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후웅-!
말을 마친 신성의 몸에서 순백의 오오라가 피어올랐다.
신성의 직업인 성자 전용 스킬 중 하나인, 자애의 휘광이었다.
자애의 휘광은 자신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 내의 유저들에게 온갖 버프를 부여하고 체력 회복률 따위를 증가시킨다.
그에 반해 네크로맨서나 흑마법사. 그리고 언데드 따위에겐 극심한 데미지를 입힌다.
제로는 자애의 휘광에 닿기 무섭게 쭉쭉 내려가는 체력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성자. 지금까지 상대한 그 어떤 유저들보다 까다로운 상대야.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는 자신을 죽일 수 없다.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 또한 스킬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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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발동, 데스 그라운드.
전장 내부의 대지에 죽음이 깃들었다.
그것은 신성의 자애의 휘광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일으켰다.
언데드들의 강함을 증폭시키며,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데미지를 입힌다.
그것이 제로가 사용한 스킬 데스 그라운드였다.
“으음.”
신성은 제로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막대한 죽음에 낮은 신음을 터트렸다.
“우선 이 거슬리는 것부터 정리해야겠군요.”
스킬 발동, 그랜드 크로스.
사제들이 사용하는 신성 마법은 일반적인 마법사들의 서클과는 달랐다.
신성 마법은 총 1급에서 10급까지 존재하며, 당연하게도 숫자가 높아질수록 그 위력이 강해진다.
개중에서 신성이 사용한 그랜드 크로스는 7급에 해당하는 대마법으로 분류된다.
쿵-!
하늘에서 순백의 오오라를 내뿜는 거대한 십자가, 그랜드 크로스가 떨어졌다.
홀리몰리가 사용했던 그랜드 크로스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신성이 사용한 그랜드 크로스는 일정 범위 내의 동료들에게 온갖 버프를 제공한다.
그에 반해 ‘적’이라고 판단된 존재에겐 연신 순백의 낙뢰를 떨어트린다.
그 증거로, 그랜드 크로스가 발동되기 무섭게 제로의 머리 위로 연신 순백의 낙뢰가 떨어졌다.
“아직 멀었습니다.”
스킬 발동, 홀리 그라운드.
신성이 또 하나의 대마법을 사용했다.
홀리 그라운드.
제로가 사용한 데스 그라운드와는 전혀 다른, 대지를 신성력으로 가득 메우는 스킬이다.
그에 신성이 서 있는 땅은 생명이 넘쳐흘렀으며, 제로가 서 있는 땅은 죽음이 넘쳐흘렀다.
그 둘의 충돌로 중앙에는 순백과 잿빛의 스파크가 연신 파지직거렸다.
‘두 개의 대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다니. 역시나 신성이라 해야 할까.’
제로는 7급의 대마법 두 개를 동시에 사용했음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는 신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만 본다면 성자라는 직업의 사기성을 확실히 일깨울 수 있었다.
“칫.”
제로가 혀를 찼다.
그랜드 크로스와 홀리 그라운드의 콜라보라면 어지간한 망자들은 버티지 못하고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야겠네.’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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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발동, 데스 솔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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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발동, 망자의 거신병단.
명계의 언어로 된 영창을 읊조린 제로가 두 개의 스킬을 발동했다.
제로의 등 뒤로 쩍! 하며 공간이 갈라지고, 갈라진 공간 속의 심연에서 다수의 언데드가 걸어 나왔다.
모습을 드러낸 언데드는 총 두 종류.
온갖 종류의 무기들을 소지하고 있는, 열 구의 데스 솔저와 거인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망자. 총 세 구의 망자의 거신병이었다.
‘처음 보는 언데드.’
제로가 소환한 데스 솔저와 망자의 거신병을 바라보며 신성이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로월을 플레이해 오면서도 데스 솔저와 망자의 거신병을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상대의 언데드가 전혀 다른, 처음 보는 존재라 하더라도 언데드는 언데드.
언데드인 이상….
‘날 이길 순 없어.’
스킬 발동, 홀리 라이트닝.
콰가강-!
하늘에서 새하얀 벼락이 떨어졌다.
그 숫자는 총 열셋!
새하얀 낙뢰는 열 구의 데스 솔저와 세 구의 망자의 거신병에게 각기 한 줄기씩 떨어졌다.
하지만….
“소용없어.”
제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무려 신성이 사용한 신성 마법이다. 아무리 제로가 소환한 언데드들이 강력할지라도, 신성의 공격을 받고도 무사한 언데드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럼에도 무엇이 그리 자신감 넘치는 것일까?
둘의 pvp를 지켜보고 있던 유저들이 그러한 생각을 품기 무섭게, 떨어진 낙뢰에 피어오른 먼지구름이 걷혔다.
말도 안 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마스터의 공격을 버텼다고?
구경꾼들이 일제히 술렁거렸다.
그것은 몰래 pvp를 지켜보고 있던 스타툰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데스 솔저와 망자의 거신병은 신성의 공격에도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을 내비쳤다.
“죽여.”
제로가 손을 까딱이며 말했다.
명령이 떨어지자 가만히 서 있던 데스 솔저와 망자의 거신병들이 움직였다.
화륵-!
신성을 향해 달려드는 데스 솔저와 망자의 거신병들이 홀리 그라운드의 영역에 들어가기 무섭게 새하얀 화염에 휩싸였다.
이것이 홀리 그라운드의 무서운 점이었다.
언데드는 한 발 딛는 것만으로도 새하얀 불꽃에 휩싸여 한 줌의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하지만….
“내가 소환한 것들은 좀 다르거든.”
