마리의 언데드가 썰려 나갔다.
스로우는 골렘 특유의 단단한 몸뚱어리를 이용해 언데드의 공격을 받아내고, 역으로 그 몸뚱어리를 터트리는 방식으로 정리해 나갔다.
애초에 그 둘은 랭커급 유저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랭크되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제아무리 센 다이고의 개조를 거친 특수한 언데드라 할지라도, 이곳에 있는 언데드는 하나같이 좀비나 스켈레톤 워리어, 구울 따위의 하급에서 중급 사이의 언데드에 불과하다.
그 정도의 언데드로는 제로는 말할 것도 없고 스타툰이나 스로우조차 건드릴 수 없었다.
“알아서 정리하고 있어.”
“넵!”
끄덕.
제로의 말에 스타툰이 대답하며 스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로는 그 둘을 내버려두며 백악관 건물 내부로 걸어 들어갔는데, 그렇게 제로가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언데드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나름 지배권을 공고히 확립해 두었기 때문일까?
언데드의 지배권이 제로에게 넘어가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제로는 죽음 그 자체인 오버 로드다.
자신들과는 격이 다른 죽음을 품고 있는 제로를 향해 달려들 멍청한 언데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제로는 백악관 건물 내부로 들어가며….
“지켜보고 있는 것 다 알거든? 알아서 튀어나올래? 아니면 처맞고 끌려 나올래?”
-히히히히.
허공을 응시하며 말하는 제로의 목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늙은 노인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기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제로의 앞으로 빛이 모여들며 한 노인, 센 다이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센 다이고는 이제 막 70줄에 접어든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몸뚱어리가 심하게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그러한 육체 곳곳은 새하얀 뼈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모습은 센 다이고가 이종족 플레이어. 개중에서도 언데드 몬스터 중 하나인 스켈레톤 세이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헤, 신기해. 도대체 네놈은 어떤 종족이길래 현실에서까지 그러한 모습을 할 수 있는 거야?”
센 다이고는 완벽한 해골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제로를 부럽다는 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아! 부러워! 부럽고 부럽고 또 부러워! 나에게 알려줄 수 있어? 어떻게 하면 그 완벽한 ‘불멸의 육체’를 현실에서 완성할 수 있었는지를!”
푸확-!
플레이어로 각성 도중 무언가 문제가 생겼던 것일까?
아니면 본래 지녔던 천성이 저러한 것일까.
마치 열 살 먹은 어린아이처럼 말하는 센 다이고를 보고 있노라면 단 하나의 단어가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단어는….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미친놈.
그 단어만큼 센 다이고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히히… 부러워. 부러워서 미칠것만 같다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이 질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센 다이고는 제로를 향해 걸어가며, 손을 휘적였다.
완전히 미쳐버린 것만 같은 그 모습에 제로의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러고 보니….”
천천히 다가오는 센 다이고를 바라보던 제로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기억 났다.
센 다이고. 그가 어째서 로스트 월드에서 네크로맨서란 직업을 선택했는지.
놈이 네크로맨서를 선택한 이유는 두가지.
하나는 시체를 ‘좋아하기’ 때문이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불사. 아니, 불멸에 관해 관심이 많았었지?”
네크로맨서란 본디 죽음을 파고들어 불로불사. 흔히 말하는 불멸을 이룩하기 위한 학문이었다.
그것이 변질되어 모두가 흔히 알고 있는, 지금의 네크로맨서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즉, 센 다이고는 로스트 월드에서 네크로맨서가 되어 죽음을 연구하고.
그렇게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현실에서 불멸을 이룩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로스트 월드가 한창 서비스 중일 땐, 모두가 로스트 월드를 단순한 게임으로 치부하고 있었기에….
“그런 게임을 통해 현실에서 불멸을 이룩하려 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제로가 쯧쯧!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한편 센 다이고는 제로를 향하던 걸음을 멈추며 히히! 하는 웃음을 토해냈다.
“알고 있어. 빼앗아 버리자.”
“저 아름다운 육체는 내 것이 되어야 했어.”
“빼앗아 버리자. 저 보물에 깃들어 있는 영혼을 부숴버리고.”
“저 보물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버리자.”
센 다이고가 돌연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에 제로의 공허한 눈구멍에 자리 잡은 사신의 흉안이 데굴데굴 구르며 움직였다.
그러한 사신의 흉안은 눈구멍 안에서 한 바퀴 회전하며 센 다이고를 응시했는데….
“영혼은 보이지 않아.”
센 다이고에겐 그 어떤 영혼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아니, 지금까지 쌓아 올린 수많은 살생에 의해, 원망을 토해내는 영혼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지만, 그것들로는 센 다이고에게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비록 미친놈처럼 보이는 센 다이고였지만, 그가 쌓아 올린 네크로마스터라는 경지는 우습게 볼 만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신분열의 일종인 건가? 이거 진짜로 미친놈이었네?”
정신 분열.
혹은 다중인격.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센 다이고가 보이는 모습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한편, 누군지 모를. 무엇인지 모를 것과 대화를 나누던 센 다이고의 고개가 홱! 하며 돌아가고, 그의 두 눈동자가 제로를 응시했다.
“히히! 그 육체를 나에게 넘겨!”
푸확-!
기괴한 웃음과 함께 외치는 센 다이고의 몸에서 막대한 양의 기운이 흘러넘쳤다.
그것은 네크로맨서라면 누구나 다루는 사마력이었는데, 그런 사마력이 뿜어져 나오자 센 다이고에게 달라붙어 있던 원령들이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히히히! 그건 내 꺼란 말이야!”
스킬 발동, 본 스피어.
후웅-!
센 다이고가 양손을 휘두르자, 그에 맞춰 두 자루 백골의 창이 만들어지며 쏘아졌다.
그것은 날카로운 파공음을 동반하며 제로의 머리를 노렸으나….
“소용없어.”
콰직-!
제로는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만으로 센 다이고의 본 스피어를 박살 내버렸다.
“그리고…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봐.”
제로는 센 다이고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