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100화 (100/200)

제100화

스킬 발동, 망자의 용기병.

또 다른 스킬이 발동하며 외차원의 창고에서 망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새로이 나타난 망자의 숫자는 총 666마리로, 그 구성은 뼈로 이루어진 와이번에, 거대한 랜스를 쥔 스켈레톤의 조합이었다.

“죽음이라. 신기한 힘을 다루는구나.”

녹의 선봉장, 제르빌라는 눈앞의 존재, 강한이 죽음을 다루는 것에 의아함과 신기함을 내비쳤다.

무릇 죽음이란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것.

그것을 어설프게 다루는 것조차 매우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스스로가 다루고 있다 자만하는 죽음에 역으로 집어삼켜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허나 눈앞의 존재는 달랐다.

그는 마치 숨을 쉬듯 너무나도 손쉽게 죽음을 다루고 있었다.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완벽하게 죽음을 자신의 의지 아래 놓고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녹의 선봉장, 제르빌라가 강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무엇이냐.”

“제로.”

단순히 이름만 내뱉은 강한이 손을 내리그었다.

그에 강한의 등 뒤에 자리 잡은 666마리의 망자의 용기병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뼈로 이루어진 날개를 펄럭이며 움직이는 망자의 용기병들은 제르빌라를 사방팔방 포위하며 공격했다.

뼈로 이루어진 와이번들은 입에서 죽음으로 이루어진 숨결을 내뱉었으며, 그 위에 올라타 있는 기사들은 손에 쥔 거대한 랜스를 내던졌다.

제르빌라는 사방을 옥죄이며 다가오는 죽음의 숨결과, 허공을 가로지르며 쏘아지는 거대한 랜스를 무심히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그와 동시에….

푸확-!

제르빌라의 입에서 녹색의 숨결이 뿜어지며 퍼져 나갔다.

맹독으로 이루어진 녹색의 숨결은 제르빌라를 향해 쏘아진 랜스를 녹여버리고. 천천히 퍼져 나가던 죽음의 숨결을 집어삼켰다.

그것은 마지막으로 666마리의 망자의 용기병마저 모조리 집어삼키고 나서야 천천히 사라졌다.

한편, 강한이 소환한 666마리의 망자의 용기병들을 모조리 지워 버린 제르빌라는 강한을 향해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흘렸다.

“고작 이 정도더냐?”

“설마.”

제르빌라의 비웃음에 강한 또한 웃음을 내비치며 손을 들어 올려 사방팔방으로 죽음을 흩뿌렸다.

강한에게서 시작된 죽음은 재빠르게 흩어져, 강한과 제르빌라를 에워싸는 거대한 구의 형태로 뒤바뀌었다.

“흠?”

제르빌라는 자신만 집어삼키지 않고, 본인 또한 구 안에 남아 있는 강한에 의아함을 내비쳤다.

“솔직히 이건 현대에서 사용하기에 뭐하거든.”

의아함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르빌라를 향해 말을 내뱉은 강한의 입이 돌연 쩍! 하며 벌려졌다.

그 모습은 아까 전, 녹색의 숨결을 내뱉은 제르빌라의 모습과 비슷했으나, 그 효과는 전혀 달랐다.

스킬 발동, 데스 로어.

크아아아아아악-!

네크로노미콘에 내장되어 있는 스킬이 발동하며, 쩍 벌어진 강한의 입에서 거친 괴성이 울려 퍼졌다.

듣는 자의 정신을 뒤흔들어, 정신력이 나약한 존재는 즉사를 면하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권능과도 같은 힘, 데스 로어가 죽음의 구체 안을 가득 메웠다.

데스 로어에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신과 영혼에 상당한 타격을 입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것은 녹의 선봉장, 제르빌라 또한 다를 바 없었다.

그 증거로 데스 로어에 휘말린 제르빌라가 돌연 몸을 비틀거리며 ‘크윽!’ 하는 낮은 신음을 토해 냈다.

“과연. 목소리에 죽음을 실어 적아의 구분 없이 모든 것을 죽여 버리는 기술이라니. 나를 에워싼 구체가 없었다면 수십만의 생명이 목숨을 잃었겠군.”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발밑을 내려다본 제르빌라가 입을 열었다.

