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지식의 보고 두 번째 시련에 입장하였습니다.]
[두 번째 시련-‘지식을 증명하라’가 시작됩니다.]
“지식을 증명하라? 이건 또 뭐야?”
들판이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제로는 다시 한번 환한 빛에 집어삼켜졌다.
그 빛이 사라졌다 여겨지는 순간 도착한 장소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무엇하나 존재하지 않는 공간.
바닥조차 존재하지 않아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조차 불분명한 그곳은 그저 어둠뿐인 공간이었다.
그렇게 제로가 의아함을 드러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제로의 앞으로 빛이 모여들며 하나의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그것을 봤을 땐, 순백의 구체인 줄 알았다.
허나 그 구체는 시시각각 색이 바뀌어, 어쩔 때는 붉은색으로, 어떨 때는 푸른색이나 녹색을 드러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나인. 이번 지식의 시련의 담당관입니다.]
시시각각 색이 바뀌는 구체는 스스로를 나인이라 칭했다.
제로는 설마 자신에게 말을 걸 줄은 몰랐다는 듯, 당황한 표정으로 구체를 바라봤다.
구체에게선 압도적인 힘이 느껴졌다.
어쩌면….
‘레벨로 따지자면 최소 700 이상인가.’
그러한 생각과 함께 제로가 입을 열었다.
“넌 뭐지?”
[제 이름은 나인. 죽음의 현자 □□□ □ □□□□께서 창조한 인공 생명체입니다.]
‘인공… 생명체.’
나인의 대답에 제로의 표정이 납득으로 물들었다.
하긴, 현자라 불리는 존재라면 저런 괴물을 만들어 내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죽음의 현자라고?”
[그러합니다. 저의 창조주는 인간들에게서 죽음의 현자라 불리었습니다.]
‘이곳은 무명의 현자가 만든 지식의 보고가 아니었던 건가? 아니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죽음의 현자는 후대에 무명의 현자로 기록된 것인가.
아니, 무엇이 되었든 현재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시련을 시작하자.”
[알겠습니다.]
시련을 돌파하면 그만이었다.
결연한 표정을 한 제로를 바라보며 빛의 구체, 나인이 말했다.
[그럼 두 번째 시련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당신이 품은 지식을 증명해 이 시련을 통과하길 바라겠습니다.]
파라락-!
나인의 말이 끝나며, 제로의 주변으로 다수의 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이것이 두 번째 시련입니다.]
[저는 당신께 총 열 가지의 수수께끼를 제시할 것입니다.]
[당신이 제가 제시하는 열 개의 수수께끼를 모조리 풀어내면 이번 시련은 통과입니다.]
[단, 단 하나의 수수께끼라도 풀지 못할 시, 시련은 실패로 간주하며 당신은 지식의 보고에서 추방됩니다.]
[한 번 추방되면 다시는 지식의 보고에 입장하실 수 없으니, 모든 문제는 신중히 풀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런 건가.’
나인의 말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식을 증명하라는 말 그대로 유저가 품고 있는 지식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단, 문제의 난이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열 개를 모조리 맞추는 것은, 제아무리 제로라 하더라도 살짝 긴장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 * *
[그럼 마지막 문제입니다.]
나인이 말했다.
그에 제로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열 개의 문제 중, 아홉 개를 풀어냈다.
하나하나가 쉬운 문제가 없었다.
나인은 수수께끼라 말했지만, 그것은 난센스 퀴즈 따위의 수수께끼라기보다는, 학교에서 치루는 시험 문제에 가까웠다.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난이도를 자랑했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면 모든 문제가 로스트 월드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다만, 개중 몇몇은 도대체 왜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하는 걸까? 라는 의문이 절로 들 정도로 손쉬운 문제 또한 존재했다.
[마지막 문제는 난센스 퀴즈입니다.]
‘난센스… 퀴즈?’
난센스 퀴즈라는 말에 제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인을 바라봤다.
허나 그런 제로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나인이 입을 열었다.
[저의 창조주, 죽음의 현자 □□□ □ □□□□께선 노년에 상위 차원의 지식을 접할 기회를 얻으셨습니다.]
[마지막 문제인 난센스 퀴즈는 그런 상위 차원에 관한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상위 차원?’
상위 차원이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제로는 난센스 퀴즈라는 말에 다소 풀어졌던 긴장감을 꽉 조였다.
그 근본은 로스트 월드와 관련이 되어 있겠지만, 제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위 차원이라는 공간에 관한 정보를 접해 본 적이 없었다.
허나 나인은 그런 제로의 걱정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무심히 문제를 이어 나갔다.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 이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
나인에게서 흘러나온 마지막 문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문제였다.
지구에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들어 봤을 수수께끼였는데, 설마 나인이 언급한 상위 차원이라는 것은….
‘지구를 말하는 것이었나.’
[정답은 무엇입니까?]
“정답은 인간이다.”
나인의 독촉에 제로는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정답이 ‘인간’이라 말하는 제로의 목소리에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무한에 가까운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나인은 그러한 제로의 대답에 침묵하기를 잠시, 다시 입을 열었다.
[정답입니다.]
나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로의 눈앞에는 두 번째 시련을 통과했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럼 이어서 마지막 시련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시련-정신의 시련을 시작합니다.]
“자, 잠…!”
나인의 말에 제로가 당황하며 뭐라 말하려 했다.
허나 그러기도 잠시, 어느새 제로의 의식은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감각은 과거, 허상괴의 왕에게 죽었을 때. 크로노스의 회중시계를 통해 과거로 회귀할 때와 비슷했다.
* * *
의식이 깊은 나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끝없는 무저갱 속으로 떨어지는 듯한 감각은 한평생 이어질 것만 같았다.
