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이거 접속은 되려나….”
청와대에서 돌아온 제로는 로스트 월드 전용 캡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인간의 몸뚱어리에서, 망자의 육신이 되었기에 캡슐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불안한 제로였다.
특히나 로스트 월드 내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에, 이대로 접속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그만큼 곤욕스러운 것 또한 없었다.
“일단 부딪쳐 봐야지.”
한참을 고민하고, 생각에 잠겨 있던 제로는 결연한 분위기로 캡슐에 몸을 뉘었다.
로스트 월드에 접속이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현실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한 마음으로 로스트 월드에 접속하는 순간….
‘아-.’
낮은 감탄사를 터트리기 무섭게 제로의 시야가 변했다.
깊은 어둠 속에 빨려 들어간다고 느껴지는 순간, 제로는 어느새 로스트 월드. 개중에서 완벽하게 지배권을 확립한 망자의 거성의 홀에 위치한 왕좌에서 눈을 떴다.
“접속은 됐는데….”
왕좌에서 몸을 일으킨 제로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망자의 육신으로 로스트 월드에 접속하는 순간, 제로는 언제나 품고 있던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제로가 품고, 생각하며, 고민했던 의문.
그것은 어째서 사람들이 로스트 월드 속의 힘을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느냐였다.
회귀 전부터. 그리고 회귀 후에도 했던 기나긴 고민의 해답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거의 아바타 마법과 비슷한 원리네.”
속삭이듯 중얼거린 제로는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사람들이 로스트 월드 내에서의 힘을 현실에서 각성할 수 있었던 이유.
그 이유는 로스트 월드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영혼에 있었다.
로스트 월드는 지구를 관장하는 신이 허상계의 침입을 막아 내기 위해 마련한 무대다.
단, 그러한 무대는 실존하는 차원으로, 허상계의 침입에 멸망 당한 차원이기도 했다.
신은 그러한 차원에 말 그대로 또 하나의 육신을 만들어, 캡슐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현대의 사람들의 영혼을 뽑아 이식했다.
하나의 영혼에 두 개의 육신.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 현상을 버틸 수 없으나, 신이 취한 무언가의 조치 덕분에 사람들은 그러한 현상을 버틸 수 있었다.
또한 같은 영혼을 사용했기에, 로스트 월드 내에서 사용했던 힘이 영혼에 각인되며, 지구로 돌아가는 순간.
그 영혼에 각인된 힘이 지구에 존재하는 육신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것이 사람들이 로스트 월드 내에서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원인이었다.
어쩌면 회귀 전에도, 스스로가 숨겼을 뿐. 로스트 월드에서의 힘을 한발 앞서 사용할 수 있게 된 사람이 존재했을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제로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내뱉었다.
나름 고민에 고민을 했던 의문이었는데, 그러한 의문의 진실에 너무나도 손쉽게 다가가니 도리어 허탈감마저 느껴졌다.
“아니, 지금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야.”
그러한 중얼거림과 함께 제로가 움직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역시….
“잿빛 마탑의 마탑주가 되는 일이겠지.”
마탑주가 되기 위해서는 마지막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그것은 시작의 도시에 자리 잡은 황궁 어딘가에 있을 잿빛 마탑의 신물을 획득하는 것.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신물을 획득하기 위해선 괴물들과 마주해야 한다.
유일 제국의 황제.
황룡 기사단의 단장이자, 드래곤 슬레이어 켄드로.
제국 황실 마법사이자 푸른 마탑의 마탑주.
그 외에도 황궁 내부에는 온갖 고레벨 NPC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제로라 할지라도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가야지.”
담백하게 중얼거린 제로의 몸이 죽음에 휩싸이는 순간, 그 육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망자의 거성에서 사라진 제로가 나타난 장소는….
“오랜만… 인가?”
모든 유저의 모험이 시작되는 장소, 시작의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였다.
* * *
스킬 발동, 죽음의 외투.
펄럭! 하는 순간, 제로의 몸 위로 잿빛의 외투가 걸쳐졌다.