현재 제르빌라와 강한이 싸우는 장소는 상공 1km 위의 하늘이었다.

땅에서 싸우자니, 허상괴들이 떨어진 장소가 천만 명의 인구 밀집도를 자랑하는 서울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한편 강한은 자신의 데스 로어에 휘말렸음에도 몸을 비틀거린 것이 전부인 제르빌라에 슬며시 인상을 찌푸렸다.

상대는 녹의 선봉장, 제르빌라.

상급의 허상괴이지만, 왕의 은혜를 받아 그 강함은 최상급과 비견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허상괴의 왕은 제르빌라를 선봉장으로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크흐, 그래. 왕께서 왜 이런 약소 차원에 날 선봉장으로 내세웠는지 궁금했는데…, 네놈 같은 존재가 있었구나. 넌 이 약소 차원의 수호자인 것이냐.”

수호자.

그것은 차원이 멸망할 수 있을 정도의 크나큰 위험이 닥치면 눈을 뜨는 존재다.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 한 수호자는 다시 잠들지 않으며, 그런 수호자의 강함은 어지간한 초월체와 맞먹었다.

강한 또한 그런 수호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지구에는 수호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수호자만 제대로 존재했어도 어쩌면….

‘아니, 로스트 월드의 배경이 되는 차원에도 수호자는 존재했을 터. 그럼에도 멸망했다면 지구에 수호자가 있었다 한들 멸망은 피할 수 없었을 거야.’

“날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냐!”

콰앙-!

제르빌라가 허공을 박차며 움직였다.

마치 미사일처럼 강한을 향해 쏘아진 제르빌라의 양손에는 어느새 녹색의 클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포이즌 클로!’

녹색의 클로는 제르빌라의 주 무기라 할 수 있었다.

회귀 전, 마스터 레벨에 올라선 플레이어들조차 저것에 스치는 순간, 몇 초 버티지 못하고 몸뚱어리가 흐물흐물 녹아내리기도 했다.

특히나 제르빌라가 사용하는 독은 평범한 독이 아니었기에 정신적으로도 막대한 위협이 된다.

오버 데스가 된 강한에겐 중간계의 독이 통하지 않지만, 제르빌라가 사용하는 독은 또 모른다.

그렇다면….

스킬 발동, 더미 블링크.

파앗-!

강한의 신형이 사라지며, 그 자리를 더미가 대신했다.

제르빌라의 클로는 그런 강한의 더미를 베어 넘겼는데, 그에 더미는 수 초도 지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졌다.

“흠. 고작 이 정도인…!”

퍼억-!

더미를 없앤 제르빌라가 비웃음을 내비치는 순간, 거대한 대검이 그런 제르빌라의 복부를 뚫고 튀어나왔다.

“커헉-! 무, 무슨!”

복부가 꿰뚫린 것에 제르빌라가 한 움큼 푸른 피를 토해 냈다.

“뭐, 독이 좀 위험하긴 해도 네 자체는 그리 위험하지 않거든.”

제르빌라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낸 강한이 망자의 폭거로 변한 네크로노미콘으로 제르빌라의 복부를 꿰뚫어 버린 것이다.

허나, 망자의 폭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망자의 폭거는 뚫어 버린 상처를 통해 천천히 죽음을 흘려 넣었고, 그에 제르빌라의 육체는 점차 죽어 가기 시작했다.

“고작 상급인 주제에, 어째서 네놈이 최상급의 취급을 받는지 알아?”

“네… 놈…!”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강한을 향해 제르빌라가 손을 내뻗었다.

허나 복부에 뚫린 커다란 구멍과, 육체를 갉아 먹는 죽음에 제르빌라는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건 간단해. 네가 왕에게 하사받은 은혜 덕분이야. 그 독이 아니라면 넌 단순한 상급의 허상괴에 불과하다는 소리지.”

“놈-! 약소 차원의 수호자 주제에!”

푸확-!

강한의 비아냥에 제르빌라가 힘을 쥐어짜며 버럭 외쳤다.

그와 동시에 제르빌라를 중심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녹색의 폭발에는 강한조차 무시할 수 없는 맹독이 깃들어 있었다.

