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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04화 (104/200)

제104화

“어…, 오랜만이야?”

제로가 어색한 웃음을 내비치며 손을 흔들자, 켄드로의 입가에 걸쳐진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네놈 덕분에 폐하께 얼마나 갈굼 당했는지 아느냐? 이 나이에 갈굼 당하는 것도 힘들더구나.”

“하하! 그, 그랬어?”

살기 등등한 켄드로의 목소리에 제로의 입에서 다시 한번 어색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켄드로는 그런 제로를 향해 한발, 한발 걸어 나가며 말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쿠구구구-!

말을 하는 켄드로의 몸에서 막대한 존재감과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그저 단순히 걷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공기가 제로를 무겁게 짓눌렀다.

“으음…, 나는 딱히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그냥 도둑맞은 물건을 되돌려 받을 생각뿐이란 말이지.”

딱히 싸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황제나 켄드로. 그리고 푸른 마탑의 마탑주를 괴물이니 뭐니라며 올려 쳐줬지만, 제로 또한 오버 데스. 초월자의 격을 획득한 상태다.

그 힘을 로스트 월드의 시스템이 제대로 읽어 낼 수 없을 뿐, 레벨로만 따지자면 800레벨을 돌파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허, 이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순순히 발을 빼겠다? 이런 호로 잡노무 새끼를 봤나.”

켄드로는 제로의 말에 소박한 웃음을 내뱉으며 말했지만, 그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살기는 상당했다.

그 살기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것인지, 켄드로를 따라 내려오려던 기사들이 주춤할 정도였다.

“음…, 어떻게 안 될…!”

“될 거라 생각했느냐?”

콰가강-!

켄드로가 제로의 말을 자르며 검을 휘둘렀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쾌속하게 휘둘러지는 검에선 황금빛 오러가 튀어나와 제로를 향해 쏘아졌다.

그에 제로는 더미 블링크를 통해 몸을 빼냈는데, 그렇게 제로가 몸을 빼내기 무섭게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더미와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이 일어난 장소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낸 제로는, 죽일 생각이 가득한 켄드로의 공격에 인상을 찌푸렸다.

켄드로 한 명뿐이라면 딱히 죽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음의 심장만 회수해 몸을 빼내기엔 상당히 힘들었다.

이러나저러나 켄드로 또한 800레벨을 돌파한 초인 중의 초인. 아니, 어쩌면 인간이라는 카테고리를 반쯤 벗어난 괴물임은 틀림없으니.

“이거 나도 진심으로 임하지 않으면 어렵겠는데?”

스킬 발동, 데스 캐논.

후웅-!

콰앙!

앞으로 내뻗어진 손바닥 앞으로 거대한 죽음의 탄환이 쏘아졌다.

죽음의 탄환, 데스 캐논은 켄드로와 충돌하며 아까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짙은 흙먼지를 피어올렸다.

얼핏 보면 상당한 위력을 자랑하는 데스 캐논이었지만….

푸확-!

흙먼지 속에서 켄드로는 아무런 상처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전신에는 황금빛 오러가 둘러쳐져 있었는데, 그는 그것으로 데스 캐논을 막아 낸 것이다.

“아, 이럴 거 같았어. 끌,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콰가강-!

켄드로의 발밑에서 황금빛 폭발이 일어났다.

켄드로는 그 폭발을 통해 가속력을 얻어, 제로를 향해 한 줄기 황금빛 선이 되어 쏘아졌다.

“아놔.”

스킬 발동, 데스 본 실드.

스킬 발동, 망자의 벽.

콰가강-!

제로의 앞으로 죽음을 머금은 흑골의 방패가 만들어짐과 동시에 수백의 망자들이 얽히고설킨 벽이 치솟았다.

허나 그것들은 켄드로가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를 두른 검을 휘두르는 순간,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고작 이따위로 날 막을 수 있을 성싶으냐!”

데스 본 실드와 망자의 벽을 가볍게 돌파한 켄드로는 순식간에 제로의 앞에 도착했다.

“어디 한번 막아 보거라!”

후웅-!

제로의 앞에 도착한 켄드로가 무자비한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묵직한 파공음을 동반하며 휘둘러지는 검에는 중의 묘리가 깃들어 있었다.

