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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99화 (99/200)

제99화

콰가강.

[큭-!]

데스바인더가 묵직하게 휘둘러지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에 휘말린 데스 나이트 킹은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데스 나이트 킹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나 아크 리치와 같은 초월적인 강함을 지니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제로와 벤의 매서운 합공에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스킬 발동, 데스 개틀링.

퍼버버버벅-!

제로의 등 뒤에서 수백 발의 화살이 쏘아졌다.

데스 나이트 킹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백 개의 흑골의 화살에 검을 휘두르며 응수했으나….

“빈틈-!”

흑골의 화살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파고든 벤이 데스바인더를 휘둘렀다.

데스 블레이드가 휘감긴 데스바인더가 데스 나이트 킹의 복부에 틀어박히며,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충격이 퍼져 나갔다.

[크헉-!]

데스 나이트 킹 또한 벤이 휘두른 데스바인더의 일격에 허리를 굽히며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이제 그만 포기하지?”

[웃기지 마…!]

“응, 그래. 더 처맞고 얘기하자.”

스킬 발동, 명계의 철퇴.

데스 나이트 킹의 머리 위로 거대한 뼈의 망치가 떨어졌다.

모든 것을 박살 낼 기세로 떨어지는 명계의 철퇴에, 데스 나이트 킹이 흑검에 데스 블레이드를 두르며 응수했다.

허나….

콰앙-!

명계의 철퇴와 데스 나이트 킹의 검이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충격이 퍼져 나갔다.

비록 명계의 철퇴는 막아 냈지만 데스 나이트 킹은 멀쩡하지 않았다.

데스 블레이드를 두른 그의 검신에는 무수히 많은 금이 그어졌고, 데스 나이트 킹의 몸뚱어리는 명계의 철퇴의 중압감에 무릎까지 바닥에 처박혔다.

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데스 나이트 킹의 빈틈을 노리며 데스바인더를 휘둘렀다.

후웅-!

콰앙!

묵직한 파괴력을 겸비한 데스바인더가 데스 나이트 킹의 가슴을 강타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에 데스 나이트 킹의 육체가 허공을 가르며 수백 미터 뒤로 튕겨져 나갔다.

[커헉-!]

검을 바닥에 꽂아 넣으며 멈춰 선 데스 나이트 킹이 다시 한번 거친 비명을 내질렀다.

마법과 검.

제로와 벤의 합공은 단단한 데스 나이트 킹의 방어를 뚫으며, 그의 단단한 육체에 씻을 수 없는 데미지를 박아 넣었다.

한편 제로는 그런 데스 나이트 킹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가며 입을 열었다.

“이만 포기 하지?”

[크흐-.]

제로의 제안에 데스 나이트 킹이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까지 수세에 몰린 적이 있었던가.

비록 아크 리치에게 패배해, 그의 부하가 되었지만, 그것은 자신이 아직 데스 나이트였을 때의 이야기.

데스 나이트 킹이 된 지금, 다시 한번 아크 리치와 싸운다면 절대 지지 않으리라 자신만만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크 리치라는 과거의 벽은 진작에 허물어졌으며, 새로운 벽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비록 상대가 진심을 다한 것이 아니며, 2:1로 자신을 상대했다 한들 패배는 패배였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간단해. 내 지배하에서 조만간 벌어질 전쟁에서 싸우면 되는 거야.”

데스 나이트 킹의 질문에 제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말에 데스 나이트 킹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임으로 인해 제로는 데스 나이트 킹의 지배권을 확립할 수 있었다.

데스 나이트 킹은 제로에게 사역되는 순간, 환한 빛에 휩싸여 외차원의 창고로 사라졌다.

“이걸로 끝인가?”

데스 나이트 킹이 사라지자 벤이 제로의 곁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제로는 그런 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네가 말했던 전쟁은 언제 벌어지는 거지?”

“조만간.”

“조만간이라….”

제로의 대답에 벤이 중얼거렸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저번에 알려 줬던 것보다 더 빠르게 벌어질 거라는 거야.”

