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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92화 (92/200)

제92화

쿵-!

마을 중앙에 제로가 떨어지기 무섭게 수십의 드워프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배틀 액스 따위의 무기들을 꼬나쥐며 제로를 포위했다.

“흠.”

제로는 주변을 훑어보며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사방으로 죽음을 퍼트려 확인해 봤으나, 찾고 있던 유저로 추측되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편, 제로를 포위하고 있던 드워프들 중 한 명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외쳤다.

“네놈! 이 무슨 무례더…!”

“잠깐만.”

제로는 버럭 외치는 드워프를 향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기세등등하게 외치던 드워프는 그런 제로에게서 흘러넘치는 존재감에 부들부들 몸을 떨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 제로의 등 뒤로 대낫을 든 사신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한편 제로는 유저를 발견했다 보고한 원혼을 불러들였다.

“정말 여기에 있는 거 맞아?”

맞다아아아….

제로의 질문에 원혼이 귀곡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존재 그 자체가 제로에게 종속되어 있는 원혼은 기본적으로 거짓을 말할 수 없다.

그렇다는 말은….

‘정말 여기에 있는 게 맞다는 건데.’

그렇다고 하기엔 아무리 주변을 확인해 봐도 그 유저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 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드워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기, 진짜 인간 한 명 못 봤어?”

“모, 못 봤다!”

“애초에 어떤 인간이 드래곤 산맥까지 오겠느냐!”

“맞아 맞아!”

제로의 질문에 드워프들이 단체로 외쳤다.

그들은 제로의 존재감에 겁에 질렸음에도, 마을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입을 열고 있었다.

‘흐음.’

제로는 드워프들의 면면을 훑어보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드워프들이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들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정말 없다는 건데…. 이상하네.’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을 때, 돌연 한 드워프가 제로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제로의 앞으로 걸어 나온 드워프는 상당히 나이를 먹은 드워프였는데, 그를 확인하기 무섭게 주위에서 ‘조, 족장님!’이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족장?”

“그렇다네. 내가 바로 검은 망치 부족의 족장일세.”

“족장이 왜…?”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리던 제로가 아! 하며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빨리 나가라고? 그렇게 재촉하지 않….”

“자네가 찾는 ‘인간’을 알고 있네.”

족장의 말에 제로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정확히는 ‘인간’이 아니지만 말일세.”

정확히는 인간이 아니다?

그 말에 번쩍 뜨인 제로의 두 눈동자에 의문이 깃들었다 사라졌다.

생각해 보면 그와 만났던 것도 로월 초창기다.

제로 본인을 포함해 수많은 유저가 이종족 플레이어가 되었으니, 그 또한 이종족 플레이어가 되었다 한들 이상하지 않았다.

또한 그가 이종족 플레이어가 되었다면, 드워프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다면 족장은 어떻게 알아들은 거야? 아니, 족장이기에 특별하다 이건가?’

제로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 때, 검은 망치 부족의 족장이 입을 열었다.

“혹 자네가 찾는 존재의 이름이 ‘스로우’이지 않던가?”

* * *

“그러니깐 스로우가 골렘이라고?”

“그렇다네.”

“허, 참.”

족장의 말에 제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제로라고 해서 계획했던 모든 히든 피스를 획득한 것은 아니었다.

몇몇 히든 피스들은 획득하지 못했는데, 개중 하나가 골렘 제작 레시피였다.

그것을 설마….

‘스로우가 먹었을 줄이야.’

이종족 플레이어, 골렘.

그것이 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골렘 제작 레시피가 필요했다.

스로우가 골렘이 되었다면, 필연적으로 그것을 먹었다는 뜻이 된다.

그나저나….

“그래서, 그놈은 지금 어디 있는데?”

“그는 아다만티움을 찾으러 마을을 떠났다네. 최강의 골렘이 되기 위해선 그것이 필요하다고 하더군.”

“아다… 만티움…?”

족장의 대답에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다만티움.

