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91화 (91/200)

제91화

“이것 참,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군요.”

“하하.”

켄달의 말에 제로가 어색한 웃음을 내뱉었다.

설마하니 켄달을 포함한 5인방을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특히나 다시 만나게 된 5인방들을 마주함에 있어 어색한 것은….

“그리고 설마하니 스승님이 제로 님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켄달이 실망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 실망은 비단 켄달뿐만이 아니었다.

켄달을 포함한 5인방 전원이 제로를 불만과 실망 어린 눈동자로 바라봤다.

그들 또한 나름 로스트 월드에 진심이었기에, 자신들을 히든 클래스로 전직시켜 준 리치를 진심으로 ‘스승님’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스승님이 사실은 제로였다니.

5인방의 입장에선 크나큰 배신이 아닐 수 없었다.

“그건 미안하게 생각한다니까. 그때는 함부로 정체를 밝힐 수 없었거든.”

“그래도 실망입니다.”

제로의 말에 켄달이 5인방을 대표해 입을 열었다.

켄달의 말에 나머지 네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반응에 제로가 후…, 하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스타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나름 10년지기 친구라고, 켄달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스타툰이다.

그렇기에 이대로라면 상황이 정리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섰다.

“그나저나 형님?”

“응? 왜?”

“저희들을 왜 모으신 겁니까?”

스타툰의 질문에 제로의 표정이 변했다.

아까 전의 분위기가 친근한 동네 형이었다면, 지금의 분위기는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켄달을 포함한 5인방. 그리고 스타툰을 쭉 훑어본 제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갑작스레 현실에서 나타난 괴물, 허상괴.

그리고 곧 있으면 벌어질 허상계와의 전쟁 등등.

설명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스타툰과 켄달을 포함한 6인방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제로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스타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러한 표정은 5인방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희들은 뉴스도 안 보냐?”

“그게…, 로월 하느라 바빠서….”

어이없다는 듯 되묻는 제로에 스타툰이 어색한 웃음을 내비쳤다.

그에 어지간한 제로조차도 허탈한 웃음을 내비쳤다.

저들이 나름 로월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티비는 물론, 온갖 커뮤니티와 너튜브 같은 곳에서도 다루는 이번 사건을 모르고 있을 줄이야.

“니들은 밥 먹고, 똥 싸고 잠자는 시간 빼면 죄다 로월만 하냐?”

끄덕끄덕.

제로의 질문에 스타툰과 켄달을 포함한 6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의 표정은 ‘뭘 그런 당연한 걸 물어봅니까?’라는 표정이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니들은 현실도 좀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뭐, 그래도 덕분에 형님의 계획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로의 충고에 스타툰이 나름의 미소를 내비치며 대답했다.

그 말은 딱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허상계와의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전쟁을 대비해 수없이 많은 준비를 해 왔지만, 한 명 한 명의 강력한 유저들의 존재는 필수였다.

그렇게 따지자면 켄달을 포함한 5인방과 다크 로드라는 직업을 가진 스타툰은 그런 전쟁에서 필수적인 존재들이었다.

만일 전쟁이 터지지 않는다면 단순한 게임 폐인에 불과하겠지만, 전쟁이 터지기에 역설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 되었다.

“그나저나 며칠 전부터 10강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더니…, 그들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었군요.”

“뭐,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말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또한 제로가 설명하지 않았다면, 진실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제로의 말에 6인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제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너희들도 최대한 강해져.”

“형님은 어디 가시게요?”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거든.”

스타툰의 질문에 제로가 입을 열었다.

제로는 지금부터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대부분의 랭커급 유저들은 10강에 의해 진실을 알게 되겠지만, 개중 몇은 직접 만나 봐야 했다.

또한 죽음의 땅에 서식하는 언데드 중, 자신의 지배를 거부하는 놈들의 지배권을 획득해야 한다.

시작의 도시에서 사라진 잿빛 마탑 또한 다시 만들어야 한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허상계와의 전쟁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앞으로는 더욱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럼.”

스타툰과 켄달. 그리고 나머지 4인에게 인사를 마친 제로의 몸이 죽음에 휩싸이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지하 암실에서 사라진 제로가 다시 나타난 장소는 드래곤 산맥 입구였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제로는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산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드래곤 산맥.

로월 5대 금지 중 하나로, 최소 가장 약한 몬스터의 레벨조차 600레벨이 넘어가는 최흉의 사냥터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드래곤 산맥에는 실제로 드래곤이 존재한다.

회귀 전에는 제로 또한 수많은 랭커들과 연합을 맺어 드래곤 레이드에 참여한 적 또한 있었다.

그러한 드래곤 산맥에 제로가 나타난 이유는 간단했다.

“만나기 좀 껄끄러운 상대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꼭 필요하니….”

최상위 랭커들조차 사냥을 꺼리는 드래곤 산맥에 꼭 만나야 할 유저가 틀어박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회귀 전에는 나름의 동료로 유대감을 쌓았지만, 회귀 후에는 악연으로 이어졌기에 제로는 다소 만나기 껄끄럽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하지만 허상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진정으로 필요한 전력이었기에, 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도둑 길드의 정보에 의하면 드래곤 산맥 어딘가에 있다고 했으니….”

스타툰과 켄달을 포함한 6인방 이전.

그리고 10강의 길드 마스터들을 만나기 이전 들렸던 도둑 길드에서 입수한 정보를 떠올린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꺼내 쥐었다.

스킬 발동, 원혼의 축제.