방금 발동한 스킬, 죽음의 외투는 일종의 은신계 마법이었다.
죽음을 둘러 모든 마법적, 물리적인 간파계 스킬들을 무시하는 그것은 최고의 은신 마법이라 제로는 감히 자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죽음의 외투를 두른 제로는 과거, 황궁 내부에 숨어 들어갈 때 사용했던 루트.
이제는 모두에게 밝혀져, 황실에서 직접 관리하는 사냥터 중 하나가 된 지하 하수도를 이용했다.
하수도 내부에는 수많은 중레벨 플레이어들이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황실에서 직접 관리하다 보니 곳곳에 경비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경비병들의 존재 의의는 단 하나. 유저들이 하수도 깊숙이 들어가, 황궁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병사들의 감시는….
‘나에게 통하지 않지만 말이야.’
죽음의 외투를 두른 이상, 제로를 발견하기 위해선 켄드로나 황제. 혹은 푸른 마탑의 마탑주 정도는 돼야 했다.
그렇게 제로는 수많은 유저와 병사들을 제쳐 걸어갔다. 그렇게 몇 분 동안 걸어 나갔을까.
제로는 과거에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던 황제의 집무실로 향하는 입구에 도착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무언가 조치를 취했을 거라고는 예상은 했지만…, 설마 아예 통째로 막아 버릴 줄은 몰랐는데.”
제로가 귀찮게 됐다는 듯, 두개골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제로의 앞에는 구.황제의 집무실로 향하는 입구가 있었지만, 그러한 입구는 물리적으로. 그리고 마법적으로 막혀 있었다.
황실에서는 아예 황제의 집무실을 옮겨 버리고, 하수도와 통하는 입구를 강철을 통해 틀어막았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푸른 마탑의 마탑주가 직접 각종 마법을 각인시켜 평범한 유저. 아니, 랭커급 유저라 하더라도 침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한 조치가 취해진 입구를 통과할 수 있는 유저는 극소수로, 다크 로드로 전직한 스타툰. 그 외에 몇몇 특수한 직업이나 종족을 가진 유저들뿐이었다.
물론 제로는….
“이 정도야 손쉽지.”
그래도 어쩌겠는가.
황궁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신물을 구하기 위해선, 이 루트가 가장 빠르고 가장 안전한 것을.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제로는 망설임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사용, 망자화.
파앗-!
스킬을 발동하자, 제로의 몸뚱어리가 반투명하게 변했다.
스킬, 망자화.
말 그대로 육신을 망자처럼 변화시키는 스킬이다.
망자화가 발동되면 평범한 물리 공격은 모조리 무시하며, 마나가 깃든 공격이나 마법이라 할지라도 최소 마스터 레벨 이상인 강자의 공격이 아닌 한 모조리 무시해 버린다.
또한 망자의 특성상, 평범한 벽 따위는 손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다만, 망자화를 사용해 황궁을 둘러싼 성벽을 뚫고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애초에 황궁 자체가 상당한 결계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하수도는 과거에 버려졌고, 뒤늦게 제로 덕분에 알게 되었다 한들 황궁과 마찬가지의 마법적 처리를 할 수 없기에 이런 편법이 통하는 것뿐이었다.
“그럼 가 볼까.”
망자가 된 제로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며 벽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푸른 마탑의 마탑주가 설치한 결계를 요리조리 피해 도착한 장소는….
“또 여기냐.”
딱히 좋은 기억은 없는 황실 도서관이었다.
아무래도 결계를 피하고 피하다 보니, 구 황제의 집무실에서 상당히 떨어진 황실 도서관에 도착한 듯 보였다.
“지금부터는 타임 어택이다.”
황실 도서관 구석에 자리 잡은 제로가 망자화를 풀며 중얼거렸다.
여기까지는 몰래 잘 숨어 들어왔다 해도, 잃어버린 잿빛 마탑의 신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드러내야 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빠르게.
