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쿠르르.
벽이 무너지며 숨겨진 공간이 드러났다.
제로는 숨겨진 공간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 숨겨 두고 있었냐.”
터벅, 터벅.
몇 걸음 걷기 무섭게 제로는 두 개의 물건 앞에 멈춰 섰다.
하나는 가면이요, 하나는 책이었다.
그 둘의 이름은 ‘역병 의사 마스크’와 ‘역병의 마도서’로 제로가 찾고 있던 아이템이었다.
“아이템 확인.”
[역병 의사 마스크]
방어력: 30 마법 저항력: 30
등급: 레전더리
특수 스킬: 역병의 안개. 역병 지대. 역병의 시선
특수 옵션: 친화력 역병+30 지능+30
고대 역병의 사도라 불리었던 한 흑마법사가 만들어 낸 가면이다.
[역병의 마도서]
분류: 마도서
고대 역병의 사도라 불리었던 흑마법사의 정수가 담긴 마법서이다.
이것을 통해 역병의 사도라 불리었던 흑마법사의 마법을 배울 수 있다.
“호오.”
둘의 성능은 듣던 것과 동일했다.
다만, 역병 의사 마스크는 특수 스킬을 세 개나 가지고 있지만, 레전더리라는 등급에는 못 미치는 옵션을 달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저 세 가지 스킬이 그만큼 뛰어난 걸지도.”
제로는 회귀 전, 역병 의사 마스크를 자랑했던 흑마법사와 같은 전장에 나선 적이 없었다.
적은 많았고, 생존자도 많았다. 다만 그에 반해 플레이어의 숫자는 적었다.
광범위한 전장을 감당하기 위해서 플레이어들은 쉴 틈 없이 움직였기에,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플레이어들 또한 상당수 존재했다.
그나마 그에게 자랑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아 제로와 흑마법사. 그 둘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스킬들은 나중에 실험해 보면 되지.”
철컥.
제로는 망설임 없이 역병 의사 마스크를 장착했다.
검은 로브와 검은 사제복을 뒤집어쓰고, 한 손에는 네크로노미콘을 쥐고 있다.
그 상태에서 역병 의사 마스크까지 장착하자, 현 제로의 모습은 고대 활동했던 역병의 사도로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역병 의사 마스크를 장착하였습니다.]
[숨겨진 저주가 발동합니다.]
[저주-죽을 수 없는 육체가 발동합니다.]
“저… 주…?”
제로가 미간을 찌푸렸다.
역병 의사 마스크를 장착하기 무섭게 뜬금없이 저주가 발동했다.
그때 흑마법사의 자랑에는 이러한 저주에 관한 말은 없었다.
“일부러 숨긴 건가.”
제로는 한숨을 내쉬며 저주에 관한 정보를 열었다.
[저주-죽을 수 없는 육체]
역병을 다루는 자는 언제나 죽음과 함께 한다.
역병의 사도라 불리었던 흑마법사는 그러한 죽음을 피하기 위해 하나의 저주를 만들고, 스스로에게 그 저주를 부여했다.
허나 역병의 사도가 만든 저주, 죽을 수 없는 육체는 ‘저주’임에도 그 정체를 알고 있는 자들에겐 ‘축복’이라고 불리었다.
효과: 육체가 불사지체로 변화합니다. 역병에 관한 내성이 99.99% 증가합니다. 육체에 흐르는 피에 다양한 종류의 역병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흠.”
저주, 죽을 수 없는 육체를 훑어본 제로는 어째서 이것이 ‘축복’이라고까지 불리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역병에 관한 내성을 올려 주는 효과나, 피 그 자체에 역병을 저장할 수 있는 효과 때문이 아니었다.
단 하나.
육체를 불사지체로 변화시켜 주는 효과 때문이었다.
불사지체.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절대 죽지 않는 육체였지만, 정말로 죽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육체의 재생력을 압도적으로 늘려 상처가 생겨도 순식간에 재생시키고.
