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89화 (89/200)

제89화

권능-원념의 무게.

그것이 아크 리치를 짓누르는 중압감의 정체였다.

과거 헬데이븐이 제로에게 사용했던 죄악의 무게와 비슷한 스킬이나 그 결은 완전히 다르다.

죄악의 무게가 악행에 비례해 중압감의 크기가 증가한다면, 원념의 무게는 ‘살생’에 비례한다.

즉,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였는가에 따라 그 중압감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크 리치는 수천 년을 존재해 온 만큼, 지금까지 죽여 온 생명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 말인즉….

“네가 얼마나 강하든, 그 중압감에서 벗어날 순 없어.”

[크으으-!]

제로의 말에 아크 리치가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단순한 유희 거리라 여겼던 상대에게 한 방 먹을 줄이야.

이것은 아크 리치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웃… 기지 마라.]

[본 왕이 고작 이 정도에 무릎을 꿇을 것 같으…!]

“물론 아니지.”

아크 리치의 말을 자르며 제로가 입을 열었다.

“애초에 원념의 무게는 단순히 무형의 중압감만 선사하는 권능이 아니야. 그 정도의 효능이었으면 애초에 권능이라 불리지도 않았어.”

[노오오옴-!]

씨익 웃으며 말하는 제로에 아크 리치가 버럭 외쳤다.

제로의 그 웃음을 본 아크 리치의 마음 한편에 불길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길함은 정확했다.

왜 너만 아직도 살아 있는 거야?

너도 죽어.

괴로워. 괴로워. 괴로워. 괴로워.

널 증오해.

네가 원망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어.

수없이 많은 원혼의 목소리가 아크 리치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권능-원념의 무게의 진정한 무서움은 바로 이것이었다.

지금까지 죽여 온 생명의 숫자에 비례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중압감을 선사하는 것도 무서운 힘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원혼들의 목소리가 정신을 뒤흔든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수십의 원혼들이 내뱉는 저주 어린 목소리에 정신이 붕괴된다.

끝없는 수련을 통해 정신을 단련한 존재라 하더라도 수백, 수천의 원혼들이 내뱉는 저주 어린 목소리는 버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수천의 원혼만으로도 그럴지 언대, 아크 리치가 죽여 온 생명의 숫자는 수억을 넘어 수십, 수백억에 달한다.

그 정도 숫자의 원혼들이 한 번에 저주 어린 목소리를 내뱉는다면?

제아무리 마도의 극치를 이뤄, 반신의 영역에 선 아크 리치의 정신이라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끄아아아아악-!]

중압감을 버티지 못한 아크 리치가 무릎을 꿇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저주 어린 목소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정신을 넘어 영혼마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제로의 공허한 눈구멍에 개안된 사신의 흉안에 비친 아크 리치의 육체가 점차 붕괴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넘어 영혼마저 뒤흔들려 육체가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끄으윽….]

[네 놈…!]

[죽여… 버리겠…!]

원혼의 목소리에 어떻게든 영혼을 보호하려는 아크 리치가 제로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쫙 펼쳐진 아크 리치의 손에 방대한 양의 마나가 모여 마법으로 승화했다.

육체가 완전히 붕괴하기 전에, 그 원흉인 제로를 제거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퍼석-!

[크헉-!]

막 마법이 발현되려는 순간, 뭉쳤던 마나가 흩어지며 아크 리치의 팔이 무너져 내렸다.

그 반동으로 아크 리치 육체의 붕괴가 더욱 가속되었다.

“소용없어.”

제로는 괴로워하는 아크 리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원념의 무게는 그 시전 조건이 까다롭고, 준비에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만 빼면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권능이야. 설령 그 대상이 신이라 할지라도.”

물론 신에게 원념의 무게가 통할 리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제로는 확신했다.

