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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74화 (74/200)

제74화

“끌, 애써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오다니. 마음은 갸륵하나 정상 참작은 불가하….”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콰가강-!

뭐라 뭐라 지껄이는 켄드로를 무시하며 제로가 마법을 사용했다.

이미 네크로맨서인 것을 들킨 이상, 제로는 네크로맨시를 사용하는 것에 망설이지 않았다.

제로를 중심으로 죽음의 탁류는 거대한 해일로 변해, 사방에서 제로를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을 뒤덮었다.

끄아악-!

아악!

사, 살려 줘!

데스 웨이브에 휘말린 병사 수십 명이 단숨에 죽어 버렸다.

가까스로 죽음을 피한 병사들마저, 뒤늦게 육체의 생명을 갉아 먹는 죽음에 괴로워하다 생을 마감했다.

그 모습에 기사들은 물론, 켄드로마저 으득! 이를 갈았다.

“감히! 팔다리를 모조리 잘라 놈을 끌고 와라!”

파바밧-!

분노어린 켄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사들이 움직였다.

바닥을 박차며 뛰어오른 기사들의 숫자는 30명이 넘었다. 대부분이 하울링 기사단이었지만 몇몇의 은사자 기사단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소용없어.”

스킬 발동, 망자의 벽.

쿠르르-!

달려드는 기사와 제로 사이로 거대한 벽이 만들어졌다.

흑골의 망자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만들어진 벽은 다가오는 기사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허나 그들은 누가 뭐래도 기사!

고작 이 정도에 당황할 정도로 그들은 녹록지 않았다.

기사들은 재빠른 몸놀림을 선보이며 망자의 벽을 뛰어넘었고, 나아가 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하나같이 양팔과 다리를 노리며 휘둘러지는 기사들의 검에는 제로를 죽이겠다기보다는 제압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너희들의 실수야.”

스킬 사용, 더미 블링크.

파앗-!

스칵!

제로의 신형이 사라지는 순간, 기사들의 검이 스쳐 지나갔다.

허나 이미 제로는 몸을 뺀 뒤였으며 기사들이 벤 것은 단순한 더미에 불과했다.

기사들의 포위망에서 몸을 빼낸 제로가 나타난 장소는 도서관의 천장이었는데, 그렇게 제로가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놈! 도망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냐!”

가만히 서서 지켜만 보고 있던 켄드로가 검을 휘둘렀다.

언제 뽑아 쥔 것인지 모를 검이 휘둘러지자, 황금빛 오러가 반월영의 형태로 제로를 향해 쏘아졌다.

살기가 가득 묻어 나오는 그것은 제로를 제압할 생각이 있는지조차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다.

“칫.”

제로는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반월형의 오러에 혀를 차며 손을 내뻗었다.

스킬 발동, 본 실드.

스킬 발동, 죽음의 장막.

콰가강-!

제로의 앞으로 죽음으로 이루어진 장막이 펼쳐지고, 그 뒤로 흑골로 이루어진 방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켄드로가 쏘아 낸 오러는 두 개의 마법과 충돌하여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뭣들하고 있는 거냐! 당장 놈을 제압하지 못할까!”

다시 한번 켄드로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에 얼타고 있던 기사들이 후다닥 움직였다.

전신을 오러로 강화한 기사들은 폭발 속에서 빠져나온 제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스킬 발동, 더미 블링크.

파앗-!

제로가 다시 한번 더미를 남겨 두며 이동했다.

또 한 번 더미를 베어 버린 기사들의 표정은 와락! 일그러졌으며, 그들과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낸 제로는 씨익 웃었다.

“내가 네크로맨서인 건 잘 알고 있지?”

스킬 발동, 외차원의 창고.

쩌억-!

제로의 등 뒤로 공간이 갈라지며 심연을 머금은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창고가 머금은 심연 속에선 각종 망자들이 피어 올린 귀화가 일렁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기괴함에 기사들이 저도 모르게 움찔움찔 뒤로 물러났다.

“네크로맨서의 무서움을 보여 주지.”

스킬 발동, 망자의 대군단.

