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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06화 (106/200)

제106화

푸확-!

망자의 거성 홀 중앙에 죽음이 피어오르며 제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리 제로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던 네크로맨서들은, 제로의 등장에 오오-! 하는 환호성을 내뱉으며 무릎을 꿇었다.

“진정한 죽음의 주인의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가장 앞에 있던, 구 잿빛 마탑의 부탑주가 대표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그들은 당당히 황궁에 쳐들어가, 죽음의 심장을 회수해 온 제로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들의 주인이라 받아들였다.

[잿빛 마탑의 생존자들이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새로운 잿빛 마탑의 마탑주가 되었습니다.]

[총 32명의 네크로맨서들의 영혼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제로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지우며 손을 휘저었다.

그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네크로맨서들이 일어나 물러났다.

“흠.”

네크로맨서들이 사라지고, 홀에 침묵이 내려앉자 제로는 왕좌에 털썩 주저앉으며 낮은 울림을 토해 냈다.

그런 제로의 시선은 손에 쥐고 있는 잿빛 마탑의 신물, 죽음의 심장으로 향했다.

“막상 가져오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려….”

[꽤 재미있는 걸 가지고 있네?]

제로가 죽음의 심장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고민에 빠지려는 그때, 머릿속에 죽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음의 목소리는, 제로의 손에 쥐어진 죽음의 심장에 매우 흥미롭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걸 알고 있어?”

[알다마다.]

제로의 질문에 죽음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일 눈앞에 죽음이 존재했다면, 아마 그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이다.

[너희 인간들은 그걸 뭐라 부르지?]

“죽음의 심장.”

오버 데스가 된 이래, 로스트 월드의 시스템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시스템을 이용한 감정 따위의 기능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그럼에도 제로는 이것이 죽음의 심장임을 확신했다.

황궁의 지하에 봉인되어 있는 것을 떠나, 이 정도의 죽음을 품고 있는 것은 죽음의 심장 외에는 로스트 월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 인간들은 그걸 죽음의 심장이라 부르는구나.]

“이것에 다른 이름이 있어?”

[있지.]

의문 가득한 제로의 질문에, 죽음이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그래도 심장이라 부른다면 심장이라 할 수 있겠지.]

“그게 무슨 뜻이지?”

[넌 혹시 ‘드래곤 하트’를 알고 있어?]

“드래곤… 하트…? 물론….”

알다마다.

제로는 뜬금없는 죽음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 하트.

드래곤이 가진 제2의 심장이자, 힘의 근원. 무한한 마나의 집약체.

드래곤이 지닌,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마나의 원천이 바로 드래곤 하트였다.

일반인이 그것을 취한다면 그 막대한 양의 마나에 전신이 펑! 터져 버리겠지만, 최소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존재가 취한다면 막대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기물이기도 했다.

특히나 유저가 될 수 있는 이종족 중, 가장 난이도가 높고 가장 강하다 평가받는 하프 드래곤이 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드래곤 하트였다.

다만, 그러한 드래곤 하트를 구하기 위해선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를 사냥해야 했으며.

게르슈드리는 리스폰이 되지 않는 NPC이자 몬스터였기에, 회귀 전에도 하프 드래곤이 된 유저는 단 한 명뿐이었다.

아쉽게도 하프 드래곤이 된 유저는….

‘전쟁 통에 죽어 버렸지만 말이야.’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을 때, 머릿속에 다시 한번 죽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럼 설명이 쉽겠네. 간단히 말해서 그건 드래곤 하트야.]

“죽음의 심장이 드래곤 하트… 라고?”

[맞아. 정확히 말하자면 명계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사룡 덴드로의 심장이지.]

“으음….”

죽음의 말에 제로가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사룡 덴드로.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애초에 로스트 월드에 사룡이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도….

“이것이 사룡 덴드로의 심장이라면. 어째서 로스트 월… 아니, 중간계에 존재하는 것이지?”

[그거야 나도 모르지.]

