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허억! 허억!”
“조, 조금만 힘들 내시게나! 고지가 코앞…!”
퍼억-!
지쳐 힘들어하는 동료를 다독이던 네크로맨서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린 그의 가슴에는 큼지막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이스! 1킬!”
“원딜 개사기네, 진짜.”
동료의 죽음에 뒤를 돌아본 네크로맨서들의 시야에 잡힌 것은 유저들로 이루어진 추격대였다.
그들은 사냥이라도 즐기듯 한 명, 한 명의 네크로맨서들을 죽일수록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이방인 놈들!”
한 네크로맨서가 분노 어린 눈으로 유저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이방인, 유저들에 대한 분노는 하늘을 뚫을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아무리 제국의 맹공이 있다 하더라도 잿빛 마탑에서 충분히 농성전을 펼칠 수 있었다.
잿빛 마탑은 침입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다양한 함정과 언데드들을 배치해 두었다.
그러한 잿빛 마탑이 뚫린 것은 같은 네크로맨서. 그것도 이방인 즉, 유저들 때문이었다.
“지금은 도주에 집중하시게나.”
한 노년의 네크로맨서가 스켈레톤의 등 뒤에 업혀 입을 열었다.
나름 마법사라고, 체력이 약한 네크로맨서들이 지금까지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언데드의 힘 덕분이었다.
그런 노년의 네크로맨서의 말에, 분노하던 젊은 네크로맨서가 다시 한번 이를 갈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분노에 눈이 흐려져 맞서기보다는, 몸을 숨겨 훗날을 도모해야 하는 때였다.
그렇게 네크로맨서들이 언데드의 도움으로 얼마나 도망쳤을까.
고지를 코앞에 두고, 네크로맨서들의 두 눈동자에는 점차 희망이 깃들었다.
허나….
“네~! 여기까지!”
돌연 도망치는 네크로맨서들의 앞으로 다수의 유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걸치고 있는 장비들도, 직업도. 외형도, 나이도 제각각인 그들의 중심에는 자애의 성자라 불리는 신성이 서 있었다.
“어디로 도망치나 했더니, 설마 죽음의 땅으로 향하고 있을 줄이야.”
신성은 슬쩍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죽음의 땅.
언데드들의 천국이라 불리며, 적정 레벨은 600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그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죽음의 땅에서 사냥을 하는 유저는 없었다.
특히나 죽음의 땅이 무서운 이유는….
“아크 리치를 향해 도망치는 거였습니까?”
아크 리치.
최상위 언데드라 불리는 리치가 오랜 시간 마법의 진리를 추구할 때, 도달할 수 있는 존재다.
그것의 힘은 현자라 불리는 존재들에 필적했으며, 단신으로 제국을 상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괴물이기도 했다.
한편 신성의 중얼거림을 들은 네크로맨서들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들이 도망치는 장소는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지라도, 설마하니 유저들이 아크 리치의 존재를 알고 있으리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제 말이 맞나 보군요.”
그저 분노와 당혹감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네크로맨서들에 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에게 악감정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국에서 척살령이 떨어진 지금. 차라리 저희 손에 죽는 것이 덜 고통스러우실 겁니…!”
스칵-!
말을 하던 신성이 다급히 고개를 틀었다.
그와 동시에 뼈로 이루어진 화살 하나가 스쳐 지나가며, 신성의 뺨에 한줄기 선이 그어졌다.
“멍청한 네크로맨서 놈들이!”
“모조리 죽여 버려!”
신성이 기습을 당했다는 것에, 모여 있던 유저들 중 신성 길드에 속해 있던 유저들이 분개하며 움직였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뽑아 쥐며 망설임 없이 네크로맨서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네크로맨서들 또한 제각기 언데드를 꺼내며 달려드는 유저들을 향해 발악 아닌 발악을 자행했다.
‘그는 없나 보군요.’
유저와 네크로맨서.
그들의 격렬한 전투를 지켜보는 신성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심 이 추격대에 속한 것도, 과거 네크로맨서임에도 유일하게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 줬던 존재.
학살자 제로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덕분이었다.
그를 다시 만난다면….
‘설욕전을 펼칠 생각이었는데.’
다시 한번 속으로 중얼거린 신성이 등을 돌려 걸어 나갔다.
