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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11화 (111/200)

제111화

“신성 성가대는 허상괴들의 공격을 막으세요! 신성 기사단은 폭주하는 플레이어들을 제압하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흑발에 흑안을 지닌 청년의 외침에, 50명 가까이 되는 플레이어들이 움직였다.

신성 성가대라 불린, 순백의 로브를 걸친 플레이어들은 각종 신성 마법을 통해 사람들을 덮치는 허상괴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순백의 갑옷을 걸치고, 메이스나 검 따위의 무기를 쥔 플레이어들. 신성 기사단이라 불린 그들은 갑작스런 각성으로 힘에 취해 날뛰는 플레이어들의 제압에 나섰다.

군인과도 같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들 덕분에 허상괴의 등장과 폭주하는 플레이어들에 의한 피해가 한결 사그라들었다.

“안녕? 신성.”

허공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제로는 흑발흑안의 청년, 신성의 뒤에 나타나며 입을 열었다.

신성은 인기척도 없이, 갑작스레 나타난 제로에 흠칫! 몸을 떨었으며. 그런 신성의 곁에 있던 기사 중 한 명이 제로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넌…?”

신성도. 그리고 그런 신성을 호위하듯 곁에 서 있던 플레이어는 갑작스레 나타나 괴인이 제로라는 것을 알아채며 놀란 표정을 내비쳤다.

“현실에서도 그 모습인 겁니까?”

“그래서, 불만이야?”

신성의 물음에 제로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확실히 일사불란하긴 하네. 미리 정보를 건넨 보람이 있었어.”

제로는 자신을 향해 긴장 어린 시선을 던지는 신성을 지나쳐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로스트 월드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그렇기에 로스트 월드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국적은 다양했는데, 개중 한국, 그리고 서울에 적을 두고 있는 길드는 십강 중 신성이 유일했다.

그렇기에 로스트 월드가 서비스를 종료하고, 수많은 유저들이 플레이어로 각성하는 순간 벌어질 혼란을 대비하기 위해서 제로가 십강에게 정보를 푼 것이었다.

그리고 신성은 그런 제로의 의도대로 같은 신성 길드에 속해 있던 유저들을 규합하고, 담합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것들이 허상괴인 겁니까?”

신성이 시선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그의 두 눈동자에는 신성 성가대와 신성 기사단에 의해 죽어 나가고 있는 괴물들이 내비쳐졌다.

그 괴물들은 절대 현실에 존재하는 생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로스트 월드에 존재하던 몬스터도 아니었는데, 그렇기에 신성은 손쉽게 그것들이 허상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맞아. 꽤 역하게 생겼지?”

신성의 질문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역하게 생겼다… 라.

신성은 제로의 말에 피식, 실소를 흘렸다.

허상괴라고는 하나 그 베이스는 현실에 존재하는 생물들이다.

어떤 것은 강아지가, 어떤 것은 고양이가. 어떤 것은 비둘기가. 심하면 평범했던 인간이 변화해 만들어진 그것들은 제로의 말대로 ‘역하게 생겼다’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다른 도시나 마을 쪽은 어때?”

한참 서울에 나타난 허상괴와, 로스트 월드가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각성한 플레이어들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제로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한 제로의 질문에 신성은 음… 하며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일단 신성의 간부진들에게 말은 전해 뒀습니다. 신성에 속한 길드원들이 모두 서울에 있는 것도 아니니깐요. 다만….”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겠지.”

“그렇습니다.”

제로의 말에 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아무리 신성이 십강 중 하나이며, 수천, 수만 명의 길드원들을 자랑하는 거대 길드라지만 그 한계는 존재한다.

특히나 신성의 모든 길드원들이 자신과 간부진의 말을 따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서울에서 폭주하고 있는 플레이어들 중 몇몇 또한 신성 길드에 속해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뭐, 그 정도는 나도 예상하고 있었어. 넌 지금 이대로 서울에 있는 허상괴들을 죽이는 것에 집중해.”

