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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65화 (65/200)

제65화

의태의 반지를 뺀 제로를 중심으로 죽음이 휘몰아쳤다.

제로는 평범했던 인간의 모습에서, 미간에 보석이 박혀 있는 흑골의 리치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츠즈즛.

기묘한 소리와 함께 제로를 중심으로 주변의 대지가 죽어 가기 시작했다.

제로는 점차 강해짐에 따라,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니, 더욱 정확히는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죽음만으로도 주변의 모든 것을 죽였다.

크르르.

괴물의 모습을 한 역병의 군주는 흑골의 리치가 되어 버린 제로에 낮은 울림을 토해 냈다.

이성이 존재하지 않음에 따라, 더욱 날카로워진 본능이 눈앞의 제로가 위험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스윽.

“크아아-!”

제로가 손을 들어 올리자 역병의 군주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것은 영혼을 옥죄여 들어오는 죽음에 의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괴성을 내지르는 역병의 군주의 입이 쩍! 벌어지며 초록빛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살을 썩게 만드는 역병에 감염되었습니다.]

[뼈를 파먹는 벌레의 역병에 감염되었습니다.]

[기침이 멈추지 않는 역병에 감염되었습니다.]

[끝없이 피를 토하게 만드는 역병에 감염되었습니다.]

[근육을 녹이는 역병에 감염되….]

제로의 눈앞으로 온갖 역병에 감염되었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소용없어.”

제로는 눈앞의 알림창을 치우며 중얼거렸다.

온갖 종류의 역병? 감염되는 순간 무조건 죽어 버리는 역병?

제로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따지자면 내 몸뚱어리는 시체거든. 시체가 병에 걸릴 거라 생각했냐?”

제로의 종족은 상급 망자. 크게 본다면 언데드에 속한다.

본디 언데드라는 존재는 사기에 의해 움직이는 시체였다. 시체인 제로에게 역병 따위는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제로의 눈앞에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것은….

[종족 특성에 의해 모든 역병을 무시합니다.]

“이거 봐.”

제로는 눈앞에 떠오른 새로운 알림창에 피식 웃었다.

역병의 군주가 무서운 이유는 온갖 종류의 역병. 즉 디버프를 퍼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디버프는 오직 ‘살아 있는 존재’에게만 통용되는 것에 불과했다.

결국 역병의 군주는 자신이 가진 힘의 절반 이상이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제로를 상대하게 되었다.

“역병 없는 넌 덩치 큰 샌드백에 불과해.”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푸욱-!

크아악!

가슴 왼쪽에 거대한 흑골의 창이 틀어박힌 역병의 군주가 비명을 내질렀다.

거대한 흑골의 창에 틀어박힌 역병의 군주 가슴이 점차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데스 본 스피어.

그 외형은 평범한 본 스피어와 똑같았지만,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과 물리 복합 속성 마법이었다.

흑골의 창에 스치기만 해도, 창에 깃들어 있는 죽음이 상처를 통해 흘러들어 가 주변의 모든 것을 잠식한다.

그것이 데스 본 스피어의 무서운 점이었다.

“크아아악!”

쿵! 쿵! 쿵!

상대에게 자신의 역병이 통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달은 역병의 군주가 육중한 몸을 이끌며 달려들었다.

본능적으로 역병이 통하지 않는다면 육탄전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거대한 육체를 이끌고 달려드는 역병의 군주의 기세는 마치 산사태가 일어난 듯한 환영마저 만들었다.

하지만….

“소용없다니깐.”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콰가가강-!

제로가 비어있는 왼손을 내뻗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죽음의 파동이 달려드는 역병의 군주의 다리를 두드렸다.

데스 웨이브의 범위는 상당히 넓었지만, 그럼에도 30m에 달하는 거체를 전부 뒤덮기란 역부족이었다.

후웅!

“칫.”

스킬 발동, 더미 블링크.

억지로 데스 웨이브를 뚫고 나온 역병의 군주가 거대한 주먹을 내리꽂았다.

제로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역병의 군주의 주먹에 혀를 차며 더미 블링크를 통해 회피했다.

역병의 군주의 주먹은 제로의 더미를 짓뭉개고, 나아가 더미가 있던 대지를 터트려 버렸다.

