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스킬 발동, 콥스 익스플로전.
쾅!
켄드로의 앞에 있던 망자가 폭발했다.
갑작스런 폭발에 켄드로의 움직임이 멈칫했으며, 사방으로 비산하는 파편들이 그런 켄드로의 전신을 두드렸다.
제로는 발이 멈춘 켄드로에 망설이지 않고 출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콥스 익스플로전으로 벌 수 있는 시간은 1초. 아니, 0.5초도 되지 않는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정도의 시간만으로도 제로는 충분히 켄드로와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딜 도망가는 것이냐.”
벌린 거리가 무색하게 켄드로는 순식간에 제로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켄드로의 전신은 황금빛 오러로 둘러쳐져 있었으며, 제로의 목을 노리며 휘둘러지는 검에도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자리 잡았다.
“칫.”
제로는 목을 향해 휘둘러지는 검에 낮게 혀를 찼다.
스킬 발동, 데스 부스터.
쾅!
발바닥에서 죽음이 폭발하며, 제로의 몸이 앞으로 쭉 뻗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켄드로의 검이 제로의 뒷목을 스쳐 지나갔다.
데스 부스터의 가속력이 없었다면 제로는 목이 베어져, 머리통이 바닥을 나뒹굴었을 것이다.
‘이대로는 안 돼.’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의태의 반지에 의해 힘의 30%가 봉인된 상태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켄드로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생각을 정리한 제로는 망설임 없이 손가락에 꽂혀 있는 의태의 반지를 뽑아 버렸다.
의태의 반지가 뽑히기 무섭게 푸확! 하며 제로의 전신에서 죽음이 폭발했다.
그 농밀한 죽음에 켄드로가 멈칫! 하는 순간, 제로의 신형이 뒤바뀌었다.
인간의 외형은 녹아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전신은 흑골로 뒤바뀌었다.
미간에는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으며, 평범했던 검은 로브는 칼날과도 같은 무언가가 생기며 날뛰었다.
한 손에 기괴한 네크로노미콘을 쥔, 흑골의 리치의 모습을 한 제로.
그 모습에 켄드로가 으음! 하며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평범한 네크로맨서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리치였을 줄이야.”
“그래서 어쩌라고.”
스킬 발동, 역병의 숨결.
푸확-!
뼈로 이루어진 턱이 쩍! 벌려지며 초록빛 연무가 뿜어졌다.
역병의 숨결.
수십 종류의 역병이 뒤섞인 그것은 디버프의 절정체였다.
역병의 숨결을 한 호흡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수십 종류의 디버프가 적용되고, 굳이 들이마시지 않는다 해도 피부에만 닿아도 수 종류의 디버프에 빠져 버린다.
일반적인 유저였다면 코앞에서 뿜어진 역병의 숨결을 피할 수 없었겠지만, 상대는 켄드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인간을 초월했다 여겨지는 괴물 중의 괴물이다.
역병의 숨결이 토해지기 무섭게 켄드로는 전신을 오러로 뒤덮으며 뒤로 물러났다.
“허나 리치라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네놈의 팔다리를 잘라 황제 폐하 앞으로 개처럼 끌고 가 주마.”
쾅!
켄드로가 바닥을 박차는 순간, 그 신형은 한줄기 황금빛 선으로 변해 앞으로 나아갔다.
역병의 숨결로 벌린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으며, 제로의 등 뒤에 나타난 켄드로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리치라면 어중간한 검격은 통하지 않을 터.”
후우웅-!
매서운 파공음을 동반하며 휘둘러지는 켄드로의 검은 중검이었다.
흔히 중검은 투 핸드 소드 따위의 대검의 무게를 이용하는 것이 정석이었으나, 켄드로는 손에 쥐어진 롱소드를 통해 어지간한 중검의 무거움 그 이상을 발휘했다.
검이 다가올수록 제로는 자신의 몸을 휘어 감는 기묘한 중압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스킬 발동, 더미 블링….
“소용없다!”
합!