제로 또한 잘 알고 있는 광물이었다.

신의 금속이라 불리는 오리하르콘과 마찬가지로 최고 등급의 광물 중 하나로, 그 단단함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를 불허한다.

다만 그 등급에 걸맞게 획득할 수 있는 장소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런 아다만티움을 드래곤 산맥에서 구하겠다는 것은….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

“그렇다네.”

제로의 중얼거림에 족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

드래곤 산맥의 주인이자 사실상 최종 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였다.

회귀 전에도 최상위 랭커들이 연합해 수백 번 도전해서 겨우 죽였을 만큼 막강한 존재로, 지금의 제로조차 버거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미친 거 아니야?”

“우리도 말렸다네. 애초에 그의 육체를 이루는 것은 미스리를 베이스로 한 합금.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기에….”

끙.

족장의 말에 제로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확실히 아다만티움으로 육체를 강화하면 한순간에 강해질 수 있다.

골렘이라는 종족 자체가 스스로의 몸뚱어리가 어떤 광물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따라 극명하게 나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다만티움을 구하기 위해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를 찾아가다니.

이건…

“자살행위야.”

“그렇다네.”

제로의 말에 족장 또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족장뿐이 아니었다.

게르슈드리의 강함을 잘 알고 있는 주변의 드워프들 또한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 미치겠네.”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꺼내 쥐었다.

지금 출발한다 해서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로우를 버릴 순 없어.’

골렘의 명확한 약점.

그것은 한 번 죽음을 맞이하면, 육체를 이루고 있는 광물이 크나큰 데미지를 입어 전투력이 깎인다는 것이다.

육체를 이루고 있는 것과 동일한 광물을 구해야지만 그 데미지를 회복할 수 있다.

다만, 족장의 말에 의하면 지금 스로우의 육체를 이루고 있는 것은 미스릴을 베이스로 만들어 낸 합금이다.

미스릴 자체도 상당히 귀해 구하기 힘들뿐더러, 합금이라 했으니 그것을 베이스로 온갖 종류의 상급 이상의 광물들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즉, 지금 스로우가 죽는다면 전력이 대폭 감소되어 버린다.

“그를 쫓아가려는 겐가?”

“어쩔 수 없잖아.”

족장의 질문에 대답한 제로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에 제로의 그림자가 쭉 늘어나며 망자의 군마가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냈다.

드워프들은 짙은 죽음을 흩뿌리는 망자의 군마가 모습을 드러내자, 흠칫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소란 피워서 미안했어.”

그 말을 끝으로, 제로는 망자의 군마에 올라타며 드워프 마을을 빠져나갔다.

제로가 사라진 드워프 마을.

그곳에 있던 드워프들은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진 제로에 의아함을 품었다.

* * *

“제발 늦지 마라.”

망자의 군마에 올라타 스로우를 뒤쫓는 제로가 중얼거렸다.

그런 제로는 드래곤 산맥의 정상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의 레어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움직이는 제로는 어느새 의태의 반지마저 빼 버려 리치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제로가 내뿜는 기세와 존재감에 드래곤 산맥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의 레어에 가까워질수록 몬스터의 강함은 증가한다.

허나 오버 데스가 된 제로의 존재감은 한낮 몬스터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망자의 군마에 올라타 정상을 향해 얼마나 움직였을까.

점차 레어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제로의 귀에 쾅! 쾅! 하는 전투음이 울려 퍼졌다.

“찾았다.”

어느 정도 더 나아가자, 공허한 눈구멍에 자리 잡은 사신의 흉안에 한 유저의 모습이 내비쳐졌다.

미스릴 특유의 백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유저, 스로우는 트윈 헤드 오우거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보통의 오우거보다 더욱 강력한 그것의 레벨은 700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일까.

스로우 또한 어느 정도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트윈 헤드 오우거를 몰아붙이는 것을 보면, 스로우의 강함은 최상위 랭커들보다 한 템포 앞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흐압-!”

퍼억!

크어어어엉-!