켄드로가 펼치는 중검은, 불과 며칠 전 지배권을 획득한 데스 나이트 킹의 중검보다 수십, 수백 배는 더욱 무거웠다.

하지만….

“나도 어느 정도 내 힘에 익숙해졌거든.”

제로가 주먹을 꽉 움켜쥐자, 죽음이 뭉쳐 들며 켄드로의 검을 막아 냈다.

죽음이 뭉쳐 만들어진 방패와, 켄드로의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둘러쳐진 검이 충돌하며 사방으로 충격이 퍼져 나갔다.

스킬 발동, 데스 건.

투두두두두-!

방패와의 충돌로 생긴 충격은 켄드로라 하더라도 쉽사리 흘려보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켄드로는 일순, 몸을 비틀거리며 빈틈을 내보였고 제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손을 총 모양으로 쥔 제로의 손가락에서 죽음으로 이루어진 수백 발의 탄환이 쏟아져 나오며 켄드로의 전신을 두드렸다.

“쿠흡-!”

켄드로 또한 다급히 전신에 오러를 두르며 방어했으나, 너무 급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충격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일까.

제로가 쏘아 대는 데스 건은 미약하나마 켄드로의 오러를 뚫으며 그의 육체에 상처를 입혔다.

‘이 정도로 충분해.’

제로는 켄드로의 몸에 ‘미약하나마’ 상처를 입혔다는 것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내비쳤다.

데스 건은 말 그대로 죽음으로 이루어진 총알을 토해 내는 스킬이다.

탄환 하나하나가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스치기만 해도 그 상처를 통해 죽음이 흘러 들어가 치명상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켄드로라 해도 다를 바 없었지만….

“역시나 괴물이라니깐.”

800레벨을 돌파해, 반쯤 초월자의 영역에 들어선 켄드로의 생명력. 그리고 그 육체에 축적된 풍부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오러는 상처를 통해 흘러 들어간 죽음을 역으로 집어삼키며 지워 버렸다.

그 모습에 제로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크흐-. 과연, 그때보다 몇 단계나 더더욱 강해졌군.”

폭격과도 같이 쏟아지는 데스 건의 세례가 끝나자, 켄드로가 낮은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그는 첫 번째 만남 이후 불과 몇 달 흐르지 않았음에도 몰라보게 강해진. 아니, 어쩌면 스스로와 비등한 강함을 쌓아 올린 제로에 순수한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하지만…!”

푸확-!

제로를 바라보며 눈을 빛내는 켄드로의 전신에서 황금빛 오러가 폭발했다.

“아직 부족하…!”

“네, 거기까지.”

켄드로가 한층 더 호승심을 불태우며 제로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머리 위에서 낯선 중년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 켄드로는 언제 오러를 폭발시켰냐는 양, 순식간에 그 기세를 거두었다.

“아, 미치겠네.”

제로는 점차 가까워지는 제3자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너까지 나오냐.”

불만 어린 목소리를 내뱉으며 위를 올려다본 제로의 눈에 들어선 것은 한 명의 마법사였다.

그는 황금빛 수실로 기하학적 무늬를 새긴 푸른 로브를 걸치고, 후드를 푹 뒤집어써 얼굴을 가린 채였다.

오른손에는 로브와 비슷하게 시리도록 푸르른 보석이 박혀 있는 스태프를 쥐고 있었는데, 황궁 내에서 그런 복장을 하고 있는 존재는. 아니, 이 정도로 강대한 존재감을 내뿜는 마법사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제국 황실 마법사이자 푸른 마탑의 마탑주, 실비테르.”

푸른 마탑의 마탑주, 실비테르.

제국의 황제. 그리고 황룡 기사단의 단장이자 드래곤 슬레이어라 불리는 켄드로와 마찬가지로 제국 3대 괴물이자 기둥이라 불리는 존재.

그리고 마법사 계열 NPC중 유일하게 800레벨을 돌파한 존재.

그가 냉기를 욱여넣은 듯한, 푸른 마나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바닥에 내려섰다.

켄드로는 뜬금없이 나타난 실비테르에 인상을 찌푸렸다.