하지만, 채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돌연 등 뒤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네크로맨서들의 비명이 아닌, 유저들의 비명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찾았다.”
하늘에서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목소리.
학살자 제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찾았다.”
망자의 군마를 타 움직이던 제로의 눈에 네크로맨서들이 내비쳤다.
그들은 죽음의 땅을 코앞에 두고 유저들에게 둘러싸여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기 무섭게 제로는 망설임 없이 네크로노미콘을 펼쳤다.
스킬 발동, 외차원의 창고.
후두둑-!
제로의 등 뒤로 외차원의 창고가 열리며, 다수의 시체가 쏟아져 나왔다.
한창 네크로맨서들을 상대하고 있던 유저들은 갑작스레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시체에 한껏 당황했다.
“네크로맨서의 무서움을 똑똑히 보여 주마.”
스킬 발동, 망자의 축제.
끼하하하!
끼기기긱-!
덜그럭, 덜그럭.
겔겔겔겔.
제로의 스킬이 발동하자, 외차원의 창고에서 쏟아지던 시체가 몸을 일으켰다.
어떤 것은 스켈레톤이 되어 뼈로 이루어진 무기를 휘두르고.
어떤 것은 좀비나 구울이 되어 시독이 묻은 손발톱과 이빨을 들이밀었다.
시체에 쌓여 있던 원한 따위는 뭉치고 뭉쳐 밴시 따위의 영체형 언데드가 되어 유저들을 덮쳤다.
유저들은 갑작스레 추가된 수천의 언데드에 한껏 당황하며,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하나둘씩 목숨을 잃어 나갔다.
“자네는?”
“베드로 님의 마지막 명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땅의 지배자, 아크 리치에게 당신들을 안내하겠습니다.”
제로는 자신을 알아본 몇몇 네크로맨서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크로맨서는 갑작스러운 제로의 등장에 한숨 돌리며 입을 열었다.
“베, 베드로 님은 살아 계신가?”
한 네크로맨서의 질문에 제로는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에 질문을 한 네크로맨서 외에도, 한창 유저들을 상대하고 있던 네크로맨서 전원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이럴 시간 없습니다. 제가 틈을 만들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선 그 틈을 파고들어 죽음의 땅으로 도망치십시오. 제아무리 저라 해도 이토록 많은 유저를 상대할 순 없습니다.”
“아, 알겠네.”
제로의 말에 네크로맨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 볼까?”
스킬 발동, 명계의 폭풍.
콰가가가가-!
이곳으로 오기 전 상대했던 천둥 길드의 길드원들을 집어삼킨 망자의 폭풍이 다시 한번 휘몰아쳤다.
명계의 냉기와 명계의 삭풍이 뒤섞인 그것이 날뛰자 유저들이 다급히 뒤로 몸을 빼냈다.
“아직 멀었어!”
스킬 발동, 망자의 역린.
제로에게서 튀어나온 수많은 망자들이 허공에 얽히고 뭉치며 창의 형태를 띠었다.
그것들은 검은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는데, 제로가 손을 내리긋자 망설임 없이 유저들을 향해 쏟아졌다.
“피하세요!”
스킬 발동, 자애의 휘광.
콰가가강-!
쏟아지는 망자의 역린에 신성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스킬을 발동하자, 전신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망자의 역린을 막아 냈다.
망자의 역린은 신성의 자애의 휘광과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 냈다.
“지금입니다!”
“고, 고맙네!”
제로의 외침에 네크로맨서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제로가 만들어 낸 틈을 파고들며 움직였고, 결국 유저들의 포위망을 뚫는 것에 성공했다.
“그럼 죽음의 땅에서 뵙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제로의 목소리는 유저들의 외침에 묻혀 사라졌다.
도망치는 네크로맨서들은 제로가 안전하길 기도하면서, 최대한 빠르게 죽음의 땅 안쪽으로 도망쳤다.
“이야-! 아주 눈물겨운 희생이로구만?”
네크로맨서들을 놓친 유저들은 제로를 바라봤다.
개중 한 유저가 신성의 곁을 스쳐 지나치며 입을 열었다.
걸치고 있는 장비는 가죽 갑옷. 허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을 만든 재료는 와이번의 가죽이었다.
등에는 하나의 활을 메고 있었으며, 허리춤에는 화살통이 매어져 있다.
