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으아아아앙!
제로는 우는 아이를 뒤로하며 마을을 빠져나갔다.
모든 것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약초가 자생하는 동굴은 마을 뒷산의 중턱이었다.
그리 험하지도, 높지도 않은 산에는 이렇다 할 몬스터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한 뒷산에 들어서 5분 정도 걷자, 제로는 한 동굴의 입구에 다다랐다.
“여기가 맞네.”
제로는 눈앞의 동굴과 손에 쥐어진 낡은 책을 번갈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동굴 입구에는 책에 적혀 있는 것과 같이 청량한 향기가 감돌았다.
보통 동굴 하면 눅눅한 습기가 들어찬 냄새 따위가 나야 할 터임에도 불구하고 이 동굴은 그러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외에도 입구에서 바라본 동굴 내부는 빛 한점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이곳저곳 발광하고 있는 풀때기들이 자리 잡았다.
이곳이 역병을 퍼트린 흑마법사의 은신처가 확실하다! 라는 것을 확신한 제로는 인벤토리에서 네크로노미콘을 꺼내 쥐었다.
[퀘스트-사제의 마지막 부탁(A)을 수락하시겠습니까? 가 퀘스트-역병을 퍼트린 흑마법사를 처리하라(S)로 변경되었습니다.]
[숨겨진 던전, 역병을 퍼트린 흑마법사의 실험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최초 발견으로 일주일간 경험치의 양이 50% 증가합니다.]
[최초 발견으로 일주일간 드랍률이 50% 증가합니다.]
동굴 속으로 한 발 내딛기 무섭게 수많은 알림창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아카식 레코드에 역병을 퍼트린 흑마법사의 실험실을 기록하시겠습니까?]
“기록하지 않는다.”
제로는 아카식 레코드에 이 던전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 스타툰과 함께 들어갔던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은신처와 같은 이유였다.
퀘스트 용으로 만들어진 이 던전은 1회용 던전이었기에, 굳이 기록한다 한들 현 유저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럼 가 볼까?”
척. 척. 척.
제로는 마을 곳곳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을 이용해 만든 망자들을 앞세우며 던전 내부로 들어갔다.
* * *
크아아아아-!
끼게게게겍!
던전의 초입까지는 아무런 몬스터도, 이렇다 할 함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청량한 향기를 뿜어내는 약초만이 자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초입을 벗어나기 무섭게 동굴 내부의 공기가 달라졌다.
폐를 맑게 해 주는 청량한 향은 곧 썩은 시체 냄새로 가득 들어찼다.
그 외에도 채 몇 걸음 걷기도 전에 흑마법사의 실험으로 탄생한 괴물들이 제로를 반겨 줬다.
“썩어 문드러진 키메라…. 레벨은 400 초반대인가.”
제로는 망자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몬스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제로가 일으킨 망자는 병사와 정예병, 궁수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망자들은 300대 초반의 레벨대를 이루고 있었지만, 키메라 한 마리를 죽이기 위해 최소 20개의 망자들이 박살 났다.
아무리 보충할 수 있는, 단순한 망자들이라 하더라도 한 마리를 죽이기 위해 20마리를 소모하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쯧.”
스킬 발동, 외차원의 창고.
혀를 찬 제로가 스킬을 사용했다.
제로의 등 뒤로 공간이 갈라지며 심연을 품은 외차원의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대한 빨리빨리 처리하자고.”
스킬 발동, 망자의 대군단.
스킬 발동, 망자의 거신병.
척. 척. 척.
쿵! 쿵! 쿵!
외차원의 창고가 품은 심연 속에서 다수의 망자가 걸어 나왔다.
가장 앞으로는 거대한 방패를 든 망자의 방패병이 자리 잡았으며.
그 뒤로 망자의 궁병 창병. 망자의 광전사. 해골마를 탄 망자의 장군 따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양한 망자들로 이루어진 대군단이 나오고, 그 뒤를 이은 것은 동굴의 천장에 닿을 것만 같은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망자의 거신병이었다.
“뚫어 버려.”
크아아아-!
키게게게게!