제로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양, 데스 솔저와 망자의 거신병은 육체를 휩싼 새하얀 불꽃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신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후웅-!
순식간에 신성 앞에 도착한 데스 솔저들이 무기를 휘둘렀다.
어떤 것은 장검을. 어떤 것은 도끼를. 어떤 것은 둔기를. 어떤 것은 거대한 대낫을.
신성은 다종다양한 무기들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며 휘둘러지자,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반응 좋고.”
그 모습에 제로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허나 신성을 죽이기 위해 움직인 것은 데스 솔저만이 아니었다.
후웅-!
물러난 신성의 머리 위로 망자의 거신병의 육중한 주먹이 내리꽂혔다.
새하얀 불꽃을 두른 거신병의 주먹은 마치 신의 천벌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네크로맨서인 당신이 어째서 저에게 pvp를 신청했는지 알 것 같군요.”
신성은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세 개의 거대한 주먹에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절 죽일 수 없습니다.”
스킬 발동, 홀리 베리어.
쩌엉-!
신성의 머리 위로 새하얀 장벽이 둘러쳐졌다.
망자의 거신병의 주먹이 홀리 베리어와 충돌하는 순간, 신성이 딛고 있던 대지가 움푹 들어가며 사방으로 거대한 충격이 휘몰아쳤다.
“으음.”
예상외의 묵직함에 신성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우선 언데드부터 정리해야겠군요.”
새하얀 장막 너머로 보이는 데스 솔저와 망자의 거신병을 바라보며 신성이 말했다.
스킬 발동, 자애의 섬광.
번쩍-!
신성이 망자들을 가리키는 순간, 손가락 끝에서 새하얀 섬광이 뿜어졌다.
총 열세 개의 섬광은 일말의 자비 없이 데스 솔저와 망자의 거신병의 머리를 꿰뚫었다.
쿠웅-!
털썩.
머리가 꿰뚫린 데스 솔저와 망자의 거신병들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바닥을 나뒹구는 그것들은 몇 번 꿈틀거리다 곧 가루가 되어 쓰러졌다.
그 모습에 제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스킬 하나로 데스 솔저와 망자의 거신병을 모조리 정리하다니.’
확실히 언데드의 천적. 개중에서도 그 최고봉에 서 있는 성자다운 위력이었다.
신성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제로를 바라봤다.
“방금 저것들이 당신이 소환할 수 있는 최강의 언데드였겠지요?”
홀리 그라운드와 그랜드 크로스의 영역을 돌파해, 자신에게 공격할 수 있는 언데드는 많지 않았다.
그것을 생각해 본다면, 방금 전의 그것들은 제로가 소환할 수 있는 최대, 최강의 언데드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품으며 말하는 신성에 제로가 씨익 웃어 보였다.
“설마.”
준비는 이미 끝났다.
애초에 제로 또한 망자의 거신병과 데스 솔저들로 신성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꺼낸 이유는 단 하나, 오직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망자의 진정한 무서움을 보여 줄게.”
우웅-!
제로를 중심으로 짙은 죽음이 휘몰아친다.
만일 이곳에 필드 전장이 둘러쳐져 있지 않았다면, 구경하고 있는 유저들은 휘몰아치는 죽음에 언데드로 되살아났을 것이다.
그 압도적인 죽음은 자애의 성자, 신성마저 으음! 하는 무거운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타락했다고는 하나 천사라 불리는 존재마저 죽인 놈이야.”
스킬 발동,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
우웅-!
제로의 등 뒤로 다시 한번 공간이 갈라졌다.
갈라진 공간 틈에는 깊은 심연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러한 심연 속에서 돌연 흉흉한 붉은 안광 네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쿵! 쿵! 쿵!
제로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심연 속에서 묵직한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무거운 걸음을 옮기며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본 드래곤….”
신성은 갈라진 공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
흔히 언데드로 분류되는 몬스터들 중, 최강이라 불리는 것이 세 종류 있다.
그중 하나가 아크 리치라 불리는 존재이며, 또 다른 하나가 데스 나이트 킹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본 드래곤. 죽은 드래곤의 시체를 통해 만들어 낸 언데드였다.
“설마 본 드래곤을 다루다니.”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를 바라보는 신성의 두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신성 또한 아직 본 드래곤은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드래곤의 시체를 통해 만들어 내는 언데드이지 않은가.
세간에 알려진 본 드래곤의 최저 레벨은 750 이상. 아무리 드래곤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하더라도, 입에서 뿜어지는 데스 브레스와 압도적인 육체 능력은 현존하는 그 어떤 유저도 상대할 수 없었다.
물론….
‘진짜 본 드래곤은 아니지만 말이야.’
수백, 수천 마리 분량의 와이번의 뼈를 통해 더미 본 드래곤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 강함은 진짜 본 드래곤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 하더라고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의 강함은 진짜. 아무리 신성이라 한들 쉽사리 상대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요.”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를 바라보던 신성은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그의 두 눈과 표정. 분위기는 마치 ‘필살기를 꺼내겠다’라는 느낌마저 풍겼다.
그것을 깨달은 것은 비단 제로뿐만이 아니었는지, 돌연 루나가 필드의 경계까지 달려오며 외쳤다.
“신성! 멈춰! 그건 아직 꺼낼 때가 아니…!”
“미안, 누나.”
다급히 외치는 루나를 향해 중얼거린 신성이 제로를 바라봤다.
“아마 저것이 당신의 비장의 패이겠지요. 그렇다면 저도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제로는 신성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루나의 반응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제로에도 상관없다는 듯, 신성이 돌연 두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푸확-!
신성의 몸에서 신성력이 뿜어져 나오고, 필드 내부는 눈부신 빛으로 가득 메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