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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77화 (77/200)

제77화

푸확-!

의태의 반지를 뺀 제로의 몸에서 죽음이 터져 나왔다.

터져 나온 죽음은 곧 제로의 몸에 빨려들 듯 흡수되었으며, 죽음을 흡수한 제로의 육신이 변했다.

피부와 살점, 근육 따위가 썩어 문드러져 사라지고 흑골의 뼈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허한 두 눈구멍에는 검은 귀화가 피어올랐으며, 미간에는 제로의 생명력이 담긴 붉은 보석이 만들어졌다.

데이버그는 흑골의 리치로 변모한 제로를 향해 의외라는 듯 미소 지었다.

[끌, 꽤 실력이 뛰어나다 했더니 리치였던 것이냐.]

“불만 있냐?”

[불만이라니. 도리어 기쁘다네.]

[오랜만에 힘을 사용하는 것인데, 애송이를 상대해 봤자 무엇이 그리 재미있겠는….]

파밧-!

말을 하던 데이버그의 신형이 빛무리에 집어삼켜지며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데이버그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흑골의 창이 틀어박혔다.

[마도의 길을 걷는 대선배가 말을 하는데 이 무슨 무례인가.]

“대선배는 무슨.”

쯧쯧! 혀를 차며 말하는 데이버그에 제로가 피식 웃었다.

애초에 놈은 흑마법사요, 자신은 네크로맨서이다.

걸어 나가는 길 자체가 판이하게 다른데 선배고 뭐고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끌, 예의가 없는 후배로구먼.]

콰가강-!

다시 한번 혀를 찬 데이버그로부터 저주의 파동이 터져 나왔다.

제로는 또 한 번 연구실을 헤집으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저주의 파동에 피식, 비웃음에 가까운 것을 흘렸다.

“쓸 줄 아는 마법이라곤 그것 하나뿐이냐?”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콰가강-!

제로는 데이버그의 저주의 파동을 아까와 같이 데스 웨이브로 상쇄했다.

[설마.]

번쩍-!

저주의 파동이 데스 웨이브와 충돌하며 사라지는 순간, 데이버그의 공허한 눈구멍에 피어오른 귀화가 보랏빛을 토해 냈다.

동시에 저주에 걸렸다는 다수의 알림창이 떠오르며 제로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흠.”

제로는 눈앞을 가리는 알림창을 치우며 손을 쥐었다 폈다.

묘하게 몸이 무겁다.

사마력의 출력도 저하되는 것이 역시나 저주왕 데이버그의 저주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스킬 발동, 데스 로어.

크아아아-!

제로의 입이 쩍! 벌어지며 죽음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제로보다 약한 존재. 혹은 정신력이 나약한 존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포효였다.

그러한 데스 로어에 휘말린 데이버그는 정신이 뒤흔들림에 몸을 비틀거렸다.

[크흠-! 데스 로어! 오랜만에 들어 보는구나!]

정신 그 자체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데이버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마법을 시전했다.

그의 한쪽 손이 펼쳐지는 순간, 공간이 구의 형태로 일그러졌다.

“그래비티 볼.”

제로는 공간을 일그러트릴 정도로 강력한 중력의 구체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혀를 차며 더미 블링크를 사용했다.

제로가 서 있던 자리에 생겨난 더미는 그래비티 볼에 휘말리며 이리저리 일그러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역시 중력 마법은 속도가 문제로구나.]

데이버그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데이버그가 사용하는 중력 마법은 하나, 하나의 위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뛰어난 위력에 비해 그 속도는 터무니없이 느려, 어지간한 유저라면 충분히 반응해 피할 수 있었다.

한편 더미 블링크를 통해 데이버그의 뒤를 점한 제로는 네크로노미콘을 펼치며 다양한 마법을 사용했다.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스킬 발동, 데스 캐논.

스킬 발동, 역병-노화.

스킬 발….

제로로부터 터져 나오는 수많은 마법이 데이버그를 뒤덮었다.

그에 데이버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충격이 휘몰아쳤다.

제로는 자신의 마법이 만들어 낸 흙먼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로 안 죽은 거 알고 있으니 튀어나와.”

[끌끌.]

