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끄어어….”
같잖은 힘에 취해 제로에게 덤벼든 청년이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는 양팔과 다리가 박살이 나 있었다. 그 끔찍한 모습에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대통령. 그리고 주변에 있던 경호원들 따위가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흠.”
제로는 자신의 앞에서 바닥을 기며 고통스러워하는 청년을 바라보며 낮은 울림을 토해 냈다.
아무리 놈이 자신의 심기를 거슬렀다고 해도, 이 처사는 심했다.
이곳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다. 아직 포션도, 상처를 치료하는 마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통 또한 로스트 월드에서 느끼는 것의 수백 배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딱히 죄책감이니 뭐니 하는 감정은 느껴지지 않네.’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녹의 선봉장, 제르빌라에게 사신의 단죄를 사용한 이후 제로는 인간에서 망자가 되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제로는 현실에서마저 초월자인 오버 데스가 될 것이다.
즉,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었기에 인간의 마음마저 버린 것일까.
아니면 본래 제로라는 존재의 천성이 이러했던 것일까.
무엇하나 알 수 없지만….
‘나쁘지 않아.’
제로는 이 변화를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곧 벌어질 전쟁은 어쭙잖은 마음과 각오로는 승리를 이룰 수 없다.
괜한 정에 휩쓸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그로 인해 전쟁에서 패배한다.
그러한 결말을 내기보다는, 차라리 훗날 ‘악마’로 기록될지라도 이 냉정함을 가지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편이 더욱 좋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대통령을 바라보자, 대통령은 그런 제로의 시선에 흠칫! 몸을 떨었다.
“준비는 끝났어?”
끄덕.
제로의 질문에 대통령이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 아닌 해골의 몸뚱어리를 가지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대통령은 눈앞의 존재, 죽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제로를 보면 볼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공포가 치밀어 올랐으며, 아무리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라지만 자신이 한 선택이 틀린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그럼 이동하자.”
그러한 제로의 말에 대통령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대통령의 안내를 받아 제로가 도착한 장소는 청와대에 자리 잡은 대회의실이었다.
그곳의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자리 잡았으며, 그 스크린에는 각기 대국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나라들의 정상들의 얼굴이 내비쳐지고 있었다.
“모두 반가워.”
제로는 미리 마련된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 안하무인격인 태도에 몇몇 정상들이 인상을 찌푸렸으나, 여과 없이 드러나는 제로의 흑골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괴물.
그리고 그런 괴물 수백 마리를 역으로 사냥한, 한국에서 나타난 또 다른 괴물, 제로까지.
이 모든 것의 전말을 알기 위해선 그러한 괴물들을 손쉽게 사냥했던 제로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했다.
“그럼 시간도 없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자. 우선….”
[그 전에 한 가지 질문이 있네.]
허상계의 침공.
그리고 지구에 나타난 허상괴와 로스트 월드의 힘을 각성하기 시작하는 유저들.
그것들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려는 찰나, 누군가가 제로의 말을 끊었다.
그에 오른쪽 눈구멍에 자리 잡은 제로의 붉은 흉안이 데굴데굴 구르며 자신의 말을 끊은 정상을 응시했다.
제로의 말을 끊으며 질문이 있다 입을 연 존재는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자네는… 인간이 맞는 건가?]
“흠?”
미국 대통령의 질문에 제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이걸 질문이라고 하는 것일까?
자신의 육신은 타인이 보든, 스스로가 보든….
“이 모습을 보고도 그런 질문이 나와?”
자리에서 일어난 제로가 양팔을 펼치며 말했다.
그런 제로의 육신을 타고 짙은 죽음이 안개와도 같이 흘러나왔다.
죽음으로 이루어진 안개에 둘러싸인 채 한 손에 기괴한 네크로노미콘을 쥔 흑골의 해골.
비록 거대한 낫은 아니었지만, 그 모습은 신화 속에 존재하는 사신 혹은 죽음 그 자체였다.
그런 제로의 되물음에 미국 대통령이 크흠! 하며 헛기침을 터트렸다.
“그럼 이제부터 설명에 들어….”
[나도 한 가지 질문이 있네.]
본격적으로 설명을 시작하려는 순간, 또 한 명의 장성이 제로의 말을 끊었다.
이번에 제로의 말을 잘라먹은 사람은 한국과 가장 가까이에 붙어 있는 나라 중 하나, 일본이었다.
제로의 영향으로 가장 많은 허상괴가 나타난 나라가 한국이다.
녹의 선봉장 제르빌라가 한국. 그것도 서울에 나타난 이유 또한 어느 정도 제로의 존재와 연관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한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허상괴들이 나타난 나라가 바로 중국과 일본이었는데, 개중 일본의 총리가 입을 열고 있었다.
[자네는 ‘어느 쪽’의 편인가?]
“무슨 뜻이야?”
이해할 수 없는 일본 총리의 질문에 제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근육도, 피부도 존재하지 않는 제로였으나 분위기만 봐도 제로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는 한국의 대통령이었다.
[말 그대로일세. 겉으로 보기에 자네는 ‘한국인’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어디에 속해 있는 존재인가?]
하….
이어진 일본 총리의 질문에 제로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곧 있으면 허상계의 침공이 시작된다.
아니,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일본 또한 수없이 많은 허상괴들의 난동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런 와중에….
‘이딴 정치적 장난이나 치려고 하다니.’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의 붉은 흉안이 데굴데굴 구르며 일본 총리를 응시했다.
사신의 흉안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그것과 눈이 마주치자, 일본 총리가 흠칫 몸을 떨었다.
일본 총리는 실제로 마주하지 않고, 단순히 모니터 사이로 마주했음에도 정신 깊숙이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포를 막을 수 없었다.
