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여기가 황궁….”
지하 하수도를 빠져나온 제로가 도착한 장소는 황제의 집무실이었다.
제로가 이용한 비밀 통로 자체가 황제의 대피로 역할을 했기에, 집무실에 도착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유저 최초로 황궁에 들어왔습니다.]
[유저 최초로 황제의 집무실을 방문했습니다.]
[명성이….]
제로는 눈앞을 가리는 알림창을 지우며 조심스레 움직였다.
이제부터는 최대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지하 하수도에서 은사자 기사단의 기사, 그것도 단 한 명만 만난 것은 상당히 운이 좋은 것이었다.
만일 지하 하수도에서 마주친 기사가 세 명 이상이었다면.
혹은 황룡 기사단에 소속된 기사였다면. 제로는 현자의 시체고 뭐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두리번, 두리번.
제로는 조심스레 시야를 움직이며 황궁 내부를 거닐었다.
황궁은 그 명성에 걸맞게 상당히 거대했으며, 침입자를 교란하기 위해 미로와도 같은 복잡함을 갖추었다.
그 외에도 황실 마법사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디뎠다가는 죽기 딱 좋았다.
“그나저나 상당히 조용한데….”
제로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지하 하수도를 탐색하러 간 은사자 기사단의 기사와 수십 명의 병사가 죽었다는 것은 진즉에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 것치고는 황궁 내부가 상당히 조용했다.
“이쯤이면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다녀도 이상하지 않…! 흡!”
의아함을 느끼며 중얼거리던 제로가 다급히 몸을 숨겼다.
제로가 몸을 숨기기 무섭게, 제로가 서 있던 복도를 수명의 병사들이 후다닥 달려 나갔다.
몸을 숨기는 것이 1초. 아니, 0.5초만 늦었어도 제로는 병사들에게 들켰을 것이다.
“그럼 그렇지.”
병사들이 사라졌음에도 최소 5분 이상 몸을 숨기고 있던 제로가 조심스레 걸어 나왔다.
황궁에서 자신을 찾지 않았을 리가 없다.
황제의 무력이 뛰어나 암살당할 가능성이 한없이 0에 수렴한다 한들, 애초에 ‘허락받지 않고 황궁에 발을 들였다’라는 행위 자체가 중범죄를 넘어 즉결 처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제로는 최대한 기감을 퍼트리고,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 * *
“여기서 왼쪽.”
제로는 슬쩍 왼쪽 손등을 훑어보며 왼쪽으로 꺾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미로나 다름없는 황궁 내부를 헤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제로의 왼쪽 손등에 새겨진 문양. 고대의 지도가 불타오르며 새겨진 그것은 제로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 주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제로는 황제의 집무실에서 이제 막 300m 정도를 움직였다.
병사와 기사들의 시선을 피해 조심스레 움직이다 보니, 한 번에 많이 움직일 수 있는 여견이 되지 못한 탓이었다.
그나마 황궁에 숨어든 것이 제로였기에 300m나 움직일 수 있었지, 그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병사 혹은 기사에게 들켜 목이 잘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헙! 치, 침입…!”
스킬 발동, 사일런스.
스킬 발동, 데스 스피어.
그러나 아무리 조심한다 한들, 황궁 내부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NPC를 아예 피할 수는 없었다.
제로는 갈림길을 꺾어 움직이기 무섭게 마주한 메이드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사일런스가 놀라 외치는 메이드의 목소리를 빼앗았으며, 뒤늦게 날아간 데스 스피어가 메이드의 목숨을 거둬들였다.
이런 식으로 만난 메이드의 숫자만 벌써 다섯 명 가까이 되었다.
병사나 기사가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그래도 경험치는 많이 주네.’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력은 약해도 나름 황궁 내부에서 활동하는 NPC라는 것일까.
일개 메이드조차 어지간한 보스급 몬스터 이상의 경험치를 안겨 줬다.