“단순히 육체 능력만으로 어지간한 오우거 수십 마리는 씹어 먹고도 남겠네.”

저것의 레벨을 환산한다면 최소 600은 될 것이다.

자신에게 역병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그 육체 능력만으로도 상당한 괴물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단순한 육체 능력으론 날 이길 수 없어.”

스킬 발동, 데스 캐논.

콰앙!

역병의 군주의 얼굴을 강타한 거대한 탄환이 폭발했다.

역병의 군주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크아악! 하는 괴성을 내지르며 주춤거렸다.

“뭣들하고 있냐. 일해야지, 일.”

스킬 발동, 외차원의 창고.

스킬 발동, 망자의 대군단.

스킬 발동, 망자의 거신병단.

스킬 발동, 데스 솔저.

스킬 발동, 어보미네이션.

스킬 발….

제로의 등 뒤로 공간이 갈라지며 각종 망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단순한 병사와 정예병을 시작으로 방패병과 궁병. 궁기병과 장군. 그 외에도 상급 망자인 데스 솔저와 어보미네이션, 망자의 거신병 등등까지.

모습을 드러낸 수천의 망자들은 제로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역병의 군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디 보자, 그리고….”

‘저 거슬리는 신체 능력부터 너프 좀 시켜 볼까.’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들어 올렸다.

그에 네크로노미콘의 페이지가 파라랏! 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가다 멈췄다.

스킬 발동, 저주의 시선.

제로에게서 흘러나온 보랏빛 기류가 허공에 뭉쳐 들며 하나의 눈동자로 변했다.

나타난 눈동자는 이리저리 움직이다 역병의 군주를 응시하며 보랏빛 안광을 토해 냈다.

크아아-!

저주의 시선이 닿자, 역병의 군주가 다시 한번 괴성을 내질렀다.

그로 인해 보랏빛 안광이 닿는 순간, 육체에 온갖 종류의 저주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시끄러워.”

스킬 발동, 망자의 철퇴.

후웅-!

콰직!

비명을 내지르는 역병의 군주 머리 위로 거대한 망치가 떨어졌다.

그것에 얻어맞은 역병의 군주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육체 능력이 뛰어난다 한들, 온갖 종류의 저주에 당한 이상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순 없었다.

그렇게 역병의 군주가 저주에 약화되고, 망자의 철퇴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달려들었던 망자들이 군주의 몸을 타고 기어 올라가 무기를 휘둘렀다.

뼈로 이루어진 칼, 창, 화살 따위가 군주의 몸에 틀어박히고. 살점을 베어 내며, 나아가 상처를 부패시켰다.

크아아아!

쾅! 쾅! 쾅!

결국 역병의 군주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사방팔방으로 휘둘러지는 주먹에 얻어맞은 망자들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마법적 처리가 가미된 돔조차 역병의 군주의 주먹이 몇 번 내리치는 순간,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금이 갔다.

“그만 좀 날뛰어라.”

스킬 발동, 망자의 시선.

이번엔 허공에 죽음이 뭉쳐 들며 하나의 눈동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저주의 시선과 비슷하게 잿빛 안광을 토해내며 역병의 군주를 응시했다.

망자의 시선에 닿은 역병의 군주에 수백, 수천의 망자들이 달라붙어 움직임을 억제했다.

허나 저주로 약화되고, 망자들의 공격에 상처를 입었다 한들 상대는 괴물.

망자의 시선으로도 괴물의 움직임을 완전히 억누를 순 없었다.

“귀찮게 하기는.”

스킬 발동, 명왕의 손아귀.

제로가 또 다른 구속계 마법을 사용했다.

역병의 군주 발밑에 거대한 마법진이 새겨지며, 그 마법진에서 명계의 냉기를 품은 거대한 뼈의 손이 튀어나왔다.

명계의 냉기를 품은 그것은 망설임 없이 역병의 군주를 움켜쥐었다.

“크아아아악!”

명왕의 손아귀에 움켜쥐어진 역병의 군주가 다시 한번 비명을 내질렀다.

명왕의 손아귀는 단순히 붙잡는 것을 넘어, 손아귀에 깃들어 있는 냉기 또한 데미지를 입힌다.