그러한 말을 내던진 제로는 슬쩍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는 여전히 ‘또 다른 세계’를 내비치는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것은 최하급과 하급의 허상괴. 마지막으로 적의 군단장 베드리나를 토해낸 이후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다.

‘확실히 회귀 전과는 달라졌어.’

회귀 전에는 허상괴의 왕을 포함해, 수십의 최상급 허상괴. 그리고 수억, 수십억의 각 등급의 허상괴들을 토해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지, 저 구멍은 고작 수십만 마리의 하급과 최하급 허상괴. 그리고 적의 군단장 베드리나를 토해내고 침묵하고 있었다.

제로는 그러한 침묵이 도리어 불안하게 느껴졌다.

폭풍전야라는 말이 있듯이, 이렇게 침묵하고 있는 구멍이 언제 어느때 허상괴들의 왕을 토해낼지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빠르게 움직여야겠지.”

“뭐라고 하셨습니까?”

“별거 아니야.”

제로의 중얼거림을 들은 신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로는 그런 신성에게 손을 흔들며 걸어 나갔다.

허상괴들의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된 지금,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빨리 플레이어들을 규합해 허상괴들을 상대할 전선을 구축해야 했다.

‘뭐, 그것도 어느 정도 조치는 취해 뒀으니 괜찮겠지만.’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죽음에 휩싸이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서울에서 모습을 감춘 제로는 대한민국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국을 순회하듯 움직이며 제로는 아직 플레이어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나타난 허상괴들을 죽여 나갔고, 때론 신성 길드만으론 어쩔 수 없는 플레이어들의 폭주를 제압했다.

마음 같아서는 한국 외에도 다른 나라의 상황까지 진정시키고 싶은 것이 제로의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몸이 열 개, 백 개도 아니고. 그게 가능하겠냐고.”

후웅-!

퍼억!

제로는 수십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삐죽삐죽 돋아난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드는 허상괴의 핵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망자들을 전 세계에 퍼트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제아무리 제로라 하더라도 수천, 수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거리까지 망자를 컨트롤 할 자신은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제로가 소환한 망자들로 인해 또 다른 재앙이 발생할 뿐이다.

그나마 십강 중, 나머지 아홉 개의 길드가 적을 두고 있는 나라들은 상황이 좋았다.

각 국가의 장성들 중, 제로에게 정보를 전해 받아 대비를 취하고 있던 나라들도 어느 정도 상황은 괜찮았다.

다만….

그 크기가 작은 소국.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한없이 떨어지는 약소국들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몇몇 나라들은 갑자기 나타난 허상괴를 감당하지 못하고 멸망했다.

어떤 나라는 허상괴들을 처리하기 위해 자국에 미사일을 쏟아붓기도 했다.

이번 침공으로 나타난 허상괴들의 강함은 고작 최하급과 하급이다. 그리고 그 숫자마저 수십만 마리에 불과했으나, 그것만으로도 수천만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움직여 봐야지.”

콰가강-!

그러한 말을 내뱉으며 제로가 손을 내뻗자, 쫙 펼쳐진 손바닥으로부터 죽음의 탁류가 터져나왔다.

그것은 강함의 척도조차 재지 못하고 제로를 향해 달려드는 최하급과 하급의 허상괴들을 덮치며 곤죽으로 만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로스트 월드를 플레이하지 않아 각성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각성했다고 한들 그 강함이 상대적으로 약한 플레이어들이 얼빠진 표정을 내비쳤다.

로스트 월드를 플레이하고 있든, 말든 그것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

플레이하지 않더라도 제로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 본 사람들이었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제로의 강함이 이 정도로 뛰어날 줄은 몰랐다.

“저…. 제, 제로 님 맞으시죠?”

한 플레이어가 쭈뼛쭈뼛 다가와 입을 열었다.

걸치고 있는 장비는 블랙 오크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갑옷이고, 양 손에는 허상괴의 피가 묻어나 있는 단검이 쥐어져 있다.

레벨로만 따지자면 이제 막 200을 돌파했을 법한, 저레벨 유저였다.