다만 한 가지 불만인 것은….
‘시체가 남는다는 거지.’
스킬 발동, 데스 파이어.
제로는 죽음이 깃든 불꽃을 이용해 시체를 처리하며 중얼거렸다.
로스트 월드는 게임인 이상, 시체가 남지 않는다. 죽으면 그 즉시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하지만 황궁 내부는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또한 일종의 이벤트로 적용되는 것인지 지금까지 죽인 메이드들의 시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덕분에 제로는 죽은 메이드들의 시체를 처리해야 하는 뒷수습까지 해야 했다.
움찔-!
제로가 불평불만을 토로하며 다시 움직이려 할 때, 기감에 다수의 기척이 잡혔다.
그에 제로는 인상을 찌푸리며 천장에 달라붙어 최대한 기척을 죽였다.
“아직도 찾지 못했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당장 침입자를 찾아!”
한 기사가 바삐 돌아다니는 병사들을 독촉했다.
기사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군기 잡힌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며 후다닥 달려 나갔다.
“으음, 감히 황궁 내부에 숨어들다니. 이방인들의 오만방자한 태도가 하늘을 찌른다더니, 참으로 막나가는 놈들이로구나.”
황궁은 벌써 침입자가 이방인. 즉, 유저라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거려나?’
천장에 달라붙어, 천천히 사라지는 기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제로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막나가는 NPC라 하더라도 황궁 내부에 침입하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도둑 길드의 또 다른 사업 중 하나인, 암살 업에서도 ‘황제 암살’만큼은 제외되었겠는가.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지.”
고개를 털며 잡생각을 떨쳐 낸 제로가 바닥에 내려섰다.
그렇게 다시 문양이 안내하는 대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려는 찰나….
“치, 침입자다!”
황궁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던 병사와 눈이 마주쳤다.
병사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검은 덩어리, 제로를 발견하기 무섭게 목이 떠나가라 외쳤다.
침입자?
어디냐!
침입자를 발견했습니다!
병사의 외침을 시작으로, 사방에서 다수의 병사가 몰려들었다.
넓게 퍼트린 기감에 걸린 숫자만 해도 물경 20명에 달했으며. 개중에는 지하 하수도에서 만났던 은사자 기사단의 기사보다는 약하지만, 나름 강함을 지닌 기사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젠장!”
제로는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 나갔다.
스킬 발동, 데스 부스터.
발바닥에서 터져 나가는 죽음을 통해 가속력을 획득한 제로가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병사 수십이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수십을 상대하는 동안 수백이 몰려올 것이며, 그 수백을 상대한다면 다시 기사들이 몰려올 것이다.
지금의 제로가 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도망밖에 없었다.
허나….
“침입자를 발견했습니다!”
“제압하라!”
운이 너무 안 좋았다.
갈림길에서 다섯 명의 병사를 대동한 기사와 맞닥뜨렸다.
기사의 가슴팍에는 늑대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기사가 하울링 기사단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려 줬다.
하울링 기사단.
평균 레벨이 350 정도 되는, 황궁 내부에 있는 기사단 중에서 가장 약한 기사단이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울링 기사의 숫자는 모든 기사단 중 가장 많았다.
특히나 그들은 다수로 소수를 상대하는 것에 있어 특출나 있었기에, 현 상황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기사단 중 하나였다.
“죽어라!”
푸부북-!
제로가 다급히 바닥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제로가 서 있던 자리에 다섯 개의 창날이 꽂혔다.
제로는 발밑을 스쳐 지나가는 창날에 꿀꺽! 마른침을 삼키면서도, 이 기세를 살려 병사들의 머리 위를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어딜 도망가는 것이나!”
후웅-!
쾅!
뒤늦게 휘둘러진 기사의 검에 얻어맞아 벽과 충돌했다.
무너진 벽의 잔해를 해치며 나온 제로의 몸 주변에는 기사의 검격에 일부분이 박살 난 본 실드가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미치겠네!”