“네놈이 여긴 어쩐 일이냐.”

“폐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감히 두 번이나 황궁에 무단으로 침입한 침입자를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라고 말이지요.”

“으음…, 황제 폐하께서….”

황제의 명령이 떨어졌다는 말에 켄드로가 당황한 표정을 내비치는 사이, 실비테르는 제로를 바라봤다.

“흠. 그때도 생각했지만 자네는 평범한 리치가 아니로군. 괜찮다면 자네의 정체를 알려 주겠나?”

한편 실비테르는 한눈에 제로가 ‘평범한 리치’가 아니라는 것을 꿰뚫어 봤다.

지금까지 제로의 정체를 꿰뚫어 본 존재는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와 아크 리치 외에 몇 없었기에, 제로는 실비테르가 자신의 정체를 꿰뚫어 봤다는 것에 다소 놀람을 표출했다.

하지만….

“내가 왜?”

꿰뚫어 본 것은 꿰뚫어 본 것이고, 정체를 알려 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제로 스스로가 나서 정체를 떠벌리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그러한 제로의 말에 실비테르가 허허! 하며 인자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래, 그렇지. 자네가 굳이 ‘적’인 나에게 정체를 밝힐 의무는 없지.”

실비테르가 음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가려진 후드 너머로 푸른 안광이 번뜩이는 순간….

스킬 발동, 더미 블링크.

파앗-!

제로가 더미를 만들며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더미가 놓인 공간에 거대한 얼음 동상이 만들어지며 주변으로 짙은 냉기를 흩뿌렸다.

“다짜고짜 공격하기 있어?”

“음? 내가 말하지 않았나. 황제 폐하께서 자네의 죽음을 원한다고. 폐하의 신하 되는 자로서, 그 명을 이행해야 하지 않겠나?”

“뭐, 그렇긴… 하지!”

스킬 발동, 망자의 폭격.

실비테르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제로가 기습적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제로를 중심으로 튀어나온 수백의 망자가 다종다양한 무기의 형태로 뒤바뀌며, 실비테르와 켄드로를 향해 쏟아졌다.

“흠.”

실비테르는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망자의 폭격에 스태프를 내리찍었다.

그에 딱!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허공을 부유하는 수분이 얼어붙으며 거대한 방패 형상이 만들어졌다.

그 방패는 실비테르와 켄드로를 전부 뒤덮어, 제로가 사용한 망자의 포격을 손쉽게 막아 냈다.

아니, 손쉽게 막아 낸 것은 아니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망자의 폭격에 실비테르가 만들어 낸 얼음의 방패는 결국 박살이 나 버렸으니.

한편 실비테르는 자신의 방패를 깨부순 제로에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이거 대단하군. 저 아이, 네크로맨서라 했나?”

“그래.”

실비테르의 질문에 켄드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에 실비테르의 얼굴에 깃든 놀람이 한층 더 진해졌다.

“보통의 네크로맨서들이 다루는 사마력과는 그 본질부터가 다르군. 그들의 사마력이 죽음을 ‘흉내’ 낸 것이라면…, 저 아이의 기운은 죽음 그 자체일세. 자네, 도대체 이 기운을 어떻게 버텨 낸 건가?”

실비테르의 놀람은 제로에게서 켄드로에게 넘어갔다.

실비테르 스스로가 느낀 제로의 기운, 죽음은 평범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초인이라 하더라도 피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생명’을 품은 모든 존재라면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그리고 거역할 수도 없는 기운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로라 불리는 저 존재가 다루는 기운은 죽음 그 자체였으니.

한편 켄드로는 그런 실비테르의 놀람에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 정도는 기합으로 해결할 수 있다네. 자네는 아직 기합이 부족하구만. 그러니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는가. 마법사로서 지식을 쌓는 것도 좋지만, 조금은 육체적인 단련도 병행하라고.”

“지금 그 말을 할 때인가?”

때아닌 켄드로와 실비테르의 티키타카에 제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내비치고 있을 때….

“그래, 지금은 우리끼리 잡담을 나눌 때가 아니었지.”

쾅-!

돌연 켄드로가 바닥을 박차며 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선은 자네부터 제압해야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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