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109화 (109/200)

제109화

“준비하라.”

크아아아아악-!

키악!

꺄하하하학!

끼아아아아-!

천둥 번개가 떨어지는 세계.

사방에선 날카로운 칼날로 이루어진 폭풍이 휘몰아치고, 바다에선 대륙을 집어삼킬 기세의 해일이 연신 일어나는 그곳에서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준비하라.”

쿠르르-!

중후한 음성이 울려 퍼지며 한 거인이 몸을 일으켰다.

거인의 전신은 푸른 비늘로 뒤덮여 있었으며, 엉덩이에는 거대한 꼬리가 돋아나 있었다.

머리에는 뇌전이 휘몰아치는 세 개의 뿔이 돋아나고, 등에는 박쥐의 그것과도 같은 날개가 펄럭였다.

“진격하라.”

거인이 어느 한 장소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거인의 손이 가리킨 장소에는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 균열이 내비치는 모습은 지구였다.

거인의 발밑에서 괴성을 내지르던 괴물들은 그러한 공간의 균열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 수만, 수억의 괴물들이 움직이며 내뿜는 기세는 마치 세계가 붕괴하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포식의 시간이다.”

* * *

“이걸로 준비는 끝인가?”

제로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유저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들의 목덜미에는 하나같이 검은 해골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제로가 채워 둔 족쇄였다.

현실의 각 국가의 장성들에게 한 것과 같은 족쇄로, 영혼에 새겨진 그것은 로스트 월드뿐만이 아니라 현실의 육체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것은 전쟁이 벌어져도 함부로 날뛸 수 없는 제약이 되어 줄 것이다.

그렇게 제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리고 있을 때….

쿠르르-!

돌연 대지가 뒤흔들리고, 하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 대륙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거대한 지진은 마을과 도시를 집어삼켰으며, 무너지는 하늘 너머로는 심연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로가 당황한 표정을 내비쳤다.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다.

다만, 회귀 전에도 이러한 적은 없었기에 제로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그 전말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제로가 당황하고 있는 찰나….

[시작된 건가.]

머릿속으로 죽음의 목소리가 틀어박혔다.

제로는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죽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려 했다.

막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유저 여러분들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로스트 월드는 금일 오후 3시 23분을 기점으로 서비스 종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로스트 월드를 즐겨 주신 유저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무너지는 하늘 너머로 글자가 새겨졌다.

그것은 로스트 월드의 서비스 종료를 알리는 공지였는데, 갑작스러운 서비스 종료에 대다수의 유저들이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그저 진실을 알고 있는 몇몇 유저들만이 ‘올 것이 왔나.’라는 결연한 표정을 내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그러한 공지를 읽은 제로는….

“무언가 잘못됐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중얼거렸다.

녹의 선봉장, 제르빌라가 나타났을 때 회귀 전보다 허상계의 침공이 빠를 것임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렇게 제로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 로스트 월드 대륙 전역에 빛의 기둥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로스트 월드가 서비스 종료를 맞이하며, 아직 남아 있는 유저들을 지구로 귀환시키는 기둥이었다.

유저들의 강제 귀환은 제로라 하더라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제로를 포함한 남아 있는 모든 유저들이 빛의 기둥에 휩싸여 지구로 귀환하고 있을 때….

“벌써 시작된 건가.”

시작의 도시에 자리 잡은 황궁. 개중에서도 오직 황제와 그 측근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방에 앉아 있던 켄드로가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한 방에는 켄드로만이 아닌, 푸른 마탑의 마탑주 실비테르와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 그 외에도 반쯤 초월의 격을 갖추었던 몇몇 존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평범한 유저들은 그들을 단순한 NPC나 몬스터 따위로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애초에 어설프게나마 초월자의 격을 지니고 있는 그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패배하고, 자신들이 살아 숨 쉬었던 이 세계가 다른 세계의 수련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붉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게르슈드리가 입을 열었다.

그런 게르슈드리의 질문에 대다수의 존재들이 고개를 내저었다.

대륙 위에 살아가는 수많은 종족이 힘을 합쳐 대항했음에도 패배하고, 차원은 멸망했다.

자신들조차 막아 내지 못한 그들의 습격을, 평범한 인간이 반짝 힘을 길렀다고 막아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하지만 가능성은 존재하지.”

푸른 마탑의 마탑주, 실비테르가 입을 열었다.

그는 유저, 이방인이라 불리는 자들의 세계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제로를 떠올렸다.

실질적으로 제로를 마주한 것은 단 한 번뿐이다.

그렇지만 실비테르는. 아니, 실비테르를 포함해 이곳에 모여 있는 모든 존재는 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들이 어느 정도 시스템의 법칙에서 벗어난 존재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한 실비테르의 중얼거림에 나머지 존재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제로.

유저들 사이에서 학살자라 불리었던 존재.

수많은 유저가 자신들의 세계에 속해 있던 힘을 획득하고, 그것을 수련했다면 제로는 전혀 다른 힘을 품었다.

어째서 그것이 가능했는지는 제아무리 그들이라 할지라도 깨달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힘은 이치를 벗어난 힘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황제 폐하.”

