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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94화 (94/200)

제94화

다급히 돌아간 눈동자에 한 명의 미녀가 들어섰다.

그녀는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적발에 적안을 지니고 있었다.

몸에는 머리칼과 눈동자와 마찬가지로 붉은 드레스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런 미녀에게선 압도적인 존재감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안녕?”

여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제로와 스로우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입은 웃고 있으나, 싸늘하게 가라앉은 두 눈동자는 그녀의 심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려 줬다.

그와 동시에….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가 등장하였습니다.]

제로와 스로우.

그들의 눈앞에 하나의 메시지 창이 떠오르며 여인의 정체를 알려 줬다.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

“맞아. 내가 게르슈드리야. 이 드래곤 산맥의 주인.”

스로우의 중얼거림에 여인, 게르슈드리가 다시 한번 싱긋 웃었다.

“그나저나…, 아까 상당히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더라고.”

꿀꺽.

게르슈드리의 시선이 닿자, 스로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까지 제로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하지 않은 스로우였다.

그렇기에 내심 드래곤 산맥의 주인이라 불리며, 로스트 월드 최강의 보스 몬스터라 알려진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 또한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왔다.

나름의 고전은 면하지 못하겠지만, 최후의 승자는 자신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본체도 아닌, 힘의 일부분이 제한된 폴리모프 상태임에도 모든 것을 짓누르는 존재감이라니.

저것은….

‘유저가 사냥하라고 만든 게 아니야.’

스로우가 속으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제로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 제로의 공허한 눈구멍에는 사신의 흉안이 흉흉한 안광을 번뜩였으며, 전신에는 짙은 죽음이 아우라처럼 뿜어져 나왔다.

“음? 너 평범한 리치가 아니네? 그렇다고 아크 리치도 아니고….”

앞으로 걸어 나온 제로를 본 게르슈드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긴 것은 영락없는 리치였지만, 풍기는 분위기나 느껴지는 기운은 리치의 그것이 아니었다.

좀 더 본질적인, 마치 죽음 그 자체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은 게르슈드리였다.

한편 제로는 그런 게르슈드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드래곤 산맥의 주인,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 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할게.”

“제안이라….”

제로의 말에 게르슈드리가 재미있다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지금까지 만나 온 존재들.

인간과 엘프, 드워프와 오크 따위의 종족을 막론하고서라도 자신에게 무언가 제안을 건네는 존재는 없었다.

그런 신선한 경험을 설마하니 생자가 아닌, 죽은 존재.

그것도 자신과 비슷한 강함을 지닌 존재에게 듣게 될 줄이야.

“어디 한번 말해 봐.”

“네 레어의 보물 창고에 아다만티움이 있다고 알고 있다.”

“맞아.”

제로의 말에 게르슈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의 두 눈동자는 ‘뭐 그런 당연한 것을 물어봐?’라며 되묻고 있었다.

“만일 우리에게 그것을 넘긴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지.”

“흐음.”

제로의 제안에 게르슈드리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솔직히 말해서 게르슈드리에게 있어 아다만티움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전설의 광물이니 뭐니 하더라도, 그녀의 레어에는 더욱 굉장한 것들이 널리고 널렸다.

발에 채는 것이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들이며, 그녀의 컬렉션 중에는 신화급 아이템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아무리 평범한 리치가 아니라지만 말이지.’

게르슈드리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은 드래곤. 상대는 리치다. 물론 평범한 리치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 봤자 자신보다 하위의 존재다.

그런 존재의 말을 순순히 들어주는 것은 드래곤인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거래에 가까운 것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할까~”

게르슈드르가 잠시 고민에 빠진 표정을 내비쳤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제로가 슬며시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은 그 본성을 숨기고 있지만, 게르슈드리는 ‘드래곤’이라는 종족에 걸맞게 상당히 괴팍한 성정과 드높은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인정한 존재가 아니라면, 그 무엇이든 스스로보다 아래라고 여기는 것이 게르슈드리였다.

그 모습은 어찌 보면 대다수의 사람이 알고 있는 드래곤이란 이미지와 동일했지만, 현 제로에게 있어서는 불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아다만티움 하나 구하자고 게르슈드리와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싸운다고 질 것 같지는 않지만….’

제로는 게르슈드리와 싸운다고 자신이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다 해서 승리한다고 마냥 자신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뒤쪽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스로우가 참전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제로가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을 때, 게르슈드리가 입을 열었다.

“좋아.”

‘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게르슈드리에 도리어 제로가 당황했다.

제로가 알고 있는 게르슈드리는 이렇게 순순히 말을 들어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무슨 목적인 거지…?’

제로가 의심 어린 눈으로 게르슈드리를 바라봤다.

게르슈드리는 그런 제로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단, 조건을 변경할게.”

‘그럼 그렇지.’

게르슈드리의 말에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쩐지 너무 순순히 받아들인다 했더니, 꿍꿍이가 있었던 것이다.

“조건을 변경한다고?”

“응. 대가는 필요 없고, 그냥 시련 하나만 통과하면 아다만티움을 줄게.”

‘시련…?’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걸 것이라 생각했던 제로는 의아하다는 시선을 내비쳤다.