스킬 발동, 다크 웨이브.
콰가강!
제로가 손을 뻗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물리력을 동반한 짙은 어둠이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며 병사와 기사들을 뒤덮었다.
이렇게 된 이상, 싸움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흑마법사 흉내를 내서, ‘황궁에 침입했다’라는 행위에 대한 피해가 검은 마탑 쪽으로 향하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끄아악!
어억!
흐, 흑마법이다!
다크 웨이브에 휩쓸린 병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튕겨져 나갔다.
그나마 하울링 기사단 소속의 기사는, 스스로가 기사라는 것을 증명하듯 칼을 바닥에 꽂는 것으로 살짝 밀려 나가는 것에 그쳤다.
“으득! 감히 하찮은 흑마법사 놈이 황궁에 숨어들어 온 것이냐! 황제 폐하께서 흑마법사 놈들에게 얼마나 많은 온정을 베풀었거늘!”
흑마법사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검은 마탑이 어째서 시작의 도시에 있는 것일까?
시작의 도시는 유일 제국의 중심이자 수도이며 황제가 기거하는 황궁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것은 간단했다.
제작사 측의 편의 덕분이 아니라, 오롯이 현 황제가 ‘받아들여 줬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사건을 계기로 검은 마탑은 시작의 도시에서 사라지고, 흑마법사들은 과거처럼 다시 한번 숨어 살아가야 될지도 몰랐다.
“이놈! 죽여 버리겠다!”
노호성을 터트린 기사가 검을 휘둘렀다.
한 번의 휘두름으로 수 개의 검영을 만들어 내는 기사의 실력은 확실히 뛰어났다.
제로는 그런 기사의 검을 막아서기보다는 뒤로 물러나며 회피를 취했다.
스카가각!
제로가 서 있던 자리에 기사의 검이 스쳐 지나갔다.
그로 인해 벽과 바닥에 검격의 흔적이 새겨졌다.
제로는 자신이 서 있던 바닥이 잘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보내 주면 안 되겠냐?”
후웅-!
스카각!
제로의 질문에 기사는 그저 검을 휘둘렀다.
그 행위로 기사는 제로를 곱게 보내 줄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렸다.
“그래, 솔직히 기대도 하지 않았어.”
스킬 발동, 다크 캐논.
후웅-!
콰아앙!
쏘아진 거대한 탄환이 기사와 충돌하며 폭발했다.
기사는 다크 캐논의 폭발력에 뒤로 물러났으며, 제로는 그런 기사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기사를 확실히 죽이기보다, 최대한 빨리 목적지로 가야 했다.
지금부터는 진짜로….
‘타임 어택이야.’
죽음을 동반한 타임 어택이 시작되었다.
* * *
“소란스럽구나.”
“죄, 죄송합니다!”
황제의 명을 받아 움직이던 켄드로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곁에서 같이 움직이고 있던 기사가 당황하며 외쳤다.
“자네를 책망하는 것이 아닐세. 그만큼 침입자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뜻이겠지.”
켄드로는 침입자, 제로를 사로잡기 위해 움직이는 것치고는 상당히 느긋했다.
그 모습은 마치 산책을 하는 듯도 했다. 이는 켄드로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확신이 보여 주는 자신감이었다.
‘놈은 절대 살아서 황궁을 빠져나갈 수 없다.’
침입자는 황궁을 빠져나갈 수 없다.
황궁 내부엔 온갖 실력자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아직 움직이지 않는 황룡 기사단을 선두로, 황실 마법사들까지.
그들 모두가 움직인다면 침입자를 붙잡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아니, 그들 모두가 실패한다 한들….
“내가 잡으면 그만인 것을, 클클.”
켄드로가 낮은 웃음을 토해냈다.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어떻게 놈이 잊혀진 통로를 알아냈는지… 였다.
다만 그것은….
‘놈을 붙잡은 다음 실토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켄드로는 느긋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