제로의 의문 어린 질문에도 죽음은 시원한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정말로 몰라서 대답을 회피한 것인지, 아니면 알려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대답을 회피하는 것인지.

제로로서는 알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답답함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그래도 잘 됐네.]

“잘 됐다니?”

[사룡 덴드로의 심… 아니, 너희들 식으로 말하자면 그 죽음의 심장 말이야. 네가 사용해.]

“내가… 사용하라고?”

[응.]

또 한 번 이어진 제로의 질문에, 죽음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자신이 사용하라니. 도대체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이걸로 무기나 방어구 따위의 아티팩트를 만들라는 뜻일까? 아니면 이것을 재료로 망자를 만들라는 뜻일까. 아니면 이것을 이용….’

[너무 깊숙이 생각할 필요 없어.]

제로의 고민이 깊어질 기색이 보이자, 죽음이 입을 열었다.

[그냥 인간의 심장이 있는 위치에 사룡 덴드로의 심장을 가져다 대기만 하면 끝이야.]

“그걸 통해서 내가 얻는 이득은?”

[강함.]

[네가 그토록 원하고, 그토록 갈망하는 강함을 얻을 수 있어.]

“으음.”

죽음의 대답에 제로가 낮은 울림을 토해 냈다.

지금까지 죽음의 말을 들어 손해를 본 기억은 없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심장 하나 취한다고 더 강해질 건 없을 거 같은데….’

차라리 죽음의 심… 아니, 사룡 덴드로의 심장을 가지고 새로운 아티팩트를 만드는 편이 더욱 이득일지도 몰랐다.

자신에게는 딱히 필요 없겠지만, 일단 만들기만 한다면 그것에 어울리는 유저에게 건네 전력을 대폭 상승시키는 방법 또한 존재했다.

허나 그 생각은 뒤이어 울려 퍼지는 죽음의 말에 철회되었다.

[참고로 말하지만 그걸 아티팩트로 만들어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버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룡 덴드로의 원념이 묻어나 있어.]

[그 외에도 사룡 덴드로의 힘은 평범한 인간이 다룰 수 있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야.]

[그걸 아티팩트로 만들어 다른 인간에게 쥐어 준다? 바로 사룡 덴드로의 힘과 원념에 집어삼켜져 모든 것을 파괴하고, 살육하는 괴물이 만들어질 뿐이야.]

“끙.”

죽음의 말에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런 부작용이 존재한다면, 차라리 자신이 사용하는 편이 좋았다.

그러나, 죽음의 말에서 제로는 문득 한 가지 걱정을 품었다.

“그렇다면 내가 사용해도 위험한 거 아니야?”

약간의 걱정이 깃든 제로의 질문에 죽음이 ‘하!’ 하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넌 오버 데스야. 그 격은 한없이 낮지만 초월자라고. 넌 초월자가 무슨 동네 막과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사룡 덴드로의 힘은 확실히 강하지. 그리고 그것에 깃들어 있는 원념 또한 상당히 강해.]

[하지만 제아무리 강력하다 한들, 놈은 고작 명계의 파수꾼에 불과했던 존재야.]

[그 원념과 힘이 아무리 강해도 초월자의 정신과 영혼을 침식하고, 장악할 순 없지.]

[그것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명계의 파수꾼으로 남을 리도 없었겠지만 말이야.]

죽음의 말이 맞았다.

사룡 덴드로의 힘은 막강하고, 막대했지만 그 본질은 파수꾼의 위치에 있는 필멸자.

이미 죽음 그 자체가 되어 초월자가 된 제로의 정신이나 영혼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물며 고작 그 힘의 일부분과 단순한 원념이 깃들어 있을 심장 따위로 말이다.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제로는 망설임 없이 사룡 덴드로의 심장을 가슴에 박아 넣었다.

그렇게 사룡 덴드로의 심장이 과거 인간이었을 적 존재했던 심장이 위치한 장소에 자리 잡는 순간….

