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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86화 (86/200)

제86화

“놈을 알고 있어?”

[아는 것뿐이겠느냐! 저놈은 괴물이다! 저놈은 괴물이야!]

제로의 질문에 데이버그가 절규에 가까운 괴성을 내질렀다.

아크 리치는 자신을 알아보며 절규를 내뱉는 데이버그에 끌끌 웃음을 터트렸다.

[오랜만이구나, 저주 애송아.]

“서로 아는 사이야?”

아크 리치마저 저주왕 데이버그를 알아보자, 제로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과거 저주 애송이와 몇 번 어울렸던 적이 있었지.]

[어울리긴 개뿔!]

아크 리치의 말에 데이버그가 버럭 소리쳤다.

경기를 일으키는 데이버그의 모습을 본다면, 둘의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이 어떤 사이였는지는 알 바 아니고. 준비해, 데이버그.”

그 말에 데이버그가 제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

“지금부터 아크 리치와 싸운다는 뜻이지.”

데이버그의 질문에 제로가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한 제로의 대답에 데이버그의 몸이 눈에 띄게 떨렸다.

[자, 장난하는 것이냐? 놈은 괴물이란 말이다! 과거 전성기 때의 노부조차 이길 수 없었던 괴물!]

“그래 봤자 리치. 언데드일 뿐이야.”

[네놈은 노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데이버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아크 리치와 싸우겠다는 제로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데이버그는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다.

이미 육신과 영혼에 노예의 낙인이 새겨져, 제로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그러한 둘을 지켜보고 있던 아크 리치는 다시 한번 끌끌 웃음을 터트리며 한 걸음 내디뎠다.

[그래, 대화는 끝났느냐?]

푸확-!

느긋하게 입을 여는 아크 리치에게서 압도적인 존재감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한 존재감에 홀 내부가 우르르 떨렸으며, 데이버그는 3살짜리 꼬맹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짙은 공포를 드러냈다.

제로는 자신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아크 리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 그리고… 죽어.”

스윽.

크르르…!

그아아아!

제로가 손을 내리긋자, 명왕의 번견과 어보미네이션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명왕의 번견은 아크 리치를 향해 세 개의 입을 벌려 명계의 냉기를 토해 냈다.

어보미네이션은 몸에 박혀 있는 사슬을 휘둘렀는데, 그 압도적인 거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력에 쇠사슬이 한 번, 한 번 휘둘릴 때마다 폭풍이 휘몰아쳤다.

[으아아아! 네놈! 만일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명왕의 번견과 어보미네이션이 움직이자, 데이버그 또한 움직였다.

그것은 아크 리치에게서 살아남는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제로를 죽여 버리겠다 다짐하며 저주를 흩뿌렸다.

“진작에 움직일 것이지.”

제로는 뒤늦게 저주를 뿌리며 아크 리치를 향해 공격하는 데이버그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날이 꽤 쌀쌀하구나.]

푸확-!

아크 리치를 중심으로 지옥의 불꽃이 휘몰아쳤다.

하나의 폭풍이 되어 휘몰아치는 지옥의 불꽃은 명계의 번견이 토해 낸 명계의 냉기를 밀어내며, 제로를 향해 쏟아졌다.

“칫.”

스킬 발동, 데스 본 실드.

치이이익-!

쏟아지는 지옥의 불꽃에 제로가 뼈의 방패를 소환했다.

죽음을 머금은 흑골의 방패는 쏟아지는 지옥의 불꽃을 막아 냈다.

허나 아무리 제로의 죽음을 머금었다 한들, 아크 리치가 불러들인 지옥의 불꽃을 온전히 막아 내는 것은 무리였다.

그 증거로 지옥의 불꽃을 가로막은 데스 본 실드는 빠른 속도로 녹아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상관없어.’

빠르게 사라진 데스 본 실드에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애초에 지옥의 불꽃을 온전히 막아 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순히 약간의 틈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그만일 뿐이다.

스킬 발동, 더미 블링크.

데스 본 실드를 지워 버린 지옥의 불꽃이 제로를 덮치기 직전.

제로의 신형이 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지옥의 불꽃이 덮친 것은 제로의 분신이었으며, 그렇게 사라진 제로가 다시 나타난 장소는 아크 리치의 머리 위였다.