목이 베이거나 심장이 터져 나가는 등의 즉사가 발동했을 때, 단 한 번 죽음을 회피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만일 불사지체라는 이름 그대로 ‘죽지 않는다’면, 과거 역병 의사 마스크를 가졌던 흑마법사는 죽지 않고 자신과 함께 허상괴의 왕에게 대적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거, 아바타에도 적용되는 거려나?”
제로가 의문을 품으며 중얼거렸다.
제로의 본체는 상급 망자로, 그 외형은 흑골의 리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육신에는 저주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나마 의태의 반지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의 몸뚱이에 적용되면 좋겠는데….
그러한 생각을 품은 제로는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한 번 실험하면 그만이지.”
스칵-!
제로는 망설임 없이 단검으로 자신의 팔을 그었다.
단검의 날카로운 칼날에 팔에 깊은 상처가 새겨지고, 그 상처로부터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허나 그러기도 잠시.
상처는 마치 시간이 역행하듯 빠른 속도로 사라졌으며. 그 상처를 통해 흘러내린 피는 땅에 닿기 무섭게 치이익! 하는 연기를 만들었다.
그 연기 속에는 당연하게도 ‘역병’이 깃들어 있었다.
“아바타에 적용되네?”
제로가 씨익 웃었다.
의태의 반지로 만들어 낸 거짓된 육체에 저주-죽을 수 없는 육체-가 적용되었다.
이것은 상당한 이점이었다.
비록 의태의 반지를 빼는 순간, 그 효과는 상실할 것이다.
다만, 적어도 의태의 반지의 단점인 ‘힘의 30%가 제한된다’는 것은 보완할 수 있었다.
“그럼 가 볼까.”
역병 의사 마스크와 역병의 마도서도 획득했겠다.
제로는 망설임 없이 던전을 빠져나갔다.
이제는 벼르고 벼르던 ‘리치’를 제작할 시간이었다.
* * *
“대마법사. 혹은 그에 준하는 마법사의 시체… 말인가?”
시작의 도시에 자리 잡은 잿빛 마탑.
개중에서도 잿빛 마탑의 마탑주인 네크로 마스터 베드로는 눈앞의 청년, 제로의 무리한 부탁에 끙!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본디 네크로맨시란 시체에서 시작해 시체로 끝난다.
그렇기에 잿빛 마탑에는 수없이 많은 시체가 잠들어 있지만….
“아무리 우리 잿빛 마탑이라 한들 그 정도의 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네.”
대마법사. 혹은 그에 준하는 마법사의 시체라니.
애초에 대마법사란 7서클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다. 유저로 따지자면 마스터 레벨의 유저였으며, NPC라 한들 그 정도 경지에 접어든 마법사는 몇 없었다.
특히나 대마법사의 시체는 잿빛 마탑이나 검은 마탑에서 악용할 우려가 있었다.
그렇기에 푸른 마탑과 제국에서의 엄중한 관리가 들어갔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끄응.”
다시 한번 이어진 제로의 부탁에 베드로가 또 한 번 신음을 내뱉었다.
아무리 베드로라 하지만 대마법사의 시체는 구할 수 없었다.
“미안하게 됐네.”
베드로의 말에 제로가 후우-, 깊은숨을 토해냈다.
리치를 만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재료가 있다면 대마법사 이상의 경지를 이룩한 마법사의 시체였다.
현자급의 시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은 제로라 하더라도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대마법사 정도로 타협을 본 것인데….
‘그 멍청한 놈이 역병의 군주에게 먹히지만 않았어도.’
제로는 역병 의사 마스크와 역병의 마도서를 구하기 위해 찾았던 던전의 주인이었던 흑마법사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마도사의 기준은 어느 마탑에서나 동일하게 6서클 이상의 마법사를 지칭한다.
게다가 역병의 군주 정도 되는 키메라를 만들었다는 것은 곧 ‘대마법사’급의 경지에 이룩했다는 것이 되기에 놈의 시체를 이용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니, 그 멍청한 놈이 역병의 군주에게 먹히지만 않았어도 리치의 재료로 사용했을 제로였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멈춰 보게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제로를 향해 베드로가 입을 열었다.
