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키아아아악-!
허공을 부유하던 영체형 언데드, 퀸 레이스가 비명을 내지르며 사라졌다.
소멸한 것이 아니라, 제로의 지배하에 놓여 외차원의 창고로 모습을 감춘 것이다.
제로는 본 드래곤을 시작으로 스켈레톤 엠페러, 퀸 레이스를 차례차례 굴복시켜 지배권을 확립했다.
제로가 두 번째로 지배한 스켈레톤 엠페러는 수만 마리의 스켈레톤을 다스리는 군주로서, 그것이 다스리는 스켈레톤의 종류만 하더라도 수십 종에 다다른다.
허나 제로가 소환할 수 있는 망자의 숫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뿐.
특히나 스켈레톤 엠페러는 ‘지배’에 특화되어 있는 언데드였기에, 본연의 힘은 약한 편이다.
그렇기에 제로는 스켈레톤 엠페러를 손쉽게 지배할 수 있었다.
세 번째로 지배한 퀸 레이스 또한 별로 다를 바 없었다.
퀸 레이스는 영체형 언데드로서, 무언가에 ‘빙의’를 통해 그 강함을 드러내는 특이한 언데드였다.
다만, 죽음의 땅에는 퀸 레이스가 빙의할 수 있는 존재가 없었으며, 애초에 퀸 레이스 따위가 제로에게 빙의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기에 퀸 레이스 또한 스켈레톤 엠페러와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허무하리만치 제로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남쪽의 데스 나이트 킹뿐인가?”
제로가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데스 나이트 킹.
모든 데스 나이트들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였으나 아크 리치와 같은 초월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다만, 데스 나이트 자체가 생전에 수련을 거듭한 기사를 통해 만들어지는 존재였으며, 데스 나이트 킹은 그러한 데스 나이트가 죽어서도 수련에 수련을 거듭해 강해져 탄생한 존재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본 드래곤이나 스켈레톤 엠페러. 퀸 레이스보다 더욱 까다로운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으려나.”
회귀 전에도 데스 나이트 킹은 상대해 보지 못한 제로였다.
다만, 제로는 지금의 자신이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 같은 존재가 아닌, 고작 데스 나이트 킹 따위에 패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제로는 퀸 레이스의 영역인 유령 저택에서 사라져, 남쪽의 검의 무덤으로 움직였다.
* * *
남쪽에 자리 잡은 검의 무덤.
존재하는 몬스터는 북쪽의 용들의 무덤과 마찬가지로 단 하나, 데스 나이트 킹만이 존재하는 사냥터이다.
다만, 검의 무덤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곳의 대지는 곳곳에 수십, 수백 자루의 다종다양한 검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검의 무덤 중앙에는….
[이거 대단한 손님이 오셨군.]
홀로 검을 휘두르고 있던 데스 나이트 킹이 입을 열었다.
그런 데스 나이트 킹의 등 뒤로 죽음이 뭉치며, 제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본 드래곤과 스켈레톤 엠페러. 퀸 레이스를 모두 복종시킨 것인가?]
“잘 알고 있네? 이제 너만 남았어.”
데스 나이트 킹의 말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격렬한 전투를 벌였기에, 제로가 그들을 복종시켰다는 것을 데스 나이트 킹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마지막은 본인이라는 건가.]
“쉽게 쉽게 가자고. 조용히 내 밑으로 들어올래? 아니면 처맞고 기어들어 올래?”
[흠.]
제로의 질문에 데스 나이트 킹이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그런 데스 나이트 킹의 표정은 언데드의 특성상 읽을 수 없었지만, 마치 ‘고민’하고 있는 듯 보였다.
허나 데스 나이트 킹의 고민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제아무리 본인이 언데드로 타락했다 한….]
“그럴 줄 알았다.”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데스 나이트 킹의 말을 전부 듣지도 않으며 제로가 마법을 발동했다.
제로의 등 뒤로 만들어진 거대한 흑골의 창이 데스 나이트 킹을 향해 쏘아졌다.
[이번 죽음의 땅의 지배자는 참으로 무례하군.]
데스 나이트 킹은 자신의 말을 끊으며, 기습에 가까운 일격을 날리는 제로에 불쾌한 티를 팍팍 내비쳤다.