두근-!

“커헉!”

갑작스레 퍼져 나가는 격렬한 격통에 제로가 격한 신음을 내뱉었다.

“무, 무슨…!”

육체가 뜨겁다.

아니, 심장이 뜨겁다.

가슴에 박아 넣은 사룡 덴드로의 심장으로부터, 존재할 리 없는 혈관을 타고 용암이 흐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죽… 음…! 이건 말이 다르잖…! 커헉!”

[나는 ‘위험이 없다’라고 했지, ‘고통이 없다’라고는 하지 않았어.]

“너…!”

죽음의 말에 뭐라 외치려던 순간, 다시 한번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끔찍한 격통에 제로는 털썩 쓰러졌다.

정신을 잃은 듯한 제로의 육신은 부들부들 떨렸으며, 가슴에 박힌 사룡 덴드로의 심장은 두근! 두근! 요동쳤다.

그와 동시에, 요동치는 사룡 덴드로의 심장으로부터 미세한 혈관이 뻗어 나와 제로의 전신을 뒤덮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크윽-!”

나지막한 신음 소리와 함께 제로가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끔찍한 고통을 선사해 줬던 사룡 덴드로의 심장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미약한 열기와. 죽음 특유의 싸늘함이 공존하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끝… 난 건가…?”

[끝났어. 그래도 꽤나 잘 버텼네?]

[확실히 내가 눈여겨본 이유가 있었단 말이지.]

[보통 같았으면 그 고통에 정신의 일부분이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죽음에 제로가 울컥! 하며 뭐라 외치려 했다.

허나, 막 외치려던 제로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 와서 죽음에게 뭐라 한들, 그 끔찍했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외에도….

“확실히 힘이 넘쳐흐르는 느낌이야.”

감정을 가라앉힌 제로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중얼거렸다.

그 끔찍했던 고통을 다시는 느끼기 싫었지만, 확실히 죽음의 말이 맞았다.

이제는 몸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사룡 덴드로의 심장이 한 번, 한 번 요동칠 때마다 전신으로 막대한 힘이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만….

“이건 어떻게 좀 안되나?”

미러 마법을 통해 스스로의 외형을 확인한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은 여전히 흑골로 이루어진 리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미간에 박혀 있는 붉은 보석 또한 달라지지 않았는데, 단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건 너무 징그러운데.”

사룡 덴드로의 심장에서부터 미세한 혈관이 뻗어 나와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혈관 속에는, 살아 있는 생명이 피가 흐르듯 죽음이 흐르고 있었으며. 그러한 죽음에 의해 전신을 뒤덮은 혈관은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사룡 덴드로의 주인이 된 것을 축하해.]

죽음이 제로를 향해 말했다.

* * *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대통령 님.”

갑작스러운 질문에 앉아 있던 대통령이 ‘으음….’ 하며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스스로를 제로라 밝힌 존재.

흑골의 육체를 가진,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사신이나 죽음 그 자체를 보는듯한 그것의 말에 의하면 늦어도 반년 안에 허상계의 침공이 시작된다고 했다.

반년.

그것도 최대로 잡아서 반년이다.

이제 와서 로스트 월드를 이용해 군대를 양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아무리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한다 한들, 절대적인 시간의 차이는 메꿀 수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유저들을 모집하게나.”

“네, 네?”

“말 그대로일세. 로스트 월드라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유저들을 병사로서 모집하게나. 적정 레벨은…, 최소 150 이상. 마스터 레벨이라 했나? 마스터 레벨 이상의 유저는 간부급으로 영입하고.”

“알… 겠습니다.”

“아, 언론 단속도 최대한 하도록. 제로의 말대로 전쟁이 벌어질지는 미지수이나 이상한 말이 새어 나가 괜한 혼란이 일어나는 일은 최대한 피하게나.”

대통령의 명령에 한 중년인이 고개를 숙이며 움직였다.

한편, 그러한 명령을 내린 대통령은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맞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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