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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64화 (64/200)

제64화

“뭐가 웃기지?”

흑마법사의 웃음에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히 웃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검은 마탑에서 현상금을 걸었다? 참으로 재미없는 농담도 잘하는구나.”

“농…!”

“농담이 아니라는 소리는 하지 말아 주게나. 그도 그럴 것이 본좌가 진행하는 실험은 마탑의 허락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말일세.”

….

흑마법사의 말에 제로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현상금은 나름 상대의 멘탈을 흔들겠다고 뽑은 뻥카였다.

그럴 텐데….

“설마 이 실험이 마탑의 허락하에 이루어졌을 줄이야. 검은 마탑도 막 나가네.”

마을 하나를 통째로 실험에 사용했다.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오딘교는 물론, 제국마저 움직일 것이다.

제아무리 검은 마탑이라 한들, 오딘교와 제국 양쪽과의 전쟁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려 준다는 것은….

“너, 날 살려 보낼 생각이 없구나.”

“그렇다네. 슬슬 실험체로 이방인들을 사용해 볼까 생각하던 참이었더라 말일세.”

늙은 흑마법사의 웃음소리가 더욱 짙어졌다.

그나저나….

“날 실험체로 사용하겠다?”

찌푸려졌던 제로의 미간이 펴졌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제로에게선 은은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감히 자신을 실험체로 사용하겠다니.

아무리 상대가 마스터 레벨에 근접한 흑마법사라 하더라도….

“입은 함부로 놀리라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지.”

* * *

콰가강!

쾅! 쾅!

콰아아앙!

사방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 폭음은 제로와 늙은 흑마법사. 둘이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사용하는 마법에 의해 발생했다.

제로가 본 스피어를 날리면, 흑마법사는 다크 실드로 막아 낸다.

흑마법사가 다크 캐논을 날리면, 제로는 망자의 벽이나 본 실드 따위로 그것을 막아 냈다.

그 외에도 사방에는 제로가 소환한 망자들과, 흑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키메라들의 싸움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죽어.”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콰가강!

제로의 펼쳐진 손으로부터 죽음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방사형으로 뿜어져 나오는 죽음은 모든 것을 부숴 버리며 흑마법사를 향해 나아갔다.

“네크로맨서치고 의외로 강하구나. 더더욱 탐이 나는 실험체야.”

말을 마친 흑마법사 또한 마법을 사용했다.

제로와 마찬가지로 펼쳐진 그의 손에서 어둠의 파동, 다크 웨이브가 뿜어졌다.

제로의 데스 웨이브는 흑마법사의 다크 웨이브와 충돌, 상쇄되며 사라졌다.

제로는 자신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 내고, 상쇄시키는 흑마법사에 쯧! 혀를 찼다.

이대로 가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장기전으로 간다면 마르지 않는 마력을 가진 자신이 유리하겠지만, 상대 또한 마스터 레벨에 근접한 흑마법사.

그가 품은 마력 또한 상당히 방대할 터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의미 없는 소모전은 최소 수 시간 이상 지속되리라.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난 네크로맨서인데 몸을 움직일 일이 참 많단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인가?”

제로의 중얼거림에 흑마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제로가 씨익 웃어 보였다.

“무슨 뜻이냐면…, 이런 뜻이거든.”

스킬 발동, 망자의 폭거.

스킬 발동, 명계의 폭풍.

스킬 발동, 명계의 겁화.

스킬 발….

수십 개의 스킬과 마법이 발동했다.

제로에게서 뿜어져 나온 죽음이 네크로노미콘에 깃들며, 네크로노미콘은 어느새 거대한 대검의 형태로 변화했다.

그 외에도 각종 버프 마법을 두른 제로는 동렙의 전사 혹은 기사에 필적하는 육체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근접전으로 한번 가 볼까?”

스킬 발동, 데스 부스터.

쾅!

제로가 한 발 내딛는 순간, 발바닥에서 죽음이 폭발했다.

폭발하는 죽음을 통해 급가속한 제로가 순식간에 흑마법사의 코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후웅-!

제로의 오른손에 쥐어진 망자의 폭거.

죽음과 폭력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대검의 거대한 칼날이 흑마법사의 목을 노리며 휘둘러졌다.

