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떠오르는 제로를 향해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쌍검을 사용하는 유저였다.
바닥을 박차며 뛰어오른 그는 쾌속한 몸놀림으로 쌍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어리석구나.]
카앙-!
각기 제로의 목과 척추를 노리며 휘둘러진 그의 쌍검은 중간에 개입한 한 자루 흑검에 막혔다.
“무…!”
[본 마스터의 목숨을 노린 죄. 만 번 죽어 마땅하다, 허나 주인의 명이 있기에 목숨을 거두는 것만큼은 삼가도록 하겠다.]
언제 움직인 것일까?
쌍검 유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데스 나이트 킹이 흑검을 휘둘렀다.
사전에 ‘죽이지 마라’라는 제로의 명령이 있었기에, 그의 흑검은 쌍검 유저를 기절시켰을지언정 목숨마저 앗아가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머더러 유저들인데, 한번 죽으면 데스 페널티를 무시할 수 없어. 최대한 죽이지 않고 제압해야 한다.’
데스 나이트 킹의 검에 얻어맞아 기절한 유저를 바라보며 제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행히도 소환한 네 언데드들은 그런 제로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었다.
물론….
‘다소 불만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말이야.’
제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데스 나이트 킹 다음으로 퀸 레이스가 움직였다.
[호호호-!]
[강해 보이는 육체가 상당히 많이 있네요?]
귀부인의 그것과도 같은 웃음을 터트린 퀸 레이스가 한 유저의 몸에 파고들며 빙의했다.
퀸 레이스에 빙의된 유저는 부르르 몸을 떨더니, 그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뭐, 뭐 하는 거야!”
“이놈 뭔가 이상해!”
새까맣게 물든 눈동자를 한 유저가 주변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그의 손에 쥐어진 메이스가 붕! 붕! 하며 휘둘러질 때마다, 그것에 얻어맞은 유저들이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본래라면 발휘할 수 없는 위력이었으나, 퀸 레이스에 빙의된 그것은 생명을 불태워 한계를 뛰어넘은 강함을 발휘했다.
“죽이지 말라니….”
“술사를 노려!”
“언데드를 상대할 필요는 없다!”
퀸 레이스가 날뛰는 모습에 제로가 중얼거리는 찰나, 몇몇 유저들이 바닥을 박차며 튀어 올랐다.
데스 나이트 킹은 다른 유저들을 상대하고 있으며, 퀸 레이스는 빙의를 통해 날뛰고 있었다.
뛰어오른 유저들을 막아설 언데드는 보이지 않는, 어찌 보면 절체절명의 상황… 이라고 유저들은 착각했다.
[감히 왕의 몸에 칼을 들이대다니!]
[모조리 죽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로구나!]
콰르르-!
어디선가 위엄 넘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바닥에서부터 수백의 스켈레톤들이 솟아올라 제로를 감쌌다.
유저들의 공격은 그러한 스켈레톤과 충돌하며 튕겨져 나갔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유저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은 제로의 직업이 네크로맨서. 아니, 네크로맨서 계열의 히든 클래스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가 소환하는 언데드의 강함은 한정적이다.
자신들이 합공한다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몇 정도는 충분히 언데드를 뚫고 유효타를 먹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유효타를 먹이는 유저는 당연 자신들이라 자신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제로가 다루는 언데드는 평범한 네크로맨서들이 다루는 언데드 그 이상의 강함을 자랑했다.
수백, 수천의 스켈레톤을 다루는 거대한 스켈레톤.
평범한 데스 나이트의 강함을 뛰어넘은 데스 나이트 킹.
어지간한 영체형 언데드의 빙의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했음에도, 그 저항을 뚫고 빙의를 성공해 날뛰는 퀸 레이스.
마지막으로….
[크르르….]
뼈로 이루어진 날개를 펄럭이며 제로의 등 뒤에 자리 잡은 본 드래곤까지.
무엇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강함을 지닌 언데드에, 유저들의 표정은 당혹감과 조바심으로 가득 찼다.
애초에 그들은 PK를 업으로 삼는 유저들이다.
무뢰배나 다름없는 그들에게 협동심이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 협력해 언데드를 돌파하고, 제로에게 유효타를 먹이기보다는.