우렁찬 기합성과 함께 스로우의 주먹이 트윈 헤드 오우거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스로우의 일격에 얻어맞은 트윈 헤드 오우거는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져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후. 역시 드래곤 산맥은 빡세…! 누구냐!”

트윈 헤드 오우거가 드랍한 아이템을 회수하고 있던 스로우가 버럭 외쳤다.

외침과 동시에 스로우의 두 눈동자가 날카로운 빛을 뿜어내며 사방을 훑었다.

하지만….

“잘못 느낀 건가?”

기감을 끌어 올려 사방을 살펴봐도 이렇다 할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스로우는 자신이 잘못 느낀 것이라 생각하며 게르슈드리의 레어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 했다.

막 한 걸음 내디디려는 찰나, 스로우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며 순식간에 전투태세로 돌입했다.

양 주먹에 무수히 많은 스파이크가 박혀 있는 건틀릿이 장착됐다.

전신은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백금색 갑옷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렇게 전투태세에 돌입한 스로우의 두 눈동자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스로우는 똑똑히 느꼈다.

섬뜩하고, 괴이한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감각은 마치 사신이 자신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듯 소름이 끼쳤다.

‘레드 드래곤? 아니야. 잘은 모르겠지만 그것과는 달…!’

스로우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그의 머리 위로 어떤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랜만이야, 스로우.”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스로우의 시선이 홱! 하며 돌아갔다.

그렇게 하늘을 향해 움직인 스로우의 두 눈동자에는….

“제… 로…?”

검은 뼈로 이루어진 해골 말을 타고 있는 리치, 제로의 모습이 보였다.

다만, 스로우는 갑자기 나타난 리치가 제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아니, 어쩌면 못 알아보는 것이 더욱 이상할지도 몰랐다.

원래도 유명했던 제로였지만, 죽음의 땅 입구에서 유저들과 싸움으로써 제로의 명성과 악명은 더욱 드높아졌다.

특히나 그 전투로 제로가 이종족 플레이어. 그것도 언데드 종족인 리치라는 것이 로월을 즐기는 거의 대부분의 유저들에게 알려졌다.

처음 그 사실을 접했을 때, 스로우는 제로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종족 플레이어라는 것에 초조함을 느꼈다.

이종족 플레이어는 명확한 약점이 존재하는 만큼 상당한 어드밴티지가 있으며, 그렇기에 더욱 빨리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로우가 무리를 하면서까지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의 레어에 잠들어 있는 아다만티움을 노리는 이유는 그 초조함 또한 한몫했을 것이다.

한편 바닥에 내려선 제로는 자신을 경계하며 노려보는 스로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멍청한 짓은 그만두지?”

“멍청한 짓이라니?”

제로의 말에 스로우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다만티움. 레드 드래곤 게르슈드리. 이래도 모르겠냐?”

제로의 말에 스로우는 침묵했다.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드워프들뿐.

자신을 찾았다는 것은 이미 드워프를 만났다는 뜻이며, 드워프를 만났다면 자신의 목적을 충분히 알고 있을 터였다.

“네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않나?”

“후….”

날 선 스로우의 말에 제로가 깊은숨을 토해냈다.

그와 함께 제로는 스로우가 ‘현실’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너, 로월의 접속 시간이 어떻게 되냐?”

“이제 6일 정도 되어 가는데 그건 왜…?”

하아….

스로우의 대답에 제로가 깊은숨을 토해냈다.

접속 시간이 6일.

그동안 드래곤 산맥에 처박혀 있었다.

그 말은….

‘그놈들과 마찬가지로 허상괴의 등장을 아직 모른다는 뜻이지.’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로우 또한 의문에 휩싸였다.

스로우는 어째서 자신이 제로의 질문에 고분고분 대답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다만….

“뭐, 상관없지. 안 그래도 그때의 설욕전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러한 말과 함께 자세를 잡는 스로우는 한눈에 보더라도 ‘너와 싸우겠다!’라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었다.

“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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