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71화 (71/200)

제71화

“여긴….”

제로는 주변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환한 빛에 집어삼켜진다고 생각한 순간, 어느새 자신은 처음 보는 장소에 떨어졌다.

제로가 떨어진 장소는 드넓은 들판이었다.

다만, 그러한 들판은 평범한 들판이 아니었다.

사방에선 비릿한 피 내음이 퍼져 나가고, 곳곳엔 시체와 무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시체는 인간의 것이 아닌 몬스터의 것이었는데, 그 종류도 다양해 고블린과 코볼트. 오크를 시작으로 최상위 몬스터라 불리는 오우거나 드레이크의 시체마저 종종 엿보였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제로가 다시 한번 입을 여는 순간,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알림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식의 보고에 입장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련-‘무력을 증명하라’가 발동됩니다.]

[시련이 시작됩니다.]

“첫 번째 시련? 아니 그것보다도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

제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려 주지 않았으면서, 대뜸 시련을 시작하겠다니.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처음 떠오른 알림창이 이곳이 지식의 보고라는 것을 알려 줬다.

그렇다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시련을 전부 끝내면 현자의 시체는 내 거야.”

그러한 중얼거림과 함께 제로는 네크로노미콘을 쥐어 들었다.

제로가 준비를 끝내기 무섭게 하늘이 갈라졌다.

아니, 더욱 정확히는 공간이 갈라졌다.

갈라진 공간은 외차원의 창고나, 상급 이상의 망자들을 소환할 때와 마찬가지로 진득한 심연을 품고 있었다.

그러한 심연 속에서 모습을 나타낸 것은….

“허상괴. 그리고 유저인가.”

제로가 으음. 하는 낮은 신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갈라진 공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허상괴와 유저들이었다.

유저들은 이제 막 초보자 티를 벗어난 장비를 착용한, 레벨로 따지자면 고작 50 언저리의 모습이었다.

허상괴들 또한 하나같이 최하급 허상괴로 매드 하운드나 그레이트 웜 따위의 것들이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허상괴나 유저들의 눈동자가 탁하게 풀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무언가에 정신을 제압당해 조종당하는 인형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로월에 허상괴가 나타난 거지?”

제로는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왜 허상괴가 나타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고민을 이어 나갈 새도 없이, 갈라진 공간 속에서 떨어진 그것들이 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 봤자 50레벨 언저리의 유저들에 최하급 허상괴. 이 정도는 가뿐하지.”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콰가가강-!

제로를 중심으로 뻗어 나간 죽음의 파동이 저것들을 덮쳤다.

데스 웨이브에 쓸려 나간 유저와 최하급 허상괴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단 일격.

단 하나의 마법으로 수십의 유저와 수십의 최하급 허상괴를 쓸어버린 것이다.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쿠르르-!

모든 유저와 최하급 허상괴들을 쓸어버리자, 곧바로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됐다.

이번에 나타난 것은 100레벨 정도 되어 보이는 유저들과 최하급, 하급이 뒤섞인 허상괴들이었다.

‘웨이브가 진행될 때마다 점점 강해지는 형태인 건가. 귀찮은 방식이야.’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다시 한번 발동된 데스 웨이브에, 두 번째 웨이브에서 튀어나온 유저와 허상괴들이 똑같이 쓸려 나갔다.

앞으로 몇 번의 웨이브가 남아 있을지 모를 상황이었지만, 시련의 강함이 고작 이 정도라면 충분한 낙승이었다.

제로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갈라진 공간이 우르르 떨리며 세 번째 웨이브가 시작됐다.

이번에 튀어나온 것은 130레벨쯤 되어 보이는 유저들과 하급으로만 이루어진 허상괴였다.

그 숫자 또한 첫 번째와 두 번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얼핏 봐도 유저들의 숫자만 100여 명을 넘어서는 것 같았다.

허상괴의 숫자까지 합친다면 그 물량은 족히 300 이상!

하지만.

“네크로맨서 앞에서 물량 대결을 하자는 거냐?”

제로는 씨익 웃어 보이며 손을 휘저었다.

쿠르르.

제로에게서 흘러나온 죽음이 들판을 가득 메운 시체에 깃들었다.