달그락! 달그락!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망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방패병이 키메라들의 공격을 막아 내면, 그 뒤에 있는 창병이 창을 내질렀다.
망자들의 머리 위로는 궁병이 쏘아 대는 검은 뼈 화살이 쏟아지고, 그 뒤를 이어 난입한 망자의 거신병들의 육중한 주먹에 키메라들은 곤죽이 되었다.
제로가 본격적으로 꺼낸 망자들의 강함은, 단순한 병사나 정예병들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강력함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인가.”
초입을 떠나 던전의 중반쯤 다다르자 한계가 드러났다.
동굴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등장하는 키메라들의 강함은 늘어만 갔다.
이제는 방패병들의 방어도 손쉽게 뚫어 버리고, 거신병의 일격에도 한 번에 죽지 않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그런 대로 사냥이 가능했지만, 이 이상 진입한다면 던전 초입 꼴이 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여기서는 소수 정예로 간다.”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손을 휘저었다.
그에 막 마지막 키메라를 정리한 망자들의 몸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스킬 발동, 데스 솔저.
스킬 발동, 콜 어보미네이션.
스킬 발동, 외차원의 기사.
3개의 스킬이 발동하며, 제로의 등 뒤로 다시 한번 공간이 갈라졌다.
그것들은 외차원의 창고와 마찬가지로 짙은 심연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갈라진 세 개의 심연 속에선 각기 다른, 하지만 그 종류만 6가지가 넘어가는 무기를 장비한 데스 솔저. 명계의 파괴 전차라 불리는 어보미네이션. 데스 나이트와는 사뭇 다른, 명계의 냉기를 품은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장한 제로와 마찬가지로, 그것들 또한 성장에 성장을 거쳤다.
레벨로 환산하자면 데스 솔저는 470. 어보미네이션은 490에 육박한다.
단 한 개체밖에 없는 명계의 기사는 마스터 레벨을 넘었다.
크르르….
제로가 소환할 수 있는 망자들 중, 최상위에 속하는 전투력을 가진 그것들이 나타나자.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키메라들이 낮은 울림을 토해 냈다.
흑마법사의 실험으로 이성과 공포가 날아갔음에도, 망자들이 내뿜는 짙은 죽음에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것이었다.
“길을 뚫어라.”
제로의 입에서 왕의 위엄이 서린 명령이 떨어졌다.
그에 데스 솔저와 어보미네이션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오직 명계의 기사만이 제로의 곁에 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크르르….
컹!컹!
데스 솔저와 어보미네이션이 달려들자, 소의 몸뚱어리에 곤충의 다리. 개의 머리를 한 키메라가 울부짖었다.
그것의 울부짖음을 시작으로 망자와 키메라 간의 싸움이 시작됐다.
하나의 데스 솔저가 도끼를 휘둘렀다.
후웅-!
퍼걱!
묵직한 파공음을 동반하며 휘둘러진 도끼에 키메라 한 마리의 머리통이 산산이 터져 나갔다.
나머지 키메라들은 동료가 죽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흉성을 터트렸다.
촤라락!
오크의 몸뚱어리에 달린 열 개의 점액질 촉수가 휘둘러지며 데스 솔저의 몸을 휘감았다.
그그극!
강력한 힘으로 조여드는 촉수에 데스 솔저의 몸뚱어리가 비명을 내질렀다.
허나 인간 같아 보이는 데스 솔저의 근원은 망자. 고통도, 공포도 느끼지 않는다.
그렇기에 촉수에 휘감긴 데스 솔저는 자신의 육체가 망가지든 말든, 억지로 무기를 휘두르며 촉수를 베어 냈다.
뭐, 육체가 망가진다 해도….
스킬 발동, 죽음의 손길.
제로의 스킬에 순식간에 원상 복구되었다.
데스 솔저들 외에도 어보미네이션 또한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어보미네이션은 괜히 명계의 파괴 전차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듯, 자신의 거대한 몸뚱어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력으로 키메라들을 말 그대로 박살을 내 버렸다.
육탄전에서 밀린 키메라들이 제각기 특수 능력을 사용했지만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어떤 것은 독 속성의 숨결을 토해 냈으며.
