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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05화 (105/200)

제105화

콰가강-!

사방팔방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얼음 조각이 흩날렸다.

켄드로의 검을 피하면 실비테르의 마법이 날아오고.

실비테르의 마법을 피하면 켄드로의 검이 휘둘러진다.

개개인으로 상대하면 상대 못 할 것도 없었지만, 그 둘이 합공을 시작한 순간 폭발하는 시너지에 제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후웅-!

콰직!

머리를 노리고 쏘아 낸 거대한 흑골의 창을, 켄드로는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박살 내 버렸다.

그 모습에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묘하게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해.’

발밑에 꿈틀거리는 막대한 양의, 순수한 신성력이 제로의 죽음을 밀어내고 있는 탓에 마법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는 망자를 꺼낸다 한들, 신성력에 짓눌리고 켄드로의 검이나 실비테르의 마법에 정리될 뿐이다.

‘그렇다고 벤을 소환하자니….’

아직 쿨타임이 돌지 않아 벤을 소환할 수도 없는 상황.

이러나, 저러나 제로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고작 이 정도 난관조차 돌파하지 못하면, 놈을 죽일 수 없어.”

푸확-!

허상괴의 왕을 떠올리며 중얼거린 제로의 몸에서 막대한 양의 죽음이 뿜어져 나왔다.

그 죽음은 발밑에서 피어오르는 순백의 신성력을 밀어냈고 그 둘의 충돌에 사방에서 잿빛과 순백의 스파크가 파지직 피어올랐다.

켄드로와 실비테르는 막대한 죽음을 뿜어내는 제로에 씨익 웃어 보였다.

“이제야 제대로 할 마음이 생겼나 보구만.”

“자네가 너무 자극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 덕분에 제압하는 것만 더 귀찮아졌다네.”

끌끌.

실비테르의 질책에 켄드로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전력을 다하지 않는 상대를 공격하는 것만큼, 켄드로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또한 없었을 뿐이다.

이러나, 저러나 상대는 자신과 비등한 강함을 지닌 강자다.

지금까지 약자들만 상대해 온 켄드로였기에, 스스로와 비등한 강함을 가진 강자의 등장은 사라졌다 여겼던 호승심을 불태우기에 충분했다.

“어디 한번 놀아 봅세!”

콰가강-!

켄드로가 전신에 황금빛 오러를 두르며 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제로 또한 네크로노미콘을 망자의 격노로 뒤바꾸고, 전신에 죽음을 두르며 켄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후웅-!

콰아앙!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검을 휘두른다.

죽음을 두른 제로의 망자의 격노와 황금빛 오러를 두른 켄드로의 검이 충돌할 때마다 사방으로 거대한 충격이 휘몰아쳤다.

“나름 검도 쓸 줄 아는구나!”

평범한 네크로맨서인 줄 알았던 제로가 자신과 비등하게 검을 나누자, 켄드로가 기쁨의 외침을 토해 냈다.

“그럼 템포를 높혀 볼까?”

츠즛-!

전신을 뒤덮은 황금빛 오러가 더욱 진해지고, 더욱 강렬해지는 순간이었다.

제로와 검을 맞대고 있던 켄드로의 신형이 흐릿해지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칫-!”

스킬 발동, 더미 블링….

“소용없다!”

제로가 블링크 마법을 통해 몸을 빼내려는 순간, 발밑의 대지가 무너져 내리며 켄드로가 튀어나왔다.

켄드로는 도망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마법을 발동하는 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쾌의 묘리가 담긴 그것은 음속을 돌파하며 제로의 목을 노렸다.

“칫-!”

목을 향해 휘둘러지는 켄드로의 검에 제로는 혀를 차며 망자의 격노로 응수했다.

1초. 아니, 0.1초의 시간만 있어도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지만, 켄드로의 검은 그 약간의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부상을 감수하자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저놈도 거슬린단 말이지.’

켄드로의 검을 막아 낸 제로가 슬쩍 실비테르를 바라봤다.

