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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59화 (59/200)

제59화

“혀, 형님? 여긴 왜 온 겁니까?”

스타툰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으로 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로는 그런 스타툰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다크 로드라는 놈이 뭐 그리 무섭다고.”

“아무리 제가 다크 로드라지만 이제 막 전직했단 말입니…! 아, 아니 그것보다 여긴!”

“신성 길드의 길드 하우스지.”

제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은신처를 빠져나온 제로는 곧바로 신성 길드의 길드 하우스로 향했다.

신성 길드와는 언젠가 정리해야 할 악연이 있다.

그것을 ‘바쁘다’라는 핑계로 미루고 미뤄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이 이상 관계를 질질 끌어 봐야 귀찮아지는 것은 자신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걱정스레 말하는 스타툰에 제로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괜찮고 말고.’

신성 길드와 자신과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언제 어디서 칼 맞아 뒤져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곳은 시작의 도시다.

제아무리 신성 길드가 10강이라 불린다지만, 시작의 도시 안에서 대놓고 pk를 할 순 없었다.

물론 그 외에도….

‘죽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이곳에 온 것이지만.’

제로는 신성 길드 ‘따위에’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이렇듯 대문 앞까지 왔다.

스타툰이야 대도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으니, 일이 틀어진다 하더라도 알아서 잘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가 볼까?”

꿀꺽-!

제로의 말에 스타툰이 마른침을 삼켰다.

* * *

쾅쾅쾅!

“누구쇼?”

발로 걷어차는 것인지, 대문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에 신성 길드 소속 유저 한 명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왔다.

그렇게 문을 열고 길드 하우스를 나온 유저의 눈에 보인 것은 검은 로브를 푹 뒤집어쓴 두 명의 유저, 제로와 스타툰이었다.

“누구요? 여기가 신성의 길드 하우스라는 건 알고 있으쇼?”

“물론.”

유저의 물음에 제로가 후드를 젖히며 입을 열었다.

유저는 그런 제로를 바라보다, 곧이어 경악 어린 표정을 내비쳤다.

“너, 넌!”

스릉-!

제로의 정체를 깨닫기 무섭게 유저가 검을 뽑아 쥐었다.

설마하니 제로가 신성 길드에 직접 찾아올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그는 이곳이 시작의 도시 내부라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무기를 뽑아 쥐었다.

“무슨 똥배짱으로 여길 찾아온 거냐!”

유저는 적의가 한껏 담긴 목소리로 버럭 외쳤다.

그 소란스러움에 길드 하우스 내부에 있던 몇몇 유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왜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라는 표정으로 나왔으나.

곧 제로의 얼굴을 확인하기 무섭게 똑같이 무기를 뽑아 들고, 한껏 적의를 피어 올렸다.

“학살자 제로!”

“신성 길드의 주적!”

“네놈이 어디라고 이곳을 찾아온 거냐!”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제로를 둘러싼 유저들이 차례차례 입을 열었다.

그들의 적의. 그리고 노도와도 같은 기세에 스타툰이 꿀꺽!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키며 제로를 바라봤다.

제로는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포위한 유저들의 면면을 훑어보며 말했다.

“신성과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어. 비켜.”

빠득!

제로의 말에 몇몇 유저가 이를 갈았다.

“마스터가 네 친구라도 되냐? 그것보다 네놈이 마스터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외치던 유저의 입이 다물어졌다.

언제 발동한 것인지, 거대한 흑골의 창이 그의 목에 닿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움직여도 유저는 흑골의 창에 목이 꿰뚫려 죽을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여기 있는 모든 유저를 죽이고 직접 신성에게 찾아가도 난 상관없어.”

무심히 내뱉어지는 제로의 말에 신성 길드 유저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들은 제로가 내뱉은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막나가는 제로라지만 설마 시작의 도시에서 pk를 하겠다니.’

‘미쳤어.’

‘저게 학살자 제로….’