만일 신이라 불리는 작자들에게도 권능-원념의 무게가 통한다면. 그리고 그 신이라 불리는 작자가 ‘무수히 많은 살생’을 저질렀다면 그 영혼을 무너트릴 수 있으리라고.

그리고 어쩌면….

‘허상괴들의 왕 또한 죽일 수 있을 거야.’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크 리치는 어느새 양팔과 다리가 사라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크 리치는 괴로워하면서도 기묘한 웃음을 터트렸다.

[크흐-. 기쁘더냐.]

[본 왕을 이겨 기쁘더냐.]

[허나 네놈은 모르고 있다.]

[본 왕이 어찌하여 지금까지 망자의 거성에 기거하며, 죽음의 땅을 지배할 수 있었는지 알고 있느냐?]

[그것은 본 왕이 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크 리치가 광소를 터트리며 외쳤다.

제로는 그런 아크 리치에게서 시선을 돌려 박살이 나버린 왕좌를 바라봤다.

아니, 더욱 정확히는 왕좌의 뒤편에 있는 보석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아크 리치가 앉아 있던 왕좌의 뒤편에는 하나의 거대한 보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보석은 마치 심장처럼 약동하고 있었는데, 그것이야말로 아크 리치의 생명이 담겨져 있는 라이프 베슬이었다.

아크 리치의 영혼은 그러한 라이프 베슬에 깃들어 있었다.

“저걸 믿고 있는 거냐?”

제로가 보석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저것이 존재하는 한, 아크 리치는 불멸이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내 권능은 그리 단순하지 않거든.”

[그 무…!]

제로의 말에 입을 열던 아크 리치가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억지로 몸을 비틀어 힘겹게 고개를 돌린 아크 리치의 두 눈동자에 내비쳐진 것은….

[이 무슨-!]

육체의 붕괴에 맞춰, 같이 무너지고 있는 라이프 베슬이 아크 리치의 두 눈에 들어섰다.

혼이 품은 원념은 무서운 것.

아크 리치에게 죽임을 당한 원혼들은 그 육체를 넘어, 영혼마저 물어뜯고 있었다.

아니, 영혼이기에 더더욱 원혼들이 손쉽게 물어뜯을 수 있었다.

물론 라이프 베슬은 리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아크 리치 또한 자신의 라이프 베슬과, 그것에 깃들어 있는 영혼에 온갖 마법적 처리를 부여해 보호 수단을 강구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수천, 수만, 수억, 수십억을 넘어 수백억에 달하는 원혼들은 그러한 아크 리치의 마법을 억지로 돌파해, 그 영혼을 물어뜯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악-!]

원혼들에 의해 라이프 베슬이 무너지고, 영혼이 갈가리 찢겨나가자 아크 리치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홀의 입구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네크로맨서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했다.

불사왕.

죽음의 땅의 지배자.

불멸의 패왕.

죽음마저 지배하는 존재.

그 외에도 온갖 수식어가 붙으며, 수천 년이 넘도록 군림해 왔던 아크 리치가 패배하고, 소멸해 가는 모습은 그들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 * *

[칭호-불사왕을 획득하였습니다.]

[망자의 거성의 지배권을 획득하였습니다.]

[죽음의 땅의 지배권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이템-다크니스 링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이템-죽음의 왕관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이템-타락한 세계수의 가지를 획득하였습니다.]

[아이….]

아크 리치의 영혼이 사라지는 순간, 제로의 눈앞에 다수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아크 리치를 소멸시킴으로써 제로는 그것이 기거하는 망자의 거성. 그리고 그것이 지배하고 있던 죽음의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각종 아이템과 칭호를 획득했는데, 특히 아이템들은 하나하나가 족히 수억에서 수십억에 거래될 가능성을 지닌 것들뿐이었다.

제로는 눈앞을 어지럽히는 알림창을 지우고, 아크 리치에게서 획득한 아이템들을 착용했다.

제로의 양손에 세 개의 반지가 끼워지고, 목에 하나의 목걸이가 채워졌다.