꺼흐흐흑.

억울해.

억울하드아아아.

스킬이 발동되며, 제로를 중심으로 반투명한 원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원혼들은 어느새 수백으로 늘어났으며.

그러한 원혼들이 내뱉는 귀곡성이 드래곤 산맥 입구를 가득 메웠다.

“모두 흩어져서 인간을 찾아라.”

꺼흐흑.

찾는드아아아아.

인간을 찾는다아아.

억울하드아아아.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수백의 원혼들이 드래곤 산맥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게 네크로맨서의 장점 중 하나지.”

네크로맨서이기에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걸로 ‘그’를 찾을 수 있었다.

만일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면 드넓은 드래곤 산맥 곳곳을 제 발로 뛰어다니며 그를 찾아야 하는 불상사가 생겼으리라.

그렇게 수백의 원혼들을 퍼트려 얼마나 수색을 진행했을까.

드래곤 산맥의 크기 덕분인지 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하나의 원혼이 그 유저의 정보를 물고 왔다.

“그러니깐 드래곤 산맥 깊숙이 숨어 있는 드워프 마을에서 봤다 이거지?”

꺼흐흑.

제로의 질문에 원혼이 울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 마을이라….”

제로는 드워프 마을에 있다는 것에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그놈들이 순순히 들여보내 줄 리가 없는데 말이지.”

드워프라는 족속 자체가 폐쇄성이 짙어 이방인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은….

“엘프 마을이 아니라는 점… 이겠지?”

제로는 과거 획득했던 칭호-자연 파괴자를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자연 파괴자의 효과로 엘프와 요정, 정령들과의 우호도가 최악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놈이 드워프 마을에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에휴, 내 팔자가 그렇지 뭐.”

짤막한 불평을 토해 낸 제로가 손가락을 튕기자, 발밑의 그림자가 쭉 늘어나며 한 마리 말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전신이 검은 뼈로 되어 있으며, 네 개의 발에는 검은 귀화를 품고 있는 망자의 군마였다.

“가자.”

제로는 망설임 없이 올라타며 명령을 내리자, 명령을 받은 망자의 군마가 ‘히이이이잉-!’ 하는 울음을 터트리며 달려 나갔다.

망자의 군마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드래곤 산맥을 내달렸다.

애초에 망자의 군마의 강함은 어지간한 몬스터들을 뛰어넘었으며, 그런 군마 위에 타고 있는 제로부터가 오버 데스. 즉, 초월자였다.

드래곤 산맥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초월자가 된 제로의 존재감을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지금의 제로와 비벼 보려면 드래곤 산맥의 주인인 레드 드래곤쯤은 나서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망자의 군마 위에 올라타 얼마나 드래곤 산맥 내부를 내달렸을까.

상당히 깊숙이 들어왔다… 라는 생각이 들 즈음에 제로의 시야에 거대한 목책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들어왔다.

“스틸 우드로 만들어진 목책…, 찾았다.”

마을 외곽을 둘러싼 목책은 스틸 우드로, 강철과 같은 단단함을 자랑하는 나무 중 하나였다.

그것을 목책으로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저 마을이 드워프들의 마을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증거였다.

“돌아가.”

히이이잉!

제로의 명령에 망자의 군마는 다시 한번 울음을 터트리며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가뜩이나 경계심 많은 드워프인데, 괜히 망자의 군마를 끌고 갔다가 문전박대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다만….

“정지-!”

굳이 망자의 군마가 없다 하더라도 외부인임과 동시에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는 제로는 드워프들에게 있어 경계의 대상이었다.

제로는 입구에 가까워지기 무섭게 들려오는 드워프의 우렁찬 목소리에 음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들은 확실히 까다로운 종족이다.

다만, 회귀 전 드래곤 레이드에 앞서 수많은 아이템을 의뢰하며 안면을 틀었던 만큼,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는 과거의 감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멈춰라, 인간!”

다시 한번 울려 퍼지는 드워프의 외침에 제로는 걸음을 멈추었다.

동시에 귀를 기울이자, 목책 너머로 당황한 드워프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인간이다!

인간이야?

인간이 어떻게 여기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걸 나한테 물어봤자….

“저기…?”

움찔-!

갑작스레 울려 퍼진 제로의 목소리에 드워프들이 몸을 떨었다.

“무, 무슨 용무냐! 인간!”

“다름이 아니라 여기에 인간 한 명 있지 않나요?”

상대는 유저도, 인간도 아닌 드워프다.

괜히 힘 뺄 필요 없이, 용건만 처리하고 빠지면 그만이었다.

드워프 종족을 끌어들인다면 그것만큼 베스트도 없지만, 그러기에는 호감도를 쌓을 시간이 부족했다.

“인… 간…?”

“우리 마을에 인간 따위는 없다!”

“맞아 맞아!”

제로의 질문에 다수의 드워프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한 목소리는 서로 겹치고 얽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들려오는 목소리로 유추해 보자면….

‘인간이 없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제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혼에 의하면 분명 이 마을에 인간이 있다.

그런데 드워프들은 인간이 없다고 한다?

말이 안 된다.

아니면 설마….

‘저들이 그를 숨겨 주기라도 하는 건가? 아니, 드워프가 인간을 숨겨 줘? 하지만 왜? 어째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문만 깊어져 갔다.

그에 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깊은숨을 내뱉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쾅!

발바닥에서 죽음이 폭발하며, 제로의 몸뚱어리가 한줄기 선이 되어 마을 안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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