척. 척. 척.

스킬이 사용되며, 외차원의 창고에서 각종 망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거대한 방패로 전신을 가린 방패병이요, 그 뒤를 따라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 광전사들이 튀어나왔다.

그 외에도 망자의 궁기병과 망자의 장군, 망자의 창병 따위의 각종 망자들이 걸어 나왔다.

“크음.”

켄드로는 외차원의 창고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망자들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

망자 하나하나의 강함은 별 볼 일 없지만, 그 숫자가 문제였다.

특히나 망자들은 피로도, 공포도, 고통도 모르는 것들이었고, 그것들을 상대하는 기사는 인간이었다.

인간인 이상 오래 움직이면 당연히 피로를 느끼고, 자그마한 상처에도 고통을 느낀다.

상대인 제로가 얼마나 많은 언데드를 소환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들이었다.

“어쩔 수 없지. 기사들은 언데드를 맡아라! 난 놈을 처리하겠다!”

충!

켄드로의 외침에 기사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며 움직였다.

전신을 오러로 강화시킨 기사들은 제로가 아닌 망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로는 그런 기사들을 힐끗 훔쳐보며 입을 열었다.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술자인 네놈만 제압하면 저 언데드들 또한 어련히 사라지겠지.”

“흐음.”

켄드로의 대답에 제로가 묘한 웃음을 내비쳤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평범한 네크로맨서가 소환한 언데드는, 그것을 소환한 술자. 즉 네크로맨서 본인이 제압당하면 힘을 잃고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과연 제가 소환한 망자들도 똑같을까요?”

“그건 지금부터 확인해 보면 그만이다.”

쾅!

비꼬듯 말하는 제로에 켄드로가 움직였다.

발바닥에서 오러가 폭발하는 순간, 순간적인 가속도를 얻은 켄드로의 신형이 제로를 향해 쏘아졌다.

“우선 오른팔부터 가져가도록 하지.”

순식간에 제로 앞에 도착한 켄드로가 검을 휘둘렀다.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깃든 켄드로의 검은 궤적 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찢어발기며 나아갔다.

‘저건 막을 수 없다.’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만일 지금 다가오는 켄드로의 검을 막으려 한다면, 그의 말대로 오른팔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굳이 막을 필요는 없지.’

스킬 발동, 더미 블링크.

파앗-!

더미를 만들어 내며 제로가 사라졌다.

자비 없이 휘둘러진 황금빛 칼날은 더미의 오른쪽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다음으로.’

스킬 발동, 역병-노화.

푸확!

더미 블링크를 통해 켄드로의 등 뒤에 선 제로의 입에서 노란빛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켄드로는 전신을 뒤덮는 노란빛 연기에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연기 속에서 튀어나온 켄드로는 전신을 황금빛 오러로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으음.”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켄드로가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오러를 전신에 두르는 것이 반 박자 늦었다.

그 덕분에 몇 군데, 노란빛 연기에 닿았는데. 연기에 닿은 부위의 피부가 주름지고 늘어졌다.

그 모습은 마치….

‘연기에 닿은 부분만 시간이 급속도로 흘러간 느낌이군.’

“까다로운 힘을 사용하는구나.”

켄드로가 제로를 노려보며 말했다.

제로는 그런 켄드로의 말에 그저 어깨를 으쓱거렸다.

방금 사용한 역병-노화는 단순한 스킬이나 마법이 아니었다.

고대 역병의 사도라 불리었던 흑마법사가 사용했던 것으로, 일반적인 저주 따위와는 결을 달리했다.

특히나 역병의 무서운 점은 그 종류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고, 수십 종류의 역병들 모두가 서로 다른 해제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직 멀었어.”

스킬 발동, 역병-페스트.

찍찍찍.

찌직.

찌이익!

제로의 발밑에서 수백 마리의 생쥐들이 튀어나왔다.

그것들은 망설임 없이 켄드로를 향해 달려들었고, 그에 켄드로는 표정을 굳히며 검을 휘둘렀다.

콰가강!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휘둘러지며 달려오는 생쥐들을 베어 넘겼다.