다른 유저들이 틈을 만들면, 그 틈을 파고들어 자신들이 유효타를 먹일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이니 제로가 소환한 네 개체의 언데드를 뚫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화륵-!
돌연 머리 위에서 피어오른 불꽃의 파도가 제로를 덮쳤다.
그와 동시에 뭉쳐 있던 유저들 중 누군가가 크핫! 하는 웃음과 함께 버럭 외쳤다.
“여기에 땅개들만 있을 줄 알았냐! 이걸로 히든 클래스는 내…!”
한 마법사 유저가 자신만만한 웃음을 내비치며 말하다 입을 다물었다.
그는 방금 전 일격으로 제로에게 유효타를 먹였을 것이라 자신했다.
허나 아니었다.
그가 만들어 낸 불꽃의 파도가 사그라들며 나타난 제로는….
“뭔가 했냐?”
죽음이 뭉쳐 만들어진 구체가 제로를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마법사 유저가 만들어 낸 불꽃의 파도를 밀어냈으며, 그것이 피어 올린 열기마저 집어삼켰다.
“이런 시발! 이건 아니지! 뭐 이딴 밸붕캐가 다 있어!”
마법사 유저가 버럭 외쳤다.
소환하는 언데드도 평범한 네크로맨서에 비해 강하다.
언데드가 강하다면 술자 본인이 약해야 어느 정도 밸런스가 맞을 텐데, 술자 본인조차도 상당한 강함을 가지고 있다.
이건 뭐, 애초에 밸런스 자체가 망가져 버린 망겜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 내 차례지?”
한편 제로는 불꽃의 파도를 만들어 낸 유저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본 드래곤. 데스 브레스.”
[크아아-!]
푸확-!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뒤에 있던 본 드래곤이 쩍! 하며 입을 벌렸다.
턱이 찢어져라 벌어진 본 드래곤의 입에선 검은 불꽃으로 이루어진 데스 브레스가 뿜어져 나와 유저들을 덮쳤다.
끄아아아악-!
이런 시발!
이건 아니지!
데스 브레스에 휘말린 유저들이 제로를 향해 온갖 욕설을 내뱉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나마 본 드래곤이 사전에 받은 명령 덕분에 데스 브레스의 위력을 줄였기에 불평불만이라도 내뱉을 수 있는 유저들이었다.
“히든 피스에 관한 정보를 날로 먹으려 했냐?”
제로는 제대로 된 방어조차 하지 못하는 유저들을 바라보며 쯧쯧 혀를 찼다.
아무리 평균 레벨이 400이면 뭐 하는가.
단합도 안 돼, 협공도 못 해.
본인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그래도….
‘저런 놈들이라도 필요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
저래 보여도 나름 쓸 만한 놈들이라, 허상계의 전쟁에 필요하다는 게 아이러니였다.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으며 유저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맞는 말이야. 참 한심한 놈들이라니깐.”
언제 나타난 것일까?
제로의 등 뒤로 한 유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하나의 문을 만들며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렇게 나타난 유저의 손에는 거대한 대검이 쥐어져 있었다.
“호-! 이건 좀 쓸 만해 보이는데?”
제로는 등 뒤로 갑작스레 나타난 유저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비쳤다.
허공에 문을 만들어 나타나는 모습만 봐도, 저놈은 히든 클래스를 가지고 있다.
만일 자신에게 단 하나의 유효타라도 먹인다면, 그에 걸맞은 장비에 관한 정보나 히든 스킬을 얻을 수 있는 정보만 전해 주면 될 듯 보였다.
물론….
‘내 몸에 유효타를 넣을 수 있을 때의 일이지만 말이야.’
제로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문을 열고 튀어나온 유저가 검을 휘둘렀다.
“어디 이것도 한번 막아 봐.”
제로는 유저들이 죽지 않도록 힘을 조절해서 싸운다.
즉, 본래의 강함을 모조리 드러낼 수 없게 스스로에게 족쇄를 씌운 셈이다.
하지만 상대는 달랐다.
상대는 제로가 죽든 말든 상관없이, 전력을 다해 공격한다.
지금도 그랬다.
문에서 튀어나온 유저가 휘두른 대검에는 무형의 기운이 서려 있었는데, 그러한 검이 휘둘러지는 궤적에 따라 공간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공간계 스킬!’