놈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다.

다만, 제로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약간의 빈틈만 드러내도 놈은 언제, 어느 때라도 마법을 쏟아내 자신의 목숨을 앗아 갈 것이라는 것을.

“까다롭네.”

“끌-! 그러한가?”

불쾌감이 가득 들어찬 제로의 중얼거림에, 켄드로가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그러한 말을 하는 와중에도 켄드로의 검은 멈추지 않았는데, 그것이 더욱 제로의 불쾌감을 가증시켰다.

“그렇다면 먼저 마법사의 정신부터 뒤흔들어야겠지.”

카앙-!

“큭-!”

제로가 검에 쥔 손에 힘을 주며 켄드로를 튕겨 냈다.

갑작스러운 힘의 변화에 당황한 켄드로가 뒤로 밀려나는 순간….

스킬 발동, 데스 로어.

크아아아-!

제로의 입이 쩍! 벌어지며 죽음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포효 속에는 막대한 죽음이 깃들어 있었으며, 그 포효에 휘말린 병사나 기사들은 털썩털썩 쓰러졌다.

다만….

“크윽-!”

“골이 다 흔들리는군.”

가장 가까이서 휘말린 켄드로와 실비테르, 그 둘은 머리만 감싸 쥐고 있을 뿐, 죽음에 다다르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상관없어.’

굳이 죽이지 않아도, 데스 로어로 실비테르의 정신만 뒤흔들어 놓으면 그만이었다.

데스 로어로 정신을 뒤흔들어 놓으면, 그만큼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이 줄어들거나 제한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 뒤에는….

스킬 발동, 데스 그라운드.

키이이이이잉-!

제로의 몸에서 흘러나온 죽음이 바닥에 깃드는 순간, 기괴한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제로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던 데스 그라운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건 안 되나.”

제로는 데스 그라운드가 사라지는 모습에 쯧! 하며 혀를 찼다.

아무래도 발밑에, 죽음의 심장을 봉인하기 위해 사용한 신성력에 데스 그라운드가 역으로 밀려 집어삼켜진 것이리라.

비록 데스 그라운드로 켄드로의 막강한 신체 능력에 제약을 걸 순 없지만….

“이정도만으로도 충분하지.”

실비테르의 힘을 제약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였다.

한편, 인간을 초월한 기사란 이런 것일까.

데스 로어에 휘말려 뒤흔들린 정신을, 실비테르보다 더욱 빨리 수습한 켄드로가 제로를 바라봤다.

“이런 수를 숨겨 두고 있었을 줄이야. 이거 장난식으로 하면 저번처럼 놓쳐 버릴 가능성이 크겠구만.”

“그러니 내 말하지 않았는가.”

켄드로의 말에 실비테르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런 실비테르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자네는 좀 쉬고 있게나. 저놈은 내가 후딱 처리함세.”

콰앙-!

그 말을 끝으로 켄드로가 움직였다.

그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에서 황금빛 오러가 폭발했다.

켄드로는 그 폭발을 통해 얻은 가속력으로 한줄기 선이 되어 제로를 향해 쏘아졌다.

“칫.”

스킬 발동, 데스 본 실드.

쩌엉-!

제로의 앞으로 흑골의 방패가 만들어지며 켄드로의 검을 막아 냈다.

그나마 데스 그라운드 덕분에 바닥에서 올라오는 신성력의 기세가 한풀 꺾였기 때문일까.

켄드로의 검을 막아 낸 데스 본 실드는 사방으로 금이 그어졌을지언정, 허무하게 부서지지는 않았다.

“제법 단단한 방패로군. 허나…!”

콰가가가각-!

켄드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장난스러움과는 다르게 자신의 검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목을 노리며 휘두른 자신의 검이 막히자, 켄드로는 한껏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는데, 그렇게 휘둘러지는 켄드로의 검은 더 이상 제로의 눈이 쫓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크윽-!”

