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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73화 (73/200)

제73화

“허억-. 허억-.”

제로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제로는 어느 순간 어둠뿐인 공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기억났어. 내가 왜 필사적으로 허상괴들을 죽였는지.”

위도, 아래도. 왼쪽도, 오른쪽도 구분할 수 없는, 오직 어둠뿐인 공간.

그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제로가 중얼거렸다.

제로가 미친 듯이 허상괴들을 베어 넘겼던 이유는 연인의 복수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를 위해, 제로는 칼을 뽑아 들고 허상괴들에게 대적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인류의 구원이라는 대의를 내세웠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건 단순한 복수심에 불과했다.

어쩌면 회귀 후, 지금까지 유저들을 조금이라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정보들을 풀어 왔던 것도 그러한 이유가 바탕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을까?”

제로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왜? 어째서? 자신은 이것을 잊어버렸는가.

어쩌면 그것은….

“회귀의 영향인 걸까.”

시간을 역행해 과거로 온다.

그것은 인과율에 위배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크로노스의 회중시계로 과거로 회귀할 때, 제로는 스스로에게 있어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연인에 관한 기억일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제로의 머릿속이 무수히 많은 가정으로 들어찰 때, 돌연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피어올랐다.

제로의 시선이 빛에 닿는 순간, 그 빛으로부터 순백의 길이 생기며 제로의 앞에 멈추었다.

[오시게나.]

멍하니 길을 바라보자, 머릿속에서 한 줄기 음성이 울려 퍼졌다.

제로는 그 음성에 맞춰 순백의 길 위를 걸어갔다.

터벅. 터벅. 터벅.

제로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뒤쪽의 길이 무너지며 사라졌다.

그 모습은 마치 제로에게 ‘넌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간 걸었을까.

다소 힘없는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간 지 5분.

제로는 어느새 순백의 길이 시작된 한 줄기 빛에 다다랐다.

[들어오게나, 이방인이여.]

빛의 앞에 멈춰 서자 다시 한번 음성이 울려 퍼졌다.

무언가 중후하면서도, 얼핏 들으면 어린아이와도 같은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제로는 한 줄기 빛에 손을 내뻗었다.

천천히 뻗어 나가는 손이 빛에 닿는 순간….

파앗-!

지식의 보고로 이동할 때와 마찬가지로 제로는 폭발하는 빛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여긴…?”

눈앞을 가리는 빛이 사그라들자 제로가 입을 열었다.

어느새 제로는 첫 번째 시련을 치렀던 들판에 가만히 서 있었다.

다만, 첫 번째 시련 때와는 다르게 들판에는 흐르는 피도, 부서진 병장기도, 하다못해 고블린 시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곤 그저….

“만나서 반갑네, 이방인이여.”

허공을 두둥실 떠다니는 잿빛 로브만이 전부였다.

로브 속은 온통 어둠뿐이었는데, 그러한 어둠 중에서도 푹 눌러 쓴 후드 부분에서 잿빛의 안광이 터져 나왔다.

제로는 그러한 로브를 보는 순간, 그것이 무명의 현자. 아니, 나인이 언급했던 죽음의 현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이 죽음의 현자입니까?”

“죽음의 현자라…. 한때 그렇게 불린 적도 있었지. 허나 지금은 이름조차 잃어버린 존재라네. 편하게 무명이라 부르시게나.”

제로의 질문에 죽음의 현자. 아니, 무명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래, 그래서 자네가 잊어버린 기억을 마주한 느낌은 어떠한가?”

“잊어버린 기억….”

“자네의 그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다네. 시간의 신, 크로노스. 고대의 고신들 중에서도 그 격이 드높기로 유명한 존재에 의해, 무의식에서도 상당히 깊숙이 잠들어 있더군.”

“어찌하여 그 기억을 저에게 보여 준 것입니까?”

제로가 입을 열었다.

시련이라는 이름하에 어째서 자신에게 그 기억을 보여 준 것일까?

어째서? 왜?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러한 생각과 함께 질문을 던지는 제로에, 무명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자네가 ‘대적자’이기 때문이라네.”

대적자.

자신이 무엇의 대적자라는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 눈앞의 죽음의 현자. 무명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참으로 많은 이름으로 불린다네. 자네가 칭한 ‘허상괴’라는 것 또한 무수히 많은 이름 중 하나이지.”

“허상괴를… 아십니까?”

“알다마다. 나 또한 한때 대적자로서 그들에게 맞서 싸워 왔다네.”

“그 무슨…!”

무명의 대답에 제로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무명 또한 한때 대적자로서 허상괴와 싸워 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로스트 월드는 단순한 게임. 아니, 어쩌면 지구를 담당하는 신이 만들어 낸 전사 육성소에 불과했다.

회귀 전에도. 그리고 회귀 후에도 로스트 월드 속에서 허상괴에 관한 정보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만일 무명이 정말로 허상괴와 대적했다면, 그에 관한 정보가 한 톨이라도 남아 있어야 했을 터였다.

“믿을 수 없….”

“믿을 수 없겠지.”

무명이 제로의 말을 잘라먹으며 입을 열었다.

“나 또한 믿지 않았다네. 설마하니 이 내가. 그리고 왕국이 그들에 의해 멸망할 줄은.”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자네, 혹 마도 시대라는 단어를 알고 있나?”

끄덕.

뜬금없는 무명의 질문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마법이란 학문이 극도로 발달된 시대.

어린아이조차 단순한 마법 한두 가지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마법이란 학문이 넓게 퍼져 있던 시대.