그렇게 중얼거리며 실비테르가 등 뒤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 실비테르의 눈에 들어선 것은 한 해골이었다.

황금의 옥좌에 앉아 있는 해골은 풍화될 대로 풍화되었으나, 그럼에도 그것은 막대한 힘을 품고 있었다.

실비테르에게서 황제라 불린 해골.

그것이 바로 현 유저들이 알고 있던, 황궁의 진정한 주인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를 유지하고 있던 핵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진정한 초월자의 격을 갖추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들에게 대항했던 존재.

모두의 생명이 바스라지는 그 순간에서도 투지를 잃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꺾지 않으며 검을 휘둘렀던 존재.

그것이 바로 황제였다.

실비테르는 그러한 황제… 아니, 황제였던 해골을 바라보며 슬픈 눈을 띠었다.

* * *

“커헉-!”

쿠당탕-!

튀어 오르듯 캡슐에서 몸을 일으킨 제로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평범한 유저들이라면 몰라도, 초월자의 격을 갖춘 제로는 강제적인 영혼의 이동에 어느 정도의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럴 시간이 없어.”

최대한 빠르게 정신을 수습한 제로가 다급히 창밖을 내다봤다.

아직 지구에 허상괴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더 진해졌어.”

거리를 걷고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하늘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한 사람들의 눈에는 공간에 새겨진 금이 들어왔다.

그러한 금은 보통 같았으면 평범한 인간. 아니, 아무리 로스트 월드의 힘을 각성했다 한들 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허상괴의 침공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반증하듯, 공간에 새겨진 금은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진해졌다.

“시간이… 없어.”

저것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붕괴할 듯 불안정했다.

특히나 금 너머로 허상괴 특유의 광폭함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었으니, 저것을 이대로 방치해 둔다면 회귀 전의 끔찍했던 참상이 다시 한번 되풀이될 것이다.

“그럴 순 없어.”

자신이 왜 힘을 갈구했던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째서 힘을 키워 올렸던가.

그 모든 것이 지구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움직였다.

아직 대다수의 사람은 로스트 월드의 힘을 각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로는 어느새 로스트 월드 속에서 다루던 모든 힘을 품고 있었다.

그 증거로 지구로 돌아온 제로의 육신은, 사룡 덴드로의 심장을 받아들여 변화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게 제로는 네크로노미콘을 꺼내 쥐며, 망설임 없이 공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움직였다.

공간을 뛰어넘어 도착한 장소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기거하는 곳이라 알려진 청와대였다.

“아! 제, 제로 님!”

갑작스러운 제로의 등장에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들 모두가 제로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이 제로를 말로만 들어 왔기에 신기하다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 거슬리는 시선에 제로 또한 무언가 반응을 취했겠지만, 지금은 일일이 그러한 것에 반응할 정도로 시간이 많지 않았다.

“대통령은?”

“안 그래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제로의 물음에 한 남성이 대답했다.

곧 그는 제로를 안내하며 청와대 깊숙이로 이동했고, 그렇게 도착한 장소에는….

“제, 제로 공! 이게 무슨 일인가!”

불안한 표정을 내비친 대통령이 다급한 목소리로 제로를 맞이했다.

“너무 당황하지 마. 그저 시간이 됐을 뿐이니깐.”

“시간이 됐다니…? 헛! 서, 설마!”

제로의 말에 대통령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시간이 됐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곧 있으면 허상계의 침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편 제로는 당황하며 굳어 있는 대통령의 등 뒤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과거 제로에게 덤벼들었다 박살이 나 버린 남자 외에도, 몇몇 사람들이 더 있었다.

하나같이 마나를 풍기는 것이, 그들 모두가 로스트 월드의 힘을 각성한 플레이어들이었다.

“저들은?”

“아, 그들 모두 내가 찾아낸 유저들일세.”

제로의 질문에 대통령이 대답했다.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목소리에 깃들어 있던 떨림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제로는 자신의 예상대로 그들이 플레이어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차피 로스트 월드가 서비스 종료를 선언한 시점에서, 얼마 안 있으면 수억의 플레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레벨은…, 200 정도인가.’

어째서 랭커급 유저가 아닌, 중저렙에 속하는 레벨대의 저들이 먼저 힘을 각성했는지는 미지수였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선 없는 것보단 나은 상황임이 아닐 수 없었다.

200 정도라면 최하급 허상괴는 충분히 사냥할 수 있으며, 몇몇이 협력한다면 하급 허상괴와도 싸워 이길 수 있었다.

한편, 그러한 유저들은 제로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들에게 있어 제로 같은 유저는 현실의 연예인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렇기에 제로를 향한 시선 속에는 경외나 감탄 따위의 감정 또한 뒤섞여 있었다.

“그나저나 지금 당장 각국의 장성들에게 연락해.”

“그건 갑자기 왜…?”

“곧 있으면…!”

쿠르르-!

대통령의 질문에,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라는 눈을 하며 말하던 제로가 입을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대기가 날뛰고, 대지가 뒤흔들렸다.

뭐,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방 밖에서 당혹감 어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로는 그들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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