켄드로나 푸른 마탑의 마탑주. 그 외의 기타 등등 귀찮게 구는 기사들이나 마법사들이 도착하기 전, 최대한 빠르게 신물을 입수해 빠져나가야 한다.
“우선….”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두 눈을 감으며 사방으로 죽음을 퍼트렸다.
극히 미세하고, 극히 옅게.
제로는 최대한 황궁 곳곳에 새겨져 있는 결계에 걸리지 않도록 죽음을 퍼트리며 신물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얼마간 죽음을 퍼트렸을까.
제로는 황궁의 지하에, 유독 순수하면서도 강대한 신성력과 온갖 종류의 결계가 쳐져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찾았다.”
황궁 내에서 이만한 신성력이 깃들어 있는 장소는 잿빛 마탑의 신물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잿빛 마탑의 신물은 죽음의 심장이라 불리는 보주로써, 방대한 양의 죽음.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네크로맨서들이 다루는 사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을 평범한 인간이 손에 쥔다면 순식간에 생명이 빨려 죽음을 맞이하게 만들고. 그렇게 죽어 버린 시체를 다시 언데드로 되살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살육하는 괴물로 재탄생 시킨다.
그러한 것을 황실에서 아무런 조치도 없이 막 놔두지는 않았을 터이니, 죽음에 감지된 그곳이 정확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침입자 발생!
모두 흩어져서 침입자를 찾아라!
신물이 잠들어 있는 장소를 찾은 것은 좋았으나, 황실 측에 자신의 존재를 들키는 것만큼은 제로 또한 어찌할 수 없었다.
“뭐, 이왕 들킨 거. 화끈하게 가 보지 뭐.”
괴물들과의 만남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화려하게. 자신의 힘을 드러내는 편이 도리어 그들을 잠깐이라도 주춤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기에….
스킬 발동, 데스 임팩트.
콰앙-!
제로의 오른발이 바닥을 내리찍는 순간, 거대한 충격이 퍼져 나갔다.
황실 도서관은 그 특수성과 중요성에 의해 다른 곳보다 더욱 방비가 뛰어나다.
그것은 바닥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황실 도서관의 바닥은 어지간한 공격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경도를 자랑한다.
그런 황실 도서관의 바닥이…, 스킬 한 번에 파도처럼 출렁이며 무너져 내렸다.
콰르르-!
크고 작은 돌덩이가 되어 무너져 내리는 파편 속에서, 침입자를 찾아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던 병사와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천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는데, 제로는 그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안녕? 오랜만이야.”
“네, 네놈은-!”
병사 혹은 기사들 중, 과거의 난장에 참여했던 자가 있었던 걸까?
뭉쳐 있는 그들 중, 제로를 발견하기 무섭게 놀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편 제로는….
스킬 발동, 데스 임팩트.
스킬 발동, 데스 임팩트.
스킬 발동, 데스 임팩….
발을 굴리며 연신 데스 임팩트를 사용했다.
제로는 그 무식한 방식으로 바닥을 깨부수며 지하로, 지하로 내려갔다.
그렇게 얼마간 지하로 내려갔을까.
한 층만 더 내려가면 잿빛 마탑의 신물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에 다다를 터였다.
하지만….
치이익-!
마지막 바닥에 도착하기 무섭게 제로의 발바닥에서 잿빛의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잿빛 마탑의 신물, 죽음의 심장을 봉인하기 위해 펼쳐진 결계와, 신성력이 제로를 거부하고, 밀어내는 것이었다.
“이건 좀 딱딱하네.”
제로는 발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무시하며 툭툭, 바닥을 건드렸다.
이 정도의 결계와 신성력이라면 데스 임팩트를 몇 발 꽂아 넣든, 부술 수 없다.
이것을 부수기 위해선 더욱 강한 마법이 필요한데….
“그걸 사용할 틈을 주지 않겠지?”
제로가 머리 위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위로 올린 제로의 시선에는….
“오랜만이구나.”
손에 쥐어진 황금빛 검에,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를 두른 켄드로가 씨익 웃어 보이며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