“그런데?”

“마, 만나서 영광입니다! 제 이름은…!”

“네 이름은 궁금하지 않아.”

그 말을 끝으로 제로는 예의 죽음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종종 이런 경우가 있었다.

플레이어로 각성했음에도 그 강함이 약해, 제로와 같은 랭커급 유저들의 아래 들어가 안전을 보장받고자 하는 인간들.

회귀 전에는 강하든, 약하든 모두가 인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발이 잘리면 손으로 뛰어 다니고, 그마저도 잘리면 땅을 기어서라도 허상괴의 목덜미를 물어 뜯었다.

하지만 회귀 후인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이 약하다고. 자신의 레벨이 낮다고 허상괴와의 싸움을 기피하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종종 내비쳐지는 것이다.

그 모습은 한차례 지옥과도 같은 전장을 경험했던 제로에게 있어 한없이 불쾌하게 다가왔다.

‘아부 떨 시간이 있으면 허상괴를 한 마리라도 더 죽이라고.’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제로가 플라이 마법을 통해 움직였다.

한 줄기 잿빛 선이 되어 하늘을 가로지르며 움직이는 제로의 목적지는 제주도.

그곳에서 제로는 두명의 유저를 만나야 했다.

한 명은 제로를 통해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을 얻어 다크 로드로 전직한 스타툰.

나머지 한 명은….

“갠 업그레이드를 끝마쳤으려나 모르겠네.”

제로 덕분에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에게서 아다만티움을 획득한 골렘 스로우였다.

그 둘이 제주도에 살고 있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었다.

따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늘을 가로지르며 얼마나 움직였을까?

가끔 새의 육체에 깃든 허상괴들을 쳐 죽이며 움직였을까.

푸른 바다를 넘어, 제로의 발밑에는 어느새 거대한 제주도의 모습이 내비쳐졌다.

제주도 또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난장판인 것은 똑같았다.

그럼에도 제주도의 상황은 한결 괜찮았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

스타툰과 스로우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툰은 어쌔신 특유의 재빠른 몸놀림으로 이곳저곳 누비며 허상괴들을 죽였고.

스로우는 자신이 제작한 각종 골렘들을 풀어 사람들을 지켰다.

간간이 폭주하는 플레이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보다 한없이 강력한 스타툰과 스로우를 보며 알아서 몸을 사렸다.

“우선은….”

스타툰부터.

그러한 중얼거림을 내뱉은 제로의 몸이 훅! 하며 사라졌다.

플라이 마법을 해제한 제로는 바닥을 향해 수직하강을 시작했다.

상공 수천 미터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제로가 땅에 닿기 무섭게 쾅! 하는 폭발과 함께 자그마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한창 허상괴들을 베어 넘기고 있던 스타툰은 머리 위에서 떨어져, 땅에 크레이터를 만들어내며 나타난 제로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형님? 서울은 괜찮은겁니까?”

허상괴들의 침공이 시작되면 제로가 서울을 맡기로 한 것은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은 스타툰 또한 다를 바 없었는데, 그러한 스타툰의 질문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정리는 끝났지. 신성이 마침 서울에서 살았더라고.”

“신성 길드의 길드 마스터, 신성… 말입니까.”

신성이란 이름이 튀어나오자 스타툰이 껄끄럽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그러한 표정을 내비치는 이유를 알고 있는 제로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무 그렇게 불편한 티 내지 마. 이제는 공통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전우니깐.”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적응이 꽤 빠르네?”

그러한 제로의 말에 스타툰이 씨익 웃어 보였다.

플레이어들이 폭주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로스트 월드의 힘을 각성해, 그 힘에 취한 것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는 갑작스런 각성에 정신과 육체가 그것을 따라잡지 못해 의식을 잃고 날뛰는 경우 또한 존재했다.

그렇기에 각성 이후, 이처럼 바로 허상괴들을 죽이고 다닌 스타툰의 적응력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그럼 이제 스로우를 만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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