어떤 것은 입에서 극산성의 액체를 내뱉었다.
어떤 것은 자신의 피에 깃든 역병을 퍼트리고.
어떤 것은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마법과도 같은 진공의 칼날을 쏘아 댔다.
“소용없어.”
제로가 입을 열었다.
키메라들의 발악은 말 그대로 발악일 뿐이다.
애초에 산자가 아닌 망자들에게 역병이나 독 따위가 통할 리가 없었다.
극산성의 액체나 진공의 칼날 같은 것에 상처를 입는다 한들, 스킬 하나에 모조리 회복한다.
이 싸움은 처음부터 승자가 정해진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크르르….
컹컹!
크아앙!
몇 남지 않은 키메라들이 괴성을 내질렀다.
허나 공포로 잠식된 육체는 데스 솔저와 어보미네이션이 다가오자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데스 솔저와 어보미네이션이 마지막 남은 키메라들을 정리하려는 찰나….
[멍청한 것들.]
[침입자도 처리하지 못하는 무능한 녀석들.]
[자폭이라도 해서 침입자를 죽여라.]
동굴 깊숙한 곳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마치 쇠를 긁는 듯한 기괴함을 담고 있었으며, 그러한 목소리의 명령에 키메라들의 두 눈동자가 탁하게 풀렸다.
크아아앙!
키메라들이 다시 한번 괴성을 내질렀다.
곧 그것들은 언제 겁을 집어먹었냐는 양 망설임 없이 데스 솔저와 어보미네이션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들어 데스 솔저와 어보미네이션의 몸과 뒤엉키는 순간, 키메라들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제로는 그 모습에 쯧! 하며 혀를 찼다.
스킬 발동, 망자의 벽.
콰르르-!
콰가가가강!
제로의 앞으로 망자의 벽이 솟아나는 순간, 부풀어 오르던 키메라들의 몸뚱어리가 폭발했다.
그 거대한 폭발은 주변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퍼져 나갔다.
“자비가 없네.”
폭발에 무너져 내린 망자의 벽 너머로 보이는 모습에 제로가 고개를 내저었다.
키메라들이 자폭한 장소에는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얼마나 강력한 폭발이었는지, 그것에 휘말린 데스 솔저나 어보미네이션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다만….
“어보미네이션까지 사라진 건 좀 의외인데.”
제로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폭발이 그만큼 강력했던 것일까.
아니면 아직까지도 ‘온전한’. ‘너프를 받지 않은’ 어보미네이션을 소환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제로는 키메라의 자폭에 어보미네이션까지 사라졌다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최소 마스터 레벨은 넘어서야 온전한 어보미네이션을 소환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상관은 없지만.”
언제 아쉬움을 토로했냐는 양, 제로는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 제로의 뒤에는 여전히 경계 태세를 갖춘 명계의 기사가 뒤따랐다.
* * *
“클클, 어서 오게나.”
동굴의 끝.
드래곤 레어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돔에 도착한 제로를 반긴 것은 한 명의 흑마법사였다.
제로와 똑같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후드를 푹 눌러 쓴 흑마법사의 외형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귓가에 파고드는 목소리로 유추해 본다면, 제로의 눈앞에 있는 흑마법사.
이 던전의 보스이자 역병을 퍼트린 흑막의 정체인 그는 상당한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키메라는 떨어졌나 봐?”
제로는 자폭한 키메라를 마지막으로, 이곳까지 걸어올 동안 단 한 마리의 키메라도 나타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며 말했다.
“실패작들로 자네를 막을 수 있겠나, 클클.”
“실패작이라.”
제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던전에 들어와 상대했던 키메라들은 하나같이 강했다.
현 유저들 중 최상위 랭커들을 제외한다면 파티를 맺는다 한들 키메라 한 마리 감당하는 것도 버거웠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실패작이라 치부하다니.
참으로 대단한 흑마법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나저나 자네, 네크로맨서 아닌가? 네크로맨서가 내 실험실에는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검은 마탑에서 당신 목에 현상금을 걸었더라고?”
“끌, 현상금 말인가?”
제로의 말에 흑마법사가 낮은 웃음을 토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