그와 동시에 데스 나이트 킹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흑골의 창을 향해 손에 쥐고 있던 흑검을 휘둘렀다.
후웅-!
퍼억-!
묵직한 파공음을 동반하며 휘둘러진 흑검은 너무나도 손쉽게 데스 본 스피어를 박살 냈다.
[어디, 자네가 본인의 지배자가 될 수 있는지 한번 시험해 볼까.]
타닷-!
데스 본 스피어를 박살 낸 데스 나이트 킹이 움직였다.
경쾌한 발놀림으로 대지를 박차며 움직이는 데스 나이트 킹의 신형은 어느새 한줄기 검은 선이 되어 제로의 사방을 누볐다.
“언데드로 타락했다 한들, 한때 고명한 기사였으니 검으로 상대해 주려 했는데 말이야…, 내가 좀 바쁘거든? 그러니 넌 후딱 끝내자.”
파라랏-!
말을 마친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들어 올리자, 네크로노미콘의 페이지가 미친 듯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수백 장 이상 넘어가던 페이지가 멈추며….
스킬 발동, 망자의 역린.
제로를 중심으로 수십의 망령이 튀어나와 창의 형태로 변했다.
허공을 두둥실 떠다니던 창은 제로가 손을 까딱이자, 망설임 없이 데스 나이트 킹을 향해 쏘아졌다.
[고작 이 정도인가! 흡!]
사방에서 쏟아지는 망자의 역린에 데스 나이트 킹이 짧은 기합성을 토해 내며 검을 휘둘렀다.
망자의 역린으로 만들어진 창의 개수는 정확히 17개.
데스 나이트 킹 또한 정확히 17번 검을 휘둘렀으며, 단 한 번의 휘두름에 하나의 창을 지워 버렸다.
“흠.”
그 모습에 제로가 저도 모르게 낮은 울림을 토해 냈다.
본 드래곤과 스켈레톤 엠페러. 퀸 레이스와 데스 나이트 킹.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유저들에게 적용되는 그들의 난이도는 얼추 비슷했다.
하지만 제로는 눈앞의 데스 나이트 킹이, 지금까지 상대해 온 본 드래곤이나 스켈레톤 엠페러. 퀸 레이스보다 더욱 까다롭고, 더욱 빡세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본 드래곤은 막강한 내구도와, 거대한 육체에서 뿜어지는 거력만 믿고 싸우는 언데드다.
스켈레톤 엠페러는 휘하에 있는 수만 마리의 스켈레톤을 통한 인해전술로 싸우는 스타일이다.
그것은 ‘압도적인 숫자’가 위협적일 뿐, 휘하 스켈레톤의 강함은 별 위협적이지 않았으며, 본인 또한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퀸 레이스 또한 ‘빙의한다’ 라는 특성이 위협적일 뿐, 빙의를 하지 못하면 나약한 영체형 언데드에 불과했다.
하지만 데스 나이트 킹은 달랐다.
최상위 언데드의 한 종류인 만큼, 육체적 피지컬이 상당하다.
데스 나이트의 정점으로 군림하고 있는 만큼 검을 다루는 기술 또한 뛰어났기에, 데스 나이트 킹은 이렇다 할 약점을 지니지 않았다.
어찌 보면 아크 리치보다 더욱 완벽한 언데드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지금도 그랬다.
제로가 무수히 많은 마법을 이용해 폭격을 펼쳐도, 데스 나이트 킹은 검 한 자루로 모든 것을 막아 냈다.
때론 중의 묘리가 담긴 검으로 마법을 파괴하고.
때론 쾌의 묘리가 담긴 검으로 마법을 베어 냈다.
때론 환의 묘리가 담긴 검으로 제로의 눈을 어지럽히고.
쳐 내거나, 부수거나. 베어 내거나 할 수 없는 공격은 검막을 펼치며 막아 내는 기행마저 선보였다.
데스 나이트 킹을 보고 있노라면, 로스트 월드의 배경이 판타지가 아닌 무협이라고 착각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미치겠네.”
본 드래곤부터 스켈레톤 엠페러, 퀸 레이스까지.
파죽지세로 굴복시켜 지배권을 획득했는데, 하필이면 데스 나이트 킹에서 막혔다.