특이한 점은 그는 엘프 종족의 플레이어였다.
그 증거로 그의 양 귀는 엘프의 그것과 같이 뾰족했다.
“넌?”
“안녕? 헌터 길드의 길드 마스터, 룬이라고 해.”
제로의 물음에 엘프 유저, 룬이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스스로를 소개했다.
‘룬… 이라.’
룬.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특히나….
“헌터 길드라…. 내가 알고 있는 그 헌터 길드가 맞냐?”
“10강 중 하나인 헌터 길드를 생각하는 것이라면 맞는데?”
“젠젠은 어떻게 됐지?”
“그놈은 또 누구야?”
제로의 물음에 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제로의 두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젠젠은 제로가 알고 있던 헌터 길드의 마스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룬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유저가 마스터의 자리에 앉아 있다.
‘이 또한 나라는 이레귤러에 의한 비틀림인가.’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룬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너 맞지? 학살자 제로. 네크로맨서 계열의 히든 클래스를 가지고, 최강 하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유저. 속설로는 너 혼자의 힘이 대형 길드와 맞먹는다고 하던데…. 맞냐?”
“내 힘이 대형 길드와 맞먹는지는 모르겠고, 한 가지는 알겠네.”
“한 가지?”
“너보다는 강하다는 거.”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후웅-!
콰직!
거대한 흑골의 창이 튀어나와 룬을 향해 쏘아졌다.
허나 역시나는 역시나일까.
나름 길드 마스터의 자리에 앉아 있는 유저가 홀로 돌아다닐 리가 없었다.
그 증거로 데스 본 스피어가 룬의 머리를 터트려 버리기 직전, 그의 그림자에서 한 유저가 튀어나와 데스 본 스피어를 박살 냈다.
“넌?”
“오랜만이다, 이 개자식아.”
룬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유저를 본 순간, 제로의 표정이 미미하게나마 찌푸려졌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유저의 이름은 쉐도우. 과거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을 노리고 제로와 대치하다, 제로의 손에 목숨을 잃었던 유저였다.
“네놈과 다시 만나는 날만 생각했…!”
콰가강-!
으르렁거리며 말하던 쉐도우가 뒤로 물러났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룬과 신성 또한 같이 물러섰다.
동시에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 수십 개의 흑골의 화살이 틀어박혔다.
“우리 사이가 편히 대화할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
스킬 발동, 다크 미스트.
스킬 발동, 역병의 안개.
푸확-!
씨익 웃어 보인 제로의 발밑에서 검은 연기와 녹빛 연기가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바람 한 점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색의 연기는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 주변을 뒤덮었다.
“이, 이건 뭐야?”
“모두 피해! 단순한 연기가 아니야!”
“젠장! 사제! 당장 정화 마…!”
끄아아아악!
아악!
사, 살려 줘!
두 가지 색을 이루는 연기 중, 역병의 안개에 노출된 유저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 나갔다.
과거 켄드로에게 사용했던 역병의 숨결이 ‘디버프’에 집중된 스킬이었다면, 지금 사용한 역병의 안개는 ‘살상용’에 집중된 스킬이었다.
역병 의사 가면에 딸려 있는 스킬로, 과거 역병의 사도가 만들어 냈던 끔찍한 역병들의 집합체나 다름없었다.
“칫, 신성!”
“알고 있습니다!”
죽어 나가는 유저들에 룬은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우며 버럭 외쳤다.
그의 외침에, 이미 준비하고 있던 신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발동, 정화의 대지.
파앗-!
신성의 몸에서 뿜어진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대지에 깃들었다.
순식간에 순백의 빛으로 물든 대지는 곧 역병의 안개를 밀어내고, 그것에 노출되었으나 아직 죽지 않은 유저들을 치료했다.
제로는 신성이 사용한 정화의 대지 위에서, 전신에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아까 내가 한 말 들었냐?”
“뭔 개소리야?”
“아까 내가 네크로맨서들에게 그랬잖아. 아무리 나라도 너희들 전부를 감당할 순 없다고.”
그랬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근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제로의 말에 유저들이 술렁였다.
제로는 술렁이는 유저들을 하나, 하나 훑어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사실 그거 구라야.”
스킬 발동, 데스 로어.
크아아아아아-!
제로는 입을 쩍! 벌리며 죽음의 외침을 토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