수백의 대마법사와 수십의 대마도사가 난립했던 시대.

현시대의 마법은 멸망한 마도 시대 때 있었던 마법의 잔재들을 긁어모아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나 각종 퀘스트로, 유저들이라면 마도 시대를 절대로 모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마도 시대의 끝 또한 알고 있는가?”

마도 시대의 끝…?

그 끝은 분명….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마법사들이 신의 영역을 넘보다, 신의 분노를 사 한순간에 멸망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끌끌, 딱히 틀린 말은 아닐세.”

제로의 대답에 무명이 웃음을 터트렸다.

“허나 더욱 정확히는, 신의 영역을 넘보던 마법사들이 열어서는 안 되는 문을 열었기에, 멸망한 것이라네.”

열어서는 안 될 문?

설마….

“그 문이란 게 설마…?”

“그렇다네. 내 시대에서는 ‘악마’라 불리었고. 자네들은 ‘허상괴’라 불리는 그것들이 살아가는 차원의 문을 열어 버렸다네.”

“…….”

무명의 말에 제로는 그저 침묵했다.

로스트 월드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무언가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또한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로스트 월드는….’

“자네가 시련을 이겨 낼 때, 그 기억을 살짝 들여다봤다네. 그리고는 참으로 재미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 자네 같은 이방인들은 이곳을 로스트 월드라 부른다지?”

“그렇습니다.”

“참으로 적절한 이름이야.”

음음!

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로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저 침묵했다.

“로스트 월드. 잃어버린 세계. 확실히 이 세계는 악마들의 침공이 시작된 그때, 미래를 잃어버렸지. 이렇듯 새로운 차원이 침공을 막아 내기 위한 훈련장으로밖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증거일걸세.”

“그렇… 군요.”

“허허, 너무 그리 심각한 표정 짓지 말게나. 이미 지나간 일이거늘.”

제로의 표정이 그만큼 심각했던 것일까.

무명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자네는 참으로 운이 좋아. 크로노스의 권능에 의해 또 한 번의 기회를 거머쥐었으니.”

“그 대가로 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연인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지요.”

“끌.”

제로의 말에 무명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허나 그 웃음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묘한 무언가를 풍겼다.

“정말 자네가 잃어버린 것이 기억뿐이라 확신하는가?”

“그게 무슨…?”

“신의 권능에 의한 대가. 그것도 크로노스 같은 격 높은 고신의 권능의 대가가 과연 기억뿐일까?”

흠칫-!

무명의 말에 제로가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연인은 분명 ‘현실’에서 만났던 연인이었다.

로스트 월드라는 게임이 오픈했을 때, 제로는 그녀와 같이 게임을 플레이했다.

같이 몬스터를 사냥하고, 같이 퀘스트를 클리어했다. 같이 모험을 즐긴 끝에 연인은 정령의 사냥꾼이란 직업을. 자신은 엘레멘탈 워리어라는 직업을 획득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회귀 직후 눈을 떴을 때 자신은 혼자였다.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그녀에 관한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제로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설마….”

“그 설마라네.”

제로의 중얼거림에 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로는 단순히 회귀에 의해 기억을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잃어버린 기억은 부수적인 것.

진짜는….

“그녀의 존재 그 자체였다는 말입니까?”

“자네가 겪은 크로노스의 권능은 단순히 과거의 자네에게 미래의 기억을 심어 주는 것이 아니라네. 말 그대로 하나의 차원에 적용되는 시간을 되돌려 버리는 것이지.”

무명의 말에 제로는 입을 다물었다.

결국, 그 말은 자신이 과거로 되돌아옴에 따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그녀의 존재 그 자체가 사라졌다는 말이 된다.

“어째서…. 어째서….”

제로의 두 눈에서 닭똥과도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회귀 따윈 하지 않았다.

설마 이런 진실이 숨어 있을 줄 알았다면, 회귀 따윈 받아들이지도 않았으리라.

그 대가로 지구가 멸망한다 한들, 그녀의 존재 그 자체를 희생해서 되돌아온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전 앞으로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까?”

“애석하게도.”

무명이 다소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가슴 아픈 진실에 제로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제로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돌연 하늘과 대지가 우르르 떨리며 무너져 내렸다.

무명은 무너지는 공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슬슬 시간이 되었군.”

“저는….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네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게나. 자네는 무엇을 하고 싶나?”

“저는….”

무명의 질문에 제로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은 것.

그것은….

“이제는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더 이상 그녀와 관련된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전….”

‘그녀가 좋아했던 이 세계를 지키고 싶습니다.’

제로의 대답에 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됐다네.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자네는 자네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면 그만이라네.”

그 말을 끝으로 제로가 서 있던 마지막 발판마저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환한 빛이 다시 한번 제로를 뒤덮었다.

눈앞을 가리는 밝은 빛이 사라지고, 다시 제로가 나타난 장소는 지식의 보고로 입장하기 전 있었던 황궁의 도서관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켄드로를 필두로, 수백의 병사들과 수십의 기사들이 제로를 포위하고 있었다.

[지식의 보고의 모든 시련을 통과하였습니다.]

[칭호-지식의 탐구자를 획득합니다.]

[칭호-죽음의 계승자를 획득합니다.]

[죽음의 현자의 시체를 획득합니다.]

켄드로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제로의 눈앞에 무수히 많은 알림창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녀의 희생을 통해 잡은 이 기회를 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제로는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리고는, 인벤토리에서 네크로노미콘을 꺼내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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