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80화 (80/200)

제80화

“엉덩이 무겁기로 소문난 황룡 기사단께서 어언 일로 움직였을꼬?”

베드로는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기사들을 향해 비꼬듯 입을 열었다.

황룡 기사단.

제국 최강의 기사단으로, 오직 황제의 명령만 받는 기사단이다.

레벨로 따지자면, 기사 단원 개개인의 레벨이 능히 400을 넘어 마스터 레벨에 가까웠으며, 부단장은 최소 600레벨.

기사단장이라 알려진 켄드로의 레벨은 800을 넘는다 알려져 있었다.

비록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황룡 기사단은 그 숫자가 3명뿐이며, 기사단장도, 부기사단장도 보이지 않는다 한들 네크로맨서들에게 있어 절망적인 상황임은 분명했다.

한편, 비꼬듯 말하는 베드로에 황룡 기사단의 세 기사 중 한 명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선을 넘었다. 지금처럼 얌전히 숨어 살았어야 했어.”

“선을 넘었다라….”

기사의 말에 베드로가 끌끌, 웃음을 터트렸다.

베드로 또한 잿빛 마탑의 마탑주이자, 네크로 마스터로서 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 있었다.

제로가 현자의 시체를 구하기 위해 황궁에 잠입한 것 덕분에 이렇듯 자신들은 도망자 신분이 되었다.

허나 그 원인의 제공은 자신이 했다.

자신이 과거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지도를 제로에게 건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그렇다고 이제 와서 후회한들 아무런 소용도 없다.

지금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네크로맨서들을 살려, 네크로맨시의 맥이 끊어지는 것을 방지해야 했다.

“황제의 번견인 자네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구먼. 허나….”

“허나…?”

“나 또한 잿빛 마탑의 마탑주이자 네크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몸. 고작 3명이서 찾아오면 안 되었다네.”

푸확-!

말을 마친 베드로의 전신에서 짙은 사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사기가 얼마나 짙었는지, 베드로가 딛고 있는 장소를 시작으로 대지가 죽어 나갔다.

“모든 네크로맨서들은 들으라!”

막대한 사기를 뿜어내며 베드로가 버럭 외쳤다.

“지금부터 자네들은 오직 살아남아 도망치는 것에 집중하도록! 한 명이라도 목숨을 부지해 네크로맨시의 맥이 끊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타, 탑주님께서는?”

“나는 여기서 놈들을 막는다.”

기기긱.

끼헤헤헤!

꺄하하하하-!

결의를 다진 베드로를 중심으로 대량의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지가 들썩이며 스켈레톤과 좀비 계열에 속한 상위 언데드가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일어난 언데드들은 서로 뭉쳐 더욱 거대해지고, 더욱 강해졌다.

하늘은 먹구름이라도 낀 것처럼 어두워지며, 허공에는 레이스와 밴시 따위의 영체형 언데드가 떠다녔다.

허나 언데드의 등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베드로는 드래곤의 뼈를 깎아 만들고, 드래곤의 눈동자를 박아 넣어 만든 전용 스태프를 꺼내 쥐며 영창에 들어갔다.

그의 영창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전신에서 뿜어지는 사기가 더욱 증폭되며 안개의 형태를 띠었다.

“그 육신에 고결한 기사도를 품은 죽음의 기사여! 지금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 그대의 칼날로 나의 몸을 지켜라!”

스킬 발동, 서먼 데스 나이트.

영창이 끝나기 무섭게 베드로의 등 뒤로 공간이 갈라졌다.

갈라진 공간 너머는 짙은 심연뿐이었으나, 돌연 세 쌍의 붉은 안광이 번뜩이며 세 명의 기사, 데스 나이트가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진리를 추구하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죽음조차 거부한 현자들이여! 지금 이곳에 그 모습을 드러내 그대들의 마법으로 나를 지켜라!”

스킬 발동, 서먼 리치.

세 구의 데스 나이트가 걸어 나온 심연 속에서 또 하나의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낡은 로브를 걸치고, 한 손에는 스태프를 쥐고 있는 언데드.