제로가 데스 본 실드에 막대한 죽음을 불어넣으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진심이 된 켄드로가 토해 내는 무수히 많은 참격은 제아무리 제로라 하더라도 쉽사리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어디 이것도 막아 보시게나!”

속도가 실린, 무수히 많은 참격으로는 목숨을 거둘 수 없다.

그러한 판단을 내린 켄드로의 검격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 쾌의 무리를 살린, 초음속마저 돌파한 쾌검이었다면.

지금 휘둘러지는 켄드로의 검은 중과 강의 묘리가 담겨, 모든 것을 부숴 버리는 검이었다.

‘이걸 기다렸다!’

제로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켄드로의 검에 눈을 빛냈다.

죽음의 심장을 봉인한 장소는 제로의 마법으로 뚫을 수 없었다.

신성력이 제로의 죽음을 밀어내 마법의 위력을 줄인 것도 있으나 그 이상으로 온갖 종류의 결계들이 둘러쳐져 있어 철통같은 방어를 자랑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제로는 죽음의 심장이 있는 길에 다다르는 방법을 바꿨다.

스스로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힘을 역으로 이용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힘은….

‘제아무리 단단하다 한들! 인간을 초월한 기사의 진심이 담긴 일격을 막아 낼 순 없을 터!’

그러한 생각을 품은 제로는 더미 블링크를 통해 몸을 빼냈다.

제로의 본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단순한 더미뿐.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켄드로의 검은 그런 더미를 베어 넘기다 못해, 한때 제로가 딛고 있던 바닥마저 부숴 버렸다.

“이런….”

바닥을 부숴 버린 켄드로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너무 전력을 다해 버린 것일까.

잘못해서 죽음의 심장을 봉인하기 위해 힘들게 구축한 봉인식의 일부분을 망가트려 버렸다.

“뭐 하는 겐가! 켄드로!”

그 모습을 지켜본 실비테르가 버럭 외쳤다.

망가진 봉인식 사이로 죽음의 심장이 내뿜는 죽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나마 잿빛 마탑의 마탑주가 저것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해 저것이 그 힘을 온전히 다룰 수 있는 존재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면, 끔찍한 재앙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그래, 마치….

“이, 이런! 켄드로! 놈을 막게나!”

제로를 떠올리며 그 광경을 바라보던 실비테르가 다급히 외쳤다.

그에 켄드로의 시선이 돌아가는 순간….

“고맙다.”

데스 임팩트를 통해 가속력을 얻은 제로가 한줄기 선이 되어 켄드로를 스쳐 지나갔다.

켄드로는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제로를 향해 손을 내뻗었지만, 한발 늦었다.

제로는 이미 켄드로가 부숴 버린 봉인식의 구멍을 통해 죽음의 심장 앞에 도착했다.

“젠장! 켄드로! 어떻게든 막게나! 저것마저 빼앗긴다면 무슨 수로 폐하를 뵙겠나!”

“알고 있네!”

다급히 울려 퍼지는 실비테르의 외침에 켄드로 또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이미 늦었어.”

제로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켄드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미 그는 봉인되어 방 한가운데에 두둥실 떠다니고 있던 죽음의 심장을 회수한 지 오래였다.

“놈! 그것을 놓지 못할까!”

“응, 싫어. 이건 원래 잿빛 마탑의 신물이야.”

켄드로가 검을 휘두르자, 반월형 모양의 황금빛 오러들이 제로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허나 지금은 신성력도, 봉인식도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무엇하나 제로의 힘을 억압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급히 토해 낸 오러가 제로의 발을 묶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콰가강-!

켄드로가 토해 내는 오러들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를 죽음의 장막에 막혀 허무하게 사라졌다.

한편, 그러한 죽음의 장막 너머에 있는 제로는….

“그럼 다음에 보자.”

스킬 발동, 데스 게이트.

등 뒤로 만들어진 죽음의 문을 통과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제로를 놓쳐 버린 켄드로와 실비테르는 극심한 분노에 사로잡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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