흑마법사는 자신의 목을 노리며 휘둘러지는 대검에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 정말 네크로맨서가 맞는가? 혹 네크로 워리어 이런 게 아니라?”

망자의 폭거의 날이 닿기 직전, 블링크를 통해 몸을 빼낸 흑마법사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로의 움직임은 절대 네크로맨서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수십 년간 검을 연마한 전사나 기사의 그것과도 같았다.

“내 본직이 칼잡이였거든. 뭐, 그것보다….”

‘집중이나 하지?’

다시 한번 데스 부스터를 통해 가속한 제로가 흑마법사를 향해 쏘아졌다.

한줄기 잿빛의 선이 되어 다가오는 제로에 흑마법사가 칫!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은 흑마법사가 처음으로 내비친 당혹. 혹은 분노였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제로에게, 수십 년간 흑마법에 삶을 바친 자신이 밀린다는 것에서 일어난 분노.

그러한 분노는 곧 파괴적인 흑마법으로 분출되었다.

“이 내가 우습게 보였구나! 애송아!”

촤라락-!

흑마법사의 발밑에서 수십 개의 사슬이 튀어나왔다.

사슬 하나, 하나에는 수백 개의 날카로운 가시가 삐죽삐죽 돋아나 있었다.

그 외에도 각종 사슬에는 온갖 종류의 독과 역병. 저주 따위가 서려 있었다.

수십 개의 사슬 중 하나라도 허용한다면 순식간에 독과 역병, 저주에 물들어 흔적도 없이 녹아내릴 것이다.

“흔히들 착각하더라고.”

수십 개의 사슬을 피하고, 망자의 폭거로 쳐 내며 제로가 입을 열었다.

“무엇을 말이냐?”

“저주를 다루는 것에 있어 흑마법사를 따라올 자들이 없다고 말이야.”

“당연한 말 아니겠느냐.”

“틀려.”

카앙-!

제로는 마지막 남은 사슬을 쳐 내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주는 말이야. 네크로맨서의 전유물이야.”

후웅-!

말을 마친 제로의 몸에서 미약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미풍은 곧 광풍이 되었으며, 그러한 광풍 속에는 기묘한 보랏빛 기류가 일렁이고 있었다.

“저주…?”

흑마법사가 중얼거렸다.

그는 제로를 중심으로 일렁이는 보랏빛 기류가 저주에서 파생된 것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리고 말이야. 네크로맨서는 흑마법사보다. 어쌔신보다 더욱 독을 잘 다루지.”

일렁.

보랏빛 기류에 녹빛이 추가되었다.

그것을 본 순간, 흑마법사의 두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제로는 그런 흑마법사를 바라보며 마법을 사용했다.

스킬 발동, 커스 윈드.

스킬 발동, 포이즌 윈드.

후웅-!

제로를 중심으로 흑마법사를 향해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바람에는 각종 저주와 독이 녹아들어 있었는데, 그에 바람을 맞은 흑마법사의 낯빛이 변했다.

아마 유저였다면 지금쯤 각종 저주에 걸리고, 독에 중독되었다는 알림창이 떠올랐을 것이다.

“크윽-! 웃기지 마라!”

푸확-!

한창 독과 저주에 저항하던 흑마법사가 버럭 외쳤다.

그에 흑마법사의 몸에서 진득한 마력이 해일처럼 흘러넘쳤다.

흑마법사는 막대한 마력을 폭발시키는 것으로 육체를 갉아 먹는 저주와 독을 떨쳐 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스킬 발동, 저주의 시선.

스킬 발동, 맹독의 시선.

스킬 발동, 망자의 시선.

스킬 발….

흑마법사를 향해 수없이 많은 마법이 발동되었다.

체력을 저하시키고, 마력을 갉아 먹는다.

수십 가지의 독이 한 번에 들이닥치고, 한을 품은 망자들이 달라붙었다.

다종다양한 독과 저주, 죽음과 망자들 따위에 흑마법사가 비틀거렸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도사인 내가 하찮은 네크로맨서의 저주와 독 따위에…!”

“하찮은 네크로맨서가 아니야. 죽음의 대리자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치는 흑마법사를 향해 제로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읏-! 기지 마라-!”

콰가가강!