미간에 박혀 있는, 생명력이 응집된 붉은 보석이 아름답게 빛나는 리치였다.

세 명의 황룡 기사단은 베드로가 소환한 세 구의 데스 나이트와, 하나의 리치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네크로 마스터 베드로라 하더라도 저 정도의 최상위 언데드를 쉽게 다루지는 못한다.”

“동감. 한 번에 몰아붙여 목을 친다.”

“제아무리 놈이라 한들, 죽어서까지 언데드를 유지할 순 없을 것이다.”

타닷-!

서로를 바라보며 말하던 세 명의 황룡 기사단이 움직였다.

바닥을 박차며 쏘아진 그들은 세 방향으로 나뉘어져, 데스 나이트와 리치. 그리고 수천의 언데드의 중심에 있는 베드로를 향해 돌진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나는 잿빛 마탑의 탑주이자 네크로 마스터 베드로다! 고작 네놈들 따위에게 당할 정도로 나약하지 않단 말이다!”

스킬, 콥스 익스플로전.

콰가강-!

사방에 퍼져 있던 언데드가 폭발했다.

비산하는 살점과 뼛조각 속에는 막대한 사기가 깃들어 있으며, 그것이 틀어박히든. 혹은 스치든.

그러한 것에 닿기 무섭게 네크로맨서들을 압박하던 병사와 유저들이 픽픽 쓰러졌다.

“오라! 네놈들에게 네크로맨서의 무서움을 영혼 깊숙이 각인시켜 주마!”

* * *

“늦었… 나.”

초원에 도착한 제로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초원 곳곳에는 각종 시체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보통 로월에서의 시체는 유저든 npc든, 몬스터든.

일단 죽기만 한다면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이렇듯 시체가 남아 있다는 것은 지금의 이것이 일종의 ‘이벤트’라는 것을 알려 줬다.

그리고….

“고생하셨습니다.”

순식간에 초원의 중심에 도착한 제로가 허공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런 제로의 오른쪽 눈동자는 붉은 흉안이 번쩍이고 있었다.

[끌끌, 고생은 무슨.]

한편, 제로의 말에 허공에 사기가 뭉치며 하나의 영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네크로맨서들을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네크로 마스터, 베드로의 영체였다.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 있겠나.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이 늙은이인 것을.]

제로의 사과에 베드로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제로를 비난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제로가 황궁에 숨어 들어가, 난동을 벌이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허나 제로가 황궁에 숨어 들어가게 만든 원인은 자신이 건네준 지도였다.

또한 그 어떤 네크로맨서가 현자의 시체가 잠들어 있는 장소를 알고서도 가만히 있겠는가.

즉, 이 모든 것은 언제가 반드시 벌어지게 될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제로가 영체가 되어 버린 베드로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이거 봐, 이거 봐. 내가 말했지? 기다리고 있으면 알아서 튀어나올 거라 했잖아.”

“이 새낀 입만 열면 구라면서, 운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제로를 중심으로 다수의 유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직업도, 복장도 제각각인 그들에게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소속되어 있는 길드였다.

“천둥 길드….”

천둥 길드.

신성과 마찬가지로 10강 중 하나에 속해 있는 길드로, 길드원 전원이 뇌 속성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특이한 길드였다.

길드 가입 조건 또한 뇌 속성과 연관된 직업을 가질 것이기에 길드원의 숫자는 다른 10강에 비해 한없이 적었다.

허나 ‘뇌 속성’ 자체가 모든 속성 중, 최강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강함은 다른 10강에도 꿀리지 않았다.

“천둥 길드도 네크로맨서 사냥에 가담한 거냐?”

“이런 꿀퀘를 무시할 새끼가 있겠냐? 네크로맨서 한 명만 잡아도 제국 공헌도가 얼마인데.”

유저의 말에 제로의 두 눈동자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놈의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유저가 네크로맨서 사냥에 가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굳이 저놈들에게 듣지 않아도 제국이 직접 척살령을 내렸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거의 대부분의 유저가 참가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 또한 이벤트의 일종이겠지. 하지만….’