상대의 공격은 상당히 까다로운 타입이었다.
방어 마법을 펼쳐도, 그 공간 채로 일그러트려 공격한다.
어떻게 보면 방어 불능의 공격으로도 내비쳐졌다.
하지만….
“너무 자만하는 거 아니야?”
제로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헛소리.”
그는 제로의 말을 무시하며 속으로 웃음을 내비쳤다.
이로써 제로가 토해 낼 히든 피스에 관한 정보는 모조리 자신의 것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놈-! 감히 왕의 옥체에 손을 대려 하느냐!]
[감히 본 주인의 목숨을 노리다니!]
언제 움직인 것일까?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힘을 품은 대검의 앞으로 두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는 신장이 3m를 훌쩍 넘는 거대한 스켈레톤, 스켈레톤 엠페러였으며.
하나는 한 자루 흑검을 휘두르며 무쌍을 찍고 있던 데스 나이트 킹이었다.
“꺼져!”
갑작스레 끼어든 데스 나이트 킹과 스켈레톤 엠페러를 향해 버럭 외친 그가 휘두르는 대검에 더욱 힘을 줬다.
전력을 다하는 것인지, 대검이 지나간 공간이 일그러지다 못해 휘어지고 무너져 내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소용없다!]
[소용없는 짓!]
유저의 공격에 맞춰 휘둘러진 데스 나인트 킹의 검에는 데스 블레이드가 둘러쳐져 있으며. 스켈레톤 엠페러가 들어 올린 방패는 수천의 스켈레톤들이 뭉치고, 응축된 방패였다.
그렇게 데스 나이트 킹의 검과 스켈레톤 엠페러의 방패. 그리고 PK 유저의 대검이 충돌하는 순간….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그들을 집어삼켰다.
제로는 이미 더미 블링크를 통해 몸을 빼낸 지 오래였으며.
허공에 피어오른 폭발 속에서 전신이 너덜너덜해진 유저가 기절한 채로 바닥에 떨어졌다.
“아깝네. 하지만 쓸 만해.”
제로는 기절해 떨어지는 유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문을 만들어 공간을 뛰어넘고. 전력을 다했다지만 미약하게나마 공간을 무너트릴 정도의 일격을 가했다.
잘만 키운다면 쓸 만한 장기 말이 될 기질을 소유한 유저였다.
다만, 그렇게 기절해 추락한 유저가 PK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하고, 강했던 유저인 것일까?
그의 기습적인 일격마저 통하지 않자, 남아 있던 유저들이 다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제로를 향해 내비치던 그들의 투기는 한풀 꺾인 지 오래였다.
“더 안…!”
퍼엉-!
그들을 향해 입을 열던 제로가 고개를 젖혔다.
그와 동시에 하나의 화살이 제로의 머리가 있던 공간을 꿰뚫으며 사라졌다.
“뭐야?”
상당한 위력의 저격에 제로의 오른쪽 눈 구멍에 위치한 사신의 흉안이 데굴데굴 구르며 사방을 훑었다.
그렇게 얼마나 사방을 훑어봤을까?
사신의 흉안은 루파의 중앙 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를 응시했다. 그곳에는….
“하하.”
죽음이 깃든 활을 들고 있는 켄달의 모습이 내비쳐졌다.
“너 뭐 하냐?”
“그, 그게…. 제가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요.”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여는 제로에 켄달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놨다.
* * *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제로와의 만남 이후, 한국의 대통령을 제외하고 다시 모이게 된 각국의 장성들.
개중에서 미국의 대통령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 미국 대통령의 질문에도 나머지 장성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자신들이 무엇을 말하든, 어떤 의논을 하든 스스로를 제로라 밝힌 사신의 말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으음. 이미 족쇄가 채워진 이상 그의 말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네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 않나.”
중국의 주석이 목을 긁으며 불만 어린 목소리를 토해 냈다.
그런 주석의 목에는. 아니, 그를 포함해 스크린에 나와 있는 모든 정상의 목에는 해골 문양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각국의 정상들이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제로가 채운 족쇄였다.
“끄응….”
미국의 대통령 또한 목에 해골 문양이 새겨진 것은 마찬가지.
그럼에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 했으나, 아무리 생각하고 아무리 고민해도 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