“뒈져.”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으아아아아! 죽어 버려라!]

스킬 발동, 저주의 파동.

머리 위에서 터져 나오는 죽음의 탁류와.

앞에서 덮쳐오는 저주의 탁류.

아크 리치는 양방향에서 터져 나오는 탁류에 스태프를 내리찍었다.

딱-!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무슨-!”

[이 괴물 놈!]

아크 리치의 전신에서 마나가 폭발하듯 뿜어져 제로의 데스 웨이브. 그리고 데이버그의 저주의 파동을 지워 버렸다.

단순히 마나를 뿜어내는 것만으로 마법이 지워졌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디스펠의 개념이 아니었다.

디스펠의 기본 골자는 마법이 발동되기 전, 그 수식과 마나에 간섭해 마법이 ‘발동할 수 없게’ 만들어 내는 것.

이처럼 단순히 마나를 이용해 마법 그 자체를 지워 버리는 모습은 제로 또한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아크 리치. 이 정도의 괴물이었냐!’

제로가 속으로 외쳤다.

특히나 과거 수십 명의 랭커들 중, 마법사 계열의 유저들이 놈에게 제대로 된 유효타를 넣지 못했던 이유를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칫! 데이버그! 저주의 정령을 꺼내!”

[이미 꺼냈다! 멍청한 주인 놈아!]

데이버그가 버럭 소리쳤다.

제로가 명령을 내리기 전에 이미 저주의 정령을 소환한 데이버그였다.

다만 문제는….

“미친….”

데이버그가 소환한 저주의 정령이 아크 리치의 발밑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 육신은 불완전하게 흔들려 언제 역 소환. 아니, 소멸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저주의 정령이라. 확실히 잘 만들어진 존재로다. 허나 날 상대하기엔 아직 그 힘이 미약하구나.]

아크 리치는 툭툭, 길쭉한 스태프로 저주의 정령을 두드리며 말했다.

저주의 정령은 아크 리치의 스태프에 닿을 때마다 더욱 불안하게 흔들리다 사라졌다.

이 이상 방치해 둔다면 저주의 정령이 소멸할 것임을 깨달은 데이버그가 다급히 역 소환한 것이다.

“젠장. 모조리 달려들어!”

데이버그의 저주도.

저주의 정령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그러한 의지를 품은 제로가 버럭 외치자, 가만히 망자들이 움직였다.

케르베로스의 시체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명계의 번견.

마계에서 서식하며, 언데드계의 파괴 전차라 불리는 어보미네이션.

비록 진짜 드래곤의 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강함은 어중간한 망자들보다 한없이 월등한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

그 외의 다종다양한 망자들까지.

그것들 모두가 제로의 명령에 따라 아크 리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크 리치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망자들에 끌, 웃음을 터트렸다.

[왕의 무대다.]

[어울리지 않는 놈들은 알아서 사라지거라.]

스킬 발동, 연쇄 폭발.

달리는 망자들 사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연쇄적으로 수십 번의 폭발을 만들어 냈다.

그러한 수십 번의 폭발에 제로가 소환한 대다수의 망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나마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나 어보미네이션. 명왕의 번견 따위의 최상위 망자들일 뿐이다.

아니, 그마저도 ‘형태’만 갖추고 있을 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데미지를 입었다.

“괴물이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놈은 괴물 중의 괴물이라고!]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제로에 데이버그가 다시 한번 외쳤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얼른 도망치는 것이…!]

“닥쳐!”

데이버그를 향해 욕설을 내뱉은 제로의 두 눈이 아크 리치를 향했다.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로 물러날 순 없다.

이대로 물러나는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한다.

“정 싸우기 싫으면 아가리 닥치고 가만히 있어.”

[네놈….]

격한 제로의 말에 데이버그가 입을 다물었다.

제로에게 사역된 후 지금까지.

길다고 할 수 없는, 아주 짧은 시간밖에 함께 존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데이버그과 봤던 제로라는 존재는 이런 격정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제로는 무척이나 인간. 특히나 유저라 칭해지는 이방인들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러할 터인 제로가 어째서….

한편,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아크 리치가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끌, 내부 분열인 것이냐.]