다만….

“이것도 맞아야 위협적인 거야. 맞지 않으면 그만이지.”

강한은 녹색의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다시 한번 더미 블링크를 사용해 거리를 벌린 지 오래였다.

“놈….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네놈을 반드시 죽여 그 목을 왕께 바치겠다!”

푸확-!

강한을 향해 저주의 말을 내뱉은 제르빌라의 육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제르빌라의 육체는 우득! 우드득! 하는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일그러졌다. 그러기를 잠시.

곧 한 줌의 녹수가 되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무슨?”

제르빌라의 변화를 본 강한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한은 회귀 전에도 제르빌라를 상대한 적이 있었다.

제르빌라의 핵을 부순 것이 바로 회귀 전 강한이 쥔 불꽃의 칼날이었다.

다만, 지금의 변화는 그때도 본 적이 없었다.

설마….

“나에 대한 분노로 한계를 뛰어넘은 거냐.”

강한이 중얼거리는 순간, 제르빌라의 변화가 끝을 맺었다.

그릇으로 사용하던 육체는 흔적도 없이 녹아내려 사라졌다.

그런 제르빌라는 어느새 녹빛의 연기가 뭉쳐 있는 형상을 띠었는데, 그 속에서 두 개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리는 흉흉한 안광을 번뜩이며 제로를 노려봤다.

[죽여 버리겠다.]

쿠르르-!

한마디 내뱉은 것만으로 대기가 떨렸다.

강한은 한계라는 벽을 뚫어 버린 제르빌라에 인상을 찌푸렸다.

차라리 후딱 죽였어야 했다.

바로 죽여 버렸으면, 이런 귀찮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날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야.”

[크아아아-!]

강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르빌라가 움직였다.

괴성을 내지른 제르빌라의 안개와도 같은 육체에서 수백 개의 화살이 쏘아졌다.

하나, 하나가 맹독으로 이루어진 그것은 스치기만 하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나 그 숫자마저 엄청나, 죽음의 구체 안을 가득 메웠기에 어디론가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결국 강한은….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스킬 발동, 인첸트-포이즌.

강한의 앞으로 흑골의 방패가 나타났다.

그것에는 제르빌라가 쏘아 댄 맹독의 화살을 막아 내기 위해 독의 속성이 인첸트 되었는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건가.’

강한은 제르빌라의 맹독의 화살에 맞을수록 점차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흑골의 방패에 인상을 찌푸렸다.

차라리 죽음의 구체 밖으로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허나 그것은 악수 중의 악수였다.

지금이야 제르빌라가 최상급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

놈을 이대로 죽음의 구체에 남겨 둔다면, 그 힘에 적응해 지금보다 더욱 죽이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결국….

“여기서 널 죽여야 한다는 건데 말이지.”

강한은 후…, 하며 깊은숨을 내쉬며 제르빌라를 바라봤다.

아직 로스트 월드 내에서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순 없다.

결국 강한 힘을 사용하기 위해선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제로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현대에서 사용할 의태의 반지라도 만들어야 하나. 아니면 아바타 마법을 구해 봐야 하나.”

현실의 육체마저 흑골의 리치의 모습으로 고정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대가라는 이름의. 제르빌라와 마찬가지로 한 단계 위로 올라가는 것일 수도 있었다.

다만 로스트 월드와 다르게 현실에선 의태의 반지가 없었기에 앞으로 강한은 스스로를 ‘강한’이라 부를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뭐, 놈을 내버려 둘 순 없으니.”

그렇게 중얼거린 강한의 입에서 명계의 언어로 된 영창이 시작되었다.

영창이 이어질수록 강한에게서 뿜어지는 죽음은 더욱 짙어져만 갔으며, 그 죽음을 느낀 제르빌라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날뛰던 제르빌라가 괴성을 내지르며 강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제르빌라의 연기와도 같은 육신은 이곳저곳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대로 간다면 자신의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챈 제르빌라였다.

그렇기에 제르빌라는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기보다는 차라리 강한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하지만….

“소용없어.”

영창을 끝낸 강한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제르빌라를 무심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스킬 발동, 사신의 단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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