제로가 도망치기 위해 더미 블링크를 사용하려는 순간, 켄드로의 입에서 우렁찬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그 기합성에는 마나가 깃들어 있었다.
그에 술식과 마나가 꼬여 더미 블링크 발동에 실패했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기합성 하나로 마법의 발동을 방해하다니.
차라리 고위 마법사가 디스펠을 사용한 것이라면 몰라도, 이런 식으로 마법의 사용을 방해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
“도망칠 수 없다!”
콰직!
더미 블링크에 실패한 제로의 어깨에 켄드로의 중검이 격돌했다.
그에 제로의 왼쪽 어깨뼈는 날카로운 검에 잘려 나간 것이 아니라, 무거운 둔기에 얻어맞은 양 박살이 나 버렸다.
“크윽-!”
제로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거리를 벌려야 한다!’
스킬 발동, 다크 미스트.
푸확-!
제로를 중심으로 검은 연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검은 연기는 점차 영역을 넓히며 퍼져 나갔고, 제로는 그러한 검은 연기 속에 숨어 영창을 이어 나갔다.
고작 이 정도의 눈속임으로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제로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찮은 잔재주를!”
격노한 음성을 토해 낸 켄드로가 검을 휘두르자, 매서운 검풍이 휘몰아치며 검은 연기, 다크 미스트를 흩트려 버렸다.
하지만.
“준비는 끝났어.”
약간의 시간을 번 것으로 제로는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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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발동,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
마지막 영창을 끝으로, 마법이 발동했다.
허공에 거대한 마법진이 새겨지며, 그것으로부터 재앙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
본 드래곤 쪽은 와이번의 뼈로 만들어져 본래의 본 드래곤의 강함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럼에도 본 드래곤은 본 드래곤.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자, 한창 망자들과 싸우고 있던 기사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켄드로 또한 설마하니 본 드래곤마저 소환할 줄은 몰랐다는 듯,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날뛰어라!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여!”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본 드래곤의 입이 쩍! 벌어지며 괴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나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그것이 날뛰기 시작하자, 황궁의 일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저건 뭐냐?
본 드래곤이다!
이벤트야? 이벤트?
시작의 도시에 있던 유저들은 황궁이 무너져 내리며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가 모습을 드러내자 각양각색의 반응을 선보였다.
다만, 대다수의 유저가 보인 반응은 갑작스러운 본 드래곤의 출현이 일종의 이벤트라는 반응이었다.
제로는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가 한창 날뛰는 틈을 타, 황궁의 무너진 틈으로 몸을 날렸다.
데스 부스터를 사용해 앞으로 나아간 제로는 순식간에 무너진 틈을 타 황궁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틈을 이용해 황궁을 빠져나온 것은 비단 제로뿐만이 아니었다.
“어딜 도망치는 것이냐!”
후웅-!
제로를 쫓아 모습을 드러낸 켄드로가 검을 휘둘렀다.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둘러쳐진 켄드로의 검은 망설임 없이 제로의 오른쪽 다리를 깔끔하게 잘라 냈다.
쿠당탕-!
오른쪽 다리를 잃은 제로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혼란을 틈타 황궁을 빠져나온 것은 좋았지만, 설마하니 켄드로가 날뛰는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를 내버려 두고 자신을 쫓아올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사단을 내놓고 어딜 도망가는 것이냐.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놈을 붙잡아야겠다.”
제로를 바라보는 켄드로의 두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무리 켄드로가 황룡 기사단의 기사단장이자,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접어든 존재라 한들.
이대로 제로를 놓친다면 황제의 질책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소의 희생을 보더라도 제로를 붙잡는 편이 더욱 좋았다.
특히나 상대가 리치인 이상, 이대로 놓친다면 훗날 제국을 위협할 거대한 무언가로 뒤바뀔 위험 또한 존재했다.
“젠장.”
제로가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현재 제로가 있는 장소는 황궁 뒤편의 화단이다.
한때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했을 화단은 날뛰는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에 의해 무너진 파편과. 제로와 켄드로에 의해 이리저리 망가져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아 그냥 조용히 물러나겠다고!”