제로의 말에 기묘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어디선가 불어온 광풍이 흙먼지를 걷어 냈다.

사라진 흙먼지 사이에선 전신에 온갖 저주를 두른 데이버그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걸어 나왔다.

[네크로맨서로서 이 정도의 경지를 이룩하다니.]

[이대로 죽이기에는 너무나도 아쉽구나.]

[아해여, 어떠한가.]

[노부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네놈의 라이프 베슬을 넘긴다면 노부의 장기 말로 사용해 주마.]

[잘 생각하거라. 장기 말이라고는 하나 노부의 밑에 있으면 네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와 명예를 그 손에 쥘 수 있다.]

끌끌끌-!

여전히 기묘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하는 데이버그에 제로가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건 무슨 뜻이더냐?]

데이버그는 자신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제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랄하지 말라는 뜻이다, 병신아.”

스킬 발동, 망자의 폭거.

스킬이 발동되며 죽음이 터져 나왔다.

제로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던 죽음은 곧 네크로노미콘이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으며, 죽음을 먹어 치운 네크로노미콘은 어느 순간 거대한 대검으로 변했다.

[네크로맨서가 대검을 다룬다라. 네놈, 네크로 나이트라도 되느냐?]

데이버그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네크로 나이트.

오딘교의 성기사나, 검은 마탑의 다크 나이트. 혹은 푸른 마탑의 마검사와 비슷한 포지션에 놓여 있는 직업이었다.

어떻게 육성하냐에 따라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는 직업이었으나, 대부분은 네크로맨시도, 검술도 어중간했다.

“글쎄?”

콰앙!

제로가 한 발 내딛기 무섭게 발바닥에서 죽음이 폭발했다.

데스 부스터를 통해 가속도를 얻은 제로의 신형이 한 줄기 선이 되어 데이버그를 향해 쏘아졌다.

스킬 발동, 데스 임팩트.

꽈앙-!

데이버그의 앞에 도착한 제로가 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대검의 형태를 한 망자의 폭거가 데이버그의 몸을 강타하는 순간, 거대한 충격이 터져 나오며 데이버그의 몸을 날려 버렸다.

[크흠-!]

데이버그는 뼈를 울리는 충격에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과연 자신감 있게 검을 꺼낸 이유가 있…!]

“한눈팔고 있을 시간 없을 텐데?”

스킬 발동, 데스 임팩트.

꽈앙!

다시 한번 망자의 폭거가 휘둘러지고, 다시 한번 충격이 터져 나왔다.

허나 같은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는 듯, 데이버그는 블링크를 통해 제로의 공격을 피해 냈다.

그와 동시에….

[일단 그 귀찮은 속도부터 앗아 가마.]

쿠궁-!

데이버그를 중심으로 주변의 중력이 급격히 증가했다.

지금은 실전된 마법, 헤비 그래비티가 다시 한번 발동한 것이다.

제로는 온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중압감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로는 날 멈출 수 없어.”

제로는 수십 배, 수백 배 증폭된 중력의 공간 속에서 데스 부스터를 이용해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한 번,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증폭된 중력에 전신의 뼈가 삐거덕거림에도 제로는 멈추지 않았다.

[호-! 수백 배 증폭된 중력 속에서도 움직이는 것이냐.]

데이버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두르는 제로를 의외라는 듯 바라봤다.

헤비 그래비티 속에서 움직였던 존재는, 과거 데이버그가 활동했던 시기에도 몇 존재하지 않았다.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기사들이라 하더라도 증폭된 중력 속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못했다.

그나마 이처럼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던 자들은 몇 없다던 마스터의 경지를 이룩한 존재들뿐이었다.

개중에선 당연하게도 마법사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거 재미있구나!]

데이버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현재의 강함이 과거에 못 미친다고는 하나, 설마하니 마법사가 헤비 그래비티 속에서 몸을 움직일 줄이야.

데이버그는 그 신선함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쳐 쪼개고 지랄이야.”

제로는 웃음을 터트리며 방어조차 하지 않는 데이버그를 향해 망자의 폭거를 휘둘렀다.

스킬 발동, 데스 임팩트.

꽈앙-!

망자의 폭거가 휘둘러지며, 거대한 충격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런 씹!”