특히나 가장 짜증 나는 것은, 마법으로는 데스 나이트 킹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렇다고 망자의 폭거를 이용해 제압한다 하더라도 검을 다루는 기교에서 밀렸다.
그나마 타격을 입힐 수 있을 만한 마법을 사용하려 해도 사전에 차단당하니, 상당히 짜증 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게 전부인가?]
제로가 발동한 망자의 포격을 막아 낸 데스 나이트 킹이 입을 열었다.
손에 쥐어진 흑검을 늘어트린 데스 나이트 킹에게선 긴장이나 경계 따위는 엿볼 수조차 없었다.
“하, 그래. 인정할게. 넌 지금까지 상대해 온 그 어떤 몬스터보다 까다로워.”
[칭찬인가?]
“하지만 말이야. 나도 검 좀 다루는 놈을 알고 있거든?”
마법으로 데스 나이트 킹을 제압하는 것은 포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데스 나이트 킹을 제압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한편 데스 나이트 킹은 제로의 말에 ‘호오!’ 하며 낮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데스 나이트가 되어 수백 년. 오직 검 한 자루에 의지해 수많은 적을 베어 넘기고,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검을 갈고닦아 데스 나이트 킹이 되었다.
끝없는 수련과 실전을 통해 데스 나이트 킹이 된 그것은 이제 자신과 검을 맞댈 호적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검 좀 다룬다는 존재는 어디 있지?]
제로를 향해 입을 여는 데스 나이트 킹의 목소리에 기대감이 엿보였다.
제로는 유일하게 자신을 지배했던 아크 리치마저 쓰러트린 존재.
그런 존재가 ‘검 좀 다룰 줄 안다’라고 말을 했으니, 어쩌면 자신의 호적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을 품은 것이다.
제로는 그런 데스 나이트 킹을 바라보며 피식 웃으며 하나의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발동, 콜 데스 디스트로이어 벤.
파앗-!
스킬이 발동되며, 제로의 앞으로 하나의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제로를 통해 죽음을 받아들인 벤을 소환하는 마법진이었다.
벤은 데스 나이트가 된 이래, 끝없는 사냥을 통해 데스 디스트로이어로 전직… 아니, 승급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런 벤의 강함은 눈앞의 데스 나이트 킹과 엇비슷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데스 나이트 킹과 마찬가지로 ‘검’을 다루기에 놈을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제로가 그러한 점에 한 줄기 희망을 품을 때, 마법진에서 데스 디스트로이어, 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벤은 폭력을 형상화한 듯한 검은 갑옷을 걸치고, 한 손에는 최흉, 최악의 마검이라 불리는 데스바인더를 쥐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모습을 드러낸 벤이 제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엔 누굴 상대하면 되는 거지?”
지금까지 제로에게 불려 올 때마다 무언가를 상대했기 때문일까.
벤은 이번 소환 또한 무언가를 상대하기 위해 불려 왔다는 것을 순식간에 눈치챘다.
“부탁 좀 할게. 아, 죽이지는 말고.”
벤의 질문에 제로가 데스 나이트 킹을 가리키며 말했다.
데스 나이트 킹은 마법진에서 벤이 나타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얼핏 보기에도 느껴지는, 벤이 품은 강대한 투기가 데스 나이트 킹의 잠들어 있던 호승심을 일깨운 것이다.
“언데드…?”
한편 벤은 이번 상대가 언데드라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죽이지는 말아 줘.”
“노력하지.”
허나 이어지는 제로의 말에, ‘딱히 상관없나.’라는 생각을 품으며 데스바인더를 꽉 움켜쥐었다.
* * *
“아직도 못 찾으셨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대통령의 질책에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그에 대통령은 하아…, 하며 깊은숨을 토해 냈다.
제로라는 의문의 사내가 알려 준 진실에 의해, 대통령은 지금까지 로스트 월드의 랭커급 유저들을 포섭하고 있었다.
훗날 진정으로 허상괴라는 괴물들의 침공이 시작되면, 오직 그들만이 국가와 국민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랭커급 유저들의 포섭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그 제로라는 자를 데려와야 하거늘….’
대통령이 속으로 다시 한번 깊은숨을 토해 내며 손을 휘저었다.
이만 물러나라는 대통령의 손짓에 남자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방을 빠져나갔다.
“자네는 어디 있는 건가.”
대통령이 창밖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