이런 이벤트는 과거에 없었다.

즉, 이런 이벤트가 생겨난 이유는 ‘자신’이라는 이레귤러 때문이었다.

하지만….

“뭘까? 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쟤 뭐래냐?”

“몰라. 겉보기에는 유저 같은데 사실 NPC인 거 아니야?”

“유저라면 저런 중2병 돋는 대사를 칠 리가 없…!”

퍼억-!

말을 하던 유저 한 명의 머리통이 산산이 터져 나갔다.

머리를 잃어버린 유저의 몸뚱어리가 무너져 내리며, 초원을 나뒹굴다 사라졌다.

제로는 동료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당황하는 유저들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솔직히 말해서 과거의 나였다면 딱히 신경 쓰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있잖아. 이 세상. 로스트 월드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 세상은….”

“뭐라 지껄이는 거야!”

스킬 발동, 썬더 브레이크.

콰가강-!

제로의 말을 끊으며, 마법사로 보이는 유저가 마법을 사용했다.

제로의 머리 위로 짙은 먹구름이 생겨나기 무섭게 한 줄기 낙뢰가 제로를 강타했다.

마법사, 그리고 그의 동료들은 썬더 브레이크에 의해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같은 길드에 속한 동료이기에 더더욱 방금 사용한 썬더 브레이크의 위력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의 위력은, 제대로 직격만 한다면 400레벨을 자랑하는 트롤조차 일격에 죽일 수 있다.

그렇게 유저들이 낄낄거리며 자신들의 승리를 만끽하고 있을 때….

“사람이 말을 하면 제대로 듣기라도 하지?”

푸확-!

어디선가 불어닥친 광풍에 흙먼지가 사라지고, 그 속에서 멀쩡한 모습의 제로가 걸어 나왔다.

아니, 그것을 멀쩡한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유저들은 천천히 다가오는 제로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며 주춤 물러섰다.

유저들이 본 제로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썬더 브레이크에 당해 전신은 그을음이 가득하고,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허나 유저들이 놀란 부분은 따로 있었다.

제로의 얼굴 절반은 검은 해골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허한 눈구멍에는 검은 귀화가 피어올랐다.

얼굴뿐만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손 따위도 군데군데 살점이 사라지고 검은 뼈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외에도 오른손에는 보기만 해도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기괴한 모습의 책, 네크로노미콘이 쥐어져 있었다.

제로는 자신을 보며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유저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선 네놈들을 시작으로 이 ‘이벤트’에 참여한 모든 유저를 죽이고 싶어.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네놈들이 아니야.”

말을 마친 제로가 슬쩍 뒤쪽을 바라봤다.

그런 제로의 두 눈에는 인자한 미소를 내비치고 있는 베드로의 영체가 들어섰다.

“뭐라 지껄이는 거야!”

“이벤트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아 저놈 유저야!”

“상관없어! 어차피 놈은 썬더 브레이크를 직격으로 맞았어! 저건 허세에 불과해!”

스킬 발동, 썬더 스텝.

파지직!

검을 뽑아 쥔 검사가 움직였다.

썬더 스텝이란 이름에 걸맞게 그가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움직일 때마다 사방으로 푸른 스파크가 튀겼다.

그렇게 순식간에 제로의 앞에 도착한 검사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스킬 발동, 라이트닝 블레이드.

파지직!

휘둘러지는 검사의 검신에 뇌전의 힘이 깃들었다.

그것은 스치기만 해도 검에 깃들어 있는 뇌전이 몸속으로 파고들어 내부부터 태워 버리는 흉악한 힘이었다.

허나….

“지금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살아남은 네크로맨서들이야. 그러니 너희들은 그냥 사라져.”

스킬 발동, 명계의 폭풍.

콰르르르-!

제로를 중심으로 명계의 냉기가 깃든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것은 뇌전의 힘이 깃든 검을 휘두르는 검사. 나아가 뒤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유저들까지 집어삼키고 나서야 사그라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