흑마법사의 몸에서 다시 한번,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은 힘의 탁류가 흘러넘쳤다.

그것은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수며 퍼져 나갔는데, 그러한 것에는 제로의 망자는 물론. 스스로가 만들어 낸 키메라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키에에에엑!

크아아앙!

마력의 탁류에 휩쓸려 죽어 나가는 키메라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흑마법사는 그런 키메라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쓸모없는 것들! 모조리 죽어 버려라!”

“놈을 깨우기 위한 제물이나 되어라!”

키에에엑-!

마지막 키메라가 비명과 함께 털썩 쓰러졌다.

흑마법사는 시체가 되어 버린 키메라들을 바라보며 중얼중얼 영창을 시작했다.

쿠르르-!

흑마법사의 영창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키메라의 시체에서 탁한 녹색의 피가 흘러나와 대지에 스며들었다.

피가 스며들수록 대지는 미친 듯이 떨렸으며.

떨리는 대지 밑에서 강대한 존재감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무슨 짓을.”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후웅-!

콰직!

무언가 눈을 뜬다.

그것이 눈을 뜨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날린 데스 본 스피어는 흑마법사의 곁에 닿기도 전에 마력의 해일에 휩쓸려 박살이 나 버렸다.

“크하하! 소용없다!”

“어리석은 네크로맨서여! 네놈은 이곳에서 죽는다!”

“네놈을 실험체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버리겠다!”

“네놈은 이곳에서 영혼마저 소멸하는 것이다!”

쿠르르-!

광소 넘치는 흑마법사의 말이 멈추고, 미친 듯이 떨리던 대지마저 잠잠해졌다.

폭풍전야.

제로는 침묵이 가라앉자, 그 단어를 떠올렸다.

무언가. 무언가 눈을 떴다.

방금 막 눈을 뜬 무언가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제로가 그러한 확신을 품기 무섭게….

콰가강!

대지가 폭발하며 거대한 무언가가 몸을 일으켰다.

폭발하는 대지 너머로 엿보인 것은 키메라였다.

허나 지금까지 제로가 상대해 왔던 키메라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 덩치는 30m에 달해 전설 속의 거신을 연상케 했다.

전신은 검게 번들거리는 곤충의 갑각을 둘렀다.

검과 창. 도끼와 활. 지팡이와 메이스 등등의 각종 무기를 쥐고 있는 팔은 총 열두 개였으며, 하반신은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마계의 마수, 슬레이프니르의 하반신이었다.

몸 전체를 뒤덮은 갈기는 지옥의 불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의 형태를 띤 머리에 끔뻑이는 여덟 개의 눈동자는 녹색으로 번들거렸다.

“이것이 내가 완성한 궁극의 키메라! 역병의 군주이니라!”

후웅-!

흑마법사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런 흑마법사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역병의 군주라 불린 키메라에게서 온갖 종류의 질병이 튀어나와 사방을 뒤덮었다.

만일 제로가 ‘망자’가 아니었다면, 그저 역병의 군주가 흘리는 질병만으로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하하! 어떠냐! 이 역병의 군주라면 가증스러운 오딘의 노예들마저 죽일 수…! 무, 무엇을 하는 것이냐!”

광소를 터트리며 말하는 흑마법사가 당황했다.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키메라, 역병의 군주는 그런 흑마법사를 거대한 손으로 붙잡았다.

“이, 이놈! 놓지 못할까! 난 네놈의 창조주란 말…!”

끄아아아아악-!

역병의 군주 손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흑마법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역병의 군주.

그것은 너무나도 강대한 힘을 품었기 때문인지 흑마법사의 지배력이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역병의 군주는 손에 쥔 흑마법사를 한입에 씹어 넘겼으며, 흑마법사는 자신이 만들어 낸 키메라에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하, 미치겠네.”

제로는 이제 자신을 바라보는 역병의 군주에 낮은 숨을 토해냈다.

죽을 거면 곱게 뒤질 것이지, 쓰잘데기 없는 괴물을 소환해 버렸다.

그래도….

“역병 의사 가면과 그에 관련된 스킬들을 위해서라면….”

그 둘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면 이 정도 역경과 고난 정도는 충분히 넘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제로는 역병의 군주를 바라보며 의태의 반지를 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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