명계의 냉기는 일반적인 빙 속성이 아니었기에, 빙 속성 내성을 올린다 한들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명왕의 손아귀에 붙잡힌 역명의 군주의 몸뚱어리에 잿빛의 서리가 깔리기 시작했다.

“뭣들하고 있어. 부숴 버려.”

제로가 명령을 내리자, 가만히 있던 망자들이 다시 움직였다.

역병의 군주를 향해 달려드는 수천의 망자들이 만들어 낸 잿빛의 탁류는 마치 거대한 쓰나미를 연상시켰다.

“크아아아아-!”

역병의 군주는 수천의 망자와, 명왕의 손아귀에 붙잡혔음에도 불구하고 꿈틀거렸다.

입에서는 망자들에게 통하지 않는 역병의 브레스를 연신 토해냈다.

“소용없다니깐.”

제로는 역병에 걸렸다는, 눈앞을 가리는 무수한 알림창을 지우며 말했다.

“고작 역병을 토해내고, 육체 능력이 좋은 것 정도로는 날 이길 수 없어. 차라리 네가 죽여 버린 흑마법사랑 힘을 합치기라도 하지 그랬냐.”

‘뭐,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겠지만.’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비어 있는 왼손을 들어 올렸다.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후웅-!

콰직!

“끄아아아악!”

역병의 군주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의 왼쪽 눈에는 거대한 흑골의 창, 데스 본 스피어가 틀어박혀 있었다.

“우선 눈 하나. 다음은.”

스킬 발동, 사신의 일격.

스칵-!

역병의 군주 뒤로 거대한 대낫이 휘둘러졌다.

날카로운 칼날을 가진 대낫은 역병의 군주의 거체를 지탱하고 있는 여덟 개의 다리 중 네 개를 잘라 버렸다.

네 개의 다리를 잃어버린 역병의 군주는 그 거대한 몸을 지탱하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슬슬 피통도 딸리지 않아?”

스킬 발동, 데스 스톰.

콰지지지직-!

쓰러진 역병의 군주를 중심으로 폭풍이 휘몰아쳤다.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이 역병의 군주의 몸뚱어리를 난자했다.

천장에 모여든 구름에선 수십 줄기의 낙뢰가 떨어졌다.

“아직 멀었어.”

스킬 발동, 데스 스파이크.

콰지직!

대지가 갈라지며 창이 치솟았다.

대지에서 솟아난 창에는 죽음이 깃들어 있었으며, 그러한 창에 꿰뚫린 역병의 군주의 몸뚱어리는 다시 한번 썩어 문드러졌다.

“크르르….”

힘이 다한 것일까.

체력이 다한 것일까.

쓰러진 역병의 군주의 입에선 이제 괴성 한 톨 터져 나오지 않았다.

그저 다 죽어 가는 생명의 단말마만이 내뱉어질 뿐이다.

제로는 죽음을 코앞에 둔 역병의 군주를 바라보며 망자들을 뒤로 물렸다.

저벅. 저벅. 저벅.

제로가 앞으로 걸어 나가자, 수천의 망자들이 일제히 갈라지며 하나의 길을 만들어 냈다.

망자가 만들어 낸 길을 따라 걸어간 제로가 멈춰 선 장소는 역병의 군주의 눈앞이었다.

“기분이 어때?”

크르르….

제로의 질문에 역병의 군주는 그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그것의 두 눈동자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심과, 제로에 대한 적의와 살의가 적절히 뒤섞여 있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너도 참 불쌍한 존재야.”

제로가 입을 열었다.

역병의 군주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그 본질은 키메라. 잘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이 ‘실험’을 목적으로 강제적인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도 모자라 시체마저 유린당해 역병의 군주라는 이름의 괴물로 다시 태어났다.

“불쌍한 생명에게 편안한 죽음의 안식을.”

스윽.

조용히 중얼거린 제로가 손가락을 내리그었다.

그에 제로의 등 뒤에서 해골의 몸뚱어리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신이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사신은 역병의 군주의 목을 향해, 손에 쥐고 있던 거대한 대낫을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

그것은 스킬, 사신의 안식이었다.

대낫이 훑고 지나간 역병의 군주의 목은 깔끔하게 잘려 나갔으며, 죽음을 맞이한 역병의 군주는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역병의 군주 시체가 있던 자리에는 하나의 보석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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