허나 그것은 켄드로의 실수였다.

‘현실의 페스트는 감염된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물었을 때 발생한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페스트는….’

감염된 쥐의 피가 공기 중에 노출되었을 때, 그 피에 깃들어 있는 페스트가 퍼져 나가며 호흡을 통해 감염된다.

그 증거로 망자들을 상대하고 있던 기사와 병사들은 벌써부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기사와 병사들의 전신이 붉게 물들며 발열 증상을 보였다.

동시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들은 근육통과 두통을 호소했으며, 몇몇은 쿨럭이는 기침과 함께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그런 기사와 병사들의 모습에 켄드로의 표정이 악귀와도 같이 일그러졌다.

“놈-!”

콰앙!

켄드로의 몸에서 오러가 폭발하며 제로가 소환한 쥐를 말 그대로 증발시켜 버렸다.

“흠.”

제로는 그 모습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

확실히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켄드로였다.

어지간한 역병은 통하지도 않았으며, 그 힘은 말 그대로 인간을 초월했다.

설마하니 페스트를 품은 쥐를 저런 식으로 흔적도 없이 증발시켜 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뭐, 그렇다 해도….

‘내가 가진 힘이 역병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사기를 끌어 올렸다.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사기에 대기가 죽어 버렸다.

죽어 버린 공기를 한 호흡이라도 들이마신다면, 그 즉시 폐가 썩어 문드러져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이상 네놈이 하고 싶은 대로 두지 않겠다!”

켄드로에겐 당연하게도 통하지 않았다.

켄드로는 전신에 오러를 두르는 것으로 죽은 공기를 밀어내며 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합-!”

짧은 기합성과 함께 켄드로의 검이 휘둘러졌다.

허나 무언가 스킬이라도 사용한 것인지, 제로의 오른쪽 어깨를 노리며 휘둘러지는 검격은 분명 하나였음에도 수십으로 다가왔다.

‘칫.’

스킬 발동, 본 실드.

스킬 발동, 인첸트-아이언.

쩌어엉-!

강철의 속성이 깃든 뼈의 방패가 튀어나와 켄드로의 검을 막아 냈다.

켄드로는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내지 않았다 해서, 자신의 검이 막힐 줄은 몰랐다는 듯 당황 어린 표정을 내비쳤다.

“왜? 검이 막힐 줄 몰랐어?”

제로는 그런 켄드로에게 비웃음 섞인 조롱을 내뱉으며 또 하나의 마법을 발동했다.

스킬 사용, 데스 캐논.

후웅-!

쾅!

거대한 죽음의 탄환이 켄드로의 복부를 강타하며 폭발했다.

켄드로 또한 다급히 복부에 오러를 집중시켜 막아 내기는 했으나, 폭발을 온전히 흘려 내지 못하고 뒤로 튕겨져 나갔다.

켄드로가 멈춘 것은 족히 수십 미터 이상을 날아가 책장에 처박히고 나서였다.

“으음.”

무너져 내린 책을 헤치며 나온 켄드로가 낮은 신음을 토해 냈다.

“확실히 단신으로 황궁에 숨어들어 올 만한 실력이구나. 그렇다면….”

‘노부 또한 조금 진지하게 임해야겠구나.’

쿠구궁-!

켄드로의 분위기가 변했다.

방금까지는 그저 ‘평범한 기사’의 분위기를 내비치고 있었으나, 약간의 진심을 드러낸 지금.

켄드로의 전신에선 잘 벼려진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아니, 실제로도 그러한 기세에 켄드로가 딛고 있던 바닥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듯한 상처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엿 됐네.”

제로는 진심을 드러낸 켄드로에 혀를 찼다.

그나마 지금까지 켄드로를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가 진심을 발휘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그런 상대가 이젠 진심을 드러냈다.

지금부터는….

‘살아남기 위한 발악에 불과하다.’

어차피 목적은 이루었다.

현자의 시체를 획득했으며, 그 외에도 각종 보상을 획득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기에….

‘지금부터는 도망치는 것에 집중한다.’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순간, 켄드로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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