제로가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회귀 전과 비교해 허상괴들이 나타난 시점이 너무 빨랐다.

비록 지구에 나타난 허상괴들의 등급이 최하급이며, 그 숫자 또한 전쟁이 발생했을 때와 비교해 한없이 작다 해도 허상괴는 괴물.

수백의 허상괴들이 나타난 것만으로도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그것은 제로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벤은 그러한 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현실에 허상괴가, 제로에게 설명을 들었음에도 다소 의심하고 있었던 괴물들의 등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강해져. 네가 강해져야 지구를, 인류를 구할 확률이 더 늘어나니깐.”

그 말을 끝으로, 제로는 짙은 죽음에 휩싸여 사라졌다.

제로가 사라지며, 벤 또한 소환되기 이전의 장소로 되돌아갔다.

* * *

데스 나이트 킹을 마지막으로 죽음의 땅의 진정한 지배자가 된 제로는 로스트 월드의 접속을 종료했다.

매끄럽게 움직이며 열리는 캡슐에서 빠져나온 제로, 강한은 물을 들이켜며 창밖을 올려다봤다.

강한이 올려다본 하늘에는, 오직 강한만이 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는 것인지 모를 금이 그어져 있었다.

그러한 금은 저번의, 첫 번째 습격 이후 점차 진해지고 있었는데. 이 상태로 가면 최소 1년 안에 지구와 허상계가 이어져, 허상괴들의 습격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럴 순 없…!”

이번에는 반드시 지킨다.

강한이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을 때, 돌연 대기가 뒤흔들렸다.

그에 강한이 당황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미… 친…!”

강한이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대기가 뒤흔들리는 것을 느낀 것은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바쁜 걸음으로 도시를 누비고 있던 사람들 또한 당황한 표정을 내비쳤다.

그러나 제로가 욕설을 내뱉은 이유는 단순히 대기가 뒤흔들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대기가 뒤흔들린 이유는 단 하나.

하늘에 새겨져 있던 금이 돌연 진해지다 못해 쩍! 하고 갈라지며 검은 공간이 나타나며, 그 속에서 수백의 허상괴들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허상괴들을 토해 낸 검은 공간은 순식간에 닫혀 금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백의 허상괴들은 1차 습격 때와 마찬가지로 최하급 허상괴들뿐이었다.

허나 단 한 마리만은 달랐다.

그것은 인간과 유사하게 생겼으나, 전신에 초록빛 비늘을 둘렀다.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치솟아 있었으며, 번들거리는 안광을 뿜어내는 두 눈동자는 용의 그것과 같이 동공이 세로로 쭉 찢어진 녹안이었다.

강한은 그러한 모습을 한 허상괴를 잘 알고 있었다.

“녹의 선봉장, 제르빌라….”

녹의 선봉장, 제르빌라.

등급은 상급으로, 허상괴의 왕의 밑에 자리 잡은 간부 중 한 명이었다.

회귀 전에도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상위 허상괴였으며, 그것이 다루는 힘은 독이다.

제르빌라가 한 번, 한 번 손짓할 때마다 퍼져 나갔던 독은 수백, 수천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수많은 플레이어가 그런 녹의 선봉장 제르빌라를 죽이겠다고 나섰다가 역으로 목숨을 잃었었다.

특히나 제르빌라의 독에 중독된 대지는 수백 년이 흘러도 사용할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되어 버리기까지 했다.

결국 랭커들이 합심해 제르빌라를 죽일 수 있었지만, 그때까지 죽임을 당한 사람의 숫자만 수천만 명을 넘어섰을 정도였다.

그런 제르빌라가….

“어째서 벌써 튀어나온 거야!”

다급히 외친 강한이 움직였다.

창문을 깨부수며 나선 강한은 어느새 흑골의 리치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역 십자가가 새겨진 검은 신부복을 걸치고 그 위에 죽음의 옷자락이라는 이름의 로브를 뒤집어썼다.