허나 곧 그러한 감각은 사라지고, 제로는 어느새 ‘어떠한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긴?’
어떠한 장소에 눈을 뜬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장소는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는 장소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로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기억이 정확하다면 여기는 홍대야.’
해가 저물고, 밤이 시작된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눈앞의 홍대는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누군가는 연인과 함께 거리를 거닐고 있었고, 누군가는 가족. 누군가는 친구와 거닐고 있었다.
특히나 홍대는 관광 명소답게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 무리 또한 종종 엿보였다.
‘정신의 시련이라니. 도대체 어떤 시련인 거지?’
첫 번째 시련 또한 의문을 품게 만들었는데, 마지막 시련이라 칭하는 정신의 시련 또한 제로를 의문 속으로 빠트렸다.
그렇게 제로가 한참 눈앞의 풍경을 지켜보고 있을 때….
‘저건? 나잖아?’
제로의 앞으로 한 청년이 지나갔다.
연인으로 보이는 여인과 함께 걷고 있는 청년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자신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제로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 돌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것은 비단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옆에 있는 여인도. 주변을 돌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도.
그들 모두가 때론 당혹감을, 때론 의아함을 드러내며 멍하니 눈앞을 응시했다.
그와 동시에….
쿠르르-!
대지가 떨렸다.
대기는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쳤으며, 어둠이 깔린 하늘은 곧 붉은 빛무리와 함께 쩍! 갈라졌다.
제로는 그 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허상계의 침입!’
붉은 빛무리와 함께 갈라지는 하늘 아니, 공간.
그것은 과거 허상계가 침입할 때와 동일했다.
그렇다는 말은….
‘이건 내 기억을 재생하는 거다!’
제로는 그러한 확신을 품었다.
그렇게 확신을 품기 무섭게, 갈라진 공간 너머에서 수십. 수백. 수천. 수만. 수억의 허상괴들이 떨어져 내렸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최하급과 하급의 허상괴들이었다.
허나 곧 시간이 흐를수록 중급의 허상괴. 상급의 허상괴. 나아가 최상급 허상괴와 왕의 친위대들까지.
전쟁에서 겪었던 거의 모든 종류의 허상괴들이 갈라진 공간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현상에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누군가는 ‘영화 촬영인가?’라는 어이없는 의문마저 품었다.
허나 곧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꺄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
으아아악!
괴물이다!
갈라진 공간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허상괴들의 살육이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허상괴의 괴력에 온몸이 찌부러지고. 누군가는 살아 있는 채로 씹어 먹혔다.
누군가는 전신에 구멍이 뚫려 죽고, 누군가는 머리가 터져 나가 생을 마감했다.
갑작스레 살육극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허나 모든 사람이 도망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멍때리고 있던 사람들 중 몇몇은 곧 결연한 표정으로 뭐라 뭐라 중얼거렸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사람들의 몸은 일순 빛무리에 휩싸였다.
몸을 휘감은 빛이 사라지고 드러난 모습은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마치 로스트 월드라는 게임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장비들을 걸친 채 허상괴의 괴물들에게 대적했다.
검을 내지르고, 도끼를 휘두른다.
묵직한 메이스가 역으로 허상괴의 머리통을 터트리고.
마법사로 보이는 사람들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과 얼음 따위가 인간을 잡아먹는 허상괴들의 목숨을 역으로 앗아 갔다.
개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당연 자신이었다.
자신은 자연의 속성력이 깃든 갑옷을 걸치고, 한 손에는 불꽃의 검을. 다른 손에는 냉기의 검을 쥔 채 허상괴들을 베어 나갔다.
그 모습에는 한 명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처절한 의지마저 엿보였다.
그렇게 날뛰는 자신의 옆에는 연인으로 보였던 여인 또한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곁에서 연신 화살을 쏘아 대며 갈라진 공간에서 튀어나오는 허상괴들을 저격했다.
허나 허상괴는 많았고, 지켜야 할 사람 또한 많았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로 각성한 사람들은 몇 없었기에, 그들의 열세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젠장! 도망쳐! 도망치라고!’
제로는 눈앞에서 싸움을 이어 나가는 자신을 향해 외쳤다.
허나 아무리 외쳐도 입 밖으로는 단 한 톨의 목소리도 새어 나가지 못했다.
‘제발…, 도망치란 말이다!’
그럼에도 제로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자신은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홍대의 싸움이라는 극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이 싸움에서 제로는. 자신은….
‘그녀를 지키란 말이야!’
자신의 연인.
로스트 월드에서 정령의 사냥꾼이란 직업을 가진 랭커.
그녀를 잃게 되었다.
그녀를 죽인 것은 왕의 친위대 중 한 명으로, 제로의 강함에 관심을 가지며 그에게 달라붙었다.
그러한 친위대와의 전투 중,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연인이 죽어 버렸다.
그 모습을….
그 모습을….
그 모습을….
‘다시 볼 순 없단 말이다!’
제로가 주먹으로 땅을 내리치며 외쳤다.
허나 눈앞의 풍경은 잔혹했다.
개입할 수 없는 그것은 무척이나 잔혹하리만치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여 줬다.
제로가 알고 있는 미래대로, 친위대 중 하나가 자신의 강함에 관심을 가지며 싸움을 붙여 왔다.
그 싸움에서 자신은 잠시 한눈을 팔게 되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친위대는 심장을 노리며 무기를 휘둘렀다.
그에 자신은 당황하며 어떻게든 대응하려 했으나 한발 늦었다.
그렇게 친위대의 무기가 자신의 심장에 닿으려는 순간, 연인이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살아남아야 해.”
죽기 직전, 연인이 남긴 말이었다.
제로는 다시 한번,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으아아아아-!’하는 괴성을 내지르며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