스킬 발동, 역병-페스트.
찍찍!
찌이익!
찍찍찍!
제로가 다시 한번 페스트를 품은 쥐를 소환했다.
허나 똑같은 수에 두 번 당해 주지 않겠다는 듯, 켄드로는 쥐가 나타나기 무섭게 오러를 방출하며 모조리 증발시켜 버렸다.
“같은 수에 두 번 당하지 않는다.”
“칫.”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콰가강-!
이번에는 죽음의 탁류가 켄드로를 덮치며 전신을 두드렸다.
하지만….
“소용없다 했을 터!”
스칵-!
켄드로가 검을 휘두르자,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데스 웨이브를 갈라 버렸다.
그 외에도 제로는 무수히 많은 마법을 사용했다.
다시 한번 데스 웨이브를 시전하는 것으로 데스 본 스피어. 데스 에로우. 데스 캐논 등등의 다양한 마법을 토해 냈다.
그러나 무엇 하나 켄드로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마법은 켄드로의 전신을 뒤덮은 황금빛 오러에 막혔으며, 그나마 유의미한 타격을 입힐 만한 마법들은 오러 블레이드에 베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저히 도망칠 틈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 제로가 으득! 이를 갈았다.
‘이대로 죽는다면….’
차라리 캐릭터를 삭제하는 편이 좋을 정도의 페널티를 받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황제의 명에 의해 처형되어 캐릭터 자체가 사라질지도 몰랐다.
황제에 의해 발동하는 처형은 유저의 캐릭터를 말 그대로 삭제시켜 버리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도무지 가능성이 떠오르지 않았다.
특히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 상황을 이벤트라 받아들인 유저들이 황궁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이대로 황궁을 빠져나간다 한들, 유저들과의 대립은 피할 수 없었다.
‘젠장!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분명 무언가 방법…. 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제로가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떠올랐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눈앞의 켄드로는 물론, 황궁으로 모여드는 유저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이.
그렇게 제로가 하나 남은 다리로 몸을 일으키자, 켄드로가 검을 내뻗었다.
“이만 포기하게나.”
켄드로의 중후한 음성이 제로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엿이나 까 잡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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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입에서 짧은 영창이 튀어나왔다.
그에 켄드로가 검을 휘두르며 황금빛 오러를 쏘아 댔다.
허나 그의 오러는 제로의 전신을 뒤덮은 죽음에 먹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상황에 켄드로가 놀란 표정을 짓는 순간, 제로의 영창이 끝을 맺었다.
스킬 발동, 콜 데스 나이트 벤.
파앗-!
제로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던 죽음이 대지에 깃들며 하나의 마법진으로 변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법진 중앙에 환한 빛이 뭉쳐 들더니, 곧 한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폭력을 형상화한 듯한 갑옷을 걸치고 있었으며, 등에는 최흉최악의 마검이라 불리는 데스바인더를 메고 있는 기사, 벤이었다.
“여긴?”
벤은 갑작스러운 소환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 흑골의 리치 모습을 한 제로에게 시선이 닿자 살짝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무슨 일이지?”
“설명은 나중에. 지금은 날 데리고 도망쳐 줘.”
다급한 제로의 외침에 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벤이 제로를 들쳐메고 움직이려는 찰나, 켄드로가 난입하며 검을 휘둘렀다.
“흡!”
카가각-!
켄드로의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둘러쳐진 검과, 벤의 데스 블레이드가 둘러쳐진 데스바인더가 격돌하며 사방으로 충격이 휘몰아쳤다.
“넌…!”
“시간 없어! 도망쳐!”
켄드로를 알아본 벤이 멈칫했다.
허나 뒤늦게 울려 퍼진 제로의 외침에 벤은 의문을 접어 두며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렇게 벤은 순식간에 켄드로를 스쳐 지나쳐, 황궁의 벽을 타고 올라가 사라졌다.
제로를 놓친 켄드로는 검을 회수하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이거 폐하께 한소리 듣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