“마음이 바뀌었어. 반드시. 반드시 널 지배해 주마.”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후웅-!

콰직!

쏘아진 거대한 흑골의 창이 박살 났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쏘아진 데스 본 스피어를 아크 리치는 아이스 스피어를 통해 요격했다.

하지만….

“상관없어.”

스킬 발동, 데스 부스터.

애초에 데스 본 스피어를 날린 것은 아크 리치로부터 약간의 틈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허공에서 박살 난 데스 본 스피어는 충분히 그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 발 내딛자, 뼈로 이루어진 발바닥에서 죽음이 폭발했다.

폭발하는 죽음을 통해 가속도를 얻은 제로의 신형이 쭉 늘어나며 순식간에 아크 리치의 앞에 도착했다.

“죽어.”

스킬 발동, 망자의 폭거.

스킬 발동, 데스 임팩트.

손에 쥐어진 네크로노미콘이 거대한 대검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휘둘러진 망자의 폭거가 허공을 강타하자, 아크 리치를 향해 막강한 충격파가 쏘아졌다.

[나를 사역한다 하지 않았나?]

쩌어엉-!

아크 리치는 죽이겠다는 각오가 가득 들어차 있는 공격에 끌끌, 웃음을 터트렸다.

동시에 아크 리치의 앞으로 반투명한 방패가 만들어져 제로의 데스 임팩트를 막아 냈다.

제로는 너무나도 손쉽게 데스 임팩트를 막아 내는 아크 리치의 두 눈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고작 이 정도에 죽을 정도라면 사역할 가치도 없지.”

[그러하냐?]

제로와 아크 리치.

공허한 눈구멍에 피어오른 검은 귀화와 붉은 귀화가 서로를 향하며 허공에서 얽히고설켰다.

* * *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놈은 멀쩡한 거야!’

망자들로는 아크 리치를 이길 수 없다.

그러한 판단을 내린 제로는 직접 몸을 움직였다.

네크로노미콘을 망자의 폭거로 만들어 지금까지 총 수백 번을 휘둘렀다.

한 번, 한 번의 휘두름에 전력을 담은 공격은 랭커라 하더라도 손쉽게 막아 낼 수 있는 성질의 위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째서 생채기 하나 입히지 못하는 거냐고!”

후웅!

콰앙!

다시 한번 망자의 폭거를 휘두른 제로가 버럭 외쳤다.

망자의 폭거의 칼날은 농밀한 죽음을 머금었다.

그 죽음의 농도는 같이 죽음에서 파생된 언데드라 하더라도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아크 리치에게 아무런 타격 하나 입히지 못했다.

[어찌하여 자네의 공격이 나한테 닿지 않는가.]

[그것이 그토록 궁금하단 말이냐, 어리석은 아해여.]

실드 마법 뒤에 서 있는 아크 리치가 입을 열었다.

[간단하다. 자네는 검사가 아니기 때문이지.]

[자네는 죽음을 탐구하고, 죽음 속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

[그와 더불어 죽음을 지배하며, 죽음 그 자체를 수족처럼 부리는 존재이니, 검 한 자루에 모든 것을 맡긴 검사가 아니지 않은가.]

끌끌끌.

허공에 아크 리치의 공허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편 제로는 그러한 아크 리치의 말에 으득! 이를 갈았다.

알고 있다.

자신은 네크로맨서다.

하지만….

‘그 네크로맨서의 힘으로는 네놈을 죽일 수 없잖아!’

제로가 속으로 버럭 외쳤다.

어째서 자신은 이토록 약한 것일까.

어째서. 도대체 왜. 놈을 이길 수 없는 것일까.

놈이 아무리 강력하다 한들, 이미 멸망한 세계의 찌꺼기에 불과하다.

허상괴의 왕.

그놈에게 이미 한 번 패배한 전적을 가지고 있는 찌꺼기.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자신은 그러한 왕을 밀어붙였다.

즉, 자신은 아크 리치.

저놈보다 더욱 강력할 터인데!

제로가 그러한 생각과 함께 검을 휘두르는 순간, 세계가 잿빛으로 물들었다.

모든 것이 멈춰 버린 갑작스런 상황에 제로가 당황하고 있을 때….

[힘을 원해?]

머릿속에서 죽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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