죽음이 깃든 시체는 거짓된 생명을 부여받으며 언데드로 되살아나 몸을 일으켰다.

단순한 좀비나 스켈레톤부터, 어떤 것은 그보다 상위종인 구울이나 스켈레톤 워리어. 스켈레톤 나이트 따위의 언데드로 부활했다.

비록 들판에 널브러진 모든 시체를 언데드로 만들지 못했지만, 지금 몸을 일으킨 언데드의 숫자만 하더라도 천에 가까웠다.

등급으로만 따진다면 지금 만들어 낸 언데드의 강함은 처참하다.

각각의 강함만으로 따진다면 세 번째 웨이브에서 튀어나온 저것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숫자의 폭력은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또한 언데드는 피로도, 공포도. 고통도 모른다.

지금 일으킨 언데드만으로도 충분히 세 번째 웨이브를 통과할 수 있다.

제로는 그러한 확신을 가지며 손을 내리그었다.

“모조리 죽여 버려.”

* * *

“허억-. 허억-.”

제로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벌써 몇 번째 웨이브일까.

스무 번째 웨이브에서부터 제로는 숫자 세는 것을 멈추었다.

이 빌어먹을 시련에서 더 이상 유저들은 나오지 않았다.

허상괴의 숫자들마저 점차 줄어들었다.

그 대신….

쿠아아아아-!

갈라진 공간에서 튀어나온 괴물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것은 말의 하체에 인간의 몸뚱어리. 소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등에는 펄럭이는 박쥐의 날개와 뱀으로 이루어진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좀 끝내자!”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후웅-!

퍼억!

거대한 흑골의 창이 허상괴의 몸뚱어리를 꿰뚫었다.

허상괴는 복부에 만들어진 거대한 구멍에서 검은 피와 내장들을 쏟아 내며 쓰러졌다.

[50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아 쫌!”

방금 상대했던 허상괴 또한 과거 전쟁에서 수많은 플레이어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괴물이었다.

손쉽게 죽여 버리긴 했지만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 상대를 처리했는데, 조금의 쉬는 시간 정도는 줘도 되지 않을까?

제로가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갈라진 공간에서 다른 허상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허상괴는….

“왜 하필 네가 튀어나온 거냐.”

오십 번째 웨이브에서 튀어나온 허상괴의 외형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허나, 그것은 외형만 인간일 뿐, 그 속까지 인간은 아니었다.

지금의 저 모습 또한 제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형태로 의태했을 뿐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바닥에 내려선 그것의 육체가 울긋불긋 부풀어 올랐다, 압축되고.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변했다.

엉덩이에는 푸른 비늘로 뒤덮인 용의 꼬리가 돋아났다.

10배 이상 거대해진 몸뚱어리는 꼬리와 마찬가지로 푸른 비늘이 뒤덮었으며.

양손에서 돋아난 열 개의 손톱은 날카로운 예기를 흩뿌리는 명검으로 변했다.

머리에는 검은 뇌전이 파지직거리는 세 개의 뿔이 돋아나고, 등에는 방금 상대했던 허상괴와 비슷하게 박쥐의 날개가 펄럭인다.

“허상괴의 왕.”

완벽히 괴물의 모습으로 변한 그것을 바라보며 제로가 중얼거렸다.

50번째 웨이브로 갈라진 공간에서 튀어나온 허상괴는, 한 번 제로를 죽인 전적이 있었던 허상괴의 왕이었다.

어째서 저것이 튀어나온 것일까.

아니, 어째서 로스트 월드 내에 허상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그 의문은 첫 번째 웨이브가 시작된 이래, 쭉 품고 있었던 의문이었음에도 그 진실에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제로는 확신했다.

저놈이 튀어나왔다는 것은….

“이번 웨이브가 마지막이란 거지!”

스킬 발동, 데스 캐논.

후웅-!

쾅!

거대한 잿빛의 탄환이 쏘아지며, 허상괴의 왕과 충돌해 폭발했다.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허상괴의 왕의 거체를 완전히 뒤덮을 정도로 짙은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 정도로 안 죽는 거 다 알거든?”

제로는 먼지구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말에 대답하듯, 돌연 광풍이 휘몰아치며 먼지구름을 걷어 갔다.