[정 소속된 단체나 국가가 없다면, 우리 일본은 어떠한….]
“하-.”
오싹-!
일본 총리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제로의 불쾌감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러한 불쾌감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 제로의 입이 벌어지며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벌어진 입 사이로 죽음으로 이루어진 연기가 흘러나왔는데, 그 연기에 닿기 무섭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나마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뒤에 있고. 제로의 주변에 있는 것은 경호원들뿐이었지만, 그런 경호원이라도 사람은 사람.
제로가 뿜어낸 죽음으로 이루어진 연기는 그들의 목숨을 망설임 없이 앗아갔다.
[무슨…?]
[자네도 그들과 같은 괴물이란 말인가!]
자의가 아니라 할지라도, 제로의 입에서 흘러나온 죽음이 경호원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각국의 정상들이 뭐라 뭐라 외치기 시작했다.
억지를 써 가면서까지 제로를 깎아 내리려는 모습은, 어린아이의 생떼와도 같아 보였다.
물론 제로는 저들이 이런 억지스러운 말로 자신을 깎아 내리려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이런 인간들은 존재했다.
인류의 멸망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에도, 어떻게든 자신들의 그 알량한 권력을 유지해 보겠다고 생떼 아닌 생떼를 부리는 인간들.
물론 그때는….
“모조리 죽여 버렸었지, 아마?”
로스트 월드는 수억의 사람들이 즐겨 했던 게임이다.
개중에는 당연하게도 사이코패스 같은 존재들 또한 있었으며, 살인을 하는 것에 있어 아무런 죄책감도,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 또한 존재했다.
그것이 설령 게임이 아닌, 단 하나의 목숨밖에 없는 현실에서의 살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회귀 전, 몇몇 플레이어들이 대표로 나서 쓸데없는 말과 알량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트롤짓을 하는 인간들은 모조리 죽여 버린 적 또한 있었다.
그때에는 그러한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제로였지만, 지금은….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가네.’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크린에 비쳐지는 각국의 정상들의 개소리는 여전했다.
아니, 그들의 개소리는 더욱 심해졌는데 그것은 제로가 저도 모르게 내뱉어 버린 ‘모조리 죽여 버렸다.’라는 말에 의해 더욱 심해졌다.
그들은 어떻게든 제로를 허상괴와 같은 괴물로 몰고 가며, 어떻게든 자신들의 밑에 둬서 그 힘을 가지려고만 생각했다.
아니, 몇몇은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다른 누구도 가질 수 없게 만들겠다는 생각마저 품고 있었다.
그러한 장성들의 행동에 제로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다 못해, 점차 싸늘하게 식어가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꿀꺽! 침을 삼키며 식은땀을 흘렸다.
“모두 조용.”
싸아아-.
천천히 열리는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주변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공기는 한없이 무거워지고 싸늘해지기까지 했다.
그러한 변화를 스크린 너머의 정상들 또한 느낀 것일까.
아니면 제로에게서 은은히 흘러나오는 살기를 깨달은 것일까.
제로가 있는 회의실은 어느새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내가 니들 개소리를 들어 주려고 모은 게 아니거든?”
[개, 개소리라니!]
[말이 심하다!]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딴 망…!]
“누구긴. 평범한 ‘인간’ 아니야?”
오싹-!
제로의 말에 몇몇이 발끈해 외쳤으나, 이어지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여기서 몇 마디 덧붙였다가는, 아무리 수천 킬로나 떨어진 장소에 있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조치는 취해 둬야겠지.’
생각을 마친 제로의 몸에서 미약한 죽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사방으로 뻗어나가, 각국의 정상들의 몸에 흡수되었다.
그들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상관이 없었다.
제로가 퍼트린 죽음이 스며든 정상들의 몸 곳곳에는 해골 모양의 문양이 새겨졌다.
부르르-!
죽음이 깃들자, 각국의 장성들은 저도 모르게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한편, 어느 정도 조용해지자 그제서야 제로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시간 없으니 후딱 끝내자, 응? 개소리는 좀 자제하고.”
[아, 알겠네.]
제로의 말에 미국 대통령이 대표로 나서며 대답했다.
“좋아. 그럼 우선 허상계와 허상괴들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하지.”
허상계와 허상괴.
그것은 회귀 전 플레이어들이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그들의 본질적인 이름을 알 방법이 없었기에 임의로 붙였을 뿐이다.
다만, 그것만큼 어울리는 이름도 없었다.
허상괴는 본래 육체를 가지지 않은, 정령이나 마족. 천족과 같은 정신체였다.
그런 허상괴들은 각 차원을 침공했을 때, 그 차원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육신에 깃들어야지만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허상계 내에서라면 몰라도, 타 차원에서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외적인 존재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최상급과 왕이라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딱히 육체가 없더라도 본래의 강함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다만, 육체가 없는 만큼 본신의 강함을 모두 드러내기에는 시간적 제한이 생겼으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생물의 육체에 기어들어 가 휴식을 취해야 했다.
다음으로 허상괴들의 등급은 그 강함으로 측정된다.
허상괴들은 등급에 따라 절대적 강함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으며, 가장 약한 것이 이번 1차와 2차 침공 때 모습을 드러낸 최하급 허상괴들이었다.
그렇게 허상계와 허상괴. 그리고 앞으로 더욱 많이 나타나게 될 로스트 월드의 힘을 각성한 플레이어들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각국의 정상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들 또한 제로의 말을 모두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겪어 본 것이 있었기에 사태의 심각성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기나긴 설명이 끝을 맺을 즈음….
“아, 그리고 내가 한 가지 조치를 취할 건데 말이야. 모두 동의하지?”
그 말을 끝으로 제로의 몸에서 흘러나온 죽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