돌연 제로가 짧은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데스 임팩트에 얻어맞은 데이버그의 몸뚱어리는 어느새 보랏빛 기류에 보호받고 있었다.

“저주의 정령….”

[이것을 알고 있는가?]

제로의 중얼거림에 데이버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비쳤다.

데이버그의 몸을 뒤덮은 보랏빛 기류.

그것은 과거 데이버그가 만들어 낸, 그의 충실한 수족이라 할 수 있는 저주의 정령이었다.

저주의 정령은 말 그대로 저주를 통해 만들어진 정령이었다.

수백? 수천? 아니,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저주의 집약체인 그것은 실체가 없기에 평범한 물리 공격은 모조리 무시한다.

동시에 사방으로 온갖 저주를 흩뿌리는 그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특히나 그 위력은 과거 도시 하나를 멸망시킨 전적마저 존재할 정도였다..

“귀찮은 짓을.”

제로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데이버그의 힘이 전성기의 그것이 아니었기에. 저주의 정령 또한 본래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끌, 그나저나 대단하구나.]

[설마하니 노부가 이것을 꺼내게 만들 줄이야.]

“그래그래, 니 똥 굵다.”

데이버그를 향해 이죽거리며 제로는 망자의 폭거를 해제했다.

네크로노미콘은 흉악한 대검의 형태에서 책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상대가 저주의 정령까지 꺼낸 이상, 어중간하게 검으로 승부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이었다.

하지만….

“근데 한 가지 잊어버린 거 아니야?”

[노부가 무엇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냐?]

“내가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파라락-!

제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네크로노미콘의 페이지가 미친 듯이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진득한 죽음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제로의 전신을 보호하듯 휘감았다.

제로는 휘몰아치는 죽음 속에서 영창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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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발동, 망자의 축제.

끼하하하-!

께헤헤헤!

끼끼끼끽!

스킬이 발동하며, 사방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데이버그가 긴장감에 인상을 찌푸리며 이리저리 시선을 옮겼다.

[이것이 네놈이 숨긴 비장의 패이더냐?]

[그저 단순한 원령을 불러내는 것이?]

언제 긴장했냐는 듯, 제로를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네크로맨서의 진정한 무서움이 뭔지 알아?”

[네크로맨서의 진정한 무서움이라…. 이 노부는 모르겠구나.]

[알려 주지 않겠느냐? 어리석은 네크로맨서여.]

“네크로맨서의 진정한 무서움은 말이야…, 바로 영혼을 다룬다는 점이야.”

제로의 말과 함께 미친 듯이 넘어가던 네크로노미콘의 페이지가 멈췄다.

그에 데이버그가 의아함 가득한 눈으로 제로를 바라볼 때….

“보인다고. 보석 속에 깃들어 있는 네놈의 영혼이.”

제로의 눈구멍에 일렁이는 귀화 속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눈동자였다.

붉은 안광을 토해 내는 그것은 흉안이었다.

“영혼에 대한 보호는 충분히 했어?”

[네놈-!]

제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데이버그가 버럭 외치며 손을 휘둘렀다.

그에 저주의 정령이 괴성을 내지르며 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늦었어.”

* * *

“여기가 맞아?”

“나도 모르지. 일단 언데드가 나오니 가능성은 있을 듯?”

망자의 연구실 가장 밑바닥에서 제로와 데이버그가 전투를 치르고 있을 때.

연구실 1층을 넘어, 2층에 돌입한 파티가 있었다.

단 여섯뿐인 그들은 성기사와 사제로 이루어진 파티였으며, 그렇기에 제로가 배치해 둔 망자들을 처리하며 파죽지세로 나아갔다.

그렇게 눈앞을 가로막는 망자들을 처리하며 얼마간 던전의 끝을 향해 나아갔을까.

그들은 돌연, 지하에서 터져 나오는 사기를 느끼며 씨익 웃어 보였다.

“이거 당첨인 듯?”

“그런 듯?”

대화를 나눈 6명의 유저들이 속도를 올렸다.

허나,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실컷 망자들을 사냥하며 던전의 끝을 향하는 자신들의 뒤로, 누군가가 따라붙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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