유저들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다시 한번 문이 열리며 또 한 명의 유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유저는 전형적인 궁수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등에 멘 거대한 활은 공성 병기를 연상케 했다.

“루, 루나 님!”

모습을 드러낸 유저, 루나를 알아본 유저들이 당황하며 외쳤다.

루나는 그런 유저들의 모습에 쯧!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마스터가 기다리고 있어. 따라와.”

그 말을 끝으로 루나는 망설임 없이 돌아서 길드 하우스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그 모습엔 제로가 자신을 기습하지 않을 것이란 절대적인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제로가 기습을 한다 해도 피하거나 막을 자신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제로는 당당한 태도의 루나에 피식 웃으며 걸음을 움직였다.

“스타툰.”

“네, 네!”

“넌 이만 돌아가.”

“그게 무슨…?”

“성장하라고. 내가 다시 부를 때까지 최소 마스터 레벨은 찍어 놔.”

그 말을 끝으로 제로는 신성의 길드 하우스로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스타툰은 여전히 남아 있는 신성의 길드원들에 ‘하하’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도망쳤다.

한편, 길드 하우스 최상층으로 걸어가던 루나가 입을 열었다.

“설마 네가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어.”

루나의 목소리에는 한 톨의 적의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심. 마치 제로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할 뿐이다.

“뭐, 오해로 맺어진 악연은 끊어야 하지 않겠어?”

제로 또한 무심히 말했다.

그것을 끝으로 루나와 제로. 그 둘의 대화는 단절되었다.

그렇게 무거운 침묵과 함께 어느 정도 움직였을까.

얼마 걷지 않았음에도 제로는 순식간에 길드 마스터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똑똑.

문 앞에 멈춰 선 루나가 노크하자, 그 너머로 ‘들어오세요.’라는 신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성. 제로야.”

문을 열고 들어간 루나가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신성은 이미 보고를 받았음에도, 제로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다소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내비쳤다.

“설마 진짜로 찾아왔을 줄은 몰랐군요.”

“놈의 말에 의하면 이 모든 악연은 오해로 맺어졌다네?”

“오해… 말입니까?”

루나의 말에 신성의 표정이 다소 딱딱하게 굳어졌다.

오해.

참 좋은 단어였다.

하지만 첫 단추가 오해로 맺어졌을지언정, 이미 너무나도 많은 피가 흘렀다.

지금까지 흘린 피를 생각해 본다면 신성은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제로는 그런 신성의 말을 들으며 터벅터벅 걸어가 소파에 주저앉았다.

“간단하게 가자고.”

“간단하게… 말입니까?”

“그래.”

소파에 앉은 제로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와 나. 1:1 다이다이 까자.”

“1:1… 다이다이 말입니까?”

제로의 말에 신성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다소 속된 말이긴 했지만, 그 뜻은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PK. 즉, 제로는 자신에게 PVP를 신청했다.

네크로맨서인 제로가, 사제. 그것도 주신 오딘의 성자인 자신에게 PVP를 신청할 줄이야.

너무나도 어이없는 말에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제가 주신 오딘의 성자라는 것은 알고 계십니까?”

“잘 알지, 자애의 성자 신성 나으리.”

신성의 질문에 제로가 비꼬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있잖아. 나도 너에게 꿀리지 않는 직업을 가졌거든. 설마 아직까지도 날 평범한 네크로맨서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끙.”

제로의 말에 신성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확실히 지금까지 밝혀진 제로에 관한 정보를 생각해 본다면, 평범한 네크로맨서일 리가 없었다.

최하급 언데드라 불리는 스켈레톤. 제일 강해 봤자 고작 150레벨 언저리일 뿐인 그것이 검은 뼈를 지녔다고 200레벨을 상회하는 강함을 발휘한다.

특히나 제로의 전면 특허라 할 수 있는 검은 스켈레톤은 수많은 네크로맨서가 따라 만들어 보려 했음에도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한 것을 평범한 네크로맨서라 칭할 수 있을 것인가.