자신을 만류하는 소리에, 제로의 시선이 베드로를 향했다.
“비록 잿빛 마탑에 대마법사의 시체는 없다네. 하지만 대마법사. 혹은 그 이상의 경지를 이룩한 마법사의 시체를 구할 방법은 존재한다네.”
“그게 정말입니까?”
베드로의 말에 제로의 눈이 빛났다.
“자네…, 혹 ‘현자의 무덤’이란 장소를 알고 있는가?”
* * *
“현자의 무덤이라.”
잿빛 마탑을 빠져나온 제로가 중얼거렸다.
베드로에게 들은 현자의 무덤.
그것은 과거 활동했던 무명의 현자라 불리었던 존재의 시체가 잠들어 있는 무덤이었다.
다만 베드로조차 그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세 가지 색이 교차하는 순간, 현재와 과거. 미래가 만나 지식의 보고로 향하는 길이 모습을 드러낼지어다.”
제로는 손에 쥐어진 종이에 적혀 있는 글귀를 읊조렸다.
지식의 보고는 베드로가 말한 현자의 무덤일 터인데. 도대체 그 장소가 어디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중해서 들을걸.”
제로가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허나 그 누가 알았겠는가. 자신이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로 회귀할 것임을.
“어쩔 수 없지.”
꾸깃!
손에 쥔 종이를 움켜쥔 제로가 움직였다.
걸음을 옮기는 제로의 목적지는 도둑 길드였다.
현자의 무덤에 관한 정보가 되팔릴 우려가 있긴 했지만, 현시점에서 도둑 길드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도둑 길드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정보 길드였으니.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제로는 어느새 도둑 길드의 본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작의 도시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푸른 마탑과 검은 마탑. 잿빛 마탑 따위의 마탑들이 처음 세워진 장소 또한 시작의 도시였으며, 각 직업과 관련된 길드들 또한 시작의 도시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도둑 길드의 본점 또한 시작의 도시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러한 도둑 길드의 본점은 시작의 도시 동쪽의, 길드 타운이라 불리는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딸랑-!
제로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맑은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걸 보고 누가 도둑 길드라 생각하겠어.”
제로는 도둑 길드 내부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내부는 상당히 넓었으며, 수많은 유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중 다수의 유저는 도둑으로 전직하기 위해 찾아왔으며, 나머지 유저들은 제로와 마찬가지로 정보를 구입하기 위해 찾아왔다.
터벅. 터벅. 터벅.
“도둑 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카운터로 걸어가자 직원이 밝은 미소로 응대했다.
“정보를 사고 싶어.”
제로는 검은 사제복에 검은 로브를 걸치고. 얼굴에는 역병 의사 마스크까지 장착하고 있었다.
그 겉모습만 본다면 한없이 의심스러웠으나, 역시나 도둑 길드라는 것일까.
직원은 제로의 외형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연신 부드러운 미소를 내비쳤다.
“정보 말씀입니까. 정보라면 2층의 정보과에 가시면 되겠습니다.”
직원이 한쪽에 자리 잡은 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직원의 대답에 따라 올라간 2층은….
“활발하네.”
활발했다.
2층의 중앙에는 다수의 의자가 놓여 있고, 그러한 의자에는 자신의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는 유저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또한 사방에는 수많은 문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러한 문에는 숫자가 적힌 명패가 걸려 있었다.
“도둑 길드 정보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번호표를 뽑고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제로가 올라오자 직원이 다가오며 말했다.
제로는 그런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번호표를 뽑았다.
‘223번이라. 꽤 기다려야겠네.’
의자에 앉아 있는 유저들의 숫자만 해도 족히 20명은 되어 보인다.
많은 숫자의 유저를 상대하기 위해 방의 숫자 또한 많았지만, 어느 정도의 기다림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제로는 말없이 의자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