한 손에는 그로테스크한 네크로노미콘을 쥐며, 강한은 플라이 마법을 통해 하늘에서 떨어지는 제르빌라를 향해 움직였다.

한편 하늘에서 떨어지던 제르빌라는 등 뒤로 박쥐의 날개와도 같은. 그러나 ‘녹의 선봉장’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녹색의 날개를 펄럭이다가 멈춰 섰다.

“흠.”

제르빌라는 낮은 울림을 토해 내며 발밑을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자신이 이끌고 왔던 부하들에 의해 유린당하는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제르빌라는 내심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갑작스레 나타난, 기습에 가까운 등장이라고 하나 이번에 이끌고 온 허상괴들의 등급은 최하급에 불과했다.

그 숫자마저 수백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반항다운 반항 한번 못 해 보고 죽어 나자빠지는 꼴이라니.

그렇게 제르빌라가 다소 실망 어린 눈으로 사방을 훑어보고 있을 때, 돌연 제르빌라가 ‘호오!’ 하며 낮은 목소리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래, 그래야지. 그렇게 나와야 정복하는 맛이 살지 않겠느냐.”

제르빌라는 어느 한 장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제르빌라의 눈이 닿은 장소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최하급 허상괴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개중 유독 눈에 띄는 인간이 있었으니, 그는 양손에 새하얀 냉기를 흩뿌리는 검을 쥐며 허상괴들을 베어 넘겼다.

“그럼 나도 날뛰어 볼….”

“날뛰긴 어딜.”

우득-! 우드득!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풀던 제르빌라의 등 뒤로 강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르빌라는 전신에 짙은 죽음을 두른 흑골의 괴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흠칫! 몸을 떨었다.

“네놈은 무엇이냐.”

강한을 향한 제르빌라의 두 눈동자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그것은 무언가 인간의 느낌을 풍기면서도, 인간이 아닌 느낌을 내비쳤다.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마치 ‘죽음’을 마주한 느낌을 풍기는 괴물의 등장은, 제아무리 제르빌라라 하더라도 긴장감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강한이 그런 제르빌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널 죽이러 온 사신.”

파라랏-!

강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네크로노미콘의 페이지가 미친 듯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제르빌라를 죽여야 했다.

만일 제르빌라를 놓친다면, 회귀 전보다 더욱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회귀 전에는 그나마 플레이어들의 존재라도 있었지, 지금은 몇몇 유저들만이 막 로스트 월드의 힘에 눈을 떴을 뿐이다.

한편 제르빌라는 자신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강한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소 긴장하기는 했지만 자신은 녹의 선봉장. 위대하신 왕의 은총을 받은 존재다.

고작 약소 차원의 존재에게 죽을 정도로 자신은 나약하지 않았다.

“날 죽이겠다? 어디 한번 해 보거라! 약소 차원의 존재여!”

푸확-!

양팔을 벌리며 외치는 제르빌라의 전신에서 짙은 독무가 뿜어져 나왔다.

“칫.”

제로는 제르빌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독무에 혀를 찼다.

저 독무는 평범한 독이 아니다.

현실의 의학으로는 해독할 수도 없을뿐더러, 성분이 어떻게 되는지조차 알아낼 수 없었다.

그나마 회귀 전에는 마법사들이나 사제들 따위에 의해 해독할 수 있었지만….

‘지금 저것이 퍼져 나가면 상당히 골치 아파진다.’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법을 사용했다.

스킬 발동, 외차원의 창고.

현실에서도. 그리고 오버 데스가 됨으로써 로스트 월드 내에서도 딱히 스킬 명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습관이 무섭다고 급박한 상황이 아닌 한, 제로는 스킬 명을 외치는 편이 더욱 익숙했다.

그렇게 외차원의 창고가 발동하자, 제로의 등 뒤로 공간이 갈라지며 짙은 심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연을 품은 그것, 외차원의 창고는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무서운 흡입력을 발휘해 제르빌라가 뿜어낸 독무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호오-!”

제르빌라는 자신의 독무를 다른 공간으로 빨아들일 줄은 몰랐다는 듯 낮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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