머리에는 드래곤의 뼈를 가공해 만든, 생전의 아크 리치가 착용하고 있던 왕관이 씌워졌다.

그 이후….

저벅. 저벅. 저벅.

제로는 조용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박살이 나 버린 왕좌를 향해 걸어갔다.

아크 리치가 앉아 있던 왕좌는 제로의 마법에 박살이 났었지만, 제로가 새로이 지배자가 되는 순간 복구되었다.

털썩.

뼈로 이루어진 왕좌에 다가간 제로는 망설임 없이 걸터앉았다.

제로가 뼈의… 아니, 죽음의 왕좌에 걸터앉기 무섭게 네크로맨서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후다닥 달려와 제로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무슨 뜻입니까?”

제로는 그들을 향해 짐짓 모른 척 입을 열었다.

그에 몰락한 잿빛 마탑의 부탑주가 대표로 앞으로 기어 나와 입을 열었다.

“부디 저희들의 충성을 받아 주십시오! 죽음의 지배자, 데스 로드시여!”

데스 로드.

네크로맨서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자, 인간이란 종을 뛰어넘어 반신의 영역에 도달한 존재.

부탑주는. 아니, 살아남은 모든 네크로맨서들은 제로가 데스 로드임을 확신했다.

애초에 아크 리치는 데스 로드가 아니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물며 제로는 그런 아크 리치를 ‘상대한다’라는 것을 넘어, 소멸시키지 않았는가.

그런 제로를 데스 로드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네크로맨서가 아니라는 뜻이 되었다.

한편, 그러한 부탑주의 외침과 동시에 제로의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잿빛 마탑 최후의 생존자들이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충성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들의 충성도는 max입니다.]

메시지를 다 읽은 제로가 속으로 웃음을 내비쳤다.

아크 리치를 상대한 것이 도리어 복이 되었다.

아크 리치를 상대함으로써 강대한 힘에 눈을 뜰 수 있었고, 손쉽게 네크로맨서들의 충성마저 얻어 낼 수 있었다.

특히나 충성도가 max를 찍었다는 것은, 제로가 잿빛 마탑의 근간을 뒤흔들지만 않는다면 절대 충성도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제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축하해.]

‘죽음?’

제로의 머릿속으로 죽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시 내가 대리자 보는 눈은 있다니깐.]

[설마 이 짧은 시간에 오버 데스가 될 줄은 몰랐어.]

‘오버… 데스…?’

죽음의 말에 제로가 의문을 내비쳤다.

오버 데스라니.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한 의문에 제로는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이름: 제[email protected]$!

Lv: !%[email protected] 성향: 카@$!스 명[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명: ???

직업: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죽음[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칭호: 죽@!#[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인(외 [email protected])

소속: 외차[email protected]#

종족: 오버 데스

[email protected]#력: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사마[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내[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친화력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 [email protected]#

열어 본 상태창은 개판이었다.

대다수의 글자가 깨져 있는 것은 물론, 스탯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종족이 상급 망자에서 오버 데스가 되었다는 것뿐이다.

‘이게 무슨…?’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리자, 죽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하지.]

[너는 오버 데스가 되었어. 즉, 존재 그 자체가 나와 같은 죽음이란 소리지.]

[이런 거짓된 세계의 거짓된 시스템으로 그런 널 제대로 내비칠 수나 있겠어?]

[그래서, 초월자가 된 기분이 어때?]

‘내가… 죽음이 되었다고? 너와 같은?’

[맞아.]

[다만, 나와 비교하자면 그 격은 한참 낮지만 말이야.]

죽음의 말에 제로는 침묵했다.

오버 데스. 즉, 존재 그 자체가 죽음이 되었다.

그것이 반신의 영역이나 초월자라 불리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 제로는 확신했다.

이대로. 이대로 계속 힘을 쌓아 올린다면….

‘허상괴의 왕. 그놈을 죽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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