신성은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니 단순하게 가자고. 너랑 나랑 1:1 다이다이를 까서, 내가 이기면 내 앞으로 걸어 둔 척살령을 회수해. 단, 내가 지면….”

“당신이 지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캐릭터를 삭제하지.”

고작 PVP에서 패배했다고 캐릭터를 삭제하겠다니.

그만큼 강함에 자신이 있다는 것일까?

신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제로를 바라봤다.

“뭐, 그런 조건을 내걸었을 만큼 난 승리를 확신한다는 거야.”

* * *

신성의 길드 하우스 뒤편에는 연무장이 있다.

그 중앙에 두 명의 유저가 서 있었는데, 한쪽은 새하얀 사제복을 걸쳤으며. 한쪽은 심연을 담은 듯 검은 로브를 걸쳤다.

연무장 외각에는 신성 길드에 소속된 수많은 유저가 둘을 지켜봤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새하얀 사제복을 걸치고, 한 손에 거대한 십자가를 쥔 사제 신성이 입을 열었다.

“정 뭐하면 계약서라도 작성할까?”

“아닙니다.”

자신감 넘치는 제로의 말에 신성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 모습에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신성. 확실히 뛰어난 사제야. 성자라는 직업도 그렇고. 하지만…, 역시 저 유한 성격이 문제란 말이지.’

그가 마스터로 있는 길드 최대의 적이자, 로월을 즐기는 모든 유저에게 ‘절대적인 악’으로 취급받는 것이 바로 자신이다.

그런 자신이 순순히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확신하는 저 표정과 말투. 그리고 자신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제로는 그것들 중 무엇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성은 좀 더 독해져야 했다. 좀 더 이기적으로 변하고, 조금 더 강압적으로 나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를 반복할 뿐이지.’

제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둘의 곁으로 루나가 걸어 나왔다.

“그럼 PVP를 시작하기에 앞서 서로의 조건을 다시 한번 정리하도록 하지. 우선 제로. 네가 승리한다면 우리 신성 길드는 네 앞에 걸려 있는 척살령과 현상 수배를 회수할 것이다.”

끄덕.

루나의 말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 네가 패배한다면 약속한 대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캐릭터를 삭제해 줘야겠어.”

“물론이지.”

제로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루나가 칫! 혀를 찼다.

그녀로서는 차라리 제로가 먼저 제안했던 대로 계약서라도 작성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신성이 용납하지 않았다.

한편 제로는 불평불만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나. 그리고 적의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저들을 무시하며 시스템을 조작했다.

[제로 님이 신성 님께 PVP를 제안합니다.]

[조건 1. 이번 PVP에서 제로 님이 승리하시게 된다면 신성 길드는 현상 수배와 척살령을 회수합니다.]

[조건 2. 이번 PVP에서 신성 님이 승리하시게 된다면 제로 님은 스스로 캐릭터를 삭제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한다.”

“동의합니다.”

제로와 신성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둘 사이에 전장의 깃발이 꽂히며, 필드 전장이 만들어졌다.

* * *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스타툰이 연신 중얼거렸다.

현재 그는 은신을 이용해 신성의 길드 하우스. 개중에서도 제로와 신성의 PVP가 벌어지는 연무장에 숨어 들어갔다.

스타툰은 제로의 강함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제로가 상대해야 할 유저는 주신 오딘의 성자이자 자애의 성자라 불리는 신성이다.

그런 신성의 또 다른 이명은….

“신성이 괜히 언데드 학살자라 불리는 게 아니라구요!”

언데드 학살자.

평범한 사제들보다 더욱 순수하고 농밀한 신성력으로 수없이 많은 언데드를 학살했기에 붙은 이명이었다.

지금까지 신성의 손에 사라진 언데드의 숫자만 수십만을 넘어설 것이다.

“하, 미치겠네.”

스타툰은 연신 불안을 떨치지 못한 채 막 시작한 신성과 제로의 PVP를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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