고작 시련 하나를 통과하라니.

물론 무려 드래곤이 부여하는 시련이기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로의 입장에선 다소 단순하면서도 손쉬운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우린 시간이 많지 않아.”

“걱정하지 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시간이 없다는 제로의 말에, 게르슈드리가 씨익 웃어 보이며 말했다.

* * *

“비켜!”

콰가강-!

스로우가 버럭 외치며 주먹을 내뻗었다.

그에 스로우의 앞에 있던 오크 한 마리가 폭음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게르슈드리가 내건 조건을 들은 스로우와 제로는 현재 드워프 마을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 그가 내건 조건이 바로 자신이 지배하는 몬스터들로부터 드워프 마을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영역에 스로우가 들어온 것을 알고 있던 게르슈드리는, 그런 스로우가 드워프 마을의 드워프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게르슈드리는 이러한 시련을 내린 것이고, 스로우는 그런 게르슈드리로부터 드워프들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한편 그런 스로우의 뒤에서 망자의 군마에 올라타 움직이는 제로는….

‘고작 드워프 마을을 구하라는 거라니. 쉬운데?’

걱정했던 시련의 난이도가 예상보다 쉽다는 것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내비쳤….

“쪼개지 말고 달리라고!”

자신의 뒤에서 실실 쪼개고 있는 제로에 스로우가 버럭 외쳤다.

제로는 그런 스로우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드워프는 확실히 괜찮은 종족이다.

종종 유니크 이상의 아이템들을 만들어 내는 드워프들을 영입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낸 아이템들을 유저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면 전력을 대폭 증가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거 아닌가?’

그러한 생각을 하며 얼마간 달렸을까.

어느새 제로와 스로우는 드워프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언 우드로 만들어진 목책 위에 서 있던 드워프 경비병은 갑자기 나타난 제로와 스로우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용케 살아 있구만.”

골렘이라는 종족 특성과, 근 며칠 동안 드워프 마을에서 살았기에 스로우의 강함을 잘 알고 있는 드워프다.

다만, 제로의 강함은 잘 몰랐던 드워프는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 생각한 제로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당장 전투 준비를 하십쇼!”

한편 스로우는 그런 드워프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드워프는 다급히 외치는 스로우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그와 동시에….

크아아아아-!

어디선가 몬스터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벌써 시작한 거야?”

스로우는 멀리서 들려오는 몬스터의 울부짖음에 당황한 표정을 내비쳤다.

게르슈드리가 시련이 언제 시작하는지 알려 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준비할 시간 정도는 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몬스터의 울부짖음이 멈추며, 딛고 있던 대지가 쿵! 쿵! 떨리기 시작했다.

드워프 마을을 향한 수많은 몬스터들의 진군이 시작된 것이다.

“젠장! 시간 없으니 얼른 무기 들고 준비해요!”

스로우의 다급한 외침에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드워프가 후다닥 달려갔다.

한편 스로우는 드워프 마을 입구를 막아서며 제로를 향해 말했다.

“너도 도와.”

“당연히 도와야지.”

스로우의 말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제로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드래곤 산맥에 왔는지 잘 알고 있으며, 이미 아다만티움을 구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약속까지 한 터였다.

그렇게 제로가 외차원의 창고에서 망자들을 꺼내고 있을 때, 스로우 또한 자신이 만들어 낸 골렘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몸을 일으킨 것은, 제로와 싸울 때 꺼냈던 강철의 거인이었다.

높이가 10m를 넘는 거대한 크기의 강철의 거인 세 구가 몸을 일으켰으며. 그 밑으로 각종 보석들로 만들어진 쥬얼 골렘과, 미스릴로 만들어진 미스릴 골렘이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레 골렘과 망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놀란 표정의 드워프 족장이 달려왔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 스로우 군!”

“준비하세요. 곧 있으면 몬스터들이 달려들 겁니다.”

족장의 질문에 스로우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스로우의 심상치 않은 표정과 분위기. 그리고 수많은 골렘과 망자들의 존재에 족장 또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족장은 다시 달려 마을 안으로 들어갔고, 그에 마을 내부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수많은 드워프들이 각자 무기와 방어구를 챙기느라 분주해진 것이다.

그렇게 드워프들 또한 곧 있을 몬스터들의 침공에 대비하고 있을 때, 스로우가 제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고맙다.”

“뭘?”

“내 억지를 들어줘서.”

그 말에 제로가 스로우를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제로는 딱히 스로우의 제안이 억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릇 유저라면 강해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애초에 스로우가 문답무용으로 공격한 것도, 첫 만남을 생각해 보면 딱히 이상하지 않았다.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리고 애초에 스로우가 강해진다는 것은, 제로에게도 환영할 일이었다.

한편, 스로우와 제로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하늘에서 끼아아악! 하는 울부짖음과 함께 와이번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뒤덮은 와이번은 수백 마리에 달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드래곤 산맥에 퍼져 있는 모든 와이번을 끌어모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외에도 땅에는 오크와 고블린, 코볼트부터 오우거와 트롤. 드레이크와 히드라 따위의 최상위 몬스터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준비해.”

끄덕.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말하는 제로에 스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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