사라진 먼지구름에서 튀어나온 허상괴의 왕은 데스 캐논에 얻어맞기 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허상괴들 모두 본래의 강함에는 한참 못 미쳤어.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영향으로 본래의 강함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것이겠지.’

제로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허상괴의 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현재 눈앞에서 거대한 위압감을 발산하는 허상괴의 왕 또한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말이 되지.”

스킬 발동, 외차원의 창고.

스킬 발동, 명계의 대군단.

제로의 등 뒤로 공간이 갈라지며 외차원의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외차원의 창고는 짙은 어둠을 품고 있었는데, 그러한 어둠 속에서 푸른 귀화가 피어오르며 수천, 수만의 망자들이 걸어 나왔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는 달라.”

키게게겍.

달그락달그락.

키하학.

조용히 중얼거린 제로가 손을 내리그었다.

그에 외차원의 창고에서 걸어 나온 망자들이 일제히 허상괴의 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아아아-!”

허상괴의 왕 또한 괴성을 내지르며 움직였다.

그것이 양손을 휘두르자, 열 개의 손톱에서 날카로운 참격이 쏟아져 내렸다.

콰가가강-!

수백의 참격에 휩쓸린 망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단 한 번의 휘두름에 수천의 망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줄어든 숫자는 보충하면 그만이야.”

딱-!

제로가 손가락을 튕기자, 여전히 열려 있는 외차원의 창고에서 다시 한번 망자들이 걸어 나왔다.

단,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망자는 광전사와 장군, 궁기병과 망자의 기사 따위의 중급 이상 망자들이었다.

“놈을 죽여 버려.”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망자들이 움직였다.

가장 뒤에 서 있던 궁병들은 죽음이 서린 화살을 쏘아 대고, 나머지 망자들은 제각각 자신들만의 무기를 꼬나쥐며 허상괴의 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귀, 귀찮…. 귀찮은 나, 날파리들이!”

파지직!

콰가가강!

어눌한 목소리로 입을 연 허상괴의 왕에게서 검은 낙뢰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사방을 뒤덮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망자들을 불태우고, 박살 내며 사라졌다.

“어눌하긴 하지만 말을 할 줄 안다라. 뭐, 그래도….”

‘변하는 건 없어’

변하는 건 없다.

상대는 그저 외형만 따라 한 가짜. 그런 가짜에게 자신은 지고 싶어도 질 수 없었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제로가 손을 내뻗었다.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스킬 발동, 데스 스톰.

스킬 발동, 데스 에로우.

스킬 발동, 데스 캐논.

스킬 발….

다수의 마법이 발동하며 폭격이 시작됐다.

죽음을 머금은 거대한 흑골의 창이 왕의 몸뚱어리에 꽂힌다.

죽음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탄환과 화살 따위가 왕의 몸뚱어리를 강타했으며.

죽음의 폭풍이 왕을 집어삼켰다.

그 외에도 다종다양한 마법들이 펼쳐지며 허상괴의 왕의 생명을 실시간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아아아아-!”

점차 죽음이 가까워진다.

그것은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가짜에게도 참을 수 없는 공포를 선사하는 것일까.

제로의 마법 폭격에 당하는 허상괴의 왕이 괴성을 내질렀으나, 그 괴성 속에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배어들어 있었다.

“이만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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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발동, 망자의 역린.

제로에게서 흘러나온 망자들이 뭉치며 다수의 창이 만들어졌다.

그 창에는 검은 뇌전이 파지직거렸으며, 제로가 손을 까딱이자 허상괴의 왕을 향해 쏘아졌다.

“그아아-!”

파지지직!

허상괴의 왕 또한 똑같이 검은 뇌전을 토해 내며 망자의 역린을 막아 내려 했으나 헛수고였다.

망자의 역린은 허상괴의 왕이 뿜어낸 뇌전을 무시하며 쏘아졌고, 이윽고 왕의 몸에 틀어박히며….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하늘마저 무너트릴 것만 같은 폭발이 가시고 드러난 모습은 끔찍했다.

허상괴의 왕은 온몸이 산산이 터져 나갔으며, 살덩어리들은 들판 곳곳을 나뒹굴었다.

하늘에선 검은 피로 이루어진 비마저 쏟아졌다.

[